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 고전 1:23; 2:2; 갈 6:14 | 문병호 목사 | 새 것・거듭난 것・값으로 사신 것 17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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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 고전 1:23; 2:2; 갈 6:14 | 문병호 목사 | 새 것・거듭난 것・값으로 사신 것 17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822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녹취록>




1. 십자가형


오늘 본문은 연초에도 한번 크게 개괄적으로 본 말씀인데 벌써 가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보면 무엇을 전할지 막막한 경우도 있는데 어떤때는 본문 하나에서도 30, 40개의 주제가 나오기도 합니다. 다음에 읽으면 이번에는 또 그 옆에 있는 다른 말씀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요새는 사람을 어떻게 사형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사람을 죽이는 십자가나 사형틀 등을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자라던 곳에는 아이들이 소를 잡는 곳만 해도 거기에 개구리나 다른 잡을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십자가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단어였습니다. 고통을 가장 길게 주기 위해 온 몸의 피와 진액을 다 빼서 죽이는 잔인한 형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에게 귀하고 아름답고 정말 가까이 하고, 힘들면 그것을 찬송하기도 합니다. 



2. 성경의 십자가


1) 구약의 십자가


십자가라는 말이 구약에는 문자 그대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예언은 무수히 많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 민수기, 신명기에 나오는 놋뱀 장대, 결국 달려서 피를 흘린 그를 보면 죽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구약에는 이처럼 십자가 자체는 아니나 그에 대한 예언은 무수하게 많습니다. 어느 책에서 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계속 길을 가는데 그 종점이 십자가라고 합니다. 구약 전체가 십자가의 예언입니다. 


2) 사도행전의 십자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이 예수를 높이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이제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주신다'라고 마가 다락방에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다고 설교하면서 십자가를 언급합니다. 사도행전에 십자가가 두 번 나옵니다. 많이 나올 것 같아도 말입니다.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단어는 많이 나오지만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예수를 달아 죽인 것이니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만, 스데반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라고 설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었습니다. 빌라도가 왠만하면 죄를 찾았을 것인데, 그 조차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명절을 앞두고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죄를 찾지 못했다고 손을 씻은 것은 예수님의 무죄함을 말해 줍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바 대신 예수를 못박으라고 합니다. 대속의 사역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살인을 저지른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죄수입니다. 그 죄수를 살려주고 예수를 못박으라고 한 것입니다. 죄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의 터입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신에게 돌리라고 합니다. 빌라도가 무죄한 자를 죽이는 저주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자 대답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처럼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율법사들, 바리새인, 서기관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를 못박은 것입니다. 예수를 못박은 것은 살인자 바라바 대신 못박았다고 하니 결국 우리가 바라바인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 근본적으로 죽어 마땅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바 대신 죽었다는 것은 우리 대신 예수님이 못박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끔찍합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그 심한 출혈과 질식 상태에 놓이고  탈진하고 신장 이상과 고열에 시달립니다. 열이 많이 나면 그렇게 괴롭다고 한 것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심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목마르고 배고픔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도행전에 두 번 나오지만 예수를 우리가 죽였다는 말은 계속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시고 우리가 그 일에 증인이라는 말을 우리 교회는 여러번 계속 보고 있습니다. 또 한 군데 나오는 곳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 된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고칩니다. 그가 고침을 받아 성전에 들어가고 예배를 드리니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이 베드로를 심문합니다. 이 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음을 담대히 말합니다. 이 말을 성령이 충만하여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소리를 높여 담대히 전하니 십자가가 나온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니 십자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면 십자가가 밝히 보입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사색하고 머리 쓸 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높여 부를 때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십자가가 두 번 나올 때가 모두 이런 상황입니다. 


3) 복음서의 십자가


신약에 십자가가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사도행전부터 계시록까지는 십자가가 대략 24번 정도 나옵니다. 복음서에서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세 번 예언 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후 고백할 때, 그리고 변화산에서 모습이 변화된 후 말씀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죽임을 당하기위해 올라가시는 길에서 정확히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단순히 죽는다고 하지 않고 조롱을 당하고 채찍을 맞는 것까지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구레네 시몬이 졌습니다. 본래 십자가는 세로 장대만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 때 가로대와 세로 장대가 사용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가 사실은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체력이 너무 소진되어 그러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또한 강하게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을 파송할 때입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다 놔두고 십자가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데 말입니다.



3. 서신서의 십자가


1) 십자가의 시은좌


십자가는 주님이 지셨고 우리도 지금 지는데, 주님의 지심은 대속과 속죄의 지심이요, 우리는 시은(施恩)의 짐입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짐이라는 말입니다. 속죄소 시은좌 법궤,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지성소의 핵심인 것입니다. 우리의 짐은 은혜를 베푸시는 짐입니다. 주님은 값으로 십자가를 지시지만 우리는 감사로 십자가를 집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십자가를 따르지 않고 나를 따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시은의 십자가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천국까지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도 지성소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증거할 때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서 더 나아가서 십자가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이제는 예수님이 약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그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로 인해 그 은혜 가운데 살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하나님께 가는 통로일 뿐 아니라 장막입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죽음을 죽으신 능력의 자리입니다. 


2) 십자가의 해방과 승리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사서 해방시킨 곳입니다. 십자가는 윱법의 조문을 다 이루시고 구원의 길을 내신 것입니다. 아무도 구원에 스스로 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기만적인 자랑일 뿐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 2:14). 우리나라에서 노비 문서를 태워버리는 것처럼 이제는 노예의 신분계약이 아니라 자녀의 언약으로 이전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녀 삼아주신 것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5). 통치자와 권세를 무력하게 하여 구경거리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며 조롱하고 구경거리로 삼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우리는 십자가로 모든 것을 이긴 것입니다. 


3) 십자가의 자기 부인


십자가는 로마서에 단 한 번 나옵니다.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렇게 희소한 것은 사실 십자가가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이제 십자가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때문에 십자가가 존귀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나무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형벌이 아름다워진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니 이제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자체는 저주거리가 맞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실 내 죄로 죽는 곳인데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달림으로 내 죄를 죽이는 곳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내 죄가 죽고 나는 사는 그것이 바로 십자가 입니다. 그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능력의 터인 십자가


우리는 모든 것을 십자가로 끌고 올라가야 합니다. 구약 때 성전으로 올라간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생명의 씨, 생명 그 자체가 되는 곳입니다. 이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종말과 파멸의 장소요, 우리에게는 은혜와 영광의 찬송의 터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의 터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낮아지고 복종하신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하나님의 열심을 두고 불평할 수 없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니 열심을 두고 불평할 수 없다'고 살펴봤습니다. 이번 주에도 또 살피기 원합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일어나고 함께 하늘에 앉히심을 받았습니다. 시름과 어려움과 눈물과 고통이 있거든 십자가에 모두 올려 놓으십시오. 십자가의 길은 가장 높아지는 길이요, 모든 흩어진 것이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하나게 되게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모두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이 시대가 우리를 얼마나 막연하게 합니까. 그러나 세상의 힘듬과 어려움이 십자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능력으로 이깁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 지식에 능통한 그였으나 힘들고 어렵고 할 때 오직 십자가만 생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칼빈이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천 개의 나무 십자가를 만드는 것보다 갈라디아서의 한 말씀을 붙드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본질은 십자가로 인해 화평을 누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됐다는 것입니다. 주 달려 죽으신 십자가의 능력과 역사와 권능과 찬송이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