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7][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6)]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림 2 (대상 15:11-15, 25-2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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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6)]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림 2 (대상 15:11-15, 25-28) 문병호 목사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지난 주에 이어 동일한 제목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사무엘상, 하, 그리고 열왕기상, 하 그리고 역대상, 하도 있습니다. 열왕기는 이전부터 역사서라고 하는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등 역사서에는 하나님 구원 중심의 역사가 있기는 하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같은 모습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하는 남유다 기준으로 쓰여 있고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도 법궤를 빼앗기고 옮기는 것 등이 사무엘서 등에도 나옵니다. 

사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오순절 성령 강림과 교회가 형성됐을 때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들이 자꾸 교회에 들어온다는 것이 사실상 영적 질투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이방인들대로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에 대해 반감을 가졌습니다. 이 와중에 일어난 일이 스데반 집사의 순교입니다. 스데반은 그 이름이 집사 중 가장 먼저 나오는데, 그가 죽기 전 한 설교에서 제시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설명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중 성경에서 독특하게 나오는 내용이 광야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 교회에서 지키시고 하나님의 성소에 증거의 장막이 있었다고 하는데, 광야 교회와 그리스도를 연결시키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증거의 장막과 그리스도를 연결시키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죽고 사흘만에 부활하신다는 표적으로 요나의 사례를 드시고 이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이 전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에 있어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어디에 어떻게 계시고 우리가 그 앞에서 어떤 영광 가운데 속한 백성인지에 대한 의식이 중심이 되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순교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내 안에 사시는 것, 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에 가장 예표하는 것이 법궤라는 내용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법궤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


법궤는 시은좌와 속죄소를 모두 포괄하여 보아야 합니다. 은혜를 베푸는 자리와 죄를 사하여주는 자리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덮는 금을 늘여 만든 것이 그룹입니다. 그룹은 찬송과 송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언약궤에는 돌판으로 지시되는 말씀과 그 말씀의 열매로서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오멜의 만나 항아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즉 법궤는 말씀, 말씀의 열매, 그리고 말씀의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덮고 있는 것이 바로 시은좌이고 속죄소입니다. 속죄의 은혜, 죄사함과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시는 은혜, 그리고 그 위에 그룹, 천사들의 찬송이 있는데 이 세 가지가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 임마누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사 7:14). 그래서 법궤 중심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한다면 예수님을 그들이 만났을 때 법궤의 성취를, 실체를 보게 될텐데 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저희 전체 교회의 역사입니다. 



3. 법궤의 여정


1)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


법궤가 움직이면 열두 지파가 움직입니다. 열두 지파가 법궤를 중앙에 두고 동서남북으로 나열해 있습니다. 그중 레위 지파가 법궤를 옮깁니다. 법궤가 중앙에 서고 레위 지파가 그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40년의 광야 생활입니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 법궤가 그런데 요단강에 들어갈 때는 가장 앞서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가 이천 규빗 뒤를 쫓아갑니다. 민수가 3장과 4장을 보면 법궤에는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고 성물을 가까이 하거나 만져도 죽으며 잠시라도 허락 없이 보지 말라고 합니다. 2천 규빗, 즉 9백 미터를 두고 따라가라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이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실로에 둡니다. 실로는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곳인데 세겜을 지나 예루살렘 가기 전 지역입니다. 이곳에 엘리 제사장의 집도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와 아벡이라는 교통의 요지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과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첫 전쟁에서 패하여 4천 명이 죽습니다. 그래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 역할을 하여 법궤를 가져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승리했다고 미리 즐거워하고 블레셋은 전쟁에 졌다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오히려 경계를 강화하고 전쟁에 임하니 이스라엘 백성 3만 명이 죽는 대패를 당합니다. 법궤를 세상의 부적이나 호신품 삼듯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는 당시 백성에게 믿음이 없다고 증언합니다. 형식만 갖춰서 법궤를 갖춘다고 무조건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법궤가 지시하는 바, 곧 하나님 말씀과 영광과 열매와 권능 등이 실체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엘리의 두 아들이 전쟁에서 죽고, 엘리도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져 죽습니다. 그리고 엘리 아들의 아들은 그 이름이 이가봇, 영광이 떠난 것으로 지어지게 됩니다. 


2)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


블레셋은 이 전쟁에서 이겨 법궤를 가지고 자신들의 도시에 두는데 자신들의 다곤 신상이 훼손되고 아스돗의 그 백성들에게 독한 종기가 생깁니다. 그러자 그들이 여호와의 법궤가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우리를 치므로 그 궤를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서로 떠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스돗에서 그 법궤를 다른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하나인 가드, 그리고 다시 에그론으로 옮깁니다. 이렇게 일곱 달을 옮겨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종기가 생기고 어른과 아이가 죽고 하니 그들이 술사들에게 물어봅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다시 주라고 하는데 그 방법으로 바로 독한 종기 형상을 다섯 개 만들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는 제사를 드리고 이후 법궤를 이스라엘의 경내로 가져가게 됩니다. 그런데 옮기는 방법이 새 수레에 싣고 멍에를 매지 않은, 갓 송아지를 낳아 젖이 나오는 암소 두 마리로 끌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암소의 새끼는 집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법궤가 벧세메스로 갑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 보아 수만 명 죽습니다. 그래서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를 가져다 놓게 됩니다. 이곳에 다윗이 가져가기까지 70년 동안 있게 되는데 그때 미스바의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이후 에벤에셀 전투에서의 대승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법궤가 있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여호와의 손이 막으셨다고 사무엘상은 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도 전쟁 때 법궤를 가져가기는 합니다. 그런데 사울의 중심은 하나님께 합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여쭙지 않았으므로 전쟁에서 지는 것입니다. 형식은 지켰지만 여호와께 여쭙지 않았으므로 진 것입니다. 나중에 말씀에 보면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길 때 법궤를 성전에 그냥 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자신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길 것으로 말하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법궤는 중요하지만 그것을 장식품처럼 도구처럼 내가 들고 다니거나 하나님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입니다. 


3) 오벳에돔의 집


이후 다윗이 왕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곳이 법궤를 옮긴 것인데, 아비나답의 집에서 아비나답의 아들로부터 다윗성으로 옮긴 것입니다. 다윗성은 예루살렘 전체는 아닙니다. 다윗성에서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 성이 확장될 뿐 다윗성 자체는 작았습니다. 이곳으로 궤를 옮겨 가려고 다윗왕이 명하고 그 명을 받은 두 사람이 수레에 싣고 나옵니다. 법궤는 메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레에 싣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예의는 갖추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은 것인데, 기드온의 타작 마당에 이르니 소들이 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웃사가 법궤를 만지게 되는데 즉시 죽임을 당합니다. 가까이 가지 마라고 하고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블레셋은 가까이 가서, 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만진 웃사도 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성까지 가지 못하고 오벳에돔의 집에 두게 됩니다. 이 사람은 블레셋 사람은 아닙니다. 오벳에돔은 레위 지파의 후손입니다. 오벳에돔은 또한 고라의 후손입니다. 본래 고라 후손들은 지키는 역할을 받았습니다. 오벳에돔의 집으로 법궤가 들어가게 돼서 3개월을 머물게 됩니다. 


4) 다윗성


열왕기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역대기를 보면 14장에 전쟁이 그 사이에 일어나는데 다윗이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대상 14:10). 다윗은 이로 인해 전투에서 이깁니다. 그리고 또 한번 블레셋이 쳐들어오자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한번 전쟁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다시 이깁니다.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쳐서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대상 14:16). 

다윗은 첫 번째 실수 이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하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여호와께 여쭈어야 하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15장, 본문에 다윗이 법궤를 매어 올리게 됩니다. 레위 지파 8명을 부르고 규례대로 구하게 된 것입니다. 민수기와 레위기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다가 이제 규례대로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는, 교회의 일은 사람이 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대로 법궤를 매고 가니 아무 일이 없자 이에 감사하며 번제를 계속 드리며 옮기게 됩니다. 이 법궤가 다윗 성에 들어와서 장막 안에 있는데 이것이 성전 안에 들어가는 것을 다음 주에 전하려고 합니다. 



4. 결론: 표징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


법궤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계심을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궤 앞에 여쭈지 않은 것을 역대서가 말하는 의미입니다. 열왕기는 사실을 서술하고 역대서는 그 의미를 서술하고 있는 책입니다. 법궤가 있을 때 우리가 복됩니다. 다윗은 사실상 도읍을 예루살렘으로 정했을 때 법궤가 오기 전에는 도읍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 되려면 하나님의 법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울도 거룩한 도시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일찍이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작품에서 게르만이 쳐들어와 로마가 망하더라도 우리는 지상이 아닌 천상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그곳이 우리의 도성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 법궤를 모시는 성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