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28. 목요일 묵상 | 4. 주님이 떠나가시는 것이 유익인 이유와 삼위일체의 구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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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아들의 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이 다 이루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죽기까지 다 이루신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 다음은 부활의 도입니다. 부활의 도도 물론 아들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아들의 죽음을 아버지께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죽음이 죽음에 머물지 않고, 아들의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는 십자가의 도가 나오고, 고린도전서 15장에는 부활의 도가 나옵니다. 십자가의 도는 아들이 다 이루신 도이고, 부활의 도는 아버지께서 그 아들의 죽음을 생명의 값으로 받으신 도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음을 죽이는 죽음으로, 생명의 죽음으로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부활은 무엇입니까? 아들의 죽음을 아버지가 값으로 받으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이 죽은 뒤 그 원수를 양자로 삼은 일처럼, 아들의 죽음, 아들의 십자가의 도를 아버지께서 부활의 도로 받으신 것입니다. 부활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좌 우편에서 보혜사 성령을 내려 주십니다. 그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내 것 삼아 주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구원 역사입니다.
아들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혜사 성령을 내려 주십니다. 아들이 죽었는데,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죽인 자들을 용서하지 않고 더 징계하겠다고만 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죽인 그들을 용서하시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것이 주일의 의미입니다. 죽음이 우리의 생명의 값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고 부활하신 성자의 은혜와 성부의 사랑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교통됩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 삼아 주시는 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의 임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올라가시는 것이 유익한 것은, 삼위일체의 구원 역사를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 곧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그 사랑을 우리 것으로 삼아 주시는 일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보혜사 성령의 강림을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성령 강림이 바로 교회의 시작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한 것처럼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교회도 하나입니다. 삼위일체 신앙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있습니다. 이 신앙을 모르는 사람은 삼위일체 신앙을 가진 자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담대하라 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