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30. 목요일 묵상 | 4.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과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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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절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랑은 우리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수는 있어도, 그를 대신하여 생명을 내어 줄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위하여”라는 말은 헬라어 '휘페르'로, 경우에 따라 “대신하여”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서는 바로 그 의미로 사용됩니다. 우리의 희생은 어디까지나 ‘위함’에 머물지만, 주님의 사랑은 ‘대신함’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 가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나 때문에”, “날 위하여”, “내 대신에.” 이 가운데 마지막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우리가 실제로 그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부모가 자녀를 위해 생명을 내놓을 마음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대신하여 죽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수많은 비극의 현장에서 부모들이 먼저 나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 계명의 본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까지 명령하시고, 그 명령을 친히 이루십니다. 이것이 어거스틴의 기도입니다.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원하시는 것을 명령하시옵소서.”
이 고백은 계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결국 가능한 것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피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게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마음껏 명령하시옵소서. 다만 그 명령을 이루실 은혜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계명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16절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 말씀은 같은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시작도 하나님이시고, 이루심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 열매는 앞서 말한 기쁨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는 삶 자체가 열매입니다.
이어지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그 방법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할 수 없기에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거스틴의 기도와 같은 흐름입니다. “주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루시옵소서.”
요한복음 14장에서도 주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분명합니다. 주님이 친히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도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능력입니다. 특별한 어떤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은혜를 구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며, 동시에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능력입니다. 그래서 구하여 얻는 것만이 하늘의 상급이 되고, 그 상급마저도 은혜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임마누엘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고, 능력의 영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함께하심의 은혜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은 진리의 내주를,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는 약속은 능력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이한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응답을 받는 것이 참된 능력입니다.
또 주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 부르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두려움과 무력함을 느낍니다. 마노아처럼, 이사야처럼, 예레미야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친구라 부르십니다.
여기서 친구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명령까지 맡기십니다.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요구하신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까지 명령하시고, 그 일을 은혜로 이루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고백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고백은 교만도 아니고 포기도 아닙니다. 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친구로 부름받은 자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