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예수님이 나아가신 것입니다. 그러자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병이 나으려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가 아프면 빼야 합니다. 그 과정이 아프다고 그저 병든 몸을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청소를 하려면 먼지가 일어납니다. 회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내 죄가 드러나고 하니까 먼지가 일듯 우리에게 회개할 때 더러운 것이 일어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닦으려면 먼지가 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소리입니다. 악한 영의 소리입니다. 악한 영, 거짓 영, 귀신, 마귀 사탄에 사로잡힌 그 사람들에게는 거짓 샬롬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평강하다, 평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와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떨어질 때 우리도 순간적으로 부대낍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사실 쓴 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갈하지 않는 생수요, 영원히 함께하는 하나님이신데, 그런 예수가 가까이 올 때 ‘떠나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멸망의 속성입니다. 마귀는 무저갱이 자기의 처소라는 것을 압니다. 끝내는 무저갱에 갇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서 나오면 '게엔나'로 갑니다. 악한 영들은 압니다. 자기들이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아직 때가 오지 않았는데 어찌 괴롭게 하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것입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합니다. 악은 선을 이기지 못합니다. 한때 번성할 뿐 결국 소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를 떠나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람도 파도도 명령하시고, 본문에서 더러운 영, 군대귀신에게도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천사도 악한 영도 모두 인격체이므로 개수가 있습니다. 본문에도 2천 악한 영이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온갖 더러운 것, 부정적인 것, 죽음에 속하고 어두움에 속한 것이 그 자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악한 영들을 돼지 떼에 몰아넣어 돼지 떼가 결국 벼랑에 떨어져 몰살됩니다. 레위기에 돼지 먹는 것을 금한 계명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이 금하시는 그 가운데 그들의 불법을 사용하여 불법을 다스리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영생의 구원도 있으나 생명을 살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 자녀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보니 옷을 입고 발치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엘리사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이 앉아서 들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마리아가 앉았던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던 자가 말씀 듣기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괴롭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꿀송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말씀이 저주이나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예수와 동행하려고 합니다. ‘따른다’는 개념이 또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지 말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전도법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데가볼리에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나아가신 것입니다. 그러자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병이 나으려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가 아프면 빼야 합니다. 그 과정이 아프다고 그저 병든 몸을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청소를 하려면 먼지가 일어납니다. 회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내 죄가 드러나고 하니까 먼지가 일듯 우리에게 회개할 때 더러운 것이 일어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닦으려면 먼지가 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소리입니다. 악한 영의 소리입니다. 악한 영, 거짓 영, 귀신, 마귀 사탄에 사로잡힌 그 사람들에게는 거짓 샬롬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평강하다, 평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와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떨어질 때 우리도 순간적으로 부대낍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사실 쓴 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갈하지 않는 생수요, 영원히 함께하는 하나님이신데, 그런 예수가 가까이 올 때 ‘떠나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멸망의 속성입니다. 마귀는 무저갱이 자기의 처소라는 것을 압니다. 끝내는 무저갱에 갇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서 나오면 '게엔나'로 갑니다. 악한 영들은 압니다. 자기들이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아직 때가 오지 않았는데 어찌 괴롭게 하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것입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합니다. 악은 선을 이기지 못합니다. 한때 번성할 뿐 결국 소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를 떠나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람도 파도도 명령하시고, 본문에서 더러운 영, 군대귀신에게도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천사도 악한 영도 모두 인격체이므로 개수가 있습니다. 본문에도 2천 악한 영이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온갖 더러운 것, 부정적인 것, 죽음에 속하고 어두움에 속한 것이 그 자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악한 영들을 돼지 떼에 몰아넣어 돼지 떼가 결국 벼랑에 떨어져 몰살됩니다. 레위기에 돼지 먹는 것을 금한 계명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이 금하시는 그 가운데 그들의 불법을 사용하여 불법을 다스리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영생의 구원도 있으나 생명을 살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 자녀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보니 옷을 입고 발치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엘리사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이 앉아서 들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마리아가 앉았던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던 자가 말씀 듣기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괴롭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꿀송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말씀이 저주이나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예수와 동행하려고 합니다. ‘따른다’는 개념이 또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지 말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전도법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데가볼리에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