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30. 화요일 묵상 | 2.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

조회수 100
     본문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시다가 나인 성으로 제자들과 함께 가시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인 성은 오늘날 이슬람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어 우리가 갈 수 없습니다. 지도에 나인이라고 아직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까운 곳 바로 옆에 엔돌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러한 곳들이 바로 다 나인 성 근처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인 성에 오신 것은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로 갈릴리, 벳세다 등지에서 활동하시다가 이곳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곳에 들어가고자 할 때 주님의 일행도 많은 무리였습니다. 특히 병자들이 많이 따랐습니다. 주님이 각색의 병자를 고치시니 자연스럽게 많은 병자가 따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파송하여 예수님을 음해하기 위한 사두개인들 등 각종 사람들이 무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부터 장례 행렬이 빠져 나옵니다. 통상 이스라엘은 장례식을 빨리 거행합니다. 사망 당일 혹은 다음날 거행하기도 합니다. 시신은 성 밖에 묻습니다. 앞으로 뒤로는 가족들이 따르고 장례식을 위해 섬기는 사람들, 그리고 애곡하는 사람들이 함께 갑니다. 우리나라의 이전 장래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의 장례는 무슨 장례일까요. 한 과부가 있는데 그 아들이 죽어서 장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묘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죽으면 그런 것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슴에 묻고 평생 살아갑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 곡기를 끊습니다. 우리나라도 바다에서 많은 사람이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 부모들의 심정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무리와 장례, 죽음의 무리가 서로 교차한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무리는 소망의 무리요, 그곳에서 나오는 무리는 절망의 무리입니다. 춤추는 무리와 곡하는 무리의 대비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삭개오가, 소경 바디매오가, 혈루병 환자가, 세리 바디메오가 주님이 지나갈 때 만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항상 이렇게 순간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앞에 오시고 스쳐 지나가시는데 우리가 주님에 이끌려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누가 스케줄을 잡고 연구해서 예수님을 믿었나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