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2][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9)] 섭리의 비밀 (행 4:23-2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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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2][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9)] 섭리의 비밀 (행 4:23-28) 문병호 목사


(행 4: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행 4: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행 4: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행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행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행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하나님의 섭리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섭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때 성령을 받고, 베드로와 요한이 말씀을 전하고 앉은뱅이가 치유되어 전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장로들과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때 그 사도들이 오늘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도 헤롯과 세상 군왕들의 핍박을 받았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라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 선하신 뜻인데, 그 뜻의 내용은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데, 이 죽음을 그들, 즉 안나스와 가야바와 헤롯과 빌라도와 군병과 이방인들이 동원되어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요새 섭리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이러스에도 섭리가 있습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을 해 보니, 유럽이나 미국은 이번 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부정적인 평가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국민성이 바이러스을 대처하기에는 아주 좋은 국민성으로 평가되는 듯합니다.



2. 미리 보시는 하나님


섭리(Providence). 미국에 '프로비던스'라는 도시도 있습니다. 도시 이름이 섭리입니다. 17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영국을 떠나 풍랑을 겪으며 그곳에 도착했으니 그곳을 섭리라고 부를 정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pro'는 먼저라는 의미이고, 'vidence'는 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라틴어로 'providentia'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역대하에 보면 하나니 선지자가 나옵니다. 아사 왕이 처음에는 잘 했다가, 전쟁의 위험이 있을 때, 아람과 동맹을 맺고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니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것이 미리 보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15:3을 보면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라고 합니다. 또한 성경에는 감찰, 권고, 권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권고에서 '고'(顧)자는 '돌아볼 고'입니다. 권념(眷念)은 돌아보며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십니다.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 시편 33: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것이 하나님이 미리 보시는 것입니다. 



3. 미리 보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미리 보신다는 것이 섭리의 끝일까요? 하나님은 대대로, 영원히 생각하시면, 계획하시면, 그 보신 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빛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칼빈이 말했듯이, 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보시면 모든 것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시고, 그 만물을 말씀으로 붙드신다고 히브리서 1:2-3에서 말씀합니다. "...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 하나님이 우리를 계속 살피십니다. 이것이 만물을 보시면서 붙드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하듯이 말입니다. 미리 보신다는 것은 붙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에게 속히 옵니다. 시 147: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면, 뜻하시면 즉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4. 섭리의 범위: 만유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십니다. 홍해를 가르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죽은 듯 방불한 자가 자녀도 낳게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작은 것도 돌보십니다. 하나님이 작은 새도 돌보시고, 우리의 머리털도 다 헤아리십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풀도 입히십니다. 하나님은 미리 보시며 보존하시고, 미리 보시며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미리 보심이 없으면 사시사철의 운행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을에 거둘 걸 보시고 봄에 뿌리게 하시고, 여름에 비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헤아리시지 않으면 그 운행, 보존, 통치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돌보심이 대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다 가닿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돌보십니다.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시 147:9).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시 147:8).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섭리는 뭔가 대단한 일이기보다는 우리의 호흡과 일상이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호흡과 생명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7:25-28 "...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인간의 창조와 타락과 구원이 가장 큰 섭리입니다. 빗방울 하나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섭리가 아니라면 큰 강도 섭리로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대와 지경을 정하셔서 그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공기도 마음껏 마실 수 없는 이 때, 감사할 것을 더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5. 언약에 따라 보존하시는 하나님: 자연언약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하시고 다 정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는 정리할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하나님은 미리를 다 아시고 정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작정에 따라서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와 언약을 맺으셔서, 약속하신 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이후에 약속하셔서, 낮과 밤, 추위와 더위, 심음과 거둠이 땅이 있을 동안 계속됨을 믿습니다. 이것을 자연언약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6. 통상섭리와 비상섭리


1) 통상섭리


예레미야 31:35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 이것도 계속됩니다. 이것을 통상섭리, 또는 일반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통상 누리고, 예측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감사하지 않고 자연히 그러하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두십니다. 


2) 비상섭리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통상섭리 외에 비상한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섭리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섭리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팔리는 일입니다. 이 일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바를 이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무도 이것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구덩이와 감옥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높이십니다. 그래서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은 애굽과 야곱의 12자녀를 기근에서 구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보존되고 성장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형들의 질투를 사용했고, 보디발의 아내의 정욕을 사용하셨습니다. 누가 질투를 받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한 것들을 사용하여 큰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인과적인 인간 논법으로 이것에 가닿기 힘듭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기도 힘듭니다. 자신이 고난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닿을 수 없으나, 하나님은 미리 보십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전쟁이 많은 곳임을 아셔서 이스라엘을 고센 땅에 보존하시며 성장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 중에서도 가장 큰 섭리는,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고 악한 자들의 손을 들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법 없는 자들, 즉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자들, 율법을 받지 않은 자들을 들어서 이방의 법, 즉 빌라도의 법, 로마의 법을 이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받았습니다.



7.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맡기라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절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조급해서 빨리 크게 되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연대와 지경을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논법과 질서로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유창하게 요구하는 기도도 좋지만, 무엇을 구할지 몰라서 “주여, 주여” 하는 기도도 귀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경험을 한 것이 박사 학위 받을 때였습니다. 그 학위를 받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성한 발을 가지고 나쁜 데 가는 것보다 발이 바빠서 나쁜 데 가지 않는 것이 좋게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이 최선이십니다. 하나님만이 그 길을 아십니다. 그 대표적인 섭리가 요셉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불 때, 기본 상식은 배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배를 떠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할 수 있지만, 사실상 배를 버리지 않으면 배에 갇혀 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서는 작정을 갖고 계셨습니다. 즉 황제 앞에 순교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항해를 지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의 태를 닫으셨지만, 또한 하나님은 그 태를 열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한나와 같이 힘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기도를 받으시셔 가장 적당한 때에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어려운 듯하지만 극적으로 높이십니다. 하만은 장대를 만들어 모르드개를 죽이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가 거기에 걸리고 모르드개는 높임을 받았습니다. 

인생에도 큰 도움 닿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난, 즉 애매히 고난 받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빛이 터져 나와 어둠이 패배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미리 보십니다. 가장 안 될 때가, 가장 잘 되기 직전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완전히 무릎 꿇게 된 때입니다. 모든 것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저는 선한 일도 없고 악한 일도 없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섭리입니다. 선도 섭리이고 악도 섭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떤 일로 기도하면, 그 일은 좋은 일입니다. 나로 기도케 하는 그 일은 좋은 일이지만,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시키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 로마서 11:32을 보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이것을 오해하시면 안 되는데, 우리가 불순종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도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8. 결론


베드로전서 2:10 “...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지금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고 있습니다. 애굽의 악질 독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할 정도입니다. 바이러스만 하나님의 섭리라고 여기지 마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시는 공기에 감사하십시오.

베드로전서와 후서에 긍휼이 많이 언급됩니다. 여러분, 여호와가 주시는 긍휼을 입어야 합니다. 긍휼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진노의 그릇이 아니라 긍휼의 그릇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것이 여호와의 노하심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내 불순종조차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섭리가 있다면, 기도하라는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기도만큼 소망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받는 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분토만도 없습니다. 이러한 긍휼이 교회와 성도님들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