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28. 화요일 묵상 | 2. 프린스턴과 뉴욕에서 본 진리의 능력과 하나님의 선물

조회수 157
이번에 여러분의 기도로 뉴욕에 처음 가 보았습니다. 그곳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중학교 때 이곳을 왔더라면 어땠을까.” 어린 시절에 이런 세계를 경험했다면, 이후의 시간 속에서 더 넓은 시야를 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쳤습니다.
예전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갔을 때, 넓은 도로와 큰 건물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에 가 보니, 그 도시마저도 작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에 와서 63빌딩을 보고 감탄하고, 남산터널을 보며 “어떻게 산 아래에 이런 길을 냈을까”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60층, 70층 높이의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규모조차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높이만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한국칼빈-개혁신학연구소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작은 지하 공간이지만, 제 마음에는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을 허락해 주십시오. 밤이 깊도록 강의가 이어지고, 많은 이들이 성경을 깊이 있게 배우는 일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거대한 건물을 보면서도 오히려 그런 소망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그런데 뉴욕의 높은 빌딩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준 곳은 프린스턴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큰 도시를 떠올렸지만, 실제로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마치 시골 마을처럼 고즈넉했고, 과거 부흥운동의 흔적과 숲속에서 이루어졌던 신앙과 학문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웨스트민스터를 갈까 고민하다가, 찰스 하지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가르쳤던 장소를 직접 보고 싶어 전철과 기차를 타고 프린스턴으로 향했습니다.
UCLA를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UCLA가 규모와 활기를 드러낸다면, 프린스턴은 깊은 침묵과 여유를 품고 있었습니다. 작은 식당조차 그 분위기에 어울렸고, 터널을 지나 도착하는 기차 역시 한적한 정취를 더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은 작고 조용한 자리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결국 뉴욕과 같은 거대한 문명을 만들어 내는구나. 진리와 배움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은 오두막에서 이루어진 공부가 결국 큰 건물과 문명을 세워 간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일본의 한 장군이 진주만 공격 전 미국을 둘러보고 “이 나라와는 싸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직접 그 땅을 보며, 그 힘과 자원, 그리고 축적된 역량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프린스턴에서는 뜻밖의 만남도 있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엘시 앤 매키 교수를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라틴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으로서, 예전에 고신대학교에서 함께 발표한 적도 있었습니다. 안내를 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던 중, 정말로 그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은퇴 후 잠시 재단 일로 방문했다고 했고, 짧은 대화 끝에 함께 사진을 남겼습니다. 의미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찰스 하지의 자취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조직신학』은 미국 신학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단을 넘어 널리 읽히는 중요한 저작입니다. 프린스턴 신학교는 1812년 아치볼드 알렉산더에 의해 세워졌고, 이후 찰스 하지와 그의 아들 A.A. 하지, 그리고 B.B. 워필드로 이어지며 전통을 이어 갔습니다. 특히 워필드는 미국 보수신학을 지켜 낸 중요한 인물입니다.
칸트 이후 서구 신학이 흔들리던 시기에, 프린스턴은 스코틀랜드 상식철학을 바탕으로 다시 신학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분이 주시는 지식 안에서 공통된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이는 회의론과 불가지론을 넘어서, 경건한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길을 강조한 것이며, 그 뿌리는 칼빈에게까지 이어집니다.
프린스턴을 둘러본 후 맨해튼으로 돌아와 타임스퀘어에 잠시 섰을 때,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프린스턴이 있기에 뉴욕이 있다.” 진리 위에 세워진 토대가 있기에 이런 거대한 문명도 존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비록 작은 등대처럼 보일지라도, 큰 배들이 방향을 찾는 역할을 하기를 늘 기도합니다. 연구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면산 자락의 작은 공간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번 여정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되었고,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가능하고, 진리가 있기에 문명이 세워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LA와 시카고, 그랜드래피즈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서부에서 중부를 거쳐 동부로 이어지는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이번에 동부를 보며, 청교도 신앙이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매사추세츠와 뉴욕, 옛 뉴암스테르담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뉴욕 역시 그분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며 그 선물을 받아들이고 누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온전히 하시고 풍성하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도 바로 그것을 가르칩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본문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행 중에 요한복음 1장부터 14장까지 계속 읽었는데, 그 안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 사랑, 앎, 그리고 거함입니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 또한 부활과 심판의 주제도 함께 흐르며, 믿는 이들에게는 심판이 은혜로 드러나 결국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집니다.
이 모든 흐름을 보며, 요한이 왜 신학자로 불리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