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9][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9)] 결혼: 한 몸 됨의 비밀 (엡 5:31-3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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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9)] 결혼: 한 몸 됨의 비밀 (엡 5:31-32) 문병호 목사 


(엡 5:31)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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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



1. 가정의 소중함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을 저는 실감을 잘 못합니다. 어릴 때 보면 밤에 부모님께서 논을 보러 가야 한다고 하시고 벼 한 포기라도 물에 잠기면 실의에 잠긴 것들이 눈에 선합니다. 아파트 생활을 하고 그러니 간혹은 사치스럽게 비를 우수에 잠겨서 보기도 하지만, 실제로 와 닿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비가 조금 새고 계단에 물이 조금 흐르고 하는 것들을 보면 비가 많이 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뉴스를 보면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번 비가 참 큰 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섬진강 구례 같은 지역은 그렇습니다. 어제 치과에 가서 이 치료를 하는데 간호사 분이 하는 대화를 보니 집이 섬진강 쪽인데 물에 잠겼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최근 외국에서는 큰 폭발이 나서 난리가 나고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안전한 것처럼 보이나 한편으로는 위험도가 더 커진 것 같기도 합니다. 비가 며칠간 더 많이 온다고 합니다. 모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건물이나 다리나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강하다고 해도 비가 많이 오면 속수무책인 것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수해를 겪는 분들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할 것입니다. 지붕이 마지막까지 물에 잠긴 상태에서도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가정의 소중함과 애잔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에도 실제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노모를 구하기 위해 가족들이 희생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2. 가정 단위로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


1) 결혼은 가정의 제도이다


가정은 무엇인가요, 가정은 집이나 어떤 외적인 것이라기보다 부부가 한 몸이 되어 이루는 것입니다. 결혼이 가정의 제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규례로 수립하신 제도가 바로 결혼입니다. 결혼의 성경적 정의는 하나님이 창조 규례로 주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제도는 신성하고 거룩합니다. 


2) 문화명령은 가정을 통해 이루신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베푸시고 명령을 내리십니다. 복과 함께 명령을 내리시고 그 가운데 안식하십니다. 안식이라는 것은 복을 베푸시고 그 복 가운데 명령이 있습니다. 즉 안식일은 복과 거룩이 있는 것입니다. 즉 천사까지 다 지어 놓고 마지막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안식한 것인데 이 안식에는 구별하여 드리는 거룩과 복되게 하심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명령을 내리십니다. 안식은 그저 하나님 품에 쉬는 것만이 아니라 명령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곧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스리고 지키는 것입니다. 앞의 세 가지는 짐승에게도 주신 것이지만 뒤의 두 가지는 인간에게만 주신 것, 문화명령이라고도 합니다. 이 문화명령을 수행하라고 하나님이 두 가지를 주십니다. 첫 번째는 에덴에 동산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곳을 사람들의 거처로 삼게 하십니다. 그 동산에 거하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를 명령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가정명령입니다. 즉 부부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창조 후에 안식하시고 안식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시고 그 가운데 문화명령을 내리시는데, 문화명령을 에덴의 동산에서 부부가 한 몸이 되어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뜻은 바로 문화명령과 함께 가정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가정 단위로 하나님이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성경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사도 바울도 이 말씀을 정확히 한 것입니다. 



3. 결혼은 부모에게서 분리가 아닌 독립이며 양육자가 되는 것이다


저도 가끔 주례를 하게 되는데 그때면 항상 이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6).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을 지어 주셔야 합법적인 것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떠나는 대상은 부모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이성 간 남녀입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것은 부모를 멀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리가 아닙니다. 부모를 남과 같이 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독립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피양육, 양육을 받는 자리에 있었으면 이제는 양육을 하는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즉 이제 결혼하면 자식들이 부모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떠나라는 것의 의미입니다. 떠나라고 하니 아예 이사를 멀리 가고 부모와 교류도 없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나라는 것은 이제 그야말로 여지껏 부모의 옷자락을 잡고 살았으면 부모를 봉양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떠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즉 부모를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의 의미입니다. 결혼 해놓고도 똑같이 부모에게 손벌리고 때만 되면 이것 저것 구해 달라고 하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독립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의 준비라고 하면 이런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들로, 특히 경제적인 것들로 준비가 되었느니 안 되었느니 하여 실의에 빠지고 하는 것은 결혼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결혼은 떠나는 것인데 떠나는 것은 피양육자에서 양육자의 자리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결혼은 또한 한 몸을 이루라는 명령입니다. 부모를 떠나서 독립적인 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 가정에서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로부터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의 의미입니다.



4. 가정은 큰 섭리의 도구이다


성경은 가정을 큰 섭리의 도구로 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결혼을 기뻐하시고 이삭은 리브가, 야곱은 레아와 라헬, 이렇게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기뻐하십니다. 사람이 덜 차 보이고 안되어 보여도 보아스와 룻의 가정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은 하나님이 복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전적인 은혜가 가정에 있으므로 그렇습니다. 이 가정을 통해 다윗, 그리고 그 후손으로 종국적으로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엘가나와 한나의 가정으로부터 기도 가운데 사무엘을 주십니다. 그로 인해 새 시대가 시작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신약의 시작은 요셉과 마리아의 정혼입니다. 이 가운데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시고 요셉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는 것입니다. 가정은 그저 남녀가 만나서 한 경제 생활을 한다거나 동거하는 개념에 그치지 않습니다. 남녀가 그저 함께 한 집에 들어가 있다고 결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오늘 본문의 주석에서 가정의 명령은 나누거나 뗄 수 없는 결혼의 연합을 규율하는 하나님의 확실한 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혼을 통해 인류를 번성시키고 남녀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정을 승리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짝지어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나눌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5. 부부 결합의 도


부부의 결합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지식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지식을 따라 부부가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고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 귀히 여겨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부부의 결합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른 것입니다. 무절제하고 방종한 육욕에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성적인 것이나 인종적인 것이나 민족적인 것을 앞세워 결혼을 더 귀하거나 덜 귀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선진국의 결혼 제도가 더 선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6. 바른 자식 사랑의 도


한 남자가 한 여자와 한 몸을 이루고 가정을 구성합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십계명을 고백합니다. 인간을 향한 첫 번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그 전제는 가정, 즉 부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부모를 자식이 공경하는 것입니다. 자식 사랑을 부모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독립할 기회를 주지 않거나 무분별하게 상속하여 독립할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은 온전치 않습니다. 부부가, 부모가 배부르기 위해 자녀에게 주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하게 자녀에게 상속하여 부모를 자녀가 도무지 떠날 수 없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뉴스에도 나오고 최근에 말씀도 드렸으나 우리나라 자녀들은 금융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금융은 땅을 사서 파는 것만 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경제가 코로나로 위축되고 하는데 왜 집값이 오르냐는 말입니다. 이것을 어떤 경제학자가 진단을 했는데 그분의 말로는 위기가 닥칠수록 더 부동산을 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투자도 있지만 투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경제적으로도 계산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가 정책도 있으나 인간의 이런 심리가 깊기 때문에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은 이제 결혼을 한다고 하면 부모를 공양하고 섬겨야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7. 부부는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도우라


1) 부부는 경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28-33). 부부는 경쟁하려고 결혼하지 않습니다. 서로 형편을 따지고 과거를 헤아리려고 결혼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경쟁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부부는 돕는 베필로 지으셨습니다. 


2) 연약할 때 서로 도우라


남자든 여자든 사실상 꼭 한 가지만 이야기 한다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 부부는 각자 상한 갈대이고 꺼져 가는 심지입니다. 세상이 험하기 때문입니다. 약할 때 부부가 서로 마주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치이고 억눌리고 당하고 이제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심지가 남편 같으면 마지막에 아내 앞에 섭니다. 그 때 도와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 앞에 설 때는 얼마나 일이 많고 생각이 복잡하고 자녀 교육이니 해서 수많은 것들로 인해 가장 상한 심령으로 있습니다. 그때 서로 누가 잘났느니 비교하며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베필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잘나서 못사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잘나서 잘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못삽니다. 리어카는 아무리 앞에서 힘 센 사람이 끌어도 뒤에서 사람이 손으로 붙들고 있으면 안 됩니다. 뒤에서도 밀어 줘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돕는 베필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천 배 만 배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연약함을 감싸 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신학생들도 보면 전도사가 잘났니 사모님이 잘났니 그런 결혼은, 간혹 가다 보면, 위험합니다. 그리고 목회 잘하는 분들을 보면 돕는 가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울며 눈물로 씨를 뿌리는 가정이 목회도 잘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배경이니 학벌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는 가정은 목회도 못합니다. 

최고로 잘한 수술은 안한 것 같은 수술입니다. 있는둥 없는둥 한 부부가 되자. 가장 수술이 잘되면 없는 것 같습니다. 자꾸 삐져나오는 것은 부작용입니다. 부부는 그저 원만하고 성경에서 돕는 베필이라고 딱 한마디 말한 것은 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있는둥 없는둥 하는 것이 최고의 한 몸입니다. 

진심으로 어느 저 먼 곳 바깥에 가서 구제하는 그 마음을 내 아내와 남편에게 쓰는 것입니다. 다른 데 가서는 남들에게 정말 잘해 주는데 남편과 아내에게는 잘 못하면 안 됩니다. 서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갈 자입니다. 그 가운데 경건한 자손을 얻습니다(벧전 3:7; 말 2:15). 


3) 가정은 많은 환난이 있으니 부부가 서로 도우라


결혼은 거룩하고 복된 것이나 결혼이 가장 우리에게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성경은 가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만 또 가장 어려운 것으로도 보입니다. 가정이 어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할 때 그 가장 큰 것은 가정에 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디나가 강간을 당한 것과 아들들이 그로 인해 사람들을 죽인 것 등입니다. 인생사가 만만치 않은데 그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기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밖에서 잘하면서 가정까지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먼저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한 몸 됨을 지키시는 데 일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서로 부부 간에 도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쫓고 주 안에서만 결혼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 안에서 결혼하라


1) 부모의 견해를 무시하지 말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가정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구하려고 아브라함이 저 먼 데까지 종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자녀들이 있습니다. 결혼할 때 꼭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고 기도를 받으며 결혼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 사라가 열국의 어머니가 되었듯,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의 결혼을 의미합니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은 마음이 바쁘니 부모가 반대를 해도 무시할 때가 있으나, 부모의 기도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2) 부모도 세속적 관점에서 판단하지 말라


그리고 부모도 자녀의 결혼을 너무 세속적인 가치로 보면 안 됩니다. 자녀가 독립하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됩니다. 형편이나 조건을 너무 따지기보다는 참되게 독립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3) 결혼은 본성에 따라, 즉 순리대로 하라


그리고 본성의 가르침을 따라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동성연애나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고전 11:14). 부부가 결혼하면 서로 순해지고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부드러운 돌은 계곡에서 찾습니다. 굴러야 하니 말입니다. 부부는 서로 순해져야 합니다. 날카로워지면 안 됩니다. 순리입니다. 착하면 좋겠습니다. 무슨 큰 일 한다고 다투지 말고 더 천천히 가더라도 화목하게 가야 수레에 뭔가 실린다는 것입니다. 천천히 가는 것 같아도 순리로 가면 수레에 뭐든지 실리게 됩니다. 또한 순리로 쓸 것을 역리로 쓰지 말라고 합니다(롬 1:26-27). 


4)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 주라


그리고 본문은 또한 부부의 존경과 순종, 이 부분에 대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이혼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행 했다고 다 이혼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칼빈도 음란한 몸은 한 몸이 아니니 종기와 같으니 잘라 버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단 음행 외에는 하나님이 짝지어 준 몸을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실 것은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8:20). 그렇다면 부부는 서로 더욱 그리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겠냐고 말할지 몰라도 우리는 부부는 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부부는 그 너머까지도 덮어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가 부부로 판단하지 말고 용서하고 서로 허물을 덮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싸워 이겨서, 잘나서 뭐하겠습니까? 서로 자꾸 순해지고 돕고 그러면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가정이 왜 이렇게 어렵고 일이 잘 안될까, 그래서 서로 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부족하지만 사슴이 서로 기대어 있듯 서로 기대고 보듬어주고 위로하고 세상이 다 아니라고 해도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인정해 준다면, 그래서 서로 낫게 여기면 서로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가정의 대문을 열 때 위로의 안식과 위로와 평안의 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문을 다시 닫고 나갈 때 남편이나 아내나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9. 결론: 서로 사랑하라


오늘 말씀의 결론은 지식을 쫓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 내려놓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아야 합니다. 참으면 됩니다. 그 다음에 허다한 죄를 덮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지 않는 것, 좋을 때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게 무슨 사랑이냐는 것입니다. 조금 칠칠맞지 못하게 먹어도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 가정에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