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2] [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8)] 교회와 국가 (롬 13: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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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2] [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8)] 교회와 국가 (롬 13:1-7) 문병호 목사


(롬 13: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 13:4)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5)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롬 13:6)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교회와 국가는 구별된다


사도신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접하다 보면 다양한 말씀들을 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13:1-7은 교회와 국가, 통치자의 권사라는 중요한 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의 교회와 국가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와 국가의 문제가 신앙생활에 중요한 부분이겠나 싶을 수 있습니다. 교회와 국가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종교개혁 때입니다. 왜냐하면 중세 때는 속권(세상의 권세)과 교권(교회의 권세)이 전부 교회에 다 속해 있었습니다. 교회와 국왕이 오래 싸웠습니다. 역사책을 통해 보셨을 것입니다. 중세는 결국 교황이 권세를 잡게 됩니다. 교황 밑의 주교가 지역의 종교 지도자였는데, 주교는 교회만 다스리는 게 아니라 그 지역도 다스려서 사람을 감옥에도 보내고 형벌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교회와 국가를 구별합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분리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성경에 따라서, 교회에 속한 것은 교회에, 국가에 속한 것은 국가에 돌려 성경대로 질서를 잡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각국의 신앙고백서에는 교회와 국가 문제가 들어와 있습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중요한 것입니다. 저희의 답은 간단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세상에,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것은 하나님께입니다. 



2. 성경의 국가들


성경을 보면 국가가 나타납니다. 성경에는 여러 강대국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한 강대국과 관계를 합니다. 모세 당시에는 애굽이 최강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애굽의 바로 밑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후 가장 강한 왕국은 앗수르였습니다. 앗수르는 북왕국을 멸망시켰습니다. 앗수르는 매우 강하고 잔인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앗수를에 대해 치를 떨 정도였습니다. 유명한 왕으로는 산헤립이 있습니다. 앗수르로 인해서 북왕국은 혼족이 되어 없어져 버리고 백성들이 흩어져 버립니다. 그 후 메대와 바사가 등장합니다. 메대는 지나가고, 바사(페르시아)가 강력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왕은 아하수에로(크세르세스), 다리오(다리우스), 고레스(키루스)였습니다. 바사는 헬라를 이길 정도로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바사도 망하고, 헬라 제국이 등장합니다. 헬라 제국에는 알렉산더 왕이 있었습니다. 그후에 로마 제국이 등장합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세계 최강의 국가와 왕을 곁에 있게 하시며 역사를 이끄셨습니다. 

첫 번째 로마의 황제가 아우구스도(아우구스투스)인데 이 때 이루어진 인구 조사가 주님 탄생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인구조사를 하니 각각의 지파에 속한 사람이 자기 동네로 가게 한 것이고 마리아와 요셉은 유다 지파로서 베들레헴 사람이니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임신을 했어도 강제로 가게 했을 정도입니다. 베들레헴은 작은 곳이지만 유다 지파가 흥왕합니다. 그 작은 동네에 많은 사람이 모여 드니 아이를 낳을 곳이 없어서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나신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시기 위해 하나님이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도를 움직인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최강국은 네덜란드(화란)이었고 이후 영국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미국입니다. 이 대표적인 강대국들의 공통점은 바로 신앙의 족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쓰면서 그 다음 나라는 무엇인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신앙이 좋은 나라는 한국입니다. 한국교회는 문제가 많으나 아무리 세계를 둘러봐도 개혁신학과 청교도 신앙이 고스란히 모여 있는 곳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믿음의 백성을 강대국에 붙여 주시거나 그 믿음의 백성을 통해 나라를 강하게 해서 신앙이 세계를 다스리게끔 하십니다. 세계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중국이 뭐라고 해도 중국어로 세계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위안화는 달러화와 비교가 안 됩니다. 예수님 오실 때는 가이사 얼굴이 그려진 화폐가 가장 강했습니다. 미래학자들의 글 같은 것들을 읽어 보면 중국은 아주 멀었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미국도 신앙을 못 지키면 위태롭습니다.  



3.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1) 칼의 권세


오늘은 교회와 국가의 문제를 보고자 합니다. 본문을 보면 세속 통치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역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세속 통치자는 교회의 직분자가 아닙니다. 세상 통치자를 소명자로 부르십니다. 사울과 같은 자들을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우신 것을 우리가 압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고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신상을 세우고 절하지 않으면 죽이는 등 매우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십니다. 이것에 대해 우리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모든 통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하나님이 정했다고 하는 본문의 말씀을 우리는 칼의 권세라고 합니다. 검의 권세라고도 합니다. 


2) 말씀의 권세


세상 통치자에게는 칼의 권세를 주셨다면 교회 사역자에게는 오직 말씀의 권세만 주었습니다. 교회 사역자들이 신체를 다루거나 구속하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만을 가집니다. 칼빈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데 그가 행한 가장 강한 일은 성찬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신교 교회 역사에서도 교리에 어긋나고 하면 감옥에 가둔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체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의회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종교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장로교는 결코 교회가 주체가 되어 인신을 구속하거나 칼의 권세를 행한 적이 없습니다. 



4. 양심에 따라 하나님께 복종하라


이처럼 하나님이 칼의 권세를 준 자는 세속 통치자인데 이 권세를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즉, 선한 일을 권면하고 악한 일을 벌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신상필벌인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잘한 것은 격려하고 못한 일은 벌하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 5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롬 13:5). 바로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칼빈이 천 명의 증인, 내적인 법정이라고 표현한 이 양심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설교문에는 없지만, 오늘 아침에 기도하고 집에 가는데, 길 중앙에 있는 지렁이를 보았습니다. 길이 마르면 말라 죽기 때문에 지렁이를 나뭇가지로 옮겨 주려고 했는데 바닥에 떨어져 죽은 나뭇가지를 찾아서 옮기려고 하니 안 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대로 있으면 죽는데 말입니다. 또한 어제 저녁에 화장실에 거미가 보였는데 휴지로 죽이려니 불쌍해서 밖에 놔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죽을 것 같아 그냥 베란다에 놔 뒀습니다. 우리 안에 보면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자제하고 어떤 것은 발현합니다. 교회를 다녀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학식과 지식이 있어서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심이 있습니다. 학식이 높고 사회적으로 높은 자들은 윤리 과목 시험을 보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착한 것은 아닙니다. 

5절은 양심에 따라서 국가에 복종하라고 합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국가의 국왕도 이 양심을 가지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칼의 권세를 받되 마음대로가 아니라 양심을 가지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5),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 우리는 통치하는 자나 통치받는 자에 대해는 교회에 속한 영역이 아닌 것을 압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을 떠난 영역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 안에 국가도 있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속 권세를 자신의 일을 위해 사역자로 쓰시는 것입니다. 이방 왕이라도 하나님이 시키셔서 자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통치자의 가치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래서 잘 다스리는 사람들을 성경은 신들이라고도 부릅니다. 하나님이라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5. 통치자의 권세를 인정하라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무조건 반박하고 틀리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심지어 우리와 종교가 다른 자라 하더라도 국가 통치적으로는 결코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거꾸로 교회 다니는 대통령이라고 더 낫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교회 다니는 대통령이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항상 교회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 49:23). 왕과 왕비를 하나님이 세워서 그때 믿는 백성을 그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합니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이 섭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통치자도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힘으로 기뻐하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다스리고 관용한다는 표현이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주의 판단력과 성실과 권능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특별한 나라니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서, 역사서를 봐도 분명히 그의 백성의 나라가 아닌 이방의 나라의 왕도 하나님이 세우시고 다스리시고 필요하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 같이 해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0-11). 청지기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통치자도 이런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6. 신앙과 세상을 자의적으로 섞지 말라


우리도 세상에 나갑니다. 굳이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니라도 회사에 나가고 사회적인 관계를 가집니다. 회사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직원을 불평등하게 차별하면 안 됩니다. 믿는 자들을 낫게 여기고 그들과 함께 신앙적인 기도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회, 국가에 속한 영역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차별하거나 핍박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직장 자체는 가이사의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공급하신 힘을 가지고 하는 것처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단순화시키고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점수로 평가를 하는데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저득점자를 뽑고 믿지 않는 자라고 해서 고득점자를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물론 교회에서는 혹은 기독교 기관이나 기독교 사업자라면 신앙에 가치를 더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회사법과 상법의 규제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법이나 총회법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는 요지는, '모호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세상법과 교회법을 번갈아 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와 국가 문제의 중요성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이중적인 통치 안에 있습니다. 당장 나가면 교통 신호를 지켜야 합니다. 교인이라고 해서 신호를 안 지킨다거나 세금을 안 낸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셨는데 왜 내냐고 말하면 안 됩니다. 교회의 성직자 세금은 이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영리 활동을 하니 세상에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성직자는 교회 안에 있는 직분이므로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교회 안에서 주를 섬기는 일에 세상이 간섭하면 안 됩니다. 교회도 세상 일에 나서면 안 됩니다. 설교 중에 교회에서 특정 당을 지지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결코 안 됩니다. 은근슬쩍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정치적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여당색이니 야당색이니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입니다. 교회가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이름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안 됩니다. 목사가 어찌 정치를 압니까. 역으로 말하면 대통령이 어찌 교회 일을 압니까. 사울이 어찌 번제를 드립니까. 사울 왕이 불과 왕위 2년차에 이 일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이 그를 보고 네 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이 일주일째 오지 않으니 그랬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명백히 싫어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입니다. 중심에 합한 자입니다. 중심에 합한 것은 무엇인가요. 질서를 잘 아는 것입니다. 

모호하면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국민입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고 국민으로서 정당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이름으로, 목사 이름으로 정견을 발표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다 존경하는데 김준곤 목사님께서 지금 정치하는 목사, 전광훈 목사를 지지해야 한다는 말을 학교 어느 순서에서 말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말을 하시기에 제가 절대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평생 사신 흔적과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구약 시대 때 제사장은 정치하는 자가 아닙니다. 목사가 무슨 정치를 압니까. 강단에 서서 말하면 다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만 전해야지요. 왜 어느 교회는 어떤 정치색이 있다는 말을 합니까. 목사가 어느 지역 출신이니 하는 말이 왜 나옵니까. 이것 자체가 교회를 해하는 말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런 것이 없어서 부흥되는 것입니다. 교회로서는 교회에 봉사하고 교회의 하나님을 믿고, 국가로서는 국민의 의무를 하는 것이지만, 서로 섞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일에 교인들이 모이라고 하는 말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으로서는 결코 받을 수 없는 말입니다. 



7. 결론


본문 4절은 하나님의 사역자, 6절은 하나님의 일꾼, 5절은 양심에 따라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통치자가 잘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부분에 대해 본문은 "양심"이라고만 말합니다. 양심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전서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은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이 선한 양심이 교회 일과 세상 일을 연결시켜 줍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 십계명과 형법을 이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5). 저는 이런 이유 등으로 쉽게 답을 내리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세상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고 할 때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통치자를 징계하시도록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세상 일과 교회 일이 부딪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는 그 고유한 질서가 있습니다. 세상의 질서를 교회로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뛰어나고 능력이 있다고 해서 교회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칭찬을 받고 지도력을 인정받는다고 해서 교회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세상의 지도력이 교회에 당을 짓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더 잘 기대는 자가 지도자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는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경험, 믿음과 기도와 말씀의 비밀을 경험한 자가 교회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일은 많은 경우에 교회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부인해야 합니다. 세상 지도자라고 교회에 오면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비스마르크 재상도 세상적으로 욕을 많이 들었지만 이 교회의 질서에 순응한 자입니다. 세상 것을 교회로도, 교회 것을 그대로 세상 것으로 가져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히려 이 일을 더 싫어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잘 생각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