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9][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3)]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 (벧후 1:20-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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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3)]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 (벧후 1:20-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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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 1:20)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 1: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녹취록>



1. 인생의 모든 답은 성경에 있다 


우리는 성경에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는 기계의 매뉴얼이나 수학공식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성경에는 없는 답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물으면 "내가 길이요"라고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라는 것을 성경이 기록하여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뭘 먹고 살아야 하냐"라고 물으면 성경은 "내가 떡이요 생명의 양식이다"라는 답을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내가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도, 살 수도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철학자들이 가장 고심하여 던지는 질문인 처음과 끝 역시 과학자들이 묻는 방식의 답은 아니라도 더 크고 본질적인 답이 있습니다.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

우리가 살아갈 때 눈물과 질곡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웃어도 속에는 역경과 고난과, 나와 가족으로 말미암은 애통함이 있고 그것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집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정확한 답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입니다. 

무슨 질문이든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하여 답을 주십니다. 전쟁이 일어나 어떻게 골리앗의 군대를 이길까, 우리가 고민을 할때 성경에 답이 없어 보여도 다윗이 한 것처럼 성경은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와 군장과 분깃과 창이다"라고 합니다. 다윗의 시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우리가 받습니다. 

인생은 아주 구체적인 답을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넘어서면 인간은 아무 답도 없습니다. 병원에 가도, 기계 하나에 대해서도 우리는 답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 물으면 궁극적인 답을 주십니다. 의사가 줄 수 없는, 어떤 기능인이 줄 수 없는, 박사나 철학자가 줄 수 없는 답을 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2. 성경의 내용


우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6조 부분을 보면, 성경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사람의 구원과 믿음과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전체 계획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많이 은혜를 받습니다. 전에는 이것이 익숙하긴 했어도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첫재, 성경에 기계적인 공식은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구원, 믿음과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추상적인 것 같아도 이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인생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이 땅에 와서 우리가 사는 목적은 나의 부귀와 영화와 명예가 아닙니다. 부귀 영화는 십 년도 가지 않습니다. 꽃은 십 일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고, 주에게서 나오기에 영광이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 하나님의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함께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요 10:30).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주이십니다(고전 2:8). 주님과 함께 있으면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영광의 주이십니다. 밥을 주면 식당의 주인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영광의 주인이십니다.

둘째, 성경에는 사람의 구원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우리 인생은 백주에 대로를 활보하는 듯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부 물 속에 빠진 인생들이요, 그것에서 건져 내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 도가 구원의 도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째, 성경에는 믿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믿음의 말씀이요, 예수님을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살아 있다는 모든 현상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모든 모습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바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보면 살아 있음은 호흡입니다. 영적으로는 살아 있음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살아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순간순간 우리가 살아 있지만 각질도 종기도 생깁니다. 믿음의 백성이지만 믿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기와 부스럼과 각질과 같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다 떼어 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믿지 않는 것을 걷어 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 외에서 믿음의 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바로 믿음의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 아닌 다른 것으로 기뻐하지도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오직 믿음 없는 것만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부지런하다, 명예가 있다, 똑똑하다 할지라도 우리를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믿음만 칭찬하십니다. 성경에는 그 믿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모두 믿음의 기록이요, 믿음의 선조, 믿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넷째, 성경에는 생명에 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자들의 금생과 내세의 모든 삶의 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구원 ,믿음, 생명에 필요한 전체 계획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획은 경륜이라는 말도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계획입니다. 예수 없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불안한 것이지만, 예수 안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평안입니다. 기도 안 하고 막 기분 좋은 것은 불안한 것입니다. 



3. 성경: 맞추어 주신 말씀


이 성경 말씀을 하나님이 맞추어서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맞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칼빈은 유명한 말을 합니다. 아무도 하나님께 날아오를 자 없으므로 하나님이 내려오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과 비밀에 아무도 가닿을 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맞추어 주시는데 그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1) 성경 말씀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으라


성경은 어렵다 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받아들이면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받는 마음은 똑똑한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입니다(겔 11:19-20). 새 영을 주셔서 돌과 같은 우리 마음을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새롭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십니다. 완악한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 성경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유순해지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면 성경을 받는 것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우리가 살 때 가장 힘든 것이 입맛이 없는 것입니다. 입맛이 없으면 살맛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도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부드러운 맛입니다. 내가 날을 세우고 하는 것이 아니라 푸석푸석 해져야 말씀이 맛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가장 심오합니다. 가장 은혜로운 것이 가장 심오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학입니다. 가장 은혜롭고, 학교에서도 아멘 소리가 나올 때는 가장 깊은 것을 가르칠 때입니다. 사변적이고 똑똑한 것이 아니라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심오하고 은혜로운 것입니다. 


2) 말씀의 선하고 필연적인 결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 말씀으로 임하시고 그것이 우리에게 역사하고 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삶을 통해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선하고 필연적인 결과를 줍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고 살면 하나님보다 정확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자보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십니다. 전능하시면서 정확하니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 인생은 정확해도 능력이 없으면 못합니다. 그러니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면서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배반하신 적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조지 뮬러는 하나님이 한 번도 나에 대한 기도에 응하지 않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료하게 영적으로 역사하는데 그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체험됩니다. 무엇보다 정확하게 체험됩니다. 정확한데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이루는 전능하심 가운데 정확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하나님이 미래를 알고 행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가운데 신실하심입니다. 


3) 성경 형성의 종결


이와 같은 성경에는 이제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종결되었습니다. 모세의 창세기로부터 사도 요한의 계시록까지 모든 계시가 종결되었습니다. 더해질 수도 빼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같이 장로의 전통 등으로 성경을 만드는 것은 성경에 더하는 것이요 그것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저주를 더하는 것입니다. 


4) 성경 말씀과 성령의 조명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 성령이 그 순간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문자로만이 아니라 영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읽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내가 준비하고 많이 기도하고 대비해서 성경을 읽을 때 내 기도로 성경이 역사한다는 것은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성경을 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저는 어릴 때 한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마당에 세수하던 곳에 성서유니온에서 낸 파란색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과 시편만 기록된 책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교감선생님이 장로님이었는데 20리가 되는 길을 걸어 교회에 오라고 했습니다. 떡을 주시면서 말입니다. 그분이 나중에 언젠가 저에게 목사된 것을 축하하면서 연락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뭘 알고 읽었겠습니까. 읽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이 어렵다고 하지 마십시오. 내 공로가 있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나를 끌고 다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일람표를 정해 꼼꼼히 읽은 것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성경이 기본적으로 나를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을 읽어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역사합니다. 내가 기분 내킬 때 읽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성경을 한번 통달해보겠다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읽을 때는 필히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필연적인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찔림이, 누군가에게는 화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성경은 성령으로 역사하고 그래서 성경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그것을 기록한 것과 동일한 성령이 우리 안에 감동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니 그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 하고 받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깊은 곳이라도 성령은 통찰하십니다. 막연하게 그저 추상적으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말씀으로 통찰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세상의 철학자와 과학자보다 더 정확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역사하실 때 내가 처음과 끝은 아노라, 나의 길을 아노라고 담대히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지식을 아는 자들은 세속적인 지식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내적인 조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내적 조명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영이 바로 진리의 영이고, 생명으로 역사하니 영생의 영, 생명의 영이고, 이 영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말씀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어찌했다고 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으로 내가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한다고 해야 합니다. 이성의 헤아림 너머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5) 영적 본성의 빛, 그리스도인의 식견


영적인 본성의 빛이 우리에게 다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어려울 수 있으나 본성의 빛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본성의 빛은 성도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본성의 빛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본성은 기독교인의 식견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반 사람들도 식견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식견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식견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독교적인 식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에 화인맞은 사람처럼 살지 않습니다. 영적인 본성의 빛이 내 안에 역사하고 그 빛이 나를 시시각각 온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파릇파릇 영적 세포가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합니다. 그런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고급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어떤 신경에도 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 거듭남이 있으면 바로 영적인 본성의 빛이 있고, 영적인 식견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영적인 식견이 우리 안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반응합니다. 그 영적인 식견, 영적인 본성의 빛이 우리 안에 있어서 성경 말씀 읽을 때 비춥니다. 그 식견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세상의 식견이 아니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빛이 임하여서 성령의 식견이 생겨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간혹 우리가 깜짝 놀랍니다. 세상에서 많이 배우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고백하는 식견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말씀을 달게 받는 것입니다. 세상 학문은 날카로움이 있으나 성경을 정확히 말하는 사람은 은혜의 말씀이므로 달콤하게 말씀을 받아 먹는 자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동일합니다. 성경의 부요함을 알고 아멘 하는 자들은 성경의 달콤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말씀을 읽을 때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심지어 설교 준비할 때도 그렇습니다. 어떨 때는 에스겔서,  이사야서, 레위기, 신명기, 말씀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신 영적 본성의 빛으로 인한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의 빛은 인간됨이고 모두가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영적 본성의 빛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과 어떻게 내 영적 본성의 빛이 어울리는지를 보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내가 성경 읽는다고 하지 않고, 마치 내가 살지 않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성경을 읽는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6) 성경의 명료성과 단순성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성경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답이 나옵니다. 무식하고 굳센 자들에게 알기 어려운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돌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믿고 확신한 바에 거하지 않고 자기가 틀렸다고 하지 않고 성경이 틀렸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것을 바로 무식하고 굳센 자들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성경을 읽는 자들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요 6:60). 이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동일한 말씀인데, 그야말로 무식한 어부였던 베드로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떠난 자들은 세상에서 더 배우고 똑똑한 자들이었습니다. 바로 성경이 명료합니다. 성경의 명료성은 내가 똑바로 배우고 알아서가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에 씨가 떨어져서 싹이 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명료성이요, 말씀이 명백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단순성도 있습니다. 단순하다는 말은 성령의 역사면 누구든지, 배운 자나 배우지 않은 자나 충분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말씀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맞추어 주신 것입니다. 



4. 결론: 말씀의 복, 언약의 복


말씀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모든 복이 말씀에 맺혀 있습니다. 바로 언약의 복입니다. 다른 복을 찾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왜 떡을 찾습니까. 하나님이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생의 양식입니다. 말씀은 세세토록 영존합니다. 그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구원받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다 옥토입니다. 신자에게 가시밭, 돌밭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다 귀가 있습니다. 들을 귀를 주셔서 옥토가 되게 하셔서 듣게 하십니다. 귀가 있으니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귀를 열어 주시므로 그리고 그 귀에 넣어 주시는 말씀이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찾을 것이 없습니다. 이 성경을 우리가 듣기에, 읽기에, 전하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증거합니다. 끝까지 힘쓸 일은 말씀 읽고 듣는 것입니다. 

이 성경의 해석은 바로 성경이 합니다. 이것은 제가 다음 기회에 다시 전하겠습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똑똑한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흐물흐물해야 합니다. 너무 날카로우면 안 됩니다. 성경에 힘쓰십시오. 성경이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간단하지만 어떤 세상도 줄 수 없는 답을 성경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으로 부요함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