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8 | 주일낮예배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5 |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림 | 대상 15:11-15, 25-28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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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8일 주일낮예배 설교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5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림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역대상 15:11-15, 25-28

(역대상 15:11-15)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역대상 15:25-28)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녹취록



1. 법궤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말씀, 영광, 임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지난 주에는 특히 지성소의 법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궤, 증거궤, 언약궤 등으로 나오는 이 궤는 폭이 67.5센티미터, 높이도 같으며, 길이는 112.5센티미터이고 그 위에 속죄소 혹은 시은좌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두 그룹이 있습니다. 재료는 아카시아나무, 조각목으로 했으며 안팎으로 순금을 둘렀습니다. 또한 위에는 가장자리에 순금 띠를 둘렀습니다. 이 법궤에는 바닥에 네 고리가 달려 있고 금으로 싼 두 채를 만들어서 끼워 놓은 상태로 둡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것을 사람이 메고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메고 옮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전쟁에서 법궤를 수레에 싣고 가기도 하고 다윗도 수레에 실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온전치 않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1) 여호와께 묻기

     다윗은 최고의 왕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붓고 택하셨습니다. 다윗은 그저 양치기인데 인간적으로 뛰어남이 없으나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시편을 쓰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실수를 한 것도 있으나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다윗에게 배울 점을 찾아본다면 여호와께 물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입니다. 내가 조금 똑똑해서 어떻게 잘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은 우리가 묻는 것을 가장 원하십니다. 사울은 그렇지 않았고 자의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사울의 때에는 여호와께 여쭌 것이 없었다는 것이 역대상의 증언입니다.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대상 13:3). 곧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것입니다.
     궤 안에는 두 증거판, 언약의 두 돌판이 들어 있고, 한 오멜(2.3리터)의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법궤는 두 증거판, 하나님이 율법으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만나는 돌보심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지정하심을 의미합니다. 태생적으로 보면 고라도 레위 지파입니다. 모든 자녀가 레위 지파라고 하며 나선 것인데,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레위 지파고 하는 것보다 아론을 하나님이 택한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의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지정하고 택한 백성에게 말씀을 주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이 법궤에 들어 있는 물건들의 의미입니다. 

   2) 진리, 은혜, 영광

     진리의 말씀이 들어 있고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이 시은좌를 또한 의미합니다. 시은좌는 죄를 속하여 주는 것과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의 그룹은 영광의 터입니다. 진리, 은혜, 영광인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진리는 법궤 안의 말씀, 은혜는 시은좌, 영광은 그룹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알지만 받지 않고 거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와 진리와 영광이라면 누구나 법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궤에 진리의 빛이 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셔서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

   3) 만남

     찬양하는 천사를 그룹이라고 합니다. 이 두 그룹 사이는 만남의 자리(출 25:22)를 의미합니다. 이 자리는 여호와께서 말씀을 일러주시고 만나주시는 자리입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민 7:89). 그래서 만남의 터요, 말씀을 듣는 터요, 영광의 임재의 터요, 동행의 터인 것입니다. 법궤와 함께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법궤의 여정

   1) 법궤의 이동

     성소는 거룩하기에 인본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야 합니다.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민 3:10, 38). 특별히 지성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말씀하십니다.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 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민 4:15, 20). 출애굽기는 성소를 만들고 레위기는 그것을 움직이고 민수기는 그것이 적용되는 성경입니다. 법궤를 만들어서 옮길 때 일단 휘장으로 쌉니다. 꼰 실과 청색 자색 실로 된 휘장으로 법궤를 덮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장막의 한 부분인 해달의 가죽으로 덮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습니다. 그리고 채를 메서 옮기되, 고합 자손들이 하도록 하셨습니다. 함부로 만지지 말고 보지도 말고 가까이 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은 경외와 거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꼭 싸서, 메소 옮기라는 것도 다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레위기나 민수기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 것은 하나님이 섬김을 받으시되 지시하신 대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핵심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지시하신 대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재량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는 이것이 다 성취되었으므로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뜻은 성취됐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전, 교회를 우리가 항상 거룩하고 한번 더 옷 매무새라도 가다듬고 나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주의도 형식주의도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서는 우리의 모습은 경외, 경건,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그것을 옮기는 방법은 채가 걸쳐 있어 항상 움직일 준비를 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무교병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맛없게 쓴 나물을 먹는 것이 지상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이 좋다고 천년 만년 사는 것이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을 먹어도 한끼 때운다, 곧 떠날 마음 준비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교병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십자가를 진다, 메고 간다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구름이 움직이며 언약궤가 떠날 때는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라고 하십니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민 10:35-36).

   2) 가데스바네아

     가나안에 열명의 정탐꾼을 보낼 때 다른 사람과는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족속이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평을 죄라고 하시면서 40년간 광야에서 유리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생각대로 아말렉을 칠 수 있겠다고 하여 자의로 나아갑니다. 그때 성경에 보면 법궤도 올라가지 않고 모세도 올라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불평하냐고 하니 내가 해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겠다고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할 수 없다, 힘들다 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잘될 때도 못될 때도 있는데, 항상 하나님 앞에 기뻐해야 하는데 우리가 약하므로 슬퍼하고 힘들어할 때가 많습니다. 급한 대로 전쟁을 자의로 하려고 하니 언약궤가 함께 하지 않은 것입니다.

   3) 여리고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들어갈 때 언약궤가 앞섭니다. 나머지 백성들은 900미터 정도 뒤에 따라갑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되 두렵고 떨림, 경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단을 건널 때도 같았습니다. 언약궤가 요단 물가에 이르러 언약궤가 물에 들어가니 물이 선 것입니다.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가는데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는데 법궤가 요단강에 들어가니 물이 그친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고 그중 열두 돌을 취해서 바로 그곳에 열두 돌을 세우고 또 길갈에도 가져가서 세웁니다.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은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름에 이스라엘이 마른 땅은 밟고 요단을 건넜을 때는 하나님이 법궤와 임재하여 그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수 4:23). 걷는다는 것은 땅을 밟고 걸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홍해 때도 요단 때도 밟고 건너간 것입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4). 경외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900미터 뒤에 따라가지만 만홀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잠잠히 높은 곳에 계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두렵지만 나아가는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나아가는 그 마음이 경외입니다. 두렵다고 도망가면 경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채로 예배드리러 나오지만, 그 마음은 두려움입니다. 한 주간의 삶을 다 헤아리신다면 누가 여기 앉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하나님이 교회로 부르시고 이 자리에 앉게 하십니다.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부르시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됨의 제일의 표입니다. 죄를 지어도 회개하고 부족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지고 보고 마음대로 가까이 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나,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언약궤를 중심으로 여리고성을 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실상 이것을 보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말씀에도 여호와의 궤가 돈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큰 일을 직접 이루십니다. 친히 싸우십니다. 

   4) 실로

     그리심산과 에발산,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하는 것도 여호와의 궤를 가운데 두고 그리했습니다(수 8:30-35). 이때 이스라엘의 실로라는 곳에 두었습니다. 사실상 예루살렘이 신앙의 중심지가 되기 전에 아주 중요한 곳이 바로 실로입니다. 이 실로는 에브라임 산지입니다. 이스라엘로 말하면 베들레헴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벧엘에 나오고 세겜 가기 전에 실로가 나옵니다. 실로에 법궤를 둡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수 18:1). 

   5) 블레셋 지역

     그리고 전쟁이 있을 때 이 법궤를 가지고 움직였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삿 20:27). 패역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 때, 전쟁할 때 법궤를 옮겨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할 때 법궤를 옮긴 대표적인 것으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서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입니다. 1차 전쟁에서 패배하니 법궤를 가져오는데 이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간담이 서늘해 합니다. 그런데 1차 전쟁보다 더 심하게 패배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법궤를 빼앗깁니다. 그래서 블레셋이 법궤를 빼앗아서 저 밑의 해안가 아스돗과 가드라는 곳 등으로 돌아다니게 합니다. 법궤를 빼앗아서 블레셋의 다곤 신전 안에 두었는데 다곤 신상이 넘어져 쓰러지고 목과 팔이 잘리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신이 노했다고 하여 서로 내보내는 것인데 결국 아스돗, 가드로 옮기는데 전염병이 생기고 하니 에그론이라는 도시로 다시 옮기게 됩니다. 블레셋의 다섯 도시를 전전한 것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을 놓고 매번 싸운 것입니다. 해변은 농사를 짓지 못하고 산에서도 못하니 언덕에서 매번 전투합니다. 골짜기도 많으니 골짜기마다 싸움터입니다. 그렇게 전쟁을 하다가 법궤를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죽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인 비느하스의 며느리가 임신 중이었는데 며느리는 출산 중에 죽고 아기만 낳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합니다. '가봇'은 영광이란 의미입니다. '이'는 없다는 말이므로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법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 진리, 은혜가 떠났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전하고 다음 주에 이어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