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22. 화요일 묵상 | 2. 귀신 들린 자, 광인: 하나님을 떠난 타락의 결과, 죄와 사망의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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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이 들렀다고 하는데 귀신이라고 하면 악한 영의 개념입니다. 한때 우리나라도 귀신론의 영향으로 가계의 저주이니 하는 말들이 있었는데 헛된 것입니다. 본문의 3개 복음서를 종합해서 보면 거라사 광인은 첫째로 무덤에 거주합니다. 무덤에 사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민수기 11장 11절에서 14절을 보면 시체를 만진 자는 불결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은 장막에 들어가도 그 사람도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7일 동안 정결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죽음이 불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덤에 거주한다는 것은 죽음과 가까이 하는 불결한 것을 의미합니다. 지지난주 말씀에 주님이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말씀에도 풍랑이 일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도 죽음을 의미합니다. 몇 주 연속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저갱 역시 죽음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죽음을 헤치고 생명을 전하는 내용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거라사 광인의 얼굴은 아마 야수의 얼굴과 눈과 같았을 것입니다. 고랑을 채워도 깨버린다고 하니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미쳤다고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분이 정신이 이상하다고 해서 산에 격리를 시켰습니다. 묶어 놓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밤에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람을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본문 역시 이처럼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무덤 사이에서 소리를 지른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귀신 들린 자,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것으로 표현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무엇보다도 끝내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칩니다. 악한 영의 습성은 이것입니다. 자살이라는 개념이나 이런 것들이 모두 더러운 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두 파멸입니다. 그런데 그 쪽으로 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모습인 것입니다. 
     죄의 현상, 죽음의 현상, 사망에 사로잡혀 종노릇 하는 상태입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5). 예수님이 다니시면서 사망의 그 사슬을 계속 끊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죄의 현상이고 죄의 종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사납습니다. 더 간교합니다. 더 제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서울은,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더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입니다. 누가 21세기에 서울이 이럴 줄 알았겠습니까. 사실상 본문의 귀신 들린 자의 모습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습, 타락한 인류의 죄의 형상인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두 사람이라고도 하고 마가복음은 한 사람이라고도 해서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말씀을 다른 것으로 볼 것이 아닌 한 가지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 본문의 거라사 광인은 정신을 잃어버려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심히 보기 좋으신 상태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 정, 의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옷을 입지 않으니 수치가 없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힌 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얻지는 않으나 모든 사람에게 수치를 가려 주시는 가죽옷을 입혀 주시는 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벗어버린 것입니다. 극도로 악한 영에 사로잡혀서 도무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무관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옷도 벗어 던지고 도무지 하나님의 형상을 그에게서 찾기 어려운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인간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인 것입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입에는 거품을 물고 눈은 뒤집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워 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창세기에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요셉을 형제들이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 한 것도, 야곱과 에서도, 장인 사울과 사위 다윗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거나 거라사 광인은 끝내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모든 창조물 중에 오직 인간만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을 마시고 먹고 끝내 자기를 파멸시킵니다. 마치 바알의 선지자들이 칼로 몸을 그으면서 이방의 신을 찾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의 거처는 무덤입니다. 
     본문의 악한 영 들린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한 야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 하나님과 무관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 모습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영 떠나려고 합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지 않는 이상 문명의 이름이든 어떤 이름이든 하나님을 떠나는 쪽으로 갑니다. 그것이 객관적인 모습입니다. 본문의 거라사 광인은 심중에 하나님이 없는 자, 여호와가 없는 자, 사사기로 말하면 자기 소견대로 하는 자, 창세기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 자, 임마누엘을 만나지 못한 자, 예수를 아직 만나기 전의 모습은 다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 예수를 만나기 전의 모습은 누구나 이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