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 금요일 묵상 | 5.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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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낫게 했을 때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신성을 모독한다고 했습니다. 죄를 사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한다고 하니 참람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 신성모독은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에 대한 모독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며,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을 얻되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성모독, 성령모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고난받으러 오시고 온갖 수치와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그 핍박은 용서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그를 핍박하고 채찍을 치고 가시면류관을 씌우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것처럼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으면 용서 받지 못합니다. 곧 믿지 않는 것이 성령모독죄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금을 속인 죄를 성령모독죄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세라와 바알 선지자들처럼 소리 내고 정서와 감정 채운다고 해서 막 뜨겁고 열정을 태운다고 해서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성령을 인정하면 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날마다 더 성령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인정하는 것은 첫째로 상한 심령입니다. 성령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달콤하다, 괜찮다 하는 것은 상처가 썩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은 따갑다고 느낍니다. 
     두 번째로 따갑다고 느끼면 곧 바로 인자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내놓으면 성령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꾸 육체의 소욕, 거듭나기 전의 심성이 남아 있어서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아셔야 할 것은 성령이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성령이 떠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떠나지 않으므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에서 내쳐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믿음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마 12:27). 바알세불을 쫓아내서 귀신을 쫓아내면 사탄이 사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우리의 재판관은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 12:28-29). 
     우리가 뭔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순종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으니 한다고 하지 말고 순종하니 할 수 있다고 생각합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상한 심령입니다. 맑은 하늘에만 비춰봐도 상한 심령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양보다 상한 심령을 즐거워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있으므로 상한 심령이 있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있다고 침체되면 안 됩니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인자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소욕입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이 자리에 섭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 이루신 그의 의를 우리 것 삼아주시고 우리가 머리이신 그에게 자라게 하십니다. 내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어 우리가 깔대기처럼 빨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부대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망입니다. 그것이 아멘 하는 것이고 성령의 소욕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무딘 것은 내 공로를 앞세우니 무딘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하여 내 마음대로 들으니 안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부드러운 심령이 아멘 하는 것입니다. 성령모독에 대해 너무 편협되게 생각하여 집착하기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자리에 서지 않는 것으로 믿고 성령의 소욕대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