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30. 수요일 묵상 | 3.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

조회수 113
     그런데 이들이 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느냐, 분명히 병을 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을 본문이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눅 5:18). 물건도 아닌데 사람을 들여 놓습니다.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말입니다. 예수 앞에 데려가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 길에 장애물이 많은 것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성경이 이 사람으로 인한 장애를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눅 5:19). 이스라엘의 집은 주로 2층이 있습니다. 해를 가리기 위한 기와를 뜯어내서 예수 앞에 달아 내린 것입니다. 18절의 예수 앞에는 공간적인 의미이며 19절의 ‘앞에’는 면전, 즉 정서적 거리를 의미합니다. 예수께 데려가서 예수와 가까이 마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고 할 때 그 상황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대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공간적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의 상한 심령이 합한 바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믿음을 보고 낫게 하였다고 하시는데,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본문의 중풍병자 얘기는 결국 믿음이 그 핵심입니다. 믿음은 나아갈 수 없는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그런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나아가는 것이 곧 믿음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믿는 것이 곧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내가 나아갑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내가, 사람들이 데려가는 것 같아도 아버지가 이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자리에 모르는 것처럼 앉아 계시지만 주님이 이끄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