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을 뗐다고 해서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31편 2절의 말씀처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우리는 자라가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어른이 되어 스스로 판단하고 다스리는 영역이 넓어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121편의 고백처럼 눈을 들어 여호와를 바라보는 삶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교만한 시선이 아니라, 위를 바라보는 의지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착함’과 ‘선함’의 차이입니다. 착한 아이는 세상에 잘 맞추어 살아가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아이는 하나님 앞에서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아이입니다. 때로는 세상과 부딪히고 갈등하는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착하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붙드시면 그 아이는 선한 아이로 자라갑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열심이 있었고 사람의 기준으로는 착한 모습이었지만, 참된 선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선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선함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단순히 착하게 키우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로 자라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집이나 밖에서 갈등을 겪고 세상과 부딪히는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 가운데 서게 될 때 참된 선함이 나타납니다. 부모는 자녀의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보다 그 안에 있는 본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충분히 돌보지 못했던 시간이나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끝까지 붙드신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부족함이나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바라보며 그 생명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시고 끝까지 지키시며 인도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131:3)라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는 삶,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젖 뗀 아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젖을 떼었어도 여전히 그 품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어린이 주일에 자녀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평안과 사랑, 기쁨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는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젖을 뗐다고 해서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31편 2절의 말씀처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우리는 자라가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어른이 되어 스스로 판단하고 다스리는 영역이 넓어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121편의 고백처럼 눈을 들어 여호와를 바라보는 삶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교만한 시선이 아니라, 위를 바라보는 의지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착함’과 ‘선함’의 차이입니다. 착한 아이는 세상에 잘 맞추어 살아가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아이는 하나님 앞에서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아이입니다. 때로는 세상과 부딪히고 갈등하는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착하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붙드시면 그 아이는 선한 아이로 자라갑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열심이 있었고 사람의 기준으로는 착한 모습이었지만, 참된 선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선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선함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단순히 착하게 키우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로 자라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집이나 밖에서 갈등을 겪고 세상과 부딪히는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 가운데 서게 될 때 참된 선함이 나타납니다. 부모는 자녀의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보다 그 안에 있는 본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충분히 돌보지 못했던 시간이나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끝까지 붙드신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부족함이나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바라보며 그 생명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시고 끝까지 지키시며 인도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131:3)라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는 삶,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젖 뗀 아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젖을 떼었어도 여전히 그 품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어린이 주일에 자녀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평안과 사랑, 기쁨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는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