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6][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 신앙고백서의 의의와 가치 (딤후 3:14-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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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6][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 신앙고백서의 의의와 가치 (딤후 3:14-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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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 3: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 3: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녹취록>




1. <기독신문> 연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신도게요서, 신경)를 다음 주부터 <기독신문>에 연재를 해서 32주 정도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원래 33장인데 30주로 맞추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단이고, 장로교로서 보수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보수신학을 표방하며 보수신앙을 가진 교단이 있지만 합동 측이 정통에 있고 말씀에 힘쓰고 있습니다. <기독신문>은 많은 교회에서 보므로 당회나 성도들이 읽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교육을 263주간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많이 미약하지만, 제가 꼼꼼히 작성하고 성경 구절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보시고 때가 되어 쓰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참 귀한 기회로 여깁니다. 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원래 영어이지만, 라틴어도 있습니다. 저는 이 둘을 함께 보며 감히 “정역”, 즉 바르게 번역하고자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각 교단에서 봅니다. 먼저는 번역을 싣고, 신학적 해설을 넣고, 신앙적 적용이라는 세 구조로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길 소망을 가져봅니다.



2.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역사


객관적으로 봐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최고의 신경입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을 언약 관점에서 서술한 최고의 신경입니다.

런던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는데, 1642-1647년, 5년 6개월 22일 동안, 1163회 모였습니다. 이것은 회의라기보다 기도회였습니다. 매번 회의할 때마다 2시간 예배가 있고, 금식을 6시간씩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는 험악했습니다. 하나님이 잉글랜드가 회의의 대다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당시 영국 왕이 교회의 수장일 때, 어떻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장로교 신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기이합니다. 역사를 꼼꼼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오밀조밀하게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있을 수가 없는 회의였으나, 오히려 역작용으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가장 많은 수가 청교도 목사였는데, 121명이었습니다. 회중교회 목사가 다수 있었고, 감독교회 목사가 몇 명, 국가교회(에라스티안) 목사가 3명이었습니다. 존 녹스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목사들도 6명을 파송했는데, 그중 4명이 웨스트민스터 문건의 기초를 놓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언약성도들의 직계들입니다. 문건이 금방 금방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1647년 11월에 회의를 마쳤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채택한 나라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였습니다. 그 만큼 영국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많았습니다. 



3.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이 3개를 묶어서 우리가 배우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용도는 성경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성경은 ... 온전하게 하며”라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신자와 성도와 교인으로서 (마땅히) 바르게 서야 할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고백입니다. 저는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소요리문답은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1차적으로 교육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신앙 전승을 위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입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대요리문답은 한마디로 목회자의 지침서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설교의 지침서입니다. 

소요리문답은 배우는 자와 말씀을 듣는 자를 위하여 작성되었고, 대요리문답은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자를 위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은 심오함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용의 분량과 상세함에 차이가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은 표준문서라고 불립니다. 

역사적으로보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보다 대요리, 소요리문답 만드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습니다. 문답은 부록같이 만든 것이 아니라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았습니다. 

이와 함께 예배 지침서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예배 모범입니다. 또한 장로교 정치 양식도 만들었습니다. 장로교는 두 가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즉, 참여와 질서입니다. 참여만 이야기하고 질서가 없으면 회중교회입니다. 질서만 이야기하고 참여가 없으면 감독교회입니다. 감독교회의 극단적 형태가 로마 가톨릭입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참여와 질서입니다. 이러한 제 정의가 괜찮을 것입니다. 어떤 직분과 은사가 있는 것이 장로교 정치 양식입니다. 급변하는 17세기 상황에서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시편 찬송도 만들어졌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전체 교회를 걱정하고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번에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읽으며, 그 역사 앞에서 숙연해졌습니다.



4. 정통 신앙의 계승


오직 기록된 말씀이 성경입니다. 15절을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성경에 모두 기록해 주셨습니다. 충족하게, 완전하게, 신령하게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성령의 감동이 있으면 단순하게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충족성, 완전성, 신령성, 단순성이 성경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 배운다는 것은 일단 받는 것이고, 확실한 것은 들이는 것입니다. 즉,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확신한다는 것은 나의 고백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롬 10:10). 받아 들인 말씀에 거해야 합니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14절) 저는 이것이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즉 정통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굳이 얘기하자면, 예수님, 선지자와 사도, 어거스틴, 칼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대적 전승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서, 즉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있습니다. 오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선지자이고,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도입니다.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신구약입니다. 우리의 계대에 사람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들어갑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15절). 이 “어려서”는 단지 어린 아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이것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지식을 가르쳤음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믿음이 언급됩니다. 지식과 믿음이 함께 있게 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절).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3:1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즉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5. 지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지식


15절에서 큰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함께 역사할 때, 지혜, 즉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됩니다. 제가 기독교강요 첫 번째 각주에 지식과 지혜에 관해서 넣었습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식을 같이 쓰는데, 이 지혜라는 말은 살아 있는 지식, 믿음의 지식이다. 본문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운데서의 지식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믿음의 지식은 생명의 지식이고, 생명의 지식이 지혜입니다. 잠언과 창세기에 “생명 나무”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혜는 생명의 지식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 가운데서의 지식이기 때문에 생명의 지식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갖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식을 가져서, 그를 믿는 가운데서 지식을 가져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 즉 생명의 지식을 가집니다. 이것은 언약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신구약을 알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알아져야 합니다. 즉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참 지식은 모두 지혜입니다. 칼빈은 지혜와 지식을 같이 사용합니다. “모든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졌나니” 주어는 지혜이고, 술어는 지식을 사용했습니다. 즉 둘을 같이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식,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지게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 



6.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리


물론 구원은 단번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믿음의 선물로 이르지만, 여기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살아남과 살아감, 즉 16-17절의 모든 영역을 포괄합니다.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7절). 이것은 거듭나서 그저 생명만 갖는 것이 아니라, 살아감도 온전하게 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생명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믿음으로 그것을 배워서 지혜를 갖추면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합니다. 

여러 신앙고백서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 그중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신 의 가운데, 그저 가볍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급스럽고 고상한 신앙생활을 하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오해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율법주의이고 딱딱하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포도원 일꾼으로 일시킨다고 은혜가 없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야말로 가장 은혜가 넘치고, 생명과 생활에 딱 가닿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의 삶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가장 강조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주 안에 능치 못함이 없음을 말합니다. 



7. 시대의 신앙을 지켜낸 신앙고백서


당시에는 전쟁이 있던 시대입니다. 왕도 교수형 당하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교회가 다시 말씀 위에 서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에는 신앙의 도전이 많았습니다. 당시 대륙의 데카르트주의가 다시 일어나 섞이는 신앙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소우물 학파입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를 받아들인 곳에서는 그러한 신앙을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화란에서는 도르트신경이 있어 그러한 신앙을 또한 막아냈습니다. 이처럼 그때 화란이 도르트신경으로 신앙을 지켰고, 영국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로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그것들이 보수신학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길레스피가 웨스트민서터 신앙고백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하나님, 우리 교회에서 복지병원을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때까지 이런 기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큰 교회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오늘은 ‘십자가지기교회에서 하거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왜 우리 교단은 총신대학교만 있냐고 생각했습니다. 그 옆에 복지병원이 있어서 남을 돕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지금 연로하신 분들을 위한 요양병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병원이 태부족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은 멀쩡하다고 쓰시지 않고, 중심이 합해야 쓰십니다. 

하나님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만드셔서, 신앙의 유산이 미국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화란에서 도르트신조가 있어서 수상, 국회의원을 신학자들이 했습니다. 신앙에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쓰십니다. 여러분, 기도부탁드립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진리의 말씀으로 다잡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우리 교단에서 채택했고, 12신조라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8. 성경에 대한 높은 견해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에서 언급됩니다. 사실상 성경을 제일 먼저 다루는 신경이 드믑니다. 제1장에서 성경은 우리의 교훈과 삶의 규범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령으로 영감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자이기에 성경에 권위가 있다. 66권 정경을 받고, 다른 것들은 모두 세상 책이다. 이렇게 정확하게 이야기한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밖에 없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이 바로 우리의 생명뿐만 아니라 생활까지 포괄한다고 가르칩니다(딤후 3:1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이 진리의 규범이며 생명의 규범입니다. 매우 심오합니다.

장로교는 관념적이고 삶이 없다는 얘기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연장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제1장은 성경, 제2-4장은 하나님과 작정과 창조, 제5장은 섭리, 제6장은 인간의 타락, 제7-8장은 언약, 제9장은 자유의지 없음, 제10-24장은 성도의 구원과 삶을 말합니다. 제25-31장은 교회와 국가에 관한 것입니다. 제32-33장은 사후 상태, 죽은 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을 다룹니다.

다음 주부터 성경에 대해 다룹니다. 이번 기회에 잘 새기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9. 결론


어쨌거나 진리가 힘입니다.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힘인데, 여호와를 알아야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다시 겨자씨 정신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