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1 | 주일낮예배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10 | 너를 항상 지키시는 이 | 시 121:1-8 |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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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1일 주일낮예배 설교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10


너를 항상 지키시는 이


문병호 목사



설교본문  |  시편 121:1-8

(시편 121:1-8)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녹취록



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0-134편까지의 열다섯 편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여기의 저자는 다윗, 솔로몬 등 다양합니다. 이 올라가는 노래의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올라가는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양합니다. 성전에서 단계별로 올라간다고 이해하기도 하고, 음악의 톤이 올라간다고 주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편 119편은 율법에 관한 가장 긴 시편인데, 그 다음인 120편부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공통점은 예배, 죄사함, 간구입니다. 중요한 내용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담기도해서 예언적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즐거운 일이 있으면 발걸음이 가볍고 즐겁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발걸음은 노래부르며 성전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간다는 것은 성도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성도의 신분을 보여 줍니다. 
     부활주일 전까지는 성전 건축하여 낙헌식을 한 것을 보았고, 이제는 그 성전에 올라가는 내용을 다룹니다. 성전은 분향하고 예배드리기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타락할 때는 그 성전에 이방신을 섬겼었습니다. 교회가 왜 있습니까? 예배드리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바자회하는 곳이 아닙니다. 121편의 말씀을 통해 성전에 올라가 예배드리고 구하는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내가 ... 눈을 들리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이 말씀은 찬송가와 복음성가에도 자주 나옵니다. '눈을 든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눈을 든다고 할 때, 생각 드는 장면은 예수님이 만난 간음한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돌에 맞아 죽기 전에 예수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때, 그 간음한 여인이 눈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눈을 든다는 것은 다시 살아나는 것, 소생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으니, 살아갈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찌할 줄 모르니, 마치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을 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루 도우실 자를 찾고 계십니다. 부모가 자녀 방에 들어가는 것은 청소 안 했다고 혼내려 가는 것이기보다 청소해 주기 위함인 것과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불꽃 같은 눈으로 다스리시지만, 우리를 그 눈으로 살펴주십니다. 


3. "산을 향하여"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왜 산을 향하여 눈을 들까요? 이 산은 시온산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 도피처, 그늘, 영광이 임하는 곳이 됩니다. 갈멜산(엘리야), 다볼산(드보라, 바락), 모레산(기드온)처럼 산은 하나님이 싸워 이기시는 곳입니다. 아람왕 벳하닷이 조롱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의 하나님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규군이 없음에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적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산에서 내려가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즉 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산을 향하여'에 관하여 칼빈이 주석하기를, 히브리어의 모음이 다양하게 붙을 수 있는데, '엘'이 아니라 '알'로 모음이 붙으면, '산 너머로'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산 너머로 눈을 들리라' 이것은 산을 넘어 하나님께 눈을 돌린다는 의미가 됩니다. 


4.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산의 요새나 지형을 도움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도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산도 바위도 녹아서 없어집니다. 산이나 바위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땅도 바위도 꺼집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8). 우리는 급하면 도망갈 곳, 의지할 곳 등을 찾습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시편 104편을 보면, 이 여호와는 땅의 기초를 놓으시고, 산은 오르게 하시고 골짜기는 낮추시고, 물의 경계를 정하시고, 빛을 입으시고, 불꽃으로 사역자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나를 망하게 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여호와를 찾으면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 피할 바위로 인도하십니다.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시 104:32). 하나님은 우리가 땅도 산도 믿지 말고 여호와만 믿게 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24:3에 "여호와의 산에"라고 말씀합니다. 


5.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실족은 어린아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과오가 아니라 연약해서 못 걷습니다. 어른이 되면 아이처럼 아장아장 걷게 됩니다. 이것은 내 의지와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실족입니다. 이렇게 연약해서 못 걷기도 합니다. 반면, 청장년 때는 힘이 넘치는데, 유혹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어두운 데 가면 눈이 닫힌 것과 같습니다. 밝은 곳을 좋아해야 합니다. 어두운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실족하지 않으려면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연약하더라도 밝은 데 걸으려고 해야 합니다. 어두운 데서 아무리 힘이 강해도 부질 없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의 발을 붙드십니다. 또한 마귀 사탄의 우는 사장의 입을 막으십니다. 


6.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3절부터 계속 나오는 단어가 '지킨다'는 말입니다. 집을 잘 지킨다는 것은 대문에 누가 들어오는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다 의미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아벨을 물으시니 가인은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시 124:1). 지킨다는 것이 우리 편이 되신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18편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잘 나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6-9). 사람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찾으란 말입니다. 그리고 14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시 118:14). 여호와가 내 편이 되시니 내 능력과 찬송이 되십니다. 여호와가 내 능력이 되시는 말은 우리가 많이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여호와의 기이한 행적이 우리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구원이라는 말은 물에서 건진다는 뜻도, 먹인다는 뜻도, 자라게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나를 지키신다, 내 편에 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왼편은 따라가는 것이고 오른편은 이끄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성전에 구름이 가득 차서 영광이 임재해서 항상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실 때 그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그늘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늘입니다. 전능자의 그늘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시 54:4). 우리를 돕고 지키시는 것이 바로 그늘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 68:19). 우리의 짐을 날마다 대신 져 주십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우리 인생은 팽이와 같습니다. 누군가 항상 쳐 줘야 합니다. 조금만 안 쳐 주면 삐뚤삐둘 하다가 곧 넘어집니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여호와가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짐을 지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여호와가 내 짐을 지시는 것이 보입니다. 애통하십시오. 여호와가 짐을 지십니다. 상한 심령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주님께서 계속해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먹이고 원수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입히십니다. 이것이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낮의 해도 밤의 달로부터도 지키시고 우리의 영혼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하나님이 이끌어 가십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 131:2).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엄마 젖을 먹고 있으면 더 좋겠으나 우리 인생은 모두 젖을 떼야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누구냐, 바로 본문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내 영혼을 지키십니다. 여러분의 성정과 기질이 강하고 셉니까?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습니까? 여호와가 떠나면 우리는 모두 연약할 뿐입니다. 여호와가 떠나면 우리는 실족합니다. 우리는 다 절름발이들이요 영혼의 장애를 지닌 자들입니다. 


7. 우리가 향할 산은 여호와이시다

     산을 향하여 눈을 드는데 그 산은 무엇이냐, 시편 125편에 답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 125:1-2).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시고 나를 두르십니다. 시온산이 예루살렘을 두르듯 말입니다. 내 편이 되셔서 우편에 그늘이 되셔서 지금부터 영원히 두르십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두르시는 하나님, 내 편이 되시는 하나님, 낮의 해와 밤의 달도 상치 못하게 하는 그 여호와께서 나를 두르십니다. 겸손히 그러나 빛 가운데,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 밝은 봄날 맑은 꽃 가운데서 서 보기도 하고 걸어 보기도 하고 웃어 보기도 하면서 이 아름다움에 감사를 해 보십시오. 천국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요. 마지막 날에는 하늘도 체질도 풀어집니다. 여호와께서 만지시면 땅에서도 연기가 납니다. 땅이 흔들립니다. 땅도 믿을 것이 안 됩니다. 그러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드는 것은 그 산을 지으신 여호와를 향하여 눈을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의 나그네 삶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이유입니다. 즉, 어린아이의 입술로 여호와를 찬미케 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너의 출입을 지키시고 우리의 삶을 두르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 121:8; 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