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5. 월요일 묵상 | 1. 표적과 지혜를 구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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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교회는 큰 부흥을 이룬 교회입니다. 고린도는 당시도 오늘도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그리스 지역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 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베드로, 헬라인들은 바울이나 아볼로를 따랐습니다. 그들이 왜 그리 다투었을까요. 본질은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장 22절은 말씀합니다. 헬라인들이 구하는 지혜는 세속적 지혜, 철학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도 세상의 철학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구약을 넘어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새 시대의 영이 아닌 표적을 구합니다. 올바른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표적을 보이시고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표적이 아닌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표적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참 지혜는 잠언 8장과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가 신약으로 말하면 말씀, 로고스입니다.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니 독생자의 영광을 보니 은혜가 진리가 충만한 그를 믿어야 하는데 여전히 예수는 예수고 철학은 철학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질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지혜는 사람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논리적 사변입니다. 이 세상 지혜는 결과적으로는 사람의 논리에 맞지 않으면 배척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표적은 어떤 신을 드러내는 가시적인 형상이나 물체나 사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보여야 믿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이런 연유로 십자가의 도를 그들이 거부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미련하다는 것은 지혜가 없고 기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들은 자연현상이 일어나야 하고 죽은 자가 일어나야 하고 오병이어 기적이, 풍랑이 잠잠한 기적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기적, 표적을 아직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십자가는 미련하고 무능하고 저주스러운 것으로 그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