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믿음의 장(히 11장)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장은 어디일까요? 물론 성경에 많이 있지만, 오늘 본문이 속한 시편 51편,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지은 이 시편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의 밧세바를 범할 때 아쉽거나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항상 죄를 지을 때 보면 평화롭고 넘칠 때입니다. 다윗 역시 전쟁을 쉬니 밧세바가 눈에 띄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큰 기적 후에 큰 죄가 자주 일어납니다. 홍해를 건넌 후 마라의 쓴물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다를 마르게 해 주셨는데, 그것을 평생 기억할 것 같은데, 금새 잊어버리고 쓴물을 불평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의 기적을 받고 나서 곧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여 죄를 짓습니다. 노아의 홍수 후 곧바로 취하여 범죄한 모습이 나오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렸을 때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면서, 이제 전쟁의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면서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나, 할례를 거하게 하셔서 완전히 무능한 상태에서 여리고를 무너뜨리게 하셨으나, 금방 그것을 우리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걷는 것으로도 이 정도 했으면 조금만 더 하면 더 크게 되지 않겠냐는 생각, 내 자질과 공로를 세우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상 홍해 사건 후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다가 여리고 성 후에 그들이 이렇게 교만할 때 아이 성에서 첫 번째 패배를 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아무런 죄 지을 이유가 없을 때 죄를 짓습니다. 완전히 평화롭고 아무 일도 없을 때 아무 필요나 급박한 사정이 없이 하나님께 찬미하기보다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 인간임을 볼 수 있습니다.
2. 회개는 하나님께 죄를 토설하는 것이다
본문의 회개는 <기독신문>의 웨스트민스터 연재 중 20번째로 나가는 내용입니다. 회개는 우선 토설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첫 부분을 보면 '항상 내 죄가 내게 있나이다'라고 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토설합니다. 4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이것이 사실상 다윗의 신앙입니다. 사람이 아닌 주님 앞에 악을 행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죄를 행해도, 선을 행해도 하나님 앞에서 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 앞에서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은 해결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맺힙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토설하면 그것이 해결됩니다. 버릇 없고 염치 없이 보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죄도 그 질과 정도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다윗의 이 죄만큼 야비한 죄가 성경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충성한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 계획적으로 부하를 죽인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룟 유다보다 더 나쁜 죄를 지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죄의 성격을 보면, 4절에서 다윗의 회개는 참 염치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은 후 다윗이 바로 씻고 임무에 복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죄는 지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지었다고 해서 절망하면 안 됩니다. 죄 짓고 인간을 보면 절망합니다. 다윗이 절망하지 않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과 같은 눈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통찰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용서하시는 것이 주께 있습니다.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죄를 가져가시면 사유하심, 사하고 용서하심이 주께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3. 회개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회개할 때는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장난하듯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 통회하는 심령이라는 것입니다. 화살에 맞으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이 바로 죄를 지은 마음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우리의 상한 심령은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죄를 못 느낄 때보다 죄를 알고 뉘우칠 때 더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죄를 짓고 뉘우치지 않습니다. 떠올리는 것이 착한 마음인데 그것이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더 작은 일 하나로 힘들어합니다. 죄를 떠올려 뉘우치는 것이 상한 심령이 되고 힘들게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구하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에게 어렵고 사무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 마음이 사람에게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심령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는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으로 가야 합니다. 의사 앞에서 건강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병원의 의사에게 가는 것은 아픈 것을 보이러 가는 것입니다. 아픈 것을 자랑하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는 아픈 영, 상한 심령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에는 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 살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상한 것을 내어놓으면 의롭다 하심과 순전케 하심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난해도 용서해도 별 것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당시에는 커 보여도 지나면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4. 회개는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1). 앞의 두 가지가 있어도 의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는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사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러는데 저도 그랬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내가 죄로 인해 죽게 되었으니 수렁에서 건져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말씀의 연재 제목을 '회개의 비밀'로 쓰려고 합니다. 회개는 그저 반성문 쓰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5. 믿음, 회개, 죄 사함
예수님이 천국 복음의 시작을 알리면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첫 번째로 한 말이 이것입니다. 회개가 힘들고 괴로운 것이면 이렇게 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어두움을 밀어내고 우리를 수렁에서 건져 내는 것입니다. 그곳에 그저 두고는 새 옷을 입힐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아이가 더러운 데 빠지면 그 자리에서 씻기는 자가 없습니다. 먼저 건져 내서 깨끗한 곳에서 씻깁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우리가 믿어서 구원에 이르지만 사실상 믿음과 회개는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잡힌 것을 들으신 후 주님이 때가 찼다고 말씀하실 때 회개와 함께 믿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회개와 믿음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향수도 더러운 것을 씻은 후 뿌려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의 옷을 입으려면 회개로 죄 사함을 먼저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그 사도들을 보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높은 곳에 두신 것이 회개와 죄 사함을 주시려 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행 20:21)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 한 것은 1차~3차 전도여행,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유럽의 선교에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함은 반드시 회개가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것과 함께 자녀가 되는 달콤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눈물과, 옛 것을 버리는 눈물과 새 것을 얻는 눈물,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상한 심령일 것입니다. 옛 것을 지우고 새 것을 입는 것입니다. 비싼 향수를 받아도 천 원짜리 이천 원짜리 내 향수를 지워 내지 잘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6. 회개는 변화이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회개는 변화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제일 가치가 뭐냐고 물으면, 저는 주저없이 변화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은 변화의 책입니다. 그 변화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엡 4:22-24).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옛 것이, 이전 것이 새 것으로, 겉사람이 속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염려가 99%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여 신령한 복을 누릴까, 내 영혼의 평강을 얻을까, 어떻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까’라는 영의 생각과 영의 일을 하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합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으니 옛 것이 지나고 새 것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7. 회개에 합당한 열매
회개에는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육의 생각과 일을 버리고 영의 생각과 일을 취하면 즉시 열매가 맺습니다. 우리가 나무를 봅니다.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을 많은 열매가 맺힙니까. 영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천국 상급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나를 인정하는 이전 것이 지나가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를 부인하는 것이 있어야 열매가 맺힙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감람나무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옛 것을 지니고 있으면 돌포도나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두 가지, 죽임과 살림, 옛 것을 죽임과 새 것을 살림이 있어야 합니다. 종기가 있는 채로 새 살이 돋지 않습니다. 종기를 떼어내야 합니다. 인생 자체가 그렇습니다. 우리 몸도 옛 세포는 죽고 새 세포가 살아납니다. 우리 영도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아나야 합니다.
8. 옛 것은 죽이고 새 것은 살림
예전에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 생각하며 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일, 애매하게 당하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고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과 기도로 아뢰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 사람과 씨름하면 한 사람도 안 져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씨름하면 져 주시니 언제나 더 편하고 쉽습니다. 모든 일을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 풀립니다. 그것이 바로 옛 것을 죽이고 새 것을 살리는 일입니다. 옛 것을 죽이고 새 것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권능입니다. 우리 인간은 덕지덕지 붙일 수 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새 소망과 새 평화와 알 수 없는 기쁨, 넘치는 희락과 화평과 평강을 주십니다. 빛이 나를 온전히 휘감아서 빛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죄는 싫고 관심도 없고 의라면 눈이 반짝반짝 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3-4). 세상의 것을 토해내고 새 것을 먹어야 합니다. 육적인 것을 뽑아내고 신령한 것을 거두어야 합니다(고전 9:12). 설교를 준비하며 보니 성경 전체가 다 이렇습니다.
9. 회개의 열매는 부요하다
이전 것을 두고 그 위에 쌓으라는 일이 없습니다. 항상 이전 것을 지워 내고 새 것을 쓰라고 하십니다. 글을 쓰다 보면 지우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나중에 조금 경험이 생기면 지우는 것을 잘 합니다. 없애야 더 많이 붙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글을 쓰는 즐거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애써 쓴 글을 지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를 지운다는 것은 이미 두 개를 취할 방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울 줄 모르는 사람은 취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삼십 배, 육십 배를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썩어서 한 배, 두 배가 아닌 삼십 배, 육십 배를 거둔다고 합니다. 육적인 것을 뽑아내면 신령한 것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먼저 그 나라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높아지고 부유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의를 구할 때 그리되길 원합니다. 죄에 대해 일등하지 마십시오. 의에도 일등하고 죄에도 일등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호와께 잘 보이는 사람이 사람에게도 잘보이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를 끝끝내 사람에게서도 세웁니다. 다윗에게 사무엘이 끝내 찾아와 기름을 붓습니다. 요셉도 요즘 말로 하면 왕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을 다니엘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알면 그것이 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 주시면 그것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도 얘기한 것처럼 직선의 부요함, 직선적 신앙, 즉 옛 것은 잘라내고 육에 속한 것은 소멸되는 그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관심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직선적인 신앙이라고 해서 무모하고 사랑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네트워킹 등이 더 고도화되어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합니다. 눈을 뜨면 얽히고 설켜 힘듭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하나님이 잘라내고 정리하십니다. 그런 부요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충만함을 얻으려면 깨끗하게 비워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전쟁을 하기 전에 항상 비우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싸우는 방법이었습니다.
10. 회개는 믿음의 결과이며 공로가 없다
이 세상의 삶을 살 때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온전케 하십니다. 회개에는 공로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요란하게 회개를 했을지라도, 회개는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뿐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줄 뿐입니다. 회개가 믿음에 앞서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 믿음을 받고 나서야 회개합니다. 삭개오도 사마리아 여인도 바뀌어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바뀐 것입니다. 십자가의 강도도 바뀌어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얻은 것이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11. 회개의 열매는 달콤하다
간혹 기도원 같은데 가면 회개를 얼마나 제대로 해야 회개의 영이 임하는지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 만나면 내 모습이 보여 쓴 쑥과 같이 되지만 그것에 꿀이 발라져 달콤하게 됩니다. 저도 몇번 그랬습니다. 내 모습을 보면 눈물 마저도 쓰라린 눈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 심령에는 벌써 달콤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의 비밀입니다. 회개는 기쁜 것입니다. 죄의 덫에 권세에 매여 있다가 자유롭게 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삭개오가 기뻐서 회개하며 두 배, 세 배 갚겠다고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물동이를 던지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거합니다. 또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니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가던 그가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독하고 악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회개시켜서 사용하십니다. 교회 핍박을 위해 가장 독이 오른 상태의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눈을 멀게 하고 사흘만에 예수 잡으러 가던 사람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고백과 똑같은 고백을 한 것입니다.
회개는 쑥과 같으나 답니다. 회개는 반성문 쓰는 것 아닙니다. 평생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가 반성문이라면 슬픈 일입니다. 회개는 꿀을 섞어 먹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회개의 원인은 내 열심에 있지 않습니다. 우선 토설하고 내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여호와의 긍휼하심에 의뢰해야 합니다. 회개는 마지못해, 사람 앞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은 사제 앞에 가서 고행성사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1년에 한 번 가도 된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사제부터 떠오릅니다. 그러나 나를 온전하게도 하고 새롭게도 하시는 예수 앞에 상한 심령, 그저 있는 그대로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고쳐서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회개 후는 회개 전보다 나아집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의 마음이 찢어지고 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다 그렇습니다. 교회 오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 모두에게는 이렇게 상한 심령을 주셔서 마음을 하나님이 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토설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12. 회개는 하나님의 일이다
미국이 요즘 많이 어려운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를 찾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라틴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회개는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즉 회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고 거룩함은 내가 거룩해지는 것임에도 하나님의 상급인 것처럼, 회개도 내가 하지만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회개할 줄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기도할 줄 모른다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압핀에 찔리면 "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는 힘들고 물에 빠질 때, '건져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무슨 기도에 형식이 필요합니까. 무슨 회개에 능력이 경험이 필요합니까? 죄 많이 짓고 회개 많이 한 사람이 회개를 잘합니까? 경험도 능력도 아닌,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뿐입니다.
13.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계속적 회개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계속적인 회개가 있습니다. 한번 회개해서 다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 죄의 소욕이 있으므로 계속적인 죄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이 회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예배 중에 이루어집니다. 골방에 혼자 앉아 하는 것보다 가장 첫 번째로 속죄제, 번제, 우리 자신을 드리는 예배에서 가장 주되게 이루어집니다. 평소에 회개 안 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첫째, 예배에 나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항상 목회기도 할 때 회개기도 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예배가 바로 회개입니다.
둘째, 기도가 회개입니다. 본문 51절은 회개입니다. 회개가 기도입니다. 회개 없는 기도 없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맡기고 예상도, 기대도 내 마음대로 하지 마십시오. 그저 잠잠히 믿음 가지고 회개하십시오. 심지어 기도가 안 되거든 그것마저도 그저 담담히 고백하십시오. 안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슨 영적 침체기니 하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14. 결론: 미스바의 회개
에스라서에 보면 모여서 회개하는 유명한 것이 미스바의 기도와 함께 9장 4절이 나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스 9:4).
둘째,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스 9:8).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 거룩한 처소에 못과 같이 박혀 있는 자, 예배 중심, 교회 중심에 회개가 있습니다.
셋째, 백성과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이스라엘에게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에 떨고 거룩한 처소에 못이 박힌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모두가 함께 믿어야 합니다.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회개하니 이스라엘에게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20200607][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0)] 회개의 은혜 (시 51:1-5, 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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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
1. 인간은 자만할 때 죄를 짓는다
지난 주에는 믿음의 장(히 11장)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장은 어디일까요? 물론 성경에 많이 있지만, 오늘 본문이 속한 시편 51편,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지은 이 시편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의 밧세바를 범할 때 아쉽거나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항상 죄를 지을 때 보면 평화롭고 넘칠 때입니다. 다윗 역시 전쟁을 쉬니 밧세바가 눈에 띄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큰 기적 후에 큰 죄가 자주 일어납니다. 홍해를 건넌 후 마라의 쓴물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다를 마르게 해 주셨는데, 그것을 평생 기억할 것 같은데, 금새 잊어버리고 쓴물을 불평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의 기적을 받고 나서 곧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여 죄를 짓습니다. 노아의 홍수 후 곧바로 취하여 범죄한 모습이 나오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렸을 때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면서, 이제 전쟁의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면서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나, 할례를 거하게 하셔서 완전히 무능한 상태에서 여리고를 무너뜨리게 하셨으나, 금방 그것을 우리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걷는 것으로도 이 정도 했으면 조금만 더 하면 더 크게 되지 않겠냐는 생각, 내 자질과 공로를 세우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상 홍해 사건 후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다가 여리고 성 후에 그들이 이렇게 교만할 때 아이 성에서 첫 번째 패배를 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아무런 죄 지을 이유가 없을 때 죄를 짓습니다. 완전히 평화롭고 아무 일도 없을 때 아무 필요나 급박한 사정이 없이 하나님께 찬미하기보다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 인간임을 볼 수 있습니다.
2. 회개는 하나님께 죄를 토설하는 것이다
본문의 회개는 <기독신문>의 웨스트민스터 연재 중 20번째로 나가는 내용입니다. 회개는 우선 토설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첫 부분을 보면 '항상 내 죄가 내게 있나이다'라고 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토설합니다. 4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이것이 사실상 다윗의 신앙입니다. 사람이 아닌 주님 앞에 악을 행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죄를 행해도, 선을 행해도 하나님 앞에서 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 앞에서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은 해결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맺힙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토설하면 그것이 해결됩니다. 버릇 없고 염치 없이 보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죄도 그 질과 정도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다윗의 이 죄만큼 야비한 죄가 성경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충성한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 계획적으로 부하를 죽인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룟 유다보다 더 나쁜 죄를 지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죄의 성격을 보면, 4절에서 다윗의 회개는 참 염치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은 후 다윗이 바로 씻고 임무에 복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죄는 지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지었다고 해서 절망하면 안 됩니다. 죄 짓고 인간을 보면 절망합니다. 다윗이 절망하지 않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과 같은 눈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통찰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용서하시는 것이 주께 있습니다.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죄를 가져가시면 사유하심, 사하고 용서하심이 주께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3. 회개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회개할 때는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장난하듯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 통회하는 심령이라는 것입니다. 화살에 맞으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이 바로 죄를 지은 마음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우리의 상한 심령은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죄를 못 느낄 때보다 죄를 알고 뉘우칠 때 더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죄를 짓고 뉘우치지 않습니다. 떠올리는 것이 착한 마음인데 그것이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더 작은 일 하나로 힘들어합니다. 죄를 떠올려 뉘우치는 것이 상한 심령이 되고 힘들게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구하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에게 어렵고 사무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 마음이 사람에게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심령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는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으로 가야 합니다. 의사 앞에서 건강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병원의 의사에게 가는 것은 아픈 것을 보이러 가는 것입니다. 아픈 것을 자랑하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는 아픈 영, 상한 심령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에는 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 살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상한 것을 내어놓으면 의롭다 하심과 순전케 하심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난해도 용서해도 별 것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당시에는 커 보여도 지나면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4. 회개는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1). 앞의 두 가지가 있어도 의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는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사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러는데 저도 그랬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내가 죄로 인해 죽게 되었으니 수렁에서 건져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말씀의 연재 제목을 '회개의 비밀'로 쓰려고 합니다. 회개는 그저 반성문 쓰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5. 믿음, 회개, 죄 사함
예수님이 천국 복음의 시작을 알리면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첫 번째로 한 말이 이것입니다. 회개가 힘들고 괴로운 것이면 이렇게 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어두움을 밀어내고 우리를 수렁에서 건져 내는 것입니다. 그곳에 그저 두고는 새 옷을 입힐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아이가 더러운 데 빠지면 그 자리에서 씻기는 자가 없습니다. 먼저 건져 내서 깨끗한 곳에서 씻깁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우리가 믿어서 구원에 이르지만 사실상 믿음과 회개는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잡힌 것을 들으신 후 주님이 때가 찼다고 말씀하실 때 회개와 함께 믿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회개와 믿음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향수도 더러운 것을 씻은 후 뿌려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의 옷을 입으려면 회개로 죄 사함을 먼저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그 사도들을 보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높은 곳에 두신 것이 회개와 죄 사함을 주시려 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행 20:21)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 한 것은 1차~3차 전도여행,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유럽의 선교에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함은 반드시 회개가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것과 함께 자녀가 되는 달콤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눈물과, 옛 것을 버리는 눈물과 새 것을 얻는 눈물,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상한 심령일 것입니다. 옛 것을 지우고 새 것을 입는 것입니다. 비싼 향수를 받아도 천 원짜리 이천 원짜리 내 향수를 지워 내지 잘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6. 회개는 변화이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회개는 변화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제일 가치가 뭐냐고 물으면, 저는 주저없이 변화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은 변화의 책입니다. 그 변화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엡 4:22-24).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옛 것이, 이전 것이 새 것으로, 겉사람이 속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염려가 99%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여 신령한 복을 누릴까, 내 영혼의 평강을 얻을까, 어떻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까’라는 영의 생각과 영의 일을 하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합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으니 옛 것이 지나고 새 것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7. 회개에 합당한 열매
회개에는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육의 생각과 일을 버리고 영의 생각과 일을 취하면 즉시 열매가 맺습니다. 우리가 나무를 봅니다.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을 많은 열매가 맺힙니까. 영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천국 상급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나를 인정하는 이전 것이 지나가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를 부인하는 것이 있어야 열매가 맺힙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감람나무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옛 것을 지니고 있으면 돌포도나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두 가지, 죽임과 살림, 옛 것을 죽임과 새 것을 살림이 있어야 합니다. 종기가 있는 채로 새 살이 돋지 않습니다. 종기를 떼어내야 합니다. 인생 자체가 그렇습니다. 우리 몸도 옛 세포는 죽고 새 세포가 살아납니다. 우리 영도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아나야 합니다.
8. 옛 것은 죽이고 새 것은 살림
예전에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 생각하며 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일, 애매하게 당하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고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과 기도로 아뢰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 사람과 씨름하면 한 사람도 안 져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씨름하면 져 주시니 언제나 더 편하고 쉽습니다. 모든 일을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 풀립니다. 그것이 바로 옛 것을 죽이고 새 것을 살리는 일입니다. 옛 것을 죽이고 새 것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권능입니다. 우리 인간은 덕지덕지 붙일 수 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새 소망과 새 평화와 알 수 없는 기쁨, 넘치는 희락과 화평과 평강을 주십니다. 빛이 나를 온전히 휘감아서 빛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죄는 싫고 관심도 없고 의라면 눈이 반짝반짝 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3-4). 세상의 것을 토해내고 새 것을 먹어야 합니다. 육적인 것을 뽑아내고 신령한 것을 거두어야 합니다(고전 9:12). 설교를 준비하며 보니 성경 전체가 다 이렇습니다.
9. 회개의 열매는 부요하다
이전 것을 두고 그 위에 쌓으라는 일이 없습니다. 항상 이전 것을 지워 내고 새 것을 쓰라고 하십니다. 글을 쓰다 보면 지우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나중에 조금 경험이 생기면 지우는 것을 잘 합니다. 없애야 더 많이 붙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글을 쓰는 즐거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애써 쓴 글을 지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를 지운다는 것은 이미 두 개를 취할 방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울 줄 모르는 사람은 취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삼십 배, 육십 배를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썩어서 한 배, 두 배가 아닌 삼십 배, 육십 배를 거둔다고 합니다. 육적인 것을 뽑아내면 신령한 것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먼저 그 나라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높아지고 부유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의를 구할 때 그리되길 원합니다. 죄에 대해 일등하지 마십시오. 의에도 일등하고 죄에도 일등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호와께 잘 보이는 사람이 사람에게도 잘보이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를 끝끝내 사람에게서도 세웁니다. 다윗에게 사무엘이 끝내 찾아와 기름을 붓습니다. 요셉도 요즘 말로 하면 왕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을 다니엘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알면 그것이 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 주시면 그것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도 얘기한 것처럼 직선의 부요함, 직선적 신앙, 즉 옛 것은 잘라내고 육에 속한 것은 소멸되는 그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관심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직선적인 신앙이라고 해서 무모하고 사랑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네트워킹 등이 더 고도화되어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합니다. 눈을 뜨면 얽히고 설켜 힘듭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하나님이 잘라내고 정리하십니다. 그런 부요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충만함을 얻으려면 깨끗하게 비워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전쟁을 하기 전에 항상 비우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싸우는 방법이었습니다.
10. 회개는 믿음의 결과이며 공로가 없다
이 세상의 삶을 살 때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온전케 하십니다. 회개에는 공로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요란하게 회개를 했을지라도, 회개는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뿐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줄 뿐입니다. 회개가 믿음에 앞서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 믿음을 받고 나서야 회개합니다. 삭개오도 사마리아 여인도 바뀌어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바뀐 것입니다. 십자가의 강도도 바뀌어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얻은 것이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11. 회개의 열매는 달콤하다
간혹 기도원 같은데 가면 회개를 얼마나 제대로 해야 회개의 영이 임하는지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 만나면 내 모습이 보여 쓴 쑥과 같이 되지만 그것에 꿀이 발라져 달콤하게 됩니다. 저도 몇번 그랬습니다. 내 모습을 보면 눈물 마저도 쓰라린 눈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 심령에는 벌써 달콤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의 비밀입니다. 회개는 기쁜 것입니다. 죄의 덫에 권세에 매여 있다가 자유롭게 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삭개오가 기뻐서 회개하며 두 배, 세 배 갚겠다고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물동이를 던지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거합니다. 또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니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가던 그가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독하고 악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회개시켜서 사용하십니다. 교회 핍박을 위해 가장 독이 오른 상태의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눈을 멀게 하고 사흘만에 예수 잡으러 가던 사람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고백과 똑같은 고백을 한 것입니다.
회개는 쑥과 같으나 답니다. 회개는 반성문 쓰는 것 아닙니다. 평생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가 반성문이라면 슬픈 일입니다. 회개는 꿀을 섞어 먹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회개의 원인은 내 열심에 있지 않습니다. 우선 토설하고 내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여호와의 긍휼하심에 의뢰해야 합니다. 회개는 마지못해, 사람 앞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은 사제 앞에 가서 고행성사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1년에 한 번 가도 된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사제부터 떠오릅니다. 그러나 나를 온전하게도 하고 새롭게도 하시는 예수 앞에 상한 심령, 그저 있는 그대로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고쳐서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회개 후는 회개 전보다 나아집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의 마음이 찢어지고 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다 그렇습니다. 교회 오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 모두에게는 이렇게 상한 심령을 주셔서 마음을 하나님이 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토설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12. 회개는 하나님의 일이다
미국이 요즘 많이 어려운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를 찾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라틴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회개는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즉 회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고 거룩함은 내가 거룩해지는 것임에도 하나님의 상급인 것처럼, 회개도 내가 하지만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회개할 줄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기도할 줄 모른다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압핀에 찔리면 "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는 힘들고 물에 빠질 때, '건져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무슨 기도에 형식이 필요합니까. 무슨 회개에 능력이 경험이 필요합니까? 죄 많이 짓고 회개 많이 한 사람이 회개를 잘합니까? 경험도 능력도 아닌,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뿐입니다.
13.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계속적 회개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계속적인 회개가 있습니다. 한번 회개해서 다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 죄의 소욕이 있으므로 계속적인 죄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이 회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예배 중에 이루어집니다. 골방에 혼자 앉아 하는 것보다 가장 첫 번째로 속죄제, 번제, 우리 자신을 드리는 예배에서 가장 주되게 이루어집니다. 평소에 회개 안 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첫째, 예배에 나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항상 목회기도 할 때 회개기도 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예배가 바로 회개입니다.
둘째, 기도가 회개입니다. 본문 51절은 회개입니다. 회개가 기도입니다. 회개 없는 기도 없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맡기고 예상도, 기대도 내 마음대로 하지 마십시오. 그저 잠잠히 믿음 가지고 회개하십시오. 심지어 기도가 안 되거든 그것마저도 그저 담담히 고백하십시오. 안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슨 영적 침체기니 하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14. 결론: 미스바의 회개
에스라서에 보면 모여서 회개하는 유명한 것이 미스바의 기도와 함께 9장 4절이 나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스 9:4).
둘째,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스 9:8).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 거룩한 처소에 못과 같이 박혀 있는 자, 예배 중심, 교회 중심에 회개가 있습니다.
셋째, 백성과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이스라엘에게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에 떨고 거룩한 처소에 못이 박힌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모두가 함께 믿어야 합니다.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회개하니 이스라엘에게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