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응하여 거둠 | 합 2:2-3; 갈 6:7 | 문병호 목사 | 새 것 ・ 거듭난 것 ・ 값으로 사신 것 19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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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응하여 거둠 | 합 2:2-3; 갈 6:7 | 문병호 목사 | 새 것 ・ 거듭난 것 ・ 값으로 사신 것 19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905
합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녹취록>
1. 하나님의 약속
우리는 모두 언약의 백성,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모태에서 지음을 받기 전에 있었습니다. 창세 전 하나님이 우리를 정하시고 택하심이 그 약속이요, 이제 이때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 삼으신 것이 약속의 성취입니다. 우리를 부르사 구원하시고 자녀, 상속자 삼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향한 계획을 가지시고 각자 때에 맞게 형편대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베푸셔서 각자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을 개인적 경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가족이나 벗이라도 하나님의 경륜은 각자에게 고유하고 다양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각자에게 부족함이 없고 절대적이고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구원의 경륜이 이와 같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누구는 조금 더 울고, 누구는 조금 더 웃는 것 같아도 각자 하나님의 천국 시민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그 도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시되 구원은 우리를 통하여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그 일의 증인인 것입니다. 이 경륜을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아들을 보내셔서 때가 찬 경륜(엡 1:9)을 이루십니다. 이것을 구속사적 경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크게는 창세 전에 아들을 정하셔서 때가 되어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십자가에 박히게 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내려 주셔서 그의 교회를 이루시는 것이 전부 언약이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약속된 일이요, 하나님이 반드시 응하여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큰 구원의 역사의 증거는 십자가요, 이제 그 은혜의 적용의 증거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 편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약속 성취의 증인
우리의 삶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성취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보면 매 순간의 삶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삶,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응하는 그 삶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증거가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세워져 씻겨지고 입혀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으로 서게 하십니다. 오늘 새벽 말씀도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하나님께 인정 받은 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딤후 2:14-15). 여호와께 인정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니라 여호와께 서면 그가 우리를 다듬어 주시고 세워 주시고 인쳐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떠해서 인정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여호와께 인정된 자로 여호와께 내 자신을 드리기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내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물과 같이 받으시며, 이것이 바로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3.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신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약속의 성취의 증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열매가 바로 우리입니다. 증인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삶이 날마다 약속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방 본 것처럼 에베소서 1장 4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약속을 우리가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뭘 가져가는 것이 가당치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뭔가 있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져가면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지고 날마다 자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지하는 것, 기대는 것을 배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내 안에서 온전히 응해지는 그것을 하나님이 나를 통해 드러내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내가 사용받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경우 설교도, 책 저술도, 걷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만이 거룩하고 흠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거스틴이 나에게서 나의 것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찾으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시 68:19). 이 시편은 그러므로 책임 회피나 태만이 아닙니다.
4. 말씀으로 응답하심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반드시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속성상 거짓을 말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진실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하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성취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 그것이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응하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이고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하시는 것은 철저히 말씀으로 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기도한즉 참으라고 전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말씀 읽기에 힘쓰자, 그리고 말씀 읽은 즉 그것을 붙들고 기도하고, 기도한즉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라고 나눴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응한다, 빠르다, 늦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일점일획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뭐 하나도 내가 주어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빠르다고도 할 수 없고 늦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9월 14일에 10주년 된 날입니다. 부족한 저를 교수도 되게 하시고 개척도 하게 하시고 책도 쓰게 하시고,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 앞에 자랑스럽게 내어놓지는 못하지만 반대로 미약하고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응하심이기 때문입니다.
5. 정한 때에 응답하심
제가 아는 두 목사님이 한 분은 운영하시는 교회의 한 달 헌금이 14만원이라고 들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교인이 두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분이 너무 힘들어서 닭을 키운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어떻게 주의 종이 닭을 키운냐고 따졌습니다. 그 대화를 보면서 이 분들이 주의 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교회를 보면 안 됩니다. 그러자면 모두 사마리아 성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역사서를 보면 수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이 죽으실 때 중심이 되었지 그 전에는 나사렛 변방, 광야, 요단에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예루살렘 성전 옆에만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야 이야기가 길게 나옵니다. 그러나 그리심으로 사렙다로 변방으로 달렸지 사마리아 성의 이야기는 잠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대부분은 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대단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늦었다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것도 이것으로 봐야 합니다. 악인이 어찌하여 흥왕하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의를 입에 담은 것입니다. 정의롭지 않다고 하나님께 따진 것입니다. 첫 번째 하박국의 불평 섞인 질문입니다. 한탄입니다. 두 번째는 본문 2절에, 외쳐도 주님이 답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하나님께 속된 말로 따지는 것입니다. 정의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이 거창하다면 그래도 기도는 들어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이러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왜 기도에 묵묵 부답인지 따지는 것, 그것에 대한 대답이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묵시와 계시를 우리가 대단하게, 신비하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한 때가 있습니다. 이 정한 때라는 것은 절대 우리 수준에서 입에 담을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 오실 날만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오실 그 큰일도 모르는데 다른 작은 일은 하물며 어떠하겠냐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말씀,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고 하니 마치 그것을 빼고 다른 것은 다 아는 것처럼 우리는 손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로 사는 것이 섭리론입니다. 운명과 달리 섭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의 구원경륜, 개인경륜에 따라 시간에 맞추어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6. 속히 응답하심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 하나님의 때가 속히 이룬다고 합니다. 속히 이룬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보기에 속히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속히 이루시는데, 종말이 속히 이르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때에 어김없이'로 읽어야 합니다. 빠르거나 늦는 인간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만이 장대에 달릴 때에 바로 모르드개를 달기 전날 역사서를 왕이 읽게 하십니다. 왕이 그 역사서를 읽고 모르드개가 아닌 하만을 장대에 매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속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에게 엘리야가 쫓겨서 간 곳은 사렙다 지방, 아세라 신을 가장 많이 섬기는 곳입니다. 거기서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모든 이방 선지자를 모으라고 하셔서 갈멜산에서 한 번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베드로가 밤새 그물을 던졌을 때 아무것도 안 잡혔습니다. 영적으로도 예수님이 안 계시고 육적으로도 가장 힘든 때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니 153마리가 그물에 꽉 찼습니다. 베드로 고기라고 하는 이 물고기는 작은 고기가 아닙니다. 상당히 큰 고기입니다. 밤새 잡아도 아무것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고기를 몰아 놓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때, 속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히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7.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야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의 도구로 삼으시고 모든 일을 그의 백성을 통해 이루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응하심의 증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늦어도 하나님은 정확한 때가 있습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넣을 때가 있고 그를 정확한 때에 건져내어 총리를 시키고 흉년을 대비하게 해서 야곱 지파를 유지시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시되 정한 때에 이룹니다. 묵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달려가면서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판에 새겨야 합니다. 즉 마음에 이 말씀을 새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화와 감동으로 우리 안에서 아멘의 역사로 먼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이 없이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면 어찌 우리가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나의 것으로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먼저 하나님의 묵시를 마음판에 새겨 말씀에 대해 아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림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이 어떤 일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이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감화, 감동되어 우리 안에 그리하여 말씀에 '아멘' 될 때가 속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때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마음판에 새겨지는 것,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시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임하면 말씀이 우리에게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예언이 예레미야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이 진리의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한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 신약시대입니다.
8. 말씀의 응답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일로 응하십니다. 말씀으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박국은 지금 즉시 적들을 없애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큰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국가를 없애는 것으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그 이상입니다. 앗수르가 없으면 메대가 나타나고 바사가, 헬라가, 로마가 계속 나타납니다. 끊임없이 적들이 나타납니다. 묵시가 때가 되어 이루고 속히 이루리라고 한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7-19).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 자신을 모든 일을 통해 빚어가시는 그것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 구원이 있고, 적들을 물리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물고기를 한데 몰았다가 한번에 잡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상 이때 그물로 고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고기가 움직이는대로 그물이 따라간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물이 마지막 순간에 터진 것입니다. 우리가 좋다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가 '하나님의 뜻을 속히 제때에 어김없이 이루소서'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9. 하나님이 약속에 응답하심을 믿으라
말씀을 심은 대로 거두는 것, 이것이 갈라디아서의 말씀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언뜻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박국서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응함이 없는 말씀과 기도가 없습니다. 응함이 없는 말씀과 기도가 없습니다. 응함을 믿어야 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여호와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뭔가 자꾸 고치고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사울도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름부음 받은 종으로 믿음이 있는 다윗은 죽을 때까지 성전 건축하는 것을 믿음으로 가지고 죽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인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미쳐 버렸습니다. 응함에 대한 믿음의 차이인 것입니다. 같이 기름부음을 받아도 사울은 하나님의 응함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제사장이 조금 늦게 오자 스스로 제사를 드리고 접신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김을 당하더라도 법궤를 그대로 두고 하나님의 응하심을 기다립니다. 응함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움직이게끔 심어야 합니다. 무엇을 심느냐, 바로 말씀입니다. 묵시입니다. 찬송가 546장 3절의 가사를 보기 원합니다. "주의 약속하심 말씀 위에서 영원하신 주의 사랑 힘입고 성령으로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응하심을 믿고 말씀 위에 굳게 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응하여 거둠 | 합 2:2-3; 갈 6:7 | 문병호 목사 | 새 것 ・ 거듭난 것 ・ 값으로 사신 것 19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0905
합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녹취록>
1. 하나님의 약속
우리는 모두 언약의 백성,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모태에서 지음을 받기 전에 있었습니다. 창세 전 하나님이 우리를 정하시고 택하심이 그 약속이요, 이제 이때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 삼으신 것이 약속의 성취입니다. 우리를 부르사 구원하시고 자녀, 상속자 삼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향한 계획을 가지시고 각자 때에 맞게 형편대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베푸셔서 각자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을 개인적 경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가족이나 벗이라도 하나님의 경륜은 각자에게 고유하고 다양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각자에게 부족함이 없고 절대적이고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구원의 경륜이 이와 같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누구는 조금 더 울고, 누구는 조금 더 웃는 것 같아도 각자 하나님의 천국 시민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그 도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시되 구원은 우리를 통하여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그 일의 증인인 것입니다. 이 경륜을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아들을 보내셔서 때가 찬 경륜(엡 1:9)을 이루십니다. 이것을 구속사적 경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크게는 창세 전에 아들을 정하셔서 때가 되어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십자가에 박히게 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내려 주셔서 그의 교회를 이루시는 것이 전부 언약이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약속된 일이요, 하나님이 반드시 응하여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 큰 구원의 역사의 증거는 십자가요, 이제 그 은혜의 적용의 증거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 편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약속 성취의 증인
우리의 삶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성취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보면 매 순간의 삶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삶,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응하는 그 삶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증거가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세워져 씻겨지고 입혀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으로 서게 하십니다. 오늘 새벽 말씀도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하나님께 인정 받은 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딤후 2:14-15). 여호와께 인정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니라 여호와께 서면 그가 우리를 다듬어 주시고 세워 주시고 인쳐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떠해서 인정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여호와께 인정된 자로 여호와께 내 자신을 드리기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내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선물과 같이 받으시며, 이것이 바로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3.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신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약속의 성취의 증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열매가 바로 우리입니다. 증인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삶이 날마다 약속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방 본 것처럼 에베소서 1장 4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약속을 우리가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뭘 가져가는 것이 가당치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뭔가 있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져가면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지고 날마다 자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지하는 것, 기대는 것을 배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내 안에서 온전히 응해지는 그것을 하나님이 나를 통해 드러내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내가 사용받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경우 설교도, 책 저술도, 걷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만이 거룩하고 흠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거스틴이 나에게서 나의 것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찾으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시 68:19). 이 시편은 그러므로 책임 회피나 태만이 아닙니다.
4. 말씀으로 응답하심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반드시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속성상 거짓을 말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진실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하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성취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 그것이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응하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이고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하시는 것은 철저히 말씀으로 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기도한즉 참으라고 전에 이야기한 것입니다. 말씀 읽기에 힘쓰자, 그리고 말씀 읽은 즉 그것을 붙들고 기도하고, 기도한즉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라고 나눴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응한다, 빠르다, 늦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일점일획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뭐 하나도 내가 주어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빠르다고도 할 수 없고 늦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9월 14일에 10주년 된 날입니다. 부족한 저를 교수도 되게 하시고 개척도 하게 하시고 책도 쓰게 하시고,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 앞에 자랑스럽게 내어놓지는 못하지만 반대로 미약하고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응하심이기 때문입니다.
5. 정한 때에 응답하심
제가 아는 두 목사님이 한 분은 운영하시는 교회의 한 달 헌금이 14만원이라고 들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교인이 두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분이 너무 힘들어서 닭을 키운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어떻게 주의 종이 닭을 키운냐고 따졌습니다. 그 대화를 보면서 이 분들이 주의 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교회를 보면 안 됩니다. 그러자면 모두 사마리아 성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역사서를 보면 수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이 죽으실 때 중심이 되었지 그 전에는 나사렛 변방, 광야, 요단에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예루살렘 성전 옆에만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야 이야기가 길게 나옵니다. 그러나 그리심으로 사렙다로 변방으로 달렸지 사마리아 성의 이야기는 잠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대부분은 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대단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늦었다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것도 이것으로 봐야 합니다. 악인이 어찌하여 흥왕하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의를 입에 담은 것입니다. 정의롭지 않다고 하나님께 따진 것입니다. 첫 번째 하박국의 불평 섞인 질문입니다. 한탄입니다. 두 번째는 본문 2절에, 외쳐도 주님이 답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하나님께 속된 말로 따지는 것입니다. 정의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이 거창하다면 그래도 기도는 들어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이러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왜 기도에 묵묵 부답인지 따지는 것, 그것에 대한 대답이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묵시와 계시를 우리가 대단하게, 신비하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한 때가 있습니다. 이 정한 때라는 것은 절대 우리 수준에서 입에 담을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 오실 날만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오실 그 큰일도 모르는데 다른 작은 일은 하물며 어떠하겠냐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말씀,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고 하니 마치 그것을 빼고 다른 것은 다 아는 것처럼 우리는 손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로 사는 것이 섭리론입니다. 운명과 달리 섭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의 구원경륜, 개인경륜에 따라 시간에 맞추어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6. 속히 응답하심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 하나님의 때가 속히 이룬다고 합니다. 속히 이룬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보기에 속히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속히 이루시는데, 종말이 속히 이르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때에 어김없이'로 읽어야 합니다. 빠르거나 늦는 인간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만이 장대에 달릴 때에 바로 모르드개를 달기 전날 역사서를 왕이 읽게 하십니다. 왕이 그 역사서를 읽고 모르드개가 아닌 하만을 장대에 매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속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에게 엘리야가 쫓겨서 간 곳은 사렙다 지방, 아세라 신을 가장 많이 섬기는 곳입니다. 거기서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모든 이방 선지자를 모으라고 하셔서 갈멜산에서 한 번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베드로가 밤새 그물을 던졌을 때 아무것도 안 잡혔습니다. 영적으로도 예수님이 안 계시고 육적으로도 가장 힘든 때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니 153마리가 그물에 꽉 찼습니다. 베드로 고기라고 하는 이 물고기는 작은 고기가 아닙니다. 상당히 큰 고기입니다. 밤새 잡아도 아무것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고기를 몰아 놓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때, 속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히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7.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야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의 도구로 삼으시고 모든 일을 그의 백성을 통해 이루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응하심의 증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늦어도 하나님은 정확한 때가 있습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넣을 때가 있고 그를 정확한 때에 건져내어 총리를 시키고 흉년을 대비하게 해서 야곱 지파를 유지시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시되 정한 때에 이룹니다. 묵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달려가면서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판에 새겨야 합니다. 즉 마음에 이 말씀을 새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화와 감동으로 우리 안에서 아멘의 역사로 먼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이 없이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면 어찌 우리가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나의 것으로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먼저 하나님의 묵시를 마음판에 새겨 말씀에 대해 아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림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이 어떤 일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이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감화, 감동되어 우리 안에 그리하여 말씀에 '아멘' 될 때가 속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때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마음판에 새겨지는 것,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시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임하면 말씀이 우리에게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예언이 예레미야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이 진리의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한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 신약시대입니다.
8. 말씀의 응답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일로 응하십니다. 말씀으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박국은 지금 즉시 적들을 없애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큰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국가를 없애는 것으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그 이상입니다. 앗수르가 없으면 메대가 나타나고 바사가, 헬라가, 로마가 계속 나타납니다. 끊임없이 적들이 나타납니다. 묵시가 때가 되어 이루고 속히 이루리라고 한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7-19).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 자신을 모든 일을 통해 빚어가시는 그것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 구원이 있고, 적들을 물리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물고기를 한데 몰았다가 한번에 잡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상 이때 그물로 고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고기가 움직이는대로 그물이 따라간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물이 마지막 순간에 터진 것입니다. 우리가 좋다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가 '하나님의 뜻을 속히 제때에 어김없이 이루소서'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9. 하나님이 약속에 응답하심을 믿으라
말씀을 심은 대로 거두는 것, 이것이 갈라디아서의 말씀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언뜻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박국서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응함이 없는 말씀과 기도가 없습니다. 응함이 없는 말씀과 기도가 없습니다. 응함을 믿어야 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여호와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뭔가 자꾸 고치고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사울도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름부음 받은 종으로 믿음이 있는 다윗은 죽을 때까지 성전 건축하는 것을 믿음으로 가지고 죽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인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미쳐 버렸습니다. 응함에 대한 믿음의 차이인 것입니다. 같이 기름부음을 받아도 사울은 하나님의 응함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제사장이 조금 늦게 오자 스스로 제사를 드리고 접신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김을 당하더라도 법궤를 그대로 두고 하나님의 응하심을 기다립니다. 응함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움직이게끔 심어야 합니다. 무엇을 심느냐, 바로 말씀입니다. 묵시입니다. 찬송가 546장 3절의 가사를 보기 원합니다. "주의 약속하심 말씀 위에서 영원하신 주의 사랑 힘입고 성령으로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응하심을 믿고 말씀 위에 굳게 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