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열매 맺음 | 요 15:1-7 | 문병호 목사 | 새 것 ・ 거듭난 것 ・ 값으로 사신 것 18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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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열매 맺음 | 요 15:1-7 | 문병호 목사 | 새 것 ・ 거듭난 것 ・ 값으로 사신 것 18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829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녹취록>



1. 살아 있는 나무가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계속 새 것, 새 일, 새 영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는 '새'라는 말은 인간에게서 조건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창조적으로 만들어서 소망을 주시는 것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새 언약은 하나님이 창조적 권능으로 인류에게서 조건을 찾지 않으시고 오직 스스로 기뻐하심에 따라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셔서 전무후무하게 그 죽음으로 생명을 도입하시고 그것으로 우리에게 거저 값없이 부여하신 영생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나게 하신 것, 새롭게 하신 것은 성경에 열매로 부르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나무는 찍어 버려지고 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열매를 맺는 나무들입니다. 크게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천국 곳간에 들이는 첫 열매요, 그 자체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요한복음 비유를 볼 때 우리는 내가 이미 열매된 자요, 열매된 자로 열매 맺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할 것임을 배웁니다.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포도나무, 우리나라로 치면 복숭아, 자두, 살구로 얘기할 수 있는 이 열매들이 없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 수 없습니다. 물과 기름과 향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열매를 맺는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인 것입니다. 



2. 즐거움과 열매


열매라는 단어의 어원은 즐거워하다, 기뻐하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가장 기쁜 것은 그것이 제 기능을 할 때입니다. 크기에 상관없습니다. 살아서 열매를 맺으면 그것은 나무가 기뻐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다 성령의 열매요 아홉가지 맛을 내는 열매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요, 그가 부활 승천하여 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그 성령이 임하면 열매를 맺게 하시며, 이것은 곧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바로 영생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곧 보혜사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임해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즐거우면 열매를 맺습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즐겁게 하면 열매를 맺습니다. 즐겁게 하면, 즐거우면 열매가 순수하고 온전하게 맺힙니다. 영적인 즐거움과 부요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함께


1) 인내의 열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함께 일으킴을 받고 함께 하늘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함께 상속자 되고 함께 지체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합니다(엡 3:6).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이 모두 여호와께 함께하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즐거움이 모두 사라진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 한 가지는 '주여 함께하소서' 하는 외침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즐거움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참음이라는 단어를 새벽예배에서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 전부 다 칭찬한 것은 참음입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특히 인내를 칭찬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한 가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참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고 주를 인정하면 주가 이루시는 것, 그것이 주의 일입니다. 참음이라는 말은 뭘까요? 밧모 섬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도 시대와 그 이후 시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이 오히려 사도 요한보다 먼저 순교합니다. 사도 이후의 시대, 즉 속사도 시대를 열어주는 사도가 바로 요한입니다. 우레의 아들이라 불렸던, 성격이 불같고 거친 어부였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음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2) 붙들어 주심


잡히시던 밤에 마가 다락방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붙들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항상 우리와 거하며 우리 속에 있을 것이라는 이 말씀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오해하여 우리가 주 안에 거하면 주가 우리 안에 거한다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오히려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할테니 우리도 그 안에 거하라고 하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스스로 다가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양보다 밝은 하나님께 누가 먼저 다가갑니까. 창세 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작정하시고 이제 우리가 안 만날 수 없게 해 주시고 그때 구하면 만나 주신다는, 불가항력적으로 우리가 붙들고 찾을 수 밖에 없게 해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어떤 자격이나 자질이 있어서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내민 손을 잡는 것이 어찌 떨어지는 자의 공로란 말입니까. 우리는 그저 붙어 있는 것을 할 뿐입니다. 애가 부모를 찾는데 어떤 형식이나 거창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말씀을 가지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주셔야 우리가 부르짖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3) 붙어 있기: 기도


우리는 어쨌든 붙어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이요,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이 포도나무요 농부는 아버지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나무이십니다. 참 포도나무입니다. 이것은 그 속에 로마서의 말씀처럼 진액이 흐르는 참 감람나무와 같습니다. 참 포도나무는 안에 양분과 수분이 풍부하여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를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부는 농부이시고 성자는 포도나무이시고 성령은 그 안에 역사하는 양분이자 수분입니다. 이 안에 우리가 있기만 하면, 이미 얻은 생명의 열매와 더불어 거룩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남의 열매는 이미 얻었고 살아감의 열매를 또한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딱 붙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일단 부르십시오. 아빠라고 일단 부르고 시작하십시오. 부르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부르고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간혹은 학교에도 그런 학생이 있습니다. 점수가 잘 안 나와서 전화가 옵니다. 이런 학생들이 기도를 많이 하는 학생이라 생각합니다. 전화를 해서 가만히 있습니다.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공부는 안 했고 점수는 받아야겠으니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일단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자꾸 없애는 것이 사실 기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가만히 있는 것, 하나님을 부르는 것,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4) 접붙임을 위한 잘림: 자기 부인


붙어 있는 것이 그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롬 11:23). 접붙이기 위해서는 양쪽 나무가 다 잘려 나가야 합니다. 주님이 먼저 잘리셨습니다. 우리도 가지를 잘라야 합니다. 가지는 일단 자르면 죽은 것입니다. 버려져 잘린 가지가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접붙이면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살아나는데, 이전보다 더 좋은 가지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비유가 없습니다. 가지는 잘리면 죽습니다. 나중에 전지한 가지를 모아 불을 땝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져다가 묶어서 접을 붙이면 살아납니다. 그러니 붙어 있다는 것은 접이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몸이 잘리시고 찢기시고 우리도 옛 것을 버리고 주님께 딱 붙는 것입니다. 접붙이기 위해서는 양 나무가 모두 죽어야 합니다. 주도 죽고 나도 죽어야 합니다.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이제 내가 죽고 접을 붙이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요, 무릇 내게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겠다는 말씀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니 그리스도에 붙어 있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의 일꾼과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그리스도가 붙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모든 것은 절망이라도 복됩니다. 실패도 절뚝이는 것도 복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헌신하고 감사하는 것이 복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나머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뭐가 좋은지 모릅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다 좋은 줄 아십니까. 항상 두렵고 떨려야 합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항상 좋은 게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내가 씽씽 달린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항상 두렵고 떨린다는 말은 내 주장이나 기쁨이나 판단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딱 붙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5) 열매의 원천이신 그리스도


열매를 맺는 것은 오직 붙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루터기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그리스도 안에 붙어 있어야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자입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1). 내 자랑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자랑한다면 자랑거리가 조금 바뀔 것입니다. 내가 이전에 자랑하는 것이 이제는 쓸데 없다고 찬송할 것입니다. 이전에 좋던 것이 이제는 값 없어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힘들고 어렵지만, 좌절되고 절망되고 괜히 답답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망거리가 자랑거리가 되고 낙담거리가 소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성경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십자가의 공로, 예수님의 대속 공로로 그리스도 안에 붙어서 이제는 내가 내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열매 맺습니다. 

우리는 이런 체험들을 사실 많이 합니다. 저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부끄럽습니다. 괜히 계획 세우고 되니 안 되니 해도 하나님은 벌써 다르게 움직이십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을 움직이시고 행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됩니다. 그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즐거워하면 됩니다. 기도 잘하는 것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이름만 부르십시오. 스승은 전화만 하면 다 알아 듣습니다. 다 압니다. 학기 초에 전화가 오면 책을 사야 될지 말아야 될지 묻는 것이요, 그러면 책을 살지 고민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닌지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이요 학기 말에 전화가 오면 학점이 걱정되어 그런 것에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4. 깨끗한 가지가 되라: 계속적 회개


주님은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이 열매를 맺으니 더 열매를 맺는 것이요, 거룩하게 했으니 더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붙어 있고 두 번째는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것이라기보다 회개하고 내 그릇을 깨끗하게 닦는 것, 그것이 열매 맺는 것입니다. 성부가 농부이고 성자가 나무이고 성령이 양분이므로 우리가 깨끗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장에 나갈 때 회개하게 하신 것이 바로 이 이유입니다. 매일 생명의 회개 기도를 하지 말고 이미 구원의 회개는 이루었으니 날마다 삶 가운데 열매 맺는 계속적 회개를 통해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나무가 가지를 택한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너희는 긍휼의 그릇으로 깨끗이 그릇을 닦아야 합니다. 그 그릇의 귀함은 소재가 아니라 얼마나 깨끗하냐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렇다면 이 그릇을 채우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로 말씀입니다. 열매 맺는 것은 붙어 있고 깨끗하고 말씀에 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이것에서 멀어지면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접붙인다는 것은 양자의 영을 받는 것이요, 즐겁게 주님의 일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의 영을 받았습니다. 주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항상 기쁜 것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이것이 잘 표현된 것이 찬송 191장입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이 찬송과 같은 은혜가 모든 성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