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0210919 주일낮예배] 완전히 낫게 하심(행 3:11-18)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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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행 3:11-18)


설교 내용


1.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

     사도행전 3-4장에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고 말씀의 능력으로 완전히 낫게 되는 큰 기적적인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오순절 성령 강림과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이 역정 가운데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몸이 성하지 못하여 마치 사물같이, 인격체가 아닌 것같이 여겨지는 사람이 완전히 낫고 간증이 되어 설교의 증거, 증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불립니다. 이 성령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약속된 영,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신약 시대에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롬 10:17).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복음이고, 십자가의 도입니다. 로마서 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구원 받는 능력이고,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맛디아가 부족한 사도의 수를 채워 열두 사도가 회복이 되고, 약 120명이 되는 무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서 기도를 했는데, 그때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불고, 불이 혀처럼 갈라져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행 2:1-4). 그들이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유일한 증거입니다. 성령은 전체적으로 임한 것이 아니라 각자 각자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큰 일은 복음, 십자가의 도인데, 이 복음, 십자가의 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2. 복음의 증인

     이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큰 일, 복음이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설교에서 나타납니다. 무리는 모두 살인자인 바라바 대신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그분이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드리셨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주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신 그 생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주이신 것은 우리를 위해 죽고 사셔서 우리 각자의 생명의 값을 대신 치리시되, 죄 값도 치르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품위를 갖게 하시고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각자에게 임하여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생명의 값으로 구원을 받아 예수가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고, 우리가 그 증인입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 3:15). 증인이란 헬라어로 ‘마르투스’라고 합니다. 목격자뿐만 아니라 순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증인은 단지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도를 땅끝까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전도는 교회 데려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는 것은 때가 되어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증인은 목격자, 제3자가 아니라 본인이 구원받고 그 구원을 필히 전할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증인은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열두 제자, 120 문도, 모든 성도님들의 공통점은 증인이라는 점입니다. 증인은 생명을 얻었고, 생명을 전하고, 자기 생명을 드립니다. 그래서 증인이라는 말에는 순교자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나면서 못 걷게 된 이

     사도들은 다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 세례를 받은 자가 3천 명(행 2:41), 그 후에 믿는 자가 5천 명이나 되었습니다(행 4:4). 이 사람들 중에 오늘 본문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행 3:2), “나은 사람”(행 3:11)입니다. 이름도 없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마지막 정보는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행 4:22). 이 사람은 사십 세 되도록 걸어 본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매고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두었다’라는 말은 사람에게 쓰기에 적합하지 않고 마음 아픈 말입니다. 이 사람을 돈통처럼 여긴 것 같습니다. ‘날마다’ 구걸하느라 쉬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이 이 사람을 기구와 같이, 인격이 없는 존재처럼 이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불쌍합니다. 더욱 불쌍한 것은 성전 문에 두는지라 성전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은 한 가지가 약하면 그것을 위로하기보다 나머지 것도 경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40년을 걸어 보지 못하고, 예배 드려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이 인물은 3-4장에 걸쳐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의 사도들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아히도벨은 천재였으나 압살롬을 만나서 망했습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반역의 무리를 만나면 반역의 꾀를 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눈의 아들이요 모세의 수종자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개인적 내용은 없지만 크게 쓰임 받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이 원하는 돈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내게 있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두 벌 옷, 전대를 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세상적으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목사에게 세상적 지혜를 구하면 목사가 알겠습니까? 목사에게 은금은 없습니다. 목사에게 있는 것은 말씀입니다. “내게 있는 이것”은 사실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대리인, 제자, 사도, 종일 뿐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힘입어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물질적 인생, 물질의 노예가 된 인생이 생전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듣게 됩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 사건의 의미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한 것은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신분, 고하, 국가, 민족을 묻지 말고 땅끝까지 나아가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 3:7-8). 영육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돈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얻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부정하다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정결례와 같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받으면 바로 예배로,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즉시 힘을 얻고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4. 예수의 이름: 능력의 근원

     그후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에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일로 인하여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그 권능은 제자들의 권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사도들은 제구시 기도시간을 지켜서 기도하는 경건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권능은 이로부터 온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제자들, 목사의 능력이 아니라, 목사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스스로 있는 자, 구약의 ‘아도나이’로 불리는 주이십니다. 나면서 걷지 못한 자의 믿음이 그를 성하게 했는데, 그 믿음도 그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걷지 못하는 이는 그 이전부터 예수를 잘 믿고 있다가 그 순간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받는 즉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5. 증인 되기 위한 완전한 나음

     “완전히 낫게 하였으니라”는 영육간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4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하다가 잡힌 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9-10, 12). 베드로와 요한은 ‘구원’을 ‘건강’ 및 영혼의 구원과 연결시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병을 낫게 하셨을 때 그의 죄도 사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이 “완전히 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셨을 때,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의 소경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하셨을 때,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랐다고 합니다. 이것이 완전히 낫는 것입니다. 단지 병 나은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음, 건강을 통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말씀은 18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행 3:18).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음을 받는 것이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언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말씀 자체가 구원을 말하지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는 영적 구원을 말하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는 육체적 구원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응했다고 합니다. “이루셨느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낫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얼굴을 보면 옛날보다 훨씬 편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완전히 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은 그것을 압니다. 평안히 잡니다.

     “믿음으로 닻을 주께 던지고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면서 전엔 나를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제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 나의 생명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한 주간 우리를 낫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이러한 기쁨과 은혜와 충만한 위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