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34)] 권징: 열쇠의 권세 (마 18:15-20) 문병호 목사

조회수 138


[2020091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34)] 권징: 열쇠의 권세 (마 18:15-20) 문병호 목사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서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30-31장인 교회의 권징, 대회와 총회 부분이고, 다음 주엔 32-33장인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 그리고 최후의 심판 부분입니다. 이렇게 마치게 되겠습니다.

올해는 연초부터 내내 코로나 19로 인해 어수선하고 불안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너무 편안한 시대를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1960년대 사람인데, 제가 살았던 생애만 생각해도 전쟁도 없고 평안했기에, 지금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천국을 소망하고 미래를 묵상하며 우리의 조건들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고 푸는 권세, 즉 열세의 권세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사람들, 즉 직분자들을 세워서 이들을 통해서 교회의 잘못된 것을 교정하고, 영 잘못된 것은 교회에서 배제하게 하셨는데, 이것을 권징, 치리, 책벌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사랑인데, 교회에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좋은 말만 20번 듣다가 한 번 이런 류의 말을 들으면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도 연약하고 교회도 연약하고 교회의 기구도 연약함을 말합니다. 성도는 불완전하기에 날마다 거룩해져야 합니다. 계속적 반복적인 것입니다. 교회는 완전하지 않아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교정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기구인 노회와 총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뿐입니다. 

이 불완전함 가운데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세우셔서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 교회의 직분입니다. 왜 목사, 장로가 있어야 하고, 치리와 권징이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구원을 받아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노회가 있고, 노회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총회도 있습니다. 이것은 계급적 구조라기보다는 말씀에 따른 신중과 절제와 객관성을 위한 것입니다. 



2. 교회의 삼권: 교리권, 입법권, 사법권


교회에도 3권이 있습니다. 세상 정치에서 3권(행정권, 사법권, 입법권)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3권은 교리권, 입법권, 사법권입니다. 다소 생소할 것입니다. 

첫째, 교회의 교리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행정은 교리권입니다. 세상에서의 행정과 다릅니다. 교회의 다스림은 말씀의 다스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바로 세우고, 교리가 바로 서면 교회가 바로 서지만, 교리가 바로 서지 못하면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합니다. 교리가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적인 것이 교리권입니다. 교리권은 행정권이요, 교회를 다스리는 권위입니다.

둘째, 교회의 입법권은 하나님의 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교회의 규칙과 규례, 총회의 헌법 등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교회의 입법권이라고 합니다. 잘 아셔야 할 것은, 교회의 법은 결코 성경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법이요”라고 하며 손 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요”라고 하면 “법이요”도 안 됩니다. 총회의 헌법이 성경에 따라 제정되기에, “성경이요”라고 하면 끝입니다. 성경은 덕을 세우라고 했기에, 법을 내세우며 덕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입법권은 성경 말씀을 규례화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법이 필요하지만, 교회 법을 성경 위에 두듯이 하면 안 됩니다.

셋째, 교회의 사법권입니다. 이것이 바로 권징(치리)입니다. 이를 통해 책벌하고 해소해 주시도 합니다. 



3. 매고 푸는 권세


오늘 말씀 마태복음 18:18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권세입니다. 땅에서 말씀을 받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늘에서도 죄 사함이 없고, 땅에서 말씀을 받고 회개하면 하늘에서도 죄 사함을 받음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매고 푸는 권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1) 복음의 권세: 주의 종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고백하는 자에게 죄가 사해짐


첫째, 마태복음 16:19인데, 먼저 16절을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하자,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라는 말이 바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반석”을 베드로라고 해석하기 쉬운데,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베드로의 고백’, 즉 ‘진리의 말씀’입니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입니다. 베드로는 옳게 고백을 했습니다.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니, 이 진리의 터 위에 있는 교회를 음부, 흑암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 즉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우고, 말씀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기에 그 교회의 권세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것이 바로 매고 푸는 권세입니다. 천국 열쇠입니다. 이것을 베드로에게 준다는 것은 베드로에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 진리의 말씀을 받고 ‘아멘’ 하는 사람에게는 천국문이 열리고,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그 문이 닫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백, 진리, 교회, 그 안에 열쇠의 권세가 있습니다. 열쇠의 권세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이기에, 직분이 귀한 것입니다. 그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권세를 주신 것은 그에게 자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매고 푸는 권능이 있는 복음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 그리스도의 일꾼, 교회를 위한 일꾼입니다. 주의 종의 권능과 권세는 말씀의 권능과 권세입니다. 주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정치 얘기하면서 따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권능이 있는 것입니다. 


2) 치리의 권세: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바로 세움


둘째, 18:18에는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매고 푸는 권세는 교회 안에서의 이야기이고, 그 권세를 교회의 말씀에 주신 것입니다. 18:18은 교회 안의 치리와 관련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치리 절차를 자세히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하는 직분이 있는 사람이 1차로 권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증인과 함께 2차로 알리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교회의 당회에서 치리하라고 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출교할 것을 말씀합니다. 18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20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9-20절은 기도에 관한 말씀도 되지만, 교회 안의 권징,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세워 다스림도 의미합니다. 교회가 함께 기도하며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울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일하여 주심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문맥에서 보자면, 교회 질서를 세움을 말씀합니다. 교회의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우는 것을 말씀합니다. 교회에서 잘못된 것은 주로 세상 따라 갈 때 그러합니다. 세속적인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 아니라 세상 논리로 교회에서 얘기하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하고, 이런 것을 바로 잡는 것은 힘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있고, 사도 바울도 그것을 전했지만, 베드로도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언급된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복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예루살렘 공의회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헐고,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어도, 초대교회의 사도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세 사람이 함께, 즉 교회가 치리를 구하면 하나님이 이루심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변화산 사건 이후의 말씀입니다. 첫 번째 말씀은 베드로의 고백 이후에 있었고, 오늘 두 번째 말씀은 변화산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정확히 드러난 이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20:23에 나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과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이것이 열쇠의 권세입니다. 


3) 참 권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직분자가 그에게 복종하여 권세를 위임받을 뿐이다


제가 이것을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로마 가톨릭이 잘못 해석해서, 교회의 교황과 사제에게 권세와 자질이 있어 매고 푸는 듯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심판을 하시기도 하고 심판을 없애고 영생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 왕의 왕, 만 주의 주이시며, 보좌 우편에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친히 다스리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예수님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요 6:39).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요 5:24). 결국 심판에 이르거나 이르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달려 있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끝내 다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 안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 인자가 천국의 문과 지옥의 문을 열기도 하십니다(사 9장, 눅 17장). 천국의 열쇠를 가져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시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시며, 다윗의 왕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깨에 정사를 매신 분이십니다. 정사는 다스림이며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3:7-8).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계 3:10). 인내의 말씀은 말씀을 붙들고 참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에 열린 문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문을 닫고 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열고 닫으시는 것이며, 이 권세를 사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설교도 그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고, 설교자에게 위임되었을 뿐입니다. 설교자는 그 권세를 맡았을 뿐입니다. 칼빈은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이 최고의 직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시되,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두 음성에 관해 말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이것이 천국의 열쇠입니다. 예수님 때에는 사도들에게 있었고, 그 이후에는 목사, 장로에게 있습니다.


매고 푸는 권세는 세상이 아닌 교회에 있기에, 교회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매고 푸는 권세를 주셨을 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했고, 변화산 이후에 매고 푸는 권세를 이야기하실 때는 두세 사람이 모이는 것에 말씀하시며 교회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사도들이 부활 이후 주님을 만났을 때 성령을 부어주시며 매고 푸는 권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고,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축복권이 있다고 해서 제자들에게 축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무슨 복의 근원입니까? 그러나 축복권이 있는 직분자가 축복할 때, “아멘” 하면 복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맡은 자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그 사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가 맡은 복음에 권능이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의 권세가 있다면, 하나님께 맡겨주신 직분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직분이 안수 가운데 주어집니다. 


매고 푸는 권세는 복음을 듣고 믿어서 회개에 이르는 구령의 권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지 않으면 심판의 권세로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전할 때, 듣지 않거든 그 축복이 우리에게로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4. 권징의 목적은 교회의 건덕이다


교회의 사법권은 세상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직분자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다고 서로 치리하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정말 두려워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의 사법권은 세속적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데 해야 합니다. 성령의 검, 즉 말씀을 휘둘러야 합니다.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절차를 지키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검, 즉 말씀입니다. 

여러분, 병원 가서 사람 죽일 일 있습니까? 교회 가서 영혼을 죽일 일 있습니까? 교회에서 영혼을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교회에 죄 사함 받으러 왔는데, 오히려 죄만 더 들춰내고 사람 욕이나 해서 교회에서도 못견디게 해서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연약한 자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권징의 대원칙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이 강도권의 제1원리라면, 교회의 권징의 제1원리는 목사와 장로가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것입니다. 목사는 먼저 자기를 돌아보고, 장로는 먼저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매고 푸는 권세는 살리기 위한 것,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건덕이라고 합니다. 건덕이 권징의 목적입니다. 권징은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하게 하려는 것이고,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얻으려는 것입니다. 농약은 독하고 전지는 가지를 자르는 것이지만, 농사 지을 때 농약을 하거나 나무에 전지를 하는 이유는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칼빈의 말을 정리해서 이렇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권징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하며 날뛰는 사람을 억제해 주는 굴레와 같고, 게으른 사람을 약동시키는 박차와 같고, 타락한 사람을 온유함으로 징계하는 아버지의 매와 같다.’ 어릴 때 마음이 넉넉한 이유는 자기가 좀 못해도 부모님이 꾸짖어 주어서 혼은 나도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아무도 꾸짖어 주는 사람이 없기에 자기가 과연 잘하고 있는지, 올바로 걷고 있는지 불안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곤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계시면 그런 천둥은 없습니다. 권징이 이런 것입니다. 

권징은 교회의 표지입니다. 참 교회는 참 권징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세 가지 표지가 있는데, 말씀, 성례, 권징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은혜의 방편도 될 수 있습니다. 권징은 기도와 함께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기도하면서 권징하는 것은 은혜가 되고, 아버지께서 이루십니다.

우리에게 종기와 같은 것이 붙어 있을 때, 떼어내어 교회가 다시금 회복되기도 하고, 본인이 그릇된 자리로 잘못 갔을 때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이 권징입니다. 이 권징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한 고백의 때에 있었고, 변화산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셨을 때, 부활 후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을 때 주어졌습니다. 



5. 결론


우리에게 하나님이 많은 것으로 주셨지만, 하나님은 모는 지팡이, 치는 막대기가 되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쳐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저를 이끌어 주옵소서. 

너무 청조하게 아무 비바람도 겪지 않고 흔들림도 없이 잘 자라고만 있는 것은 많은 경우 열매가 없을 수 있습니다. 보기에는 아주 연한 연두색 잎사귀가 이쁘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거친 잎사귀를 가진 나무가 열매를 맺습니다. 

코로나, 기록적인 장마, 태풍이 있었지만, 가뭄과 기근 중에 요셉의 번영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번영이 있기를 바랍니다. 혹은 자신이 실족할지라도, 실족하는 것이 없지 않으니, 하나님이 돌이켜 성하게 하고 열매맺게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