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 금요일 묵상 | 5. 나를 살리신 예수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생활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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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하 4장 부분에 보면 수넴이라는 지역이 나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이 지방의 부부의 대접을 잘 받습니다. 이 부부가 아이가 없는데 선지자의 기도를 받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런데 낳은 후 얼마 안되어 다시 죽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그 아이를 이불 덮듯 덮고 기도하여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나인 성, 엔돌, 수넴 등 인접한 이 지역은 큰 선지자 엘리사에 대한 기적의 기록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니 큰 선지자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맥락으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성경에서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입니다. 본문 17절은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졌다고 합니다. 
     주님이 나인 성에 가신 것은 일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지나가다 낫게 하신 것이 아니라 낫게 하시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도 지나가다 우연히 그런게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나인 성의 사건이 우리에게 나를 살린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어나라는 말이 얼마나 귀한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리고 날마다 사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사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은 생명의 부활뿐 아니라 생활의 부활도 있습니다. 생활의 부활은 우리가 매일 삶에서 왜 이럴까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의 담대함이 됩니다. 그 말이 나올 때 기도하는 것이 부활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권능입니다. 이 권능을 체험해야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눈물 흘릴 때 벤치에라도 앉아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뭐든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의 기쁨입니다. 칼빈은 그것을 달콤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하게 하시고 그때 누리는 것이 달콤함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동네에 오실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 시골의 나인 성에, 사마리아의 여인을 만나러 가듯, 찾아 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생명 주신 분이 생활을 주십니다. 살아남도 살아감도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