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9][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6)] 주일성수 (마 12:5-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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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6)] 주일성수 (마 12:5-8) 문병호 목사



(마 12: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마 12: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안식일은 주의 품 안에서 누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주의 삶, 또 한 달, 일 년의 삶을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사입니다. 제사로 시작해서 제사로 마칩니다. 그 제사의 큰 얼개를 만드는 것이 절기이고, 그 제사의 기점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규례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안식 개념은 어떤 형식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는 자들의 누림,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안식일은 형식화, 외면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세 때 예배가 그랬습니다. 주일은 기뻐해야 한다고 하며 피리를 불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마치 오늘날 코미디처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억지로 사람을 웃겼다고 합니다. 특히 중세 부활절에 그리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억지로, 형식적으로 사람을 끌고 간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일이 형식적이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때 거짓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했으나 예레미야는 ‘평안하지 않다’ 하니 사람들은 왜 선지자가 평안을 전하지 않느냐고 핍박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쉼이 있다, 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 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쉼이 있는 줄 알고 산 것뿐입니다. 술에 취하고 다시 술에 깨면 술을 마시고, 마약에 취하고 다시 깨면 다시 마약을 하는 것이 쉬는 것입니까? 이러한 외면적인 것, 사람이 만든 것에 안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너희는 성전 안에 머물며 온갖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면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전보다 더 큰 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라고 하며 자기를 가리켜 성전보다 큰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번제보다, 수양의 기름보다 여호와를 아는 것, 자비를 원하십니다(호 6:6).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시되, 본질이 없는 제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랑, 인자, 여호와를 아는 지식 없이 제사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8절에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 자기가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가히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보면, 안식일은 성전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품에 거하는 것입니다. 즉 형식을 좇는 날이 아니라 주의 날, 즉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의 의로 온전히 주님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에서 아이가 누리듯이 말입니다.



2. 안식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일로 성취되었으므로 누리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다루는 주제 순서대로 한다면, 주일성수와 맹세를 해야 하는데, 오늘은 주일성수만 다루고자 합니다. 주일성수는 본래, 성수, 즉 거룩하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거룩하게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수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성수주일은 원래 성수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성취가 주일이기에 성수주일이 된 것입니다. 주일은 안식일이고, 안식일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구약의 안식일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였고 주일은 실체입니다.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고 성전보다 큰 이이며, 그가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주심으로써 이제는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자기 자신이 성전이 됩니다.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집입니다(히 3:6). 우리가 거룩한 전, 즉 성전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수주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즉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일에 무언가를 하라고 말하는 것은 형식주의, 율법주의가 아니라 누리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고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라는 것은 공로나 자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라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에 좀더 일찍 들어가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포도원에 늦게 들어가서 구원얻으면 되지 왜 일찍 들어가서 고생하냐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포도원은 진작 들어가서 누려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의 상에 참여하고 상급을 쌓아야 합니다. 주일에 좀더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것이 바로 말씀 묵상, 기도, 예배입니다. 주일에 이러한 것을 하는 것은 억압이나 굴레를 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오늘날은 권(勸)함이 없는 시대입니다. 권고가 없습니다. 아무도 권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게, 좋게, 쉽게,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누림이 없습니다. 그저 편하고 형식만 있으며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3. 안식일은 그 주인은 그리스도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께 머무는 것이다


주일성수는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가 있지만, 장소와 시간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만나기 전까지는 예배 장소에 대해 말하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그리심 산에서도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드리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인을 멀리하는 것은 온전치 않습니다.



4. 안식일은 복되고 거룩하기에 누리고 그 반응으로서 드리라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습니다(창 2:1-2). 그리고 그 안식하는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질서이자 창조의 규례입니다. 안식일은 제4계명입니다. 즉 하나님 사랑의 계명에 속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① 거룩하게 하시고 ② 복되게 하셨습니다. 복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 붙어서 하나님의 것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이요 쉼입니다. 거룩이란 우리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누림과 드림입니다. 이 둘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심으로써 창조의 규례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창조의 규례는 영원한 규례입니다. 십계명이 있기 전에 두 규례는 안식일과 십일조입니다. 이것들은 영원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8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고, 신명기 5:12에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 두 말이 같은 말입니다. 즉 복됨을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의 것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성수가 우리에게 아무 공로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로 있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세 교회는 미사를 몇 번 드렸느냐, 어느 곳에서 미사를 드렸느냐에 따라 공로가 다르다고 여깁니다. 성당에도 등급이 있고 누가 집전을 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다 잘못된 것입니다. 예배는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주인과 한 상에서 밥을 먹는데, 하나님이 이것을 복되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은 나를 구별하여 나를 드리는 것인데, 그 드림은 내가 누림으로써 자연히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때 누리면 반응합니다. 누려 반응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빛, 향, 소금,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김남준 목사님 『주일성수』를 추천사도 썼었습니다. 제가 어제 밤에 다시 한번 다 읽어 봤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누림에 대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누림입니다. 누리면 반응하게 됩니다.



5. 제칠일은 주의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주시고, 그리고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 가장 중요한 핵심이 예배이고 안식일 성수, 즉 주일성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누리고 드러내는 것이 주일성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에 온전히 누립니다. 예배에 이사야 6장과 같은 꽉찬 여호와의 임재가 있습니다. 여섯 날개의 스랍들이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려서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다른 두 날개로는 발을 가려서 자기 행실도 자랑을 하지 않고 마지막 두 날개로 열심히 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반응입니다. 여호와의 꽉찬 임재 가운데 우리는 누리면서 반응합니다. 우리는 모든 심령의 깊은 데서 감사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일성수를 더 많이 누린다는 측면에서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라고 하면서도 주일성수를 알미니우스주의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리라고 명령하십니다. “힘써 네 모든 일은 육일 동안은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 6일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해야 하지만, 제칠일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입니다. 주일은 주의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리게 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누리지 않고는 드릴 수 없습니다. 



6. 안식일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에게 주어졌기에 참 안식은 주께로 돌아가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천사에게가 아니고 자기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자기 형상을 한 남자와 여자, 즉 사람이 누리게 하고 그들로부터 영광을 받기 원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의 쉼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여행은 돌아갈 집이 있으니 즐거운 거지 항상 밖에 있으면 즐겁지 않습니다. 쉼은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 사함을 받기 전에는 쉼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쉼의 반대말은 저주입니다. 저주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쉼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일성수입니다. 주일은 내 날이 아니라 주의 것입니다. 누림과 드림이 있는 날입니다. 



7. 안식일은 영원한 본향을 맛보는 것이다


쉼은 신분적,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신명기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기 20장에는 이 말씀이 없고 신명기 5장에만 있습니다. 안식일은 출애굽한 날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을 살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고 본향은 가나안 땅이었고, 궁극적 본향은 하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서 안식일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사실상 바로가 모세에게 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가려고 하느냐고 묻자, 모세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제사드리기 위함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킨 답변입니다. 바로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예배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서 예배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본향을 맛보는 것입니다.



8. 영혼이 부활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 쉼이다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보다 우리의 영혼이 너무나 지쳐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몹쓸 것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의 쉼은 무엇이며,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안식일을 주시며, 그 성취로서 주일을 주셨을까요?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은 안식일을 잘 지킨다고 했지만, 그들에게는 쉼이 없고, 거짓 샬롬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의식을 행하고 짐승을 태우고 피를 흘렸지만, 그들에게는 안식, 쉼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의 주인은 나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의를 다 이루시고 죽임을 죽이시며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모든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활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 우리에게 쉼입니다. 그 생명을 누리고 그 빛을 받는 것이 쉼입니다. 그 빛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거룩입니다. 거룩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누렸음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주일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고, 나의 나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9. “주의 날”을 안식일로서 지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은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3:15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처음엔 안식일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안식일에 모이지 않고 주일에 모이게 됩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부활의 날에 모인 그 날이 주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므로, 옛것이 지나고 새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인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안식일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주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기에 다시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듯이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미국에 제칠일안식교가 많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기에, 주일은 안식일의 실체, 즉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비추는 날입니다. 주일의 구체적 행실을 말하진 않겠습니다. 주일성수는 그리스도를 말씀, 기도, 예배로 비추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네 번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 베드로후서 3:10을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2:2을 보면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미혹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의 날이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이 날은 구원을 완성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밧모 섬의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계시를 받습니다. 이 때는 이미 주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10. 주일에는 온 종일 은혜를 비추라


주일성수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의 생업과 오락에 관한 그들 자신의 일과 말과 생각으로부터 종일 거룩한 쉼(an holy rest all the day)을 누려야 한다.” 하루 종일 거룩하게 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일하라고 명령하지 쉬라고 명령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일은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데, 종일 거룩한 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소요리문답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날의 모든 시간을 공적인 예배와 사적인 예배를 실현하는 데 사용하라.” 공적 예배는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이고 사적인 예배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은혜를 비추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제하고 이웃 사랑을 주일에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배우고 주께 배우면 쉼이 있습니다. 주일은 눕자, 졸자 하는 날이 아니가 공적 예배와 사적 예배를 드리는 날이고, 다시 주님께 돌아가는 날이고, 주님을 비추는 날입니다. 이것이 주일성수입니다. 어떤 형식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다만, 더 주님의 은혜로 비추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 만큼은 주님께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에 세상을 향하다가도 다시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11. 결론



주일성수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힘씀은 우리는 것입니다. 잘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일은 내 공로, 내 자질을 말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짝 붙어서 한 주간의 힘, 영광의 임재를 구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그 빛을 비추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일성수입니다. 우리는 이제 일주일의 첫날을 주일로 지킵니다. 한 주간의 첫 날을 은혜에 두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