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보면 가치관 전쟁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쨌든 이제 잘 삽니다. 방글라데시는 일당이 800원이라고 합니다. 고기 같은 거 잡아서 열심히 팔아도 1000원입니다. 우리나라는 많이 힘들다고 해도 그래도 대체로 잘 삽니다. 이제는 가치의 문제인 것입니다. 무엇이 절대가치인가. 우리 주님께서도 가치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더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애쓰면 나머지 모든 것이 따라온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치관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다, 질그릇에 담긴 보화라고 말합니다. 최근에 어떤 책을 보았는데 대 건축가가 가장 좁은 집에 삽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모든 공간이 이 안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관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볼 것은 소유를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무엇이냐, 이 지상의 것을 다 팔아서 사야 할 보화인 것입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십시오. 일만 달란트, 백 달란트로 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사실 셀 수 없이 많은 돈입니다. 본문에서 가진 모든 것을 팔라는 것은 각자가 처한 곳에서 각자가 가진 것을 다 팔라는 의미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입니다. 길가에 떨어져도 아무도 줍지 않는 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가진 상대치 이지만 절대치로 봐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끝까지 상대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늦게 오나 빨리 오나 절대치, 한 데나리온으로 봐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세상은 끝까지 그 가치를 비교합니다.
천국은 누구나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오히려 부자가 재물을 헤아리다가 가지 못합니다. 상한 심령이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이 생명의 보화는 말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말이 좋아 배설물이지 원어는 똥입니다. 모든 것을 그것으로 버림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보화입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화는 그리스도입니다. 즉 농부가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값 주고 산다는 것은 기도입니다. 실제로 뭔가 소유를 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가 가진 모든 것, 즉 기도로 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 믿음이 본 보화를 기도로 캐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억울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돈이 있어야 투자하지만 우리는 기도하고 상한 심령을 토설하고 애통한 마음을 내 놓으면 됩니다. 간구하고 호소하고 울며 끌고 절며 하나님을 찾으면, 그러면 누구나 보화를 얻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좋은 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동료 교수님 주석을 보니 진주는 오늘날 돈으로 수천만 달러라고 합니다. 이 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에 모조품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곳에 목사로서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의 진주도 진짜처럼 보일 겁니다. 아마추어가 보면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여 분별력이 생기면 분별이 됩니다. 본문 46절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라고 합니다.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교회에 재산을 다 바치라고 이단들은 현혹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소유의 가치가 아닌 존재의 가치입니다. 자식이 있으니 부모가 수고하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가 중요합니다. 진품을 발견하고 그 진품을 가지고 그것을 구하는 그 주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라고 합니다. 주님이 진주이고 주님이 보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비유는 많은 경우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보화고 예수님이 진주이십니다. 값주고 살 수 없는 그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요새는 보면 가치관 전쟁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쨌든 이제 잘 삽니다. 방글라데시는 일당이 800원이라고 합니다. 고기 같은 거 잡아서 열심히 팔아도 1000원입니다. 우리나라는 많이 힘들다고 해도 그래도 대체로 잘 삽니다. 이제는 가치의 문제인 것입니다. 무엇이 절대가치인가. 우리 주님께서도 가치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더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애쓰면 나머지 모든 것이 따라온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치관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다, 질그릇에 담긴 보화라고 말합니다. 최근에 어떤 책을 보았는데 대 건축가가 가장 좁은 집에 삽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모든 공간이 이 안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관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볼 것은 소유를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무엇이냐, 이 지상의 것을 다 팔아서 사야 할 보화인 것입니다. 영생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십시오. 일만 달란트, 백 달란트로 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사실 셀 수 없이 많은 돈입니다. 본문에서 가진 모든 것을 팔라는 것은 각자가 처한 곳에서 각자가 가진 것을 다 팔라는 의미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입니다. 길가에 떨어져도 아무도 줍지 않는 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가진 상대치 이지만 절대치로 봐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끝까지 상대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늦게 오나 빨리 오나 절대치, 한 데나리온으로 봐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세상은 끝까지 그 가치를 비교합니다.
천국은 누구나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오히려 부자가 재물을 헤아리다가 가지 못합니다. 상한 심령이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이 생명의 보화는 말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말이 좋아 배설물이지 원어는 똥입니다. 모든 것을 그것으로 버림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보화입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화는 그리스도입니다. 즉 농부가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값 주고 산다는 것은 기도입니다. 실제로 뭔가 소유를 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가 가진 모든 것, 즉 기도로 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 믿음이 본 보화를 기도로 캐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억울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돈이 있어야 투자하지만 우리는 기도하고 상한 심령을 토설하고 애통한 마음을 내 놓으면 됩니다. 간구하고 호소하고 울며 끌고 절며 하나님을 찾으면, 그러면 누구나 보화를 얻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좋은 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동료 교수님 주석을 보니 진주는 오늘날 돈으로 수천만 달러라고 합니다. 이 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에 모조품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곳에 목사로서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의 진주도 진짜처럼 보일 겁니다. 아마추어가 보면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여 분별력이 생기면 분별이 됩니다. 본문 46절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라고 합니다.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교회에 재산을 다 바치라고 이단들은 현혹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소유의 가치가 아닌 존재의 가치입니다. 자식이 있으니 부모가 수고하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가 중요합니다. 진품을 발견하고 그 진품을 가지고 그것을 구하는 그 주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라고 합니다. 주님이 진주이고 주님이 보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비유는 많은 경우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보화고 예수님이 진주이십니다. 값주고 살 수 없는 그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