2024.2.28. 수요일 묵상 | 3. 만들지 않고 발견한 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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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비유, 진주, 보물, 그물, 옛 것과 새 것의 비유 대상은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귀한 것으로 알고 사는 마음, 그리고 보화를 발견했을 때 농부의 마음과 사는 마음, 그리고 그물을 쳐서 귀한 고기를 잡는 어부의 마음, 옛 것과 새 것을 내놓아 화환을 만들듯 정성스럽게 꾸미고 만들어 가는 그런 마음입니다. 외국에서는 항상 인종차별이 문제가 되니 ‘melting pot’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러나 훨씬 더 아름다운 일상생활에서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점이 있습니다. 비빔밥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은 무엇무엇이다라기보다 어떤 것이 되게 만들어 가는 것, 이런 교훈을 우리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천국을 어떤 대상에 비유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간절한 기도, 소원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좋은 밭은 금방 경작합니다. 그러나 돌이 많은 밭은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밭을 가는데 돌이 아닌 보화가 걸린 것입니다. 이것은 예상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를 좀 더 수월하게 보면 우선 일하는 자입니다. 일하는 자는 이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을 의미합니다. 지상에서는 아무리 부자라도 가만히 있으면 못 삽니다. 부자는 사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바쁩니다. 이것이 지상의 삶입니다. 광야의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40년 삶을 특별하게 보기보다 우리 삶 자체가 광야의 삶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특별히 보면 그 일하는 자들이 밭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볼 때 주님이 씨는 천국의 자녀요, 씨 뿌리는 자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진주가 밭에 숨긴 것은 이 지상의 삶의 수고하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을 말합니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서 숨긴 것이 아닙니다. 조상이 남긴 것도 아닙니다. 남의 밭입니다. 하늘 소유, 하나님의 소유, 내 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밭에서 경작을 하다가 보화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화를 만들어서 얻지 않습니다. 굳이 보화가 아니어도 말입니다. 우리가 밤 한 톨이라도 우리가 만들어서 먹지 않고 그저 만들어진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손을 뻗어 따는 누리는 수고일 뿐입니다. 수고의 99%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바나나를 먹지만 그것을 먹을 때 인간이 무엇을 합니까. 따서 옮기고 먹는 것뿐입니다. 보화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금요예배 설교 때도 민수기에서 본 것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에서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것은 이미 존재합니다. 가서 취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생각을 합니다. 내가 가서 싸워서 이겨서 취하려고 합니다. 내 공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뒷산에 가서 따오면 되는데 뱀 걱정, 길 걱정, 온갖 걱정을 하면서 안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실 이미 정탐꾼을 보내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믿음이 좋을 때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갑니다. 로마서 4장,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랍니다. 그래서 이삭도 얻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도 받습니다. 이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취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큰 것일 수도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으로, 후자는 나에게로 그 원인을 돌리는 것도 안 됩니다. 해도 빛도 달도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시니 있는 것이요, 우리는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 밭에 이미 주어진 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약초를 캐고 버섯을 따고 할 때 이 산에는 버섯이 없다고 할 때 진짜 버섯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발견하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쑥도 모릅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쑥을 캐도 저는 쑥도 캐 보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캐지 못합니다. 우리는 분별력이 없는 것입니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못 봐서 없는 것입니다. 눈에 안 띄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부 은혜입니다. 그 밭에서 일하게 되는 것도 은혜요, 건강을 주셔서 쟁기를 주고 밭을 가는 것도, 보화를 존재하게 하신 것도, 그리고 돌이 하나 있냐 하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도 은혜입니다. 어쩌면 게으른 농부라면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 정직한 농부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밭을 갈다 보니 묻힌 보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다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것 바란다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업에 열심히 임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그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뻐하며 돌아갔다는 것도 분별력입니다. 분별한 것입니다. 생명을 줘도 귀한 줄 모른다면, 기뻐하지 않는다면 분별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화를 기뻐했다는 말은 분별력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보화를 내 것으로 삼고자 소유를 팔았다는 것입니다.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은 소유를 다 팔 만큼 좋은 것, 곧 생명을 지칭합니다. 본문의 비유는 존재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다른 데 소망을 두기보다 내 자신을 가꾸자고 신년에 나누었습니다. 그 말씀입니다. 보화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생명, 영생을 발견한 것을 본문의 비유는 의미합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복된 생명을 발견하니 내 소유를 다 팔아 사는 것입니다. 소유의 것을 다 팔아서 사는 것은 결국 소유일 뿐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우리 자신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