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 새 사람 | 겔 11:19-20; 36:26-28 | 문병호 목사 | 새 것 ・ 거듭난 것 ・ 값으로 사신 것 13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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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 새 사람 | 겔 11:19-20; 36:26-28 | 문병호 목사 | 새 것 ・ 거듭난 것 ・ 값으로 사신 것 13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725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11: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녹취록>



1. 영혼의 구조: 지정의


우리 사람에게는 보이는 요소 즉 육체와 보이지 않는 요소인 영혼, 이렇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자기 형상으로 지으셨으므로 인류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의 주요한 자리입니다.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느끼고, 그 뜻에 순종합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느끼는 것,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곧 지정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해야 온전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하나님을 떠나면 악의 꾀가 됩니다. 가룟 유다의 꾀처럼 말입니다. 정서가 하나님을 떠나면 강팍하고 완악함이 됩니다. 어떤 짐승조차도 갖지 못한 그런 비정함입니다. '고르반' 하면서 부모를 굶게 놔두는 그런 비정함을 가지게 됩니다. 의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갖지 않으면 결단과 실행하는 것이 모두 악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자랑하고 율법을 외우고 해도 밤새 도모해서 어쨌든 예수를 죽이려 한 자들의 의지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이든 감정이든 의지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야 합니다.



2. 영혼의 두 상태: 겉사람과 속사람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헛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해 말씀을 보았습니다. 겉사람은 날로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이 땅에서 우리는 이미 속사람이 주어졌다는 말씀을 봤습니다. 그래서 겉사람은 환란의 경한 것을 잠시 받으나 우리 속사람은 중한 것, 영원한 것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거듭나서 우리 안에 속사람이 있음을 봤습니다. 설교 제목을 그리하여 속사람 안에 겉사람으로 정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사람이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겉사람 속사람으로 살다가 이제는 영원한 부활의 몸이 되면 온전한 속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겉사람과 함께 속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끝내 그 속사람을 이룬다는 것이 우리 안에 영혼의 요소가 있으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우리가 그것에 응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영혼의 독자성


영혼이 없는 육체는 없습니다. 태중에서 조성될 때 이미 영혼이 주어집니다. 다만 영혼은 육체가 죽은 후에도 육체와 분리되어도 독자적인 존재성을 갖습니다. 최근에 죽음학이라는 것을 한다는 서울대 의대 교수, 정현채 교수라는 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잠시 위장이 좋지 않아 그분에게 진료를 받았었는데, 그가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을 자주 보다 보니 죽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 후에 복된 사후가 있으니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하는 것으로는 본인이 겪은 기독교인들도 죽음에는 똑같다는 것, 즉 똑같이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생리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죽음 직전까지 갔다 온 사람들을 관찰하니 죽음 이후의 세계가 복되더라,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죽음이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존재로서 태중에서 육체와 함께 조성되어 죽음 이후에도 육체와 분리되어 영속하다가 부활 때까지 천국에서 사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소멸하면 함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이 형상을 가진 것으로 실체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존재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을 영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것이 불심판이고 무저갱입니다. 

영혼은 보이지 않지만 실체입니다. 이 속사람이 실체이고 독자적이고 인격적입니다. 하나님께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하나님께 올립니다. 그래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이것이 가장 고상한 영혼의 본질이요 인격입니다. 우리 영혼의 가장 고상함은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요 의뢰하고 올려드리고 내려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의 인격성입니다. 



4. 영혼의 실제인 마음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인가요? 저는 철학자가 아닙니다만 성경을 보는 한 명의 성도요 말씀을 전파하는 목사로서 마음을 정의해 봤습니다. 영혼은 실체고 마음을 실제라고 말입니다. 두 가지는 사실 같은 것인데 굳이 말하면 실체와 실제인 것입니다.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느끼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렇게 행하는 실제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으면 마음이 없습니다. 실체인 영혼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내 영혼이 알고 느끼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이런 영혼의 작용과 활동의 구조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에 마음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마음은 영혼과 다르지 않은데 영혼이 활동하는 실제라고 보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육체의 할례를 행하지 말고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고 신명기 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제대로 활동하게끔 속세적인 것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붙어서, 그 영혼이 천국에 갈 것이니 하나님과 더불어 찬송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고 부활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5. 마음의 강퍅함


그러므로 영혼이 있으므로 마음이 주어지는 것이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느끼고 그 뜻을 쫓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닫히면 영혼이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딱딱한다면 영혼은 멈춰서 있는 위장과 같아 아무것도 소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닫히고 딱딱한 것을 성경에서는 완악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팍하다고 합니다. 성경에 이 두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영어는 더 간단합니다. 'Hardness', '딱딱함'입니다. 마음의 완악하고 강팍함은 마음을 걸어잠그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인 영혼이 하나님께 잠겨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산에서 거닐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동산에서 추방되듯 말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내 마음이 닫혀 버립니다. 성경에 보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경우를 봅니다. 아무 이익이 안되는데 왜 다른 사람을 해치는지, 심지어 짐승에게도 그렇게 하는지 말입니다. 그저 장난으로 괴롭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더더군다나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들도 많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듣지 않았습니다. 



6. 새 영으로 말미암은 새 마음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이런 강팍한 마음에 하나님이 일대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새 영과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새 영을 주고 새 마음을 준다는 것은 같은 말씀입니다.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십니다. 선지서에 나오는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 이루시고 하늘 나라로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새 언약의 영, 신약의 영, 성령을 내려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8:19; 빌 3:19; 고후 3:1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이것이 바로 한 마음,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아주 모질고 거친 마음을 인간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 영이 들어오면 새 마음이 형성됩니다. 새 마음이 형성되면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과 동산을 거닐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새 영을 받아야 합니다. 이 새 영을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새롭게 영혼을 지어서 새로 한 살 짜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태에 들어가서 다시 나게 하는 니고데모의 질문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여서 거듭나게 합니다. 속사람을 형성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영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영을 받으면 괜히 즐겁고 소망스럽습니다. 좁은 길을 가도 대로가 열려 있습니다. 다 갖고도 움츠리고 벌벌 떨며 사망의 종노릇 하던 인생이 전혀 다르게 바뀝니다. 우리 실체, 영혼을 변화시키는 새 영이 임하면 그 영혼의 실제, 실제 작용과 활동인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됩니다. 구스의 피부도 새롭게 할 수 없고 표범의 점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어떻게 새롭게 하느냐, 그것은 바로 새 영을 받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 요엘서 2장 28절로부터 32절에 예언된 오순절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 2:32). 

에스겔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세 가지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묘사된 것을 보면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겨 여호와의 군대를 이룹니다. 또한 성전에 영광이 충만한 것입니다. 동쪽으로부터 성전의 영광이 흘러나와 돌아서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발목과 허리와 헤엄도 칠 수 없을 정도로 생수가 가득하게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열매가 맺히고 풍요롭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 삼마, 성읍의 환상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성령입니다. 새 영입니다. 새 영이 임하니 마른 뼈에 힘줄과 살과 가죽이 붙어 군대를 이루고 생수가 가득 차고, 여호와가 성읍 높은 곳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가 있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로 우리가 새 영이 임함을 받아 우리가 새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새 영을 주시고 한 마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도 하나입니다. 마음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레브'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살아 있어서 마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새 마음, 한 마음, 일치된 마음이요 영어로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이라는 말은 '루아흐' 곧 호흡을 의미합니다. 영도 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호흡과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겔 11:19; 36:29). 



7. 하나님께 부드러운 마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돌 같은 마음을 제하고 아이의 살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이 살보다 부드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인데 우리의 강팍한 마음이 어찌 그리 되겠습니까? 오직 새 영이 임하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어 주신 마음입니다. 처음으로 지어서 주신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실 때 주신 그 마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예배하는 마음입니다. 가장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여호와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온갖 거친 풍랑이 많고 찌르는 칼과 창이 많아도 가장 부드러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주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감동하여 순종하고 복종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주시는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그중에 주시는 말씀과 마음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비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사람에게 강팍해도 하나님께 마음이 부드러운 자가 있기도 합니다. 나아만이나 백부장도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니 변화됩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부드러운데 하나님께 강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이 경우는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아합왕 입니다. 그는 엘리야를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세벨이 죽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빼앗을 때도 그냥 포도원 주인을 죽이고 뺏을 수 있는데 주저합니다. 그러면 이 아합왕의 문제가 뭐냐, 바로 하나님께 강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닫힌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합 왕이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강팍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 등도 모두 새 영이 임하니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옥토와 같이 30배, 60배, 100배로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어찌나 말을 안 듣던지 이사야를 3년 동안 벌거벗고 다니게 합니다. 예레미야도 백성들이 어찌나 말을 안듣던지 목에 멍에를 매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강퍅하니 말입니다. 에스겔은 더합니다. 머리를 밀어서 3분의 1은 불에 사르고 3분의 1은 칼로 자르고 3분의 1은 바람에 날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망하는 것을 보여 주려고 말입니다. 또한 포로 시늉을 하며 다녔습니다. 잡힐 것을 보이기 위해서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볼 때마다 벌벌 떨게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독을 탔을지 어떤 음식인지 모르니 조심하게 합니다.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아내의 죽음입니다. 모두 다 이렇게 될 것이니 아내가 죽어도 눈물 흘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보여줘도 마음이 강팍합니다.



8.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라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대가 진리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달콤한 것, 거짓 평강에는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다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바위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거부합니다. 자신에게 좋은 것만 받으려 합니다. 아이에게 사탕만 주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나 오늘날 이 시대를 향해서 특별히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우리는 마음과 입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속사람의 마음을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드러운 마음, 아이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마음 따로, 입 따로 될 수 있습니다. 새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새 마음을 주시고 한 마음을 주시고 기쁜 마음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마음을 주셨다고 했지요, 우리는 이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 바쳐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찬송은 217장 1절로 정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맘을 나에게 바치어라 너 어디 있든지 날 섬기며 기쁘게 날 항상 의지하라 바치어라 네 마음을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니 네 캄캄한 죄에서 불러내신 주께서 늘 인도하시리라." 엄마를 보면 아이의 얼굴색이 달라집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옆에 있으면 든든해 집니다. 마음을 드리라는 것은 누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