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 주일낮예배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1 | 여호와가 함께 계셔 친히 싸우심 | 신 1:29-33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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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31일 주일낮예배 설교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1


여호와가 함께 계셔 친히 싸우심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신명기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녹취록



1. 신명기

     민수기는 백성의 수를 의미하고, 신명기는 하나님의 명을 한 번 더 펼쳤다는 뜻입니다. 광야 40년 삶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다시금 모세가 호렙산에서 율법과 십계명으로 주신 하나님의 법을 읽고 깨우치는 것입니다. 펼 신(申), 명령할 명(命) 자입니다. 영어로는 규범을 두 번 펼쳤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알듯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느보 산, 모압 평지에서 가나안, 여리고, 예루살렘 등을 쭉 훑어보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광야 생활 중에 난 사람만 들어가는데 오직 두 사람, 바로 정탐꾼을 보냈을 때 긍정적인 답을 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만 예외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다시 한번 펼쳐 설명하고 돌에 새겨 가나안 땅에 가서 그것을 심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건이 나오고 말씀이 나오는 반복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레위기, 민수기, 출애굽기의 전체 내용인데 신명기는 이제 이 광야생활을 정리하는 말씀입니다. 


2. 약속의 땅 가나안

     정탐꾼이 가네스 바데아에서 가나안을 다녀왔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다는 것이 그 의견이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가나안이 그렇게 흠모할 땅이 아닐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광야를 걸어 보고 출애굽을 해서 고센 땅에서부터 홍해를 건너 마라를 건너 광야와 신 광야를 건너온 사람이라면, 물도 없고 거친 그 땅에 비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볼 만한 것입니다. 포도도 주렁주렁 달리고 땅도 비옥하니 말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산이 많아서 우리는 고개를 넘는게 힘들다고들 하는데 이스라엘은 산이 없으니 고개를 넘는 게 좋은 일입니다. 산지에는 계곡도 물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낙 자손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특히 헤브론 지역의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다면 그대로 들어가 살면 좋은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강대해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신앙의 판단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메뚜기밖에 안된다는 의견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는 관점입니다. 사실상 이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렙과 여호수아의 편에 서지 않고 전부 불평하고 원망해서 38년 동안 다시 에돔, 모압, 암몬을 돌아 길갈, 여리고로 돌아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모세가 다시 그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명령

     특별히 신명기 1장 2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신 1:21). 여호와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부탁이나 권유가 아닙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업을 확장하라, 이것은 우리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도 그렇습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걸맞은 땅이 있습니다. 그 땅에 우리는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도상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을 잘 봐야 합니다.


4. 불신에 의한 불순종은 원망을 낳는다 

     그런데 이 명령을 거역하고, 27절처럼 장막 중에 원망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벌써 불신을 뜻합니다. 자원하는 마음,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원함이 생기지 않고 그러니 갈렙과 여호수아와 나머지 열 명과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신 1:27).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우리에게 원망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복된 땅으로 가지 않을 때 회개가 아닌 원망이 생깁니다. 원만은 바로 자기 중심적 판단입니다. 원망은 욕하고 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는 나의 판단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원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또한 믿지 않으니 원망이 생깁니다. 두려움이 생깁니다. 장막 중에 원망하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와 같습니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는 그래도 내가 나가서 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습니다. 게으른 심령입니다. 본문의 원망이 이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우리는 나서야 합니다. 장막 안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도 하시고 안고 먼저 가시고 친히 싸우십니다. 방 안에 있으면 원망만 나오고 겁만 먹고 떨기만 하는 것입니다. 명령을 들었으나 장막 중에서 바로 원망한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명령에 수반하는 하나님의 약속

     사실 명령만 들으면 원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은 약속이 있으므로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명령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친히 이루심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하라고 지시할 때, 이삭아, 야곱아 떠나라고 지시할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약속 있는 명령이고 하나님의 계명은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을 베푸셨습니다. 명령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시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된 길입니다. 왜요, 명령에는 약속이 있으니까요. 본문 21절을 다시 봅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신 1:21). 사람들은 사실 이 약속이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명령 전에 이미 약속이 있습니다. 먼저 행하시는, 먼저 그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약속이 있고 명령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6. 명령과 약속의 열매인 복

     명령에는 약속이 있고 복을 얻게 하기 위함이 목적이므로 그것이 축복이 됩니다. 여호와의 축복은 그야말로 먹여 주고 입혀 주는 것도 그렇지만 이것은 어린아이 수준의 복이고, 장성한 수준의 복은 명령을 하시고 지시를 하시고, 그 가운데 친히 이루시고 지경을 넓혀 주십니다. 구약은 전부 길입니다. 족장 길이라는 것이 왜 생겼을까요. 얼마나 많이 그 길을 다니니 족장 길이라는 길이 생긴 것입니다. 신약도 그렇지만 구약은 전부 길입니다. 지시하고 가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땅을 주시고 기업을 늘려주시는 이 일의 반복이 구약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약속이 신약에 들어가면 바로 영생입니다. 천국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약속이 명령을 따르고 명령하시기 전에 약속이 있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최후로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가나안입니다. 첫째, 후손의 약속은 고센 땅에서 사실 이미 이루어집니다. 당대 2백만 명은 사실 엄청 많은 숫자입니다. 궁극적으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의 자녀, 그리스도의 씨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둘째, 땅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셋째, 복의 근원은 호렙산에서 말씀을 주심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세 가지 복을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7. 여호와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

     그런데, 명령이 있고 약속이 있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기 위해서는 병기나 물리적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명령이 있고 약속이 있음에 대해 그 본질은 함께 해주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함께 하심이 본문 29절에서 33절까지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전능자와 함께 하면 우리가 전능해지는 것은 아니나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그와 함께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대해서는 우리가 신약을 통해 여러 번 살펴봤습니다(롬 8:17; 엡 2:5, 3:6). 그런데 결정적일 때 구약에서도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가는 곳마다 이삭에게 우물이 납니다. 그런데 아비멜렉과 그랄 땅의 왕이 우물을 빼앗아도 계속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이 나오니 처음에는 다투다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인정합니다(창 26:28). 그리고 끝내 브엘세바로 가서 또 우물을 파고 오늘까지도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가나안의 처음 큰 도시가 된 것입니다. 야곱은 어떻나요? 벧엘에서 꿈을 꿨을 때 하늘 사닥다리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가나안 땅을 떠나 하람 쪽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말씀하시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8. 복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여호와가 함께하심이다

     우리는 주로 기도할 때 돈을 더 주시거나 힘을 더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소유입니다. 본질은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만유의 만유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가 갈함도 없고 흉년에도 기름병이 마르지 않습니다. 여호와가 함께 계셔야 합니다. 가장 중요할 때, 아주 곤궁에 사람이 처하게 되면 내 존재 자체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면 소유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호와가 함께 계시는 것만 보입니다. 여호와가 나와 함께 계시면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됩니다. 제가 아까 읽지 않았으나 오늘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는 말의 핵심, 정점은 여호와의 함께 계심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곳을 가든 함께 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요셉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원해서 간 것이 아니라 묶여서 갔습니다. 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굽까지 갑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넘겨집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 39:2). 함께 하시므로, 임마누엘 하나님에 의해서 요셉이 형통한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라는 이 모든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잘 압니다. 떨기나무에서 여호와의 사자께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듣고 모세가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세를 대면해 주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때 모세에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있다고 하시면서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시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시면서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마치고 어떤 설교를 할지 생각을 하면서 이 말씀을 본 것입니다. 어떤 설교를 할지 정하면서 가장 먼저 설교할 것으로 이 말씀을 정한 이유입니다. 스스로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모세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도, 이삭과도, 야곱과도, 모세와도 함께 계시니 샘이 나고 물이 나고 가축의 수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9. 여호와의 전쟁법: 임마누엘과 믿음

     본문 말씀 30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함께 계시는 여호와가 먼저 가셔서 친히 싸운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 24:8). 전쟁에 능한 여호와께서 먼저 가셔서 싸우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 3:22).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데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싸워 주시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위험에 처한 때가 히스기야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 때에 최고 잔인한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바로 라기스까지 점령하고 예루살렘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망대를 쌓고 성벽을 보수합니다. 다윗성이 바로 그 성인데, 예루살렘의 끄트머리에 있는 성입니다. 지금은 터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무기와 방패를 준비하고 배수의 진으로 성에 들어오는 물의 근원을 끊어 버립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런 전쟁적인 요소로 이겼을까요? 아닙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대하 32:7-8). 산헤립은 기껏해야 사람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히스기야가 고백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지을 때도 그렇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저항을 하니 한 손에는 칼을 차고 한 손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 역시 말합니다. 나팔을 불거든 다 모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를 위하여 싸우리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도 그렇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려 가나안에 처음 들어갈 때 할례를 시킵니다. 한마디로 전쟁의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끊으십니다. 그리고 성벽을 돌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에 가까이 갔을 때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타납니다. 천사입니다. 이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네가 선 땅이 거룩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모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거룩한 곳은 여호와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전쟁을 앞두고 신을 벗으라는 것은 무방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의 전쟁은 세 가지, 즉 할례 거행, 만나와 메추라기의 중단, 신을 벗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전쟁의 대비와 반대되는 내용입니다.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쟁법입니다.


10. 우리를 안고 가시는 여호와

     본문 31절입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신 1:31). 엄마가 아이를 걷고 안는 것은 아이가 걸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이들이 오자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고 안고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 안고 간 것입니다. 홍해 바다를 걸어서 가는 것이 바다를 걷는 것인가요. 요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말랐습니다. 이런 것이 안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걸어온 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안겨 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길을 왔다고 할 때 엄마가 안고 걸은 것이지 아이들이 걸은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 4:4).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입니다. 다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니 어릴 때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학교만 마치면 어머니 품에 뛰어들어가 안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막내였는데 어머니가 여름에는 더우니 바쁜데 자꾸 엉기니 좀 그만 떨어지라고 하셨습니다. 붙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께 붙어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전쟁법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 20:1). 아까도 잠깐 인용했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구원하심이 창에 있지 않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주에는 함께하심에서 한 부분이 귀하게 남아 있는데, 바로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있고 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전쟁을 할 때 율법의 말씀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이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