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1. 금요일 묵상 | 5.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아가페의 도구로 부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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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장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고린도전서 13장을 떠올립니다. 이 장은 은사의 맥락 속에서 사랑을 설명합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사랑을 실제로 사용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은사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사용될 때 비로소 은사가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근원을 이해하려면 요한일서 4장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는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선언을 중심으로 사랑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 말씀을 먼저 읽고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우리가 행하는 사랑이 먼저 받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로 인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우리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수가 우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생수이신 것처럼, 사랑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말씀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랑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모를 아는 자가 부모의 사랑을 누리듯,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은혜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하게 되고, 빛을 누리면 빛을 비추며, 향기를 맡으면 향을 드러내게 됩니다.
셋째, 이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내어 주시는 사랑이시고, 아들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사랑이며, 성령은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게 하시는 분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아가페는 삼위 하나님께 속한 사랑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을 외면하고 멀리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그 사랑은 위에서 내려오는 사랑이며, 먼저 시작된 사랑이고, 끝까지 지속되는 사랑입니다. 조건이 없고 변함이 없으며,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 곧 존재를 새롭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택하신 사랑 안에서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가진 담대함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들으심을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확신 안에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사랑하신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치 프리즘을 통해 빛이 나뉘어 아름다운 색을 드러내듯,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도 주어가 바뀌어야 합니다. 꽃이 피는 계절을 보며 자연이 스스로 피어난다고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피우신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의 삶이 복되고, 풍성해지며, 더욱 넓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