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4][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8)] 성화의 은혜 (빌 2:12-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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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8)] 성화의 은혜 (빌 2:12-18) 문병호 목사


(빌 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 2: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 2: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 2: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또는 하느니라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성화: 주 내 안에 마음껏 사심


본문은 성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웨스트민스터를 계속 보고 있는데요, 목사님들로부터 전화가 오기도 하고 부족한 종이지만 주어진 가운데 말씀을 나누니 많은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다. 성화는 거룩할 성(聖)에 되어질 화(化)를 사용합니다. 이것을 글자 그대로 보지 않더라도 우리 날마다 삶의 모습이 성화입니다. 구원의 관점 가운데 이미 우리는 칭의를 지나 성화의 단계에 있습니다. 칭의는 신분을 얻고 인격적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화는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 임재가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심이라면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 내 안에 마음껏 사심입니다. 아마 세계적으로 이것이 가장 잘 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주 내 안에 마음껏 사심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을 물질적으로, 정량적으로 더 많이 받았다고 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이미 완전하고 절대적이고 인격적인 성령을 받았습니다. 단회적, 절대적, 인격적으로 임재하신 성령님이십니다. 한번 임하면 절대적이니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조건에 기대어 들어오고 나가지 않습니다. 물질을, 소유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고 ,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의롭다 함, 자녀 됨, 부르심, 소명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갈 2:20) 사십니다. 이것을 '성령의 소욕'이라고, '속사람'이라고, '새 것,' '거듭난 것'이라고도 성경은 부릅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화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마음껏 사는 것, 성령이 주인이 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 표현하면 푹 젖어드는 것입니다. 절이는 것입니다. 



2. 성화의 점진성과 계속성: 완전하지 않음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히 성령 충만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빛과 성령의 바람과 불과 이 모든 것이 세상에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완전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에 부르실 때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다 부족합니다. 그래서 거룩해진다라는 것이지 거룩을 완성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계속 반복하여 말하지만 구원의 질서, 순서, 서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로마서 8장 30절 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그래서 크게 보면 선택, 칭의, 성화, 영화를 구원의 서정, 또는 구원의 순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앞의 일이 모두 동시에 일어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 회심, 그리스도와 연합, 자녀 삼으심, 거듭남, 부르심,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며 시간적 순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화는 일생 내내 계속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거듭났으나 완전하지 않음을 전제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성화가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이 성화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거듭났으나 완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실존, 기독교인의 모습은 이것입니다. 거듭났으나 완전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성화는 점진적이고 계속적입니다. 노아, 다니엘, 욥도, 어떤 성경의 인물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다 연약함을 보여 줍니다. 



3. 선행은 감사로부터


노아는 홍수 사건을 겪고 바로 술취한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큰 기적을 보여주면 바로 실족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홍해를 건너면 그 믿음이 수백 년 갈 것 같은데 바로 실족합니다. 여리고 성도 그렇습니다. 그냥 걸어다녔는데 바닥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은혜를 겪어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히스기야는 병을 낫게 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잊어버립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우리에게 많이 말씀해 줍니다.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완전한 감사도 없습니다. 완전히 거룩하게 된 자만 완전한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판단이 따릅니다. 내가 누군가 판단하고 불평할 때는 감사가 없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을 때는 이 세상의 것이 아무것도 판단되지 않았습니다. 감사가 넘쳐서 정치도, 세상 어떤 일도, 심지어 음악도 아름답니 어떠니 하는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화는 기본적으로 선행,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을 보면 충만한 은혜를 누리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행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동기가 순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도와줘도 감사함에서 하는 것이 아니면 순수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화평하고 즐거울 때는 감사할 때입니다. 삭개오의 되갚겠다는 약속이 그런 의미에서, 감사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순수한 동기에서 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성화는 100% 하나님의 일이고 100% 사람의 일이니, 100% 하나님의 일이다


에스겔서의 말씀처럼 돌 같은 마음을 제하고 어린아이의 살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 것,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그러니 성화라는 것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그렇다 하시면 잘 때도 칭의가 됩니다. 성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100% 하나님이 하시되 100%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거룩하게 성화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보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100% 하나님이 하시고 100% 우리를 움직이시는 것이 성화인데, 이 다음에 하나 반드시 붙을 단서는 100%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100% 하나님의 일이고 100% 사람의 일이니 100% 하나님의 일이다. 마지막 것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람이 절반씩 나누어 일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칭의도, 성화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이 우리 장로교의 신학이며 신앙입니다. 루터란도, 웨슬리안도 아닙니다. 우리 표현을 쓰면 살아남도 살아감도, 생명도 생활도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100% 하나님이 하시되 100% 나를 움직여서 하시니 내가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100%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서 나의 것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찾으소서, 그것이 상급이 될 줄을 믿습니다'라는 어거스틴의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움직여서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은혜인데 그것으로 하나님이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도 의롭다 하신다


가인은 자신이 가꾼 곡식을 드렸는데 받지 않으신다고 화를 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곡식이니 짐승이니의 차이가 아닙니다. 가인은 자신의 것을 드린다고 생각했고 아벨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차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것까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행위도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한 칼빈의 말이 이것입니다. 불완전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순간 완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요, 전도하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설교할 때 설교자, 예컨대 저는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할 뿐 아니라 흠 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강단에 서는 것은 부족한 종이 전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순간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것을 받으시는 순간 완전하게 받아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니 횃불을 들고 항아리만 두드려도 전쟁을 이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불완전한 것을 받아 완전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을 믿으니 우리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모두 이렇게 쓰인 것입니다. 그들은 불완전했지만 복음은 완전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6.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는 공로를 얻을 기회가 아니라 공로를 얻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 생명도 생활도 얻습니다. 또한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도는 공로를 얻을 기회가 아니라 공로를 얻는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이 일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일한 결과를 우리 것으로 삼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로는 없는데, 우리에게 공로를 얻을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명령과 함께 상급, 곧 결과까지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공로를 우리가 즉시 얻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은 자격 없는 자에게 은혜로 일을 시키시고 이루신다


이것에 '아멘' 하면 울면서 씨를 뿌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젖도 떼지 않은 송아지를 앞세우고 법궤를 매고 가게 하는 것 그리고 도착해서 번제로 태워지는 것, 그것이 우리 성화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는데 우리에게는 흠모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도 흠모할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오죽할까요? 

어느 기업체나 좋은 곳에 가면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 기업을 향해 사용하시는데, 전하기도 가르치기도 하고 성전의 문지기로 사용하시는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냐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가 울며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시 126편). 이 시편 말씀을 보고 우리의 헌신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5절을 보기 전에 2절과 3절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고생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나를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게 하시는지, 이미 하나님이 다 이루고 주신 것을 하게 하시는 그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8.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도록 작용도 하신다


성경에서 생명도, 생기도, 생활도 모두 은혜입니다. 생명도 주시고 살아갈 힘도 주십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생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생활도 주십니다. 성령은 능력도 되지만 작용도 됩니다. 조건을 갖추어서 나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열매 끝까지 성령이 하십니다. 성령은 마지막 작용까지 하십니다. 나에게 힘을 주셔서 그 힘으로 내가 열매 맺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무지 내가 하는 것이 없습니다. 



9. 상급을 받으나, 상급도 은혜다


그런데 상급을 주십니다. 그래서 선행도 상급인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무익한 종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한 것이 있으면 상급이 없습니다. 상급 받을 일도 아니요 여문 열매가 아닙니다. 



10. 은혜와 감사로 고난도 감수한다


예레미야와 같이 사람에게 도무지 칭찬받지 못할 일도 시키십니다. 그럴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호와의 종이라는 예레미야가 능력 없어 보이는 말을 선포하니, 항복하라고 하니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습니까. 여호와는 밤새 기도해서 이렇게 수치거리가 되었습니다. 저도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모세의 기도, 예레미야의 기도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면서 예레미야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의 일꾼들은 내가 영광 받으려고 밤새 기도하지 않습니다. 수치거리 되려고 그렇습니다. 밤새 기도해서 그 다음날 수치거리 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러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겟세마네에서 밤새 기도하고 그 다음날 수치거리가 되셨습니다. 조롱받고 침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화라는 것이 유교적으로 심독을 하고 걷기를 하고 예를 회복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진감래가 아닙니다. 고진감래라는 말,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기독교는 100% 하나님이 하시면 100% 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믿을 때 내가 가장 부지런해지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고대에 펠라기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한다고 해야 사람에게 부지런함과 윤리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감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도 감사할 때 네 배나 갚으리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11. 성화: 은혜를 누림의 열매


거룩해진다는 것, 성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에 푹 젖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우리는 다 어른이 되고 경륜이 생기고 경우에 밝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연한 살과 같이 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은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한 일을 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하신 말씀과 완전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완전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성화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완전함이 종종 우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가면 자꾸 일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누리라는 것입니다. 최고 은혜를 많이 받고 많이 누리는 사람이 최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12. 거룩함은 은혜로 받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지혜도, 의로움도, 거룩함도 주셨습니다. 거룩함과 구원함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 것이 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받은 것'입니다. 거룩함을 받았습니다. 거룩함도 생활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화 때는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움직임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살며 기동하며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따라갑니다. 그때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이 말씀도 '받는다'고 합니다. 성경은 잘 보면 모두 다 은혜입니다. 더 큰 일은 더 큰 은혜일 뿐입니다. 금요기도사경회 때 드린 말씀이 이것입니다. 성경에 전쟁을 앞두고 화살이나 병기를 준비하라고 하신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여호와가 병기가 되십니다. 그러고 우리보고 전쟁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전쟁도 아닙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여호와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말과 같이 병기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우리의 성화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더 이상 저주 아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갈 3:10). 또한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13.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니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


본문 12절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두려움은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절대 교회에서는 시원한 것이 좋지 않습니다. 시원하게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실족합니다. 생활이나 사회관계에서 말입니다. 시원하게 했다는 것을 항상 조심하십시오. 시원하게 일을 하고 결론을 내고 했다는 것을 항상 조심하십시오.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칼로 베듯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조심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할 때 맡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맡겨야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해서 부끄러운 믿음이니 약한 구원이니 하는 말을 합니다. 부끄러운 구원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이미 거룩한 성도로 부르시니 거룩해지고 믿음 주셨으니 믿기에 힘쓰고 여호와를 알게 하셨으니 알게 힘쓰고 하는 것, 이것이 성경의 어법입니다. 여기서 구원도 이루라고 하면 이미 구원받은 자가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구원을 이루는데 오늘 본문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바로 이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뭘하라는 말씀이 있으면 항상 주변 말씀을 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이 나옵니다. 영접하고 믿으라고 명령하는 말씀도 보면 바로 다음에 믿고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나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너희도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라'는 명령도 명령 자체만 보면 부담되고 두렵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레 20:7-8). 7절만 보면 기가 질립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같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개끗하여 거룩합니까. 그런데 바로 다음에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전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뭘 하라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 받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말씀 주시면 반드시 약속, 능력 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가 상급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놀라운 일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전업으로 하게 되는 일꾼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일을 체험하게 하시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완전하신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저 역시 완전하신 그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라고 명령하시면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십니다. 



14. 거룩함


1) 거룩의 출발은 깨끗함이다


무엇보다 15절은 거룩의 출발은 깨끗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의 출발은 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로 말하면 그릇을 닦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이 그릇은 긍휼의 그릇입니다. 뭘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받으려고 하는 그릇입니다. 거지가 할 일은 깨끗히 그릇을 닦는 것입니다. 흠이 없고 순전한 것이 이 의미입니다. 간혹 나를 잠잠하게 하시면 여호와가 채워 주시기 전에 나를 닦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거룩의 중요한 요소이자 출발점입니다. 


2) 깨끗하면 섬기게 된다


깨끗하게 누리면 그 사람은 거룩하게 하십니다. 순교라도 합니다. 깨끗하게 누리는 자 아니면 순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뭔가 하려고 하는 자는 결코 순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순교합니다. 한국교회에 많은 순교가 있었습니다. 폴리갑이 말한 것처럼 교회의 씨는 순교자의 피입니다. 어느 교회든 그렇습니다. 바로 흠 없고 순전한 것이 이런 의미입니다. 깨끗하게 한 후에 섬김이 있습니다. 섬김이 달리 말하면 성화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선행 말입니다. 


3) 나 자신을 드림


거룩함에 대해 이와 같이 깨끗해지는 것, 섬기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 전제로 부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화는 구별하는 것뿐 아니라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바쳐져야 성화입니다. 성화의 절정은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생명을 드리는 것만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이렇게 할 때 끝내 나를 짜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태원 목회할 때 이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좁은 그 장소에서 기도하고 말씀 준비하고 새벽마다 전도를 하는데, 한 명도 나오지 않으니 실망이 될 때 제가 그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시간과 땀을 드리는데 왜 열매가 없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너는 너 자신을 드리고 있는지 물어보시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15. 결론


15절은 빛 가운데 자녀로 말합니다. 저도 빛이 나에게 꽉 차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빛 가운데 16절, 17절,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는 것, 즉 마지막에 상급을 받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영화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18절, 기뻐하고 기뻐하는도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설교문을 써 온 것을 삼 분의 일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 기대고 의지하고 누리는 것이 성화입니다. 납작 엎드려 기도하는 것, 그 자리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고백입니다. 성화가 이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 의지하는 것입니다. 더 잘 의지하십니까, 더 어린아이와 같이 의지하고 계십니까. 힘줄을 기르고 근육을 키우는 것이 성화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행위가 없습니까. 이 감사와 기쁨이 있을 때 누구보다 잘 행하게 됩니다. 그것이 열매입니다. 상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