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31. 목요일 묵상 | 4.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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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을 낫게 하시려구요? 그것은 동기입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중풍병자에게 ‘네 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느닷없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중풍병자의 병이 죄 때문에 생긴 것으로 말하시는 것인가요? 나면서부터 맹인 된 자에게 사람들이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하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도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해서 죄로 인해 병이 생긴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병이 있든 없든 죄 사함을 누구나 받아야 합니다. 병 나아서 온갖 더러운 짓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차라리 아픈 것이 낫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환히 보이는데 온갖 죄를 지으라고 주님이 낫게 하셨을까요? 건강하면 뛰기도 걷기도 하며, 성전에서 찬송하기도 합니다. 성전 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올라갈 때 걷지 못하는 자에게 ’은금이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하니 그가 나아서 뛰면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고 한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포하니 서기관들이 신성모독이라고 합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 사함을 선포하면 신성모독이 맞습니다. 주기도문에서 내게 죄 지은 자를 사한다는 것은 죄를 사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 사하신 자의 죄에 대해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4).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신성모독이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것은 스스로가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창조주이며, 영원한 생명의 말씀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선포를 하는 데에 중풍병자의 침상이 예수님 앞에 뚝 떨어진 것이고, 그가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을 바리새인이 믿지 않고 비난하니 예수님이 둘 중 어느 말이 쉽냐고 물으십니다. 죄 사한다는 말은 표가 안 나므로 오히려 말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을 하신 후 일어나 걸으라고 하십니다. 죄 사함의 선포가 나으라는 선포이고 이제 일어나 걸으면 되는 것입니다. 굳이 병이 나았다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내 건강이 명예가 예수 앞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앞에’는 공간적 의미와 대면하여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보시기에 면전에 거하며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보시고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할 일은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저는 요새 이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외에 귀한 가치가 없다고 말입니다. 여기에는 높낮이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이끄심으로 인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야로 생각할 것은 이것입니다. 조건이 어떠하든 그것을 뚫고 하나님께 매일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자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