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1 | 주일낮예배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8 | 성전 건축의 은혜2 | 대상 28:19-20; 대하 5:7-10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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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1일 주일낮예배 설교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8


성전 건축의 은혜 2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역대상 15:11-15, 25-28

(역대상 28:19-20)  [19]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20] 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성전 공사의 모든 일을 마치기까지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역대하 5:7-10)  [7]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본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8]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9] 그 채가 길어서 궤에서 나오므로 그 끝이 본전 앞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궤가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10]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녹취록



1. 서론

     지난주까지 법궤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선대들의 기도와 눈물과 땀과 열심과 수고가 이 터에 젖어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저 역시 제 자신의 이름이나 이런 것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할 뿐이라고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법궤는 다윗왕의 성으로 왔지만 성막은 아직 그러지 않았습니다. 호렙산에서 여호와의 임재를 보고 다시 그곳에서 나와 시내산에서 말씀을 주실 때 성소와 지성소 안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말렉과의 전투, 아벡이라는 곳에서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다른 것은 취하지 않고 법궤만 가지고 갔습니다. 실로에 있던 법궤가 전쟁 통에 아벡으로 내려갔다가 전쟁에서 뺏겨 이방 지방을 돌다가 다윗성으로 가게 되는데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

     다윗성에 법궤를 올리고 다윗은 아마도 성소 안에 법궤를 둬야 하는데, 그러려면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의 손에 피가 묻었기에 다윗은 그 일을 하지 못하리라고 알려 주십니다. 지성소에는 금이 600달란트가 들어갑니다. 2톤에 달하는 양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이방나라가 그것을 탐낼 만합니다. 최후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그렇게 했지 않습니까.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각종 자재들과 지파를 계수하는 일까지 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은 허용하시지 않고 다만 모든 전쟁을 다 이겨 이스라엘 왕국, 즉 나일강에서 하맛에 이르는 영토를 확장하게 하십니다. 이 때 다윗이 교만해서 인구를 계수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전염병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데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의 불이 내리므로 다윗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의 터라고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이 이 땅 위에 본격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던 모리야 산과 같은 장소입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여호와께 드릴 제물을 친히 준비하셨던 터입니다. 그 제물은 곧 장자가 되어야 하는데 생명을 하나님이 주셔서 친히 대신 바치는 그 터가 바로 이곳입니다. 유월절 어린양,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터인 것입니다. 


3. 솔로몬의 성전 건축

     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성전을 짓게 되는 것인데, 솔로몬도 이 터 정하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대하 2:1; 5). 이름은 존재를 뜻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이름이 아니라 바로 그분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알려 주시고 우리는 알려 주신 이름을 부르는 것일 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성전을 짓는데, 성전을 크다고 한 말이 이것을 정확히 솔로몬이 인식한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성전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큰 것은 결코 아닙니다. 크다라고 한 것은 구약에서 크신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이것이 신약에 오면 예수 그리스도로 지칭됩니다.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크다'라는 말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뜻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름은 하나님은 그 자신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계시는 그 크신 하나님이므로 이어지는 6절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대하 2:6). 모든 우주 공간도 하나님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오시는 것이지 우리가 그분을 모시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거기에 모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릇을 만들면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은 하늘의 하늘이라도 담을 수 없는데 내가 어찌 성전을 짓느냐는 솔로몬의 말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저 그 앞에 분향할 따름, 즉 예배와 찬미를 드릴 뿐이라는 말을 그런 의미에서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전의식, 코람데오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 드리려고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법궤는 말씀이고 은혜이고 찬양입니다. 제단에는 예배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성전을 지어 지성소에 법궤를 모시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는 이것이 성전을 짓는 목적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바로 정확히 간파한 것입니다. 


4. 성전의 외양

     성전의 규모는 20, 30, 60규빗입니다. 1규빗은 45센티미터 정도 됩니다. 그러면 너비는 9미터, 길이가 27미터, 높이는 13.5미터 정도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과 왕궁은 엄연히 다릅니다. 성벽도 다릅니다. 성전, 궁전, 성벽을 구분해야 합니다. 스룹바벨은 성전을 다시 지은 것이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수축한 것입니다. 성전의 3분의 2 지점은 성소입니다. 그리고 문에 붙어 있으므로 외소라고도 합니다. 이곳에는 제사장도 들어가고 제물도 준비합니다. 손도 씻고 제물도 씻습니다. 진설병 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이 지성소입니다. 20, 20, 20규빗의 정방형 구조입니다. 9미터의 높이, 길이, 너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약 9미터 정도 됩니다. 그 안에 너비와 높이, 길이가 각각 1.5, 1.5, 2.5규빗의 법궤가 놓여 있습니다. 각각 67.5센티미터, 112.5센티미터의 법궤가 있고, 그 위에 천사, 곧 그룹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지성소에 천사가 있습니다. 지성소의 천사는 날개가 각각 5규빗이고 두 천사가 양쪽으로 날개를 펼치면 20규빗입니다. 법궤는 그 밑에 있고, 법궤 위에 또 금으로 된 그룹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성소를 솔로몬이 짓는 것입니다. 전부 다 알 필요는 없으나 대충은 파악하는 것이 좋은데, 아주 크다 넓다 할때 그것이 절대적인 크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안에 순금으로 600달란트가 있다고 합니다. 1달란트는 35킬로그램 정도이므로 굉장히 많은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톤에 달하는 금을 지성소에 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보아스와 야긴이라는 두 기둥이 있습니다. 각각 35규빗입니다. 성소는 30규빗인데 그 앞에 35규빗의 두 기둥이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기둥을 그 앞에 세웁니다. 보아스라는 말은 능력, 야긴은 세웠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기둥이 있고 그 안에 놋으로 제단이 세워져 있습니다. 모두 외소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바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말입니다. 씻기 위한 물을 넣어놓은 큰 대야 같은 곳입니다. 본래는 짐승도 씻고 제사장도 손을 씼었는데, 솔로몬부터는 제사장이 씻는 곳이 됩니다. 그리고 물두멍이 10개가 있습니다. 그 물두멍은 이제 제물을 씻는 곳입니다. 그리고 등잔대가 10개, 진설병을 놓는 상이 10개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입니다. 써놓으니 많아 보이지 실제로는 많지 않습니다. 성전에 많은 것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에 필요한 것만 있었습니다.


5. 성전 파괴 이후

     오늘날 성전을 우리가 가볼 수 있을까요. 성전은 솔로몬이 왕이 되고 4년째, 주전 966년, 출애굽 이후 480년에 성전을 짓기 시작해서 7년간 공사를 합니다. 그러니 기원전 959년에 성전을 완공합니다. 이 성전에 완전히 훼파되는 게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침략 때입니다. 그리고 스룹바벨에 의해 다시 지어지고 헤롯이 증축합니다. 이것은 크게 2차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성전이 완전히 다시 무너진 것이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해 주후 70년 입니다. 주의 예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진 것입니다. 바벨론 성전이 무너질 때와 디도에 의해 성전이 무너질 때가 같은 날짜입니다. 이로 인해 벽 하나만 남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날 통곡의 벽입니다. 성전 전체 중에 벽 하나 남고 모든 곳이 다 무너진 것입니다. 예루살렘도 한때 이스라엘이 점령했었는데, 그곳을 무슬림이 점령하던 당시 황금돔을 짓습니다. 무슬림은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을 메카라고 하고, 그가 승천했다고 주장하는 곳인 예루살렘에 황금돔으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황금돔은 결코 성전이 아닙니다.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바치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삭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슬람은 하갈의 자식인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코란에는 아브라함을 언급합나다.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주님의 무덤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기도하신 곳 등은 대략적으로 알기도 하나, 다른 것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 태반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 크신 성전은, 성전보다 크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삭을 바친 터를 찾아 밟고 오고 공로를 주장하는 순례 개념은 로마가톨릭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공로를 순례를 통해 쌓는다고 하는 말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예루살렘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6. 성전 낙성식

     솔로몬이 이 성전을 짓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법궤를 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본전 지성소로 말입니다. 그 지성소에 법궤를 올렸습니다. 이것이 성전이 지어진 이유이고 핵심입니다. 지성소 앞, 외소에서는 제사를 드리고 지성소에는 법궤를 안치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처소로 모셔 들인 것입니다(대하 5:7). 법궤가 성전에 오니 영광이 임하고 구름이 가득 찼습니다(대하 5:12-13). 빽빽한 구름은 여호와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그 가운데 낙성식을 해서 그것을 봉헌합니다. 그때 불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이 불은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내린 불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알려 주신 것과, 결국 다윗이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이 바로 이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라는 죄악을 통해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보여주시고 그때 내린 불로 성전의 터를 정하게 되고, 낙성식 때 이제 또 같은 불이 내린 것입니다. 마지막은 하나님께 올려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올려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도, 직장도, 모든 걸음걸음이 말입니다. 그 불이 바로 그 불입니다. 불이 임한 것입니다. 나일강에서 하맛 강까지, 즉 헤르몬 상 북쪽까지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에 이 낙성식이 이루어지고 모든 백성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법궤 안에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말씀이 전부입니다. 말씀에 따라 죄를 사하고 은혜를 주시는 것이 바로 이렇게 지성소의 법궤와 그 위의 시은좌로 보인 것입니다.


7. 결론

     저희 교회도 설립 후 이제 곧 10년이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기도를 생각합니다. 순교자가 하나만 나도 감사한데 자식 둘을 바치고 자신까지 순교하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한 손양원 목사님의 기도입니다. 이 목사님의 아홉 가지 감사라는 기도문이 우리 교회 안에 붙어 있습니다. 제가 이것이 기독교라고 하여 여수에서 사온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들이 뭘 했길래 이렇게 신앙을 가집니까? 그 분들은 바로 평양신학교, 총신대의 전신인 평양신학교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말씀 배운 것이 순교의 정신이지 그 외에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말씀 잘 배우면 순교합니다. 법궤에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순교해야 할까 하니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도 하나님이 번역하게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달란트, 선물로 주신 것으로 사용된 것으로 고백한다면 이 <<기독교 강요>>가 많이 읽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헤아리고 있으면 무덤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무슨 말씀으로 설교할지 기도하고 있어야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한 일을 헤아리고 있으면 무덤 옆에, 죽음에 가까운 것입니다. 동영상 하나 올리는 것도 이제 순교하는 마음으로 해야 되겠습니다. 이전에는 말을 타고 가서 말씀 전했습니다. 그러나 매체가 주어졌으니 이제 그것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유튜브도 상업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강요>> 전부를 간략하게 200개든 300개든 영상을 만들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이 중심이 돼야 교회도 흥왕합니다. 십자가지기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있어야 하는 교회입니다. 당대로 그치면 안 됩니다. 영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말씀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10년간 이태원에서도 우면동에서도 전도를 계속 했지만 인근 주민은 한 가정도 안 왔습니다. 전도를 계속하겠지만 데살로니가교회의 야손 가정처럼 우리에게는 대신 더 넓은 일을 하게 하시는 뜻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성전 되신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 주 말씀을 전하고 맺으려고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 후 기도하는 것과 그 때 다시 나타내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중요한데 다음 주에 이것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