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1 | 주일낮예배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4 | 성소에의 임마누엘 | 출 25:16-22; 40:34-38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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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1일 주일낮예배 설교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4


성소에의 임마누엘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출애굽기 25:16-22; 40:34-38

(출애굽기 25:16-22)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40:34-38)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녹취록



1.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함,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 먼저 행하심, 먼저 싸우심, 임마누엘에 대해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므로 모든 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은 유한하여 부모라도 그리 못하나 하나님은 무한, 전지, 전능, 편재 하시므로 항상 함께 계시고 지시하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우리가 능치 못함이 없고 충만함을 누립니다. 부족함이나 아쉬움이나 시기, 질투에 이르는 그러한 교만도 없습니다.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기쁜, 진정한 희락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심히 좋게 창조하셨습니다. 이 계절에, 일 년 사시사철 별도 보고 하늘도 보고 아름답고 좋지 않습니까. 그런 가운데 최고의 피조물로 사람을 지으시고 짝을 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멀리 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 합니다. 바로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그의 자녀인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고 지, 정, 의가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나섭니다. 지식으로 알고, 정서로 기뻐하고, 의지로 나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귀고자 하셨습니다. 


2. 성전: 하나님을 예배하는 터

     그래서 특별히 에덴이라는 터를 두셔서 그곳에서 사람과 사귀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같이 걷고 대화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해서 에덴을 잃어버렸습니다. 사귐의 터가 상실되었습니다. 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 터, 에덴을 잃어버리니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중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터를 하나님이 이 지상에 두시고자 하신 것이 바로 구약으로는 성전이요 신약으로는 교회입니다. 성전이 사귐의 터고 교회가 사귐의 터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함께 계시고 임마누엘, 뜻을 알리시고 예배 받으시고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하고 기르시고 끝내 그곳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1) 출애굽의 명분: 하나님께 정결하게 예배드리기

     하나님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실 때 명분이 무엇이었나요? 출애굽개 3장에 보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한 말입니다. 사흘 길쯤 광야로 가서 제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바로를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합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께 들은 말이 이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라고 여호와가 지시하셨고 모세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 앞에서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가야 할 목적을 말한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시내산입니다. 사흘 길 정도 가면 나오는 그 시내산에서 언약을 지키고 제사드리고 절기 지키게 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 절기, 제사입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 지키고 제사 드리러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드리면 안 되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정결 개념입니다. 언약, 절기, 제사의 기초가 되는 것이 정결례입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회개입니다. 정결이라는 것은 섞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와서 언약 지켜야 하고 절기와 제사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진멸하고 쫓아내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과 섞인 상태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여러 가지 설득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에게 한 말은 이것입니다. 나가서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여호와께 제사드리고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하신 말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동그란 데 안에 모여 있다는 원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모여서 옮겨서 제사를 드리는데 그곳이 바로 성전의 터입니다. 그곳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성전 지으러 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 일을 알았습니다. 성전 지어서 법궤 모시는 것을 최고의 일로 알았으나 하나님은 그 일을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에게 있어 모세가 요구한 바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열 가지 재앙이 내려지고 결국은 많은 재물과 가축과 심지어 다른 족속들도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하십니다. 

   2) 관념적, 편의적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말씀에 따라야 함

     애굽은 그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 도시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나 그곳에는 여호와의 뚜렷한 임재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벧엘의 돌밖에 없으나 여호와의 임재, 사닥다리가 광야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와 돌만 있는 황무지에 물이 나오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집니다. 먹여 주시고 재워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생수를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념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에도 무교회주의가 강했습니다. 굳이 교회에 갈 필요 없이 성경 읽고 기도하면 된다고 하는 말인데, 이는 곧 애굽을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와 장소를 정해 예배를 명하신 것입니다. 지난 주 살펴본 사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잘못을 했습니다. 사울도 예배드리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조금 편하고자 약간 변형을 한 것입니다. 다윗에 비해 하나님께 여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신 것입니다.

   3) 예루살렘 성전 터

     가나안, 현재로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직도 전쟁 상태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모든 것이 다 모여 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정교 등이 다 모여 있습니다. 바로 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예루살렘의 성전의 터에는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그 앞에 세워진 통곡의 벽에 울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출 13:3, 5, 9). 여호와를 섬기는 것, 구체적으로 절기와 제사를 드리는 것, 그리고 더 확장하면 거룩하게 사는 것이 복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범죄한 것은 다 됐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사실상 골치덩어리인데 인구조사에 대해서는 다윗에 대해 옳은 소리를 했습니다. 인구조사가 왜 나쁩니까? 내가 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바로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그중 재앙, 전염병을 택하는데, 이것을 그치게 한 것이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산 일입니다.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니 거기에서 칼을 빼던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거두고 질병이 멈춥니다. 그때까지 아직 기브온 산당에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곳에 가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검을 빼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르난은 타작 마당을 그냥 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값을 지불하고 삽니다. 주의 일을 그냥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그곳이 바로 역대상 21장에서 여호와의 성전이자 번제단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3. 성막

   1) 임시 제단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갔다는 것은 성소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본문의 법궤라고도 하고 언약궤라고 하는 증거궤는 너비가 67.5센티미터, 길이가 112.5센티미터 정도 되는데 이것을 안과 밖을 금으로 입히고 밑에 금고리 네 개를 두고 금을 입힌 채를 걸어 둡니다. 옮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궤입니다. 이 법궤는 지성소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했을 때 성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아말렉을 물리치고 제단을 쌓을 때 이름을 '여호와는 우리의 깃발이시라', '여호와 닛시'로 합니다. 그리고 이때는 아직 성전이 없으므로 제단에 관한 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제단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귐을 뜻합니다. 명령하시면 듣고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전투할 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려 했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번제를 먼저 드립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는 돌이나 흙으로 단을 쌓습니다. 돌로 쌀 때는 징으로 치지 않습니다. 인공적인 것을 싫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의 것 그대로 쌓아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층계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인간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지극히 조심히 예배드리라는 의미입니다. 껑충 껑충 뛰어 올라가지 말고 덕스럽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단을 쌓는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율법으로 성전의 말씀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성막이 없으니 모세 처소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2) 법궤: 말씀, 은혜, 찬송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성소에 관한 규정을 율법을 주시면서 지시하십니다. 법궤의 크기를 포함하여 성소를 어떻게 만드실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십니다. 실로 만든 덮개와 짐승의 가죽 등 총 네 겹으로 덮히게 됩니다. 그리고 기둥이 있는데 조각목으로 짓게 하십니다. 이 조각목은 보편적으로 구할 수 있는 흔한 나무입니다. 그리고 불변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소 안에 다시 휘장을 둬서 지성소를 만들게 하십니다. 이 지성소의 휘장이 나중에 예수님에 의해 갈라집니다. 지성소 안에 언약궤를 두는 것입니다. 법궤라고도 하고 증거궤라고도 합니다. 

     (1) 증거판
     그 안에 증거판을 두라고 하십니다. 증거판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던 두 돌판을 의미합니다. 앞뒤로 기록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모세가 올라갔을 때는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기록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범죄를 보고 모세가 그 돌판을 깨 버립니다. 그래서 두 번째 올라갔을 때는 모세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하시고 거기에 말씀을 기록해 주십니다. 이렇게 지성소 안에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증거는 언약을 의미합니다. 언약의 증거,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가 바로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을 자신들은 금송아지를 섬긴 것을, 이 언약을 지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만나가 든 항아리
     이 돌판과 함께 증거궤에 들어가는 것은 메주만한 정도의 만나가 든 항아리입니다. 만나는 생명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의미합니다. 하루 하루 주는데 여섯째 날은 이틀분을 주십니다. 

     (3)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이것은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에게 장자 르우벤 지파의 자손들이 대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즉 르우벤 지파의 자손이 대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열두 지파별로 살구나무 지팡이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법궤 앞에 두라고 하십니다. 하루가 지나서 다른 지팡이는 그대로인데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둗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맺히게 하십니다. 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법궤에 넣게 하신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 가면 '아론의 싹난 지팡이'라는 아주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궤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법궤에는 두 돌판, 한 오멜, 하루 먹을 만큼의 만나,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4) 시은좌
     이 법궤 위에 시은좌가 있습니다. 이것은 금판인데, 두께보다는 금을 얇게 펴놓은 것입니다. 이곳을 시은좌, 속죄소라고 합니다. 죄를 사하여주는 자리이며, 은혜를 베푸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두 그룹의 천사가 있습니다. 천사는 찬양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꽉 차게 있습니다. 지성소의 법궤 위에 시은좌, 속죄소가 있고, 그 위에 그룹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말씀, 은혜, 찬송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여호와의 임재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가 이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는 따로 있지 않고 함께 합니다. 떨어지면 안됩니다. 통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과 은혜와 찬송이 함께 있는 곳이요, 그곳이 여호와가 우리와 사귀는 임마누엘이 되는 것입니다. 지성소의 임재는 언약궤에서의 임재인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배함

     출애굽기를 보면 똑같은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 언약궤를 '지으라'고 하고 '지었다'고 하고 '드렸다'고 하는 내용에서 각각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김없이 지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소를 짓는 것부터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김없이 예배드려야 합니다. 은혜라고 마음대로 넘나드는 것이 아닙니다. 직선적 신앙입니다. 거기에서 움이 나고 꽃이 나고 열매가 납니다. 이런 신앙을 아홉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함께 하심이 네 겹 휘장처럼 빽빽합니다. 
     둘째,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조각목으로 대변되는 변함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은밀하고 비밀스럽습니다. 영광의 비밀, 은혜의 비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임재는 은밀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내 안에 있습니다. 
     넷째, 불변하여 계속됩니다. 마디가 없습니다. 말씀과 은혜와 찬송이 계속됩니다. 
     다섯째, 유일합니다. '한 덩이'로 연결한다고 할 때 유일한 것입니다. 
     여섯째, 충만함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의 충만함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일곱째, 영광을 보았다, 즉 영광의 현시입니다. 본문에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보았다고 한 내용인데,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 보았고, 우리는 이제 영적 눈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다 드러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나보다 생각될 만큼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이것이 영광의 현시입니다. 
     마지막으로 임마누엘이 있습니다. 바로 성소의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25장 22절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서시면 우리도 서고 하나님이 가시면 우리도 갑니다.


5. 결론: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나중에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 바사의 왕인 고레스가 칙령을 내립니다.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입니다. 애굽의 바로에게서 끌어내릴 때도 성전을 짓기 위해 끌어내셨고, 에스라서에 나오듯, 바사, 페르시아, 즉 현재의 이란 땅의 왕 고레스도 다리오 왕도 유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하고 물과 은과 금과 짐승으로 도와주라고 합니다. 이방의 종들에게 종까지 붙여준 형국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애굽에서 건져낼 때도, 바벨론에서 포로 귀환할 때도 모두 성전을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전은 여호와 이레, 이삭을 바친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던 그곳에 수풀에 걸린 어린 양이 있었는데, 그것이 여호와 이레요, 종국적으로 어린 양 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성전 되시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우리 안에, 우리가 그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