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 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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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
1. 하나님은 성경으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사는 것 같으나 사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제한적으로, 필요한 만큼 알 뿐입니다. 근본적인 것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가 돈다는 것은 알지만 피를 만들 수도 없고 피 자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를 헌혈해서 수술에 씁니다. 어떤 뛰어난 사람도 금을, 공기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리고 안다고 하지만 사실상 모릅니다. 이렇듯 모르면서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하나님만 모른다고 합니다. 피가 돌아가는 것도 공기의 순환도 알지만 하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모순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이 비밀이시고 그 손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므로 만물을 우리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만들고 그 질서로 움직인다면 우리가 알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만물의 시작이 하나님이시므로 사실 우리는 모든 만물을 모릅니다. 모든 만물을 알려면 하나님께 여쭤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셨는지를 기록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와 유익과 열매가 있는지 말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구원의 말씀으로 성경을 받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이것을 배웠다고 하면서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는 지식은 신앙의 지식이 아닌 그저 종교 지식일 뿐입니다. 성경은 종교 연구를 위해서가 아닌 구원의 진리로 기록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이 삼위일체로 존재하심을 말씀하신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은 비밀이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기록인 성경은 전부 다 비밀입니다. 그런데 비밀은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많은 신들 중 하나가 아니라 다른 신들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신 4:39). 옛 성경에는 "상천하지"에 하나님 외의 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말하는데 그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부도, 성자도 하나님이시요(요 1:1), 성령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는 구원이 없고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롬 8:32).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삼위일체가 뭐가 필요하냐, 그저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어불설성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아멘'이 있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야, 보혜사의 영, 중생의 영을 받아야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알지 못하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원의 진리이다
이 삼위일체가 비밀이고 이 비밀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것, 그것이 구원의 진리입니다. 거듭나면 성부, 성자, 성령을 믿게 됩니다. 아들의 공로로, 십자가의 의로 구원받음을 알게 되고 그 아들의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영이 임하면 삼위일체 계시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배워서, 공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진리로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아버지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아버지를 믿는 자가 아들을 믿고 아들을 영접하는 자가 아버지를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몰라도 그 진리를 믿지 않고는 구원이 없습니다.
4) 스스로 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로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제 한 줄을 쓰는데 두 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다른 것은 다 표현해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웁니다. 하나님에 대해 쓰는 것은 한 가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디에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어제 계셨다 오늘 계셨다 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그것이 끝입니다. 이성으로 하나님에 대해 서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뛰어난 자입니다. 이방인이 바로의 후계자가 될 정도로 준비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하나님을 뭐라고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5) 신격: 하나님이심
하나님의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의 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격이라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규정합니다. 하나님의 격은 달리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심입니다. 하나님이심, 즉 신격을 가진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계속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말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이심이 신격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실체이자 존재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책을 읽다가 본질, 실체, 신격 등의 말이 나오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 본질은 하나님이심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라고 합니다. 혹시 누가 하나님의 실체가 무엇이냐 물으면 하나님이심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하나님이심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지난 주 본 것처럼 자존, 무한, 영원, 무변, 편재, 전지, 전능, 절대적이신 것들을 말하면 됩니다. 이 속성은 어떤 피조물도 가질 수 없습니다.
6)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신격, 본질은 이처럼 하나인데, 그 한 분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십니다. 달리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 18).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계시고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면 하나님이 세 분이 계시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라고 해서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신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신데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십니다. 그런데 각 세 위격이 하나님의 일부가 아니라 각각이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전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비밀이 있습니다.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30).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성경에는 항상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읽을 때 항상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구약은 성부만 있고 신약에는 성자, 오순절 사건 이후 성령이 있다고 보면 안 됩니다. 태초의 창조부터 성부의 뜻과 성자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창조하신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이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전혀 동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것은 다 아들의 것이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7)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이시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성부와 성자는 영으로서 동일하십니다. 그런데 그 영은 성령이니 삼위일체입니다. 성부도 성자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성령입니다. 그러니 삼위일체입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은 항상 함께 계시고 한 분이시고 만들어지지 않은 영이십니다. 영이라는 말은 영혼이라는 것이 아니라 동물, 식물, 미생물처럼 '물'(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은 성경 전체에 들어가 있습니다.
8) 한 분 하나님이 세 위격(인격)으로 존재하신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나 이슬람교에서 항상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공격합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답은 성경 전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사실상 이 세 절에서 보듯 성령도 주도 하나님도 한 분이신데, 세 분이 아닙니다. 우리 성경에서 '분'이라고 했지만, 그 '분'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고 할 때 그 '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표현할 단어가 없습니다. 우리말에는 바로 그냥 존재라는 말만 있고 분이라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이를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성부, 성자, 성령은 바로 '인격', '위격'인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시되 세 위격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신격의 하나인 가운데 세 인격이 있다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삼위의 위격, 즉 인격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은 이름이 있고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9) 성자의 영원한 나심
성자는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은 하늘로부터 비둘기같이 임합니다. 성자의 은혜와 성자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축복기도를 합니다. 이 비밀이 모든 성경에 나옵니다. 성자는 영원히 성부에게서 나십니(요 1:18). 이것을 영원한 나심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은 영원하신 성자가 사람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10)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의 나오심
그리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은 그래서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입니다(롬 8:9; 빌 1:19; 갈 4:6; 고후 3:17).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1) 생명의 역사
그런데 이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금 사람 앞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것, 삼위일체의 비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갈하지 않는 생수이신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이것을 사마리아 여인이 받은 것입니다.
이 교리를 '아멘'하면 신천지 같은 이단에 어찌 빠지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삼위일체 교리를 어떤 신학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거든 요한복음 1장 1절, 창세기 1장, 요한계시록을 말씀하십시오. 성경 곳곳에 삼위일체 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 그가 바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바 되는데,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생명의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그래서 생명의 영생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면 성부와 성자를 동시에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말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2). 사도 요한은 생명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구원의 비밀의 역사입니다. 생명은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피를 안다, 공기를 안다고 연구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생명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것은 다 알아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보았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되는 이신 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요일 1:2). 이 예수님이 바로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보았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한 역사
욥이 내가 이제껏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 눈으로 보았으니 하는 비밀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는 이성적 삶에서 믿는 신앙의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세 전에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밀이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이 비밀인데 이것은 믿으면 세상의 지식보다 훨씬 더 정확합니다. 순교자들은 진리를 붙들고 죽는 것입니다. 과학적 진리로 죽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순교까지 나아갑니다. 그 지식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고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명료한 수학 명제라 생각한 지식도 양자역학이니 하는 것에 의해 다 무너집니다. 성경의 지식은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변하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비밀의 계시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할 때, 삼위일체 비밀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맡은 자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습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절대적이고 주권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과관계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창조와 섭리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주에게서"라는 말은 주님이 지으셨음이요, "주로 말미암고"라는 것은 주님의 비밀스러운 질서 가운데, 주님의 인과관계 가운데 지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낳았습니다. 그런데 밥을 줍니다. 이것이 바로 '말미암아' 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삼시 세 끼 밥을 줍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우리가 우리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님이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 대해 우리가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몰라도, 알아도, 없어도, 있어도 고민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해와 근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답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말미암아' 입니다. 내 걸음 하나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 호흡 하나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시고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성령의 역사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입 기운"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만물을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모든 만물의 질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질서가 하나님을 가두면 안됩니다. 우리의 인과관계도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도 지으셨고 인간의 논리도 질서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우리가 보기에 이런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필귀정, 자업자득, 고진감래, 이런 것들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너머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너머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만물을 바라볼 때, 만물은 일반적인 것입니다. 안 믿는 자들도 똑같이 누리고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너머의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미치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내가 뽑은 것 같아도 하나님이 작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그런 넉넉함이 있어야 큰 사람이 됩니다. 내가 뭘 하겠다는 마음으로 조급하면 교만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과 함께 날개짓을 하면 끝없이 지경이 넓어집니다. 내가 잘되고 싶다면 내 걸음만큼 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내가 스스로 감당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면, 야곱과 다윗처럼 그렇게 한다면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다윗도 매번 도망만 다녔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신학생들도 그렇습니다. 현실은 잔인합니다. 기름은 일찌감치 부어 놓고 말입니다. 맨날 쫓겨 다니고 맨날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도망다닌 땅을 다 영토로 주십니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 이 말은 놀랍게도 느부갓네살 왕의 말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이방 왕조차도 하나님이 붙드셔서 이렇게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사 40:13-14).
4) 인간의 존재 목적: 인격적 순종, 영광의 찬송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심히 좋은 것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좋은 것이지 그것으로 스스로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피조성입니다. 우리 인간도 최고의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형상의 뛰어남은 피조된 존재라는 것,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함에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인격적인 순종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어제 기도하는데 우리 교회는 그래도 감당하는데 사랑의 교회나 충현교회나 큰 이상 없게 해 달라고 기도가 나왔습니다. 우리 인생을 지은 목적이 에베소서 1장의 말씀처럼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6; 12, 14).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뜻은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4절까지 각각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 각 부분 끝마다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5) 우리를 택하여 긍휼히 여기셔서 믿음을 주신 하나님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믿음보다 먼저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믿음조차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도 내 공로가 아닙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이 말씀을 로마서 1장 이전에 먼저 읽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라고 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엡 2:8). 왜요, 불쌍히 여기셔서 그러셨습니다. 내가 열심히 뛰어서도 아니요,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은 택함받은 백성입니다. 그래서 믿음 전에 택함이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말세의 종말의 교리로는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이단들이 말하는 다른 것들은 듣지 마십시오. 다른 것들에 앞서 '택하사'가 먼저 나옵니다. 택하사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종말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야말로 전적 은혜,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더 잘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4. 결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최고의 규범, 우리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시각각 다윗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여호와께 여쭈어 가로되'의 신앙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2020022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5)] 삼위일체 하나님과 작정 (엡 1:11-1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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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성경으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사는 것 같으나 사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제한적으로, 필요한 만큼 알 뿐입니다. 근본적인 것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가 돈다는 것은 알지만 피를 만들 수도 없고 피 자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를 헌혈해서 수술에 씁니다. 어떤 뛰어난 사람도 금을, 공기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리고 안다고 하지만 사실상 모릅니다. 이렇듯 모르면서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하나님만 모른다고 합니다. 피가 돌아가는 것도 공기의 순환도 알지만 하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모순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이 비밀이시고 그 손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므로 만물을 우리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만들고 그 질서로 움직인다면 우리가 알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만물의 시작이 하나님이시므로 사실 우리는 모든 만물을 모릅니다. 모든 만물을 알려면 하나님께 여쭤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셨는지를 기록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와 유익과 열매가 있는지 말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구원의 말씀으로 성경을 받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이것을 배웠다고 하면서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는 지식은 신앙의 지식이 아닌 그저 종교 지식일 뿐입니다. 성경은 종교 연구를 위해서가 아닌 구원의 진리로 기록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이 삼위일체로 존재하심을 말씀하신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은 비밀이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기록인 성경은 전부 다 비밀입니다. 그런데 비밀은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많은 신들 중 하나가 아니라 다른 신들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신 4:39). 옛 성경에는 "상천하지"에 하나님 외의 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말하는데 그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부도, 성자도 하나님이시요(요 1:1), 성령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가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는 구원이 없고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롬 8:32).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삼위일체가 뭐가 필요하냐, 그저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어불설성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아멘'이 있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야, 보혜사의 영, 중생의 영을 받아야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알지 못하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원의 진리이다
이 삼위일체가 비밀이고 이 비밀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것, 그것이 구원의 진리입니다. 거듭나면 성부, 성자, 성령을 믿게 됩니다. 아들의 공로로, 십자가의 의로 구원받음을 알게 되고 그 아들의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영이 임하면 삼위일체 계시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배워서, 공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진리로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아버지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아버지를 믿는 자가 아들을 믿고 아들을 영접하는 자가 아버지를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몰라도 그 진리를 믿지 않고는 구원이 없습니다.
4) 스스로 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계신 자로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제 한 줄을 쓰는데 두 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다른 것은 다 표현해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웁니다. 하나님에 대해 쓰는 것은 한 가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디에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어제 계셨다 오늘 계셨다 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그것이 끝입니다. 이성으로 하나님에 대해 서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뛰어난 자입니다. 이방인이 바로의 후계자가 될 정도로 준비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하나님을 뭐라고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5) 신격: 하나님이심
하나님의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의 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격이라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규정합니다. 하나님의 격은 달리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심입니다. 하나님이심, 즉 신격을 가진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계속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말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이심이 신격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실체이자 존재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책을 읽다가 본질, 실체, 신격 등의 말이 나오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 본질은 하나님이심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라고 합니다. 혹시 누가 하나님의 실체가 무엇이냐 물으면 하나님이심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하나님이심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지난 주 본 것처럼 자존, 무한, 영원, 무변, 편재, 전지, 전능, 절대적이신 것들을 말하면 됩니다. 이 속성은 어떤 피조물도 가질 수 없습니다.
6)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신격, 본질은 이처럼 하나인데, 그 한 분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십니다. 달리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 18).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계시고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면 하나님이 세 분이 계시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라고 해서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신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신데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십니다. 그런데 각 세 위격이 하나님의 일부가 아니라 각각이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전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비밀이 있습니다.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30).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성경에는 항상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읽을 때 항상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구약은 성부만 있고 신약에는 성자, 오순절 사건 이후 성령이 있다고 보면 안 됩니다. 태초의 창조부터 성부의 뜻과 성자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창조하신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이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전혀 동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것은 다 아들의 것이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7)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이시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성부와 성자는 영으로서 동일하십니다. 그런데 그 영은 성령이니 삼위일체입니다. 성부도 성자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성령입니다. 그러니 삼위일체입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은 항상 함께 계시고 한 분이시고 만들어지지 않은 영이십니다. 영이라는 말은 영혼이라는 것이 아니라 동물, 식물, 미생물처럼 '물'(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은 성경 전체에 들어가 있습니다.
8) 한 분 하나님이 세 위격(인격)으로 존재하신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나 이슬람교에서 항상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공격합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답은 성경 전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사실상 이 세 절에서 보듯 성령도 주도 하나님도 한 분이신데, 세 분이 아닙니다. 우리 성경에서 '분'이라고 했지만, 그 '분'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고 할 때 그 '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표현할 단어가 없습니다. 우리말에는 바로 그냥 존재라는 말만 있고 분이라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이를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성부, 성자, 성령은 바로 '인격', '위격'인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시되 세 위격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신격의 하나인 가운데 세 인격이 있다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삼위의 위격, 즉 인격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은 이름이 있고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9) 성자의 영원한 나심
성자는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은 하늘로부터 비둘기같이 임합니다. 성자의 은혜와 성자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축복기도를 합니다. 이 비밀이 모든 성경에 나옵니다. 성자는 영원히 성부에게서 나십니(요 1:18). 이것을 영원한 나심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은 영원하신 성자가 사람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10)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의 나오심
그리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은 그래서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입니다(롬 8:9; 빌 1:19; 갈 4:6; 고후 3:17).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1) 생명의 역사
그런데 이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금 사람 앞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것, 삼위일체의 비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갈하지 않는 생수이신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이것을 사마리아 여인이 받은 것입니다.
이 교리를 '아멘'하면 신천지 같은 이단에 어찌 빠지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삼위일체 교리를 어떤 신학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거든 요한복음 1장 1절, 창세기 1장, 요한계시록을 말씀하십시오. 성경 곳곳에 삼위일체 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 그가 바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바 되는데,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생명의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그래서 생명의 영생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면 성부와 성자를 동시에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말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2). 사도 요한은 생명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구원의 비밀의 역사입니다. 생명은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피를 안다, 공기를 안다고 연구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생명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것은 다 알아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보았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되는 이신 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요일 1:2). 이 예수님이 바로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보았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한 역사
욥이 내가 이제껏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 눈으로 보았으니 하는 비밀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는 이성적 삶에서 믿는 신앙의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세 전에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밀이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이 비밀인데 이것은 믿으면 세상의 지식보다 훨씬 더 정확합니다. 순교자들은 진리를 붙들고 죽는 것입니다. 과학적 진리로 죽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순교까지 나아갑니다. 그 지식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고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명료한 수학 명제라 생각한 지식도 양자역학이니 하는 것에 의해 다 무너집니다. 성경의 지식은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변하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비밀의 계시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할 때, 삼위일체 비밀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맡은 자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습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절대적이고 주권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과관계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창조와 섭리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주에게서"라는 말은 주님이 지으셨음이요, "주로 말미암고"라는 것은 주님의 비밀스러운 질서 가운데, 주님의 인과관계 가운데 지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낳았습니다. 그런데 밥을 줍니다. 이것이 바로 '말미암아' 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삼시 세 끼 밥을 줍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우리가 우리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님이 우리를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 대해 우리가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몰라도, 알아도, 없어도, 있어도 고민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해와 근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답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말미암아' 입니다. 내 걸음 하나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 호흡 하나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시고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성령의 역사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입 기운"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만물을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모든 만물의 질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질서가 하나님을 가두면 안됩니다. 우리의 인과관계도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도 지으셨고 인간의 논리도 질서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우리가 보기에 이런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필귀정, 자업자득, 고진감래, 이런 것들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너머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너머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만물을 바라볼 때, 만물은 일반적인 것입니다. 안 믿는 자들도 똑같이 누리고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너머의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미치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내가 뽑은 것 같아도 하나님이 작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그런 넉넉함이 있어야 큰 사람이 됩니다. 내가 뭘 하겠다는 마음으로 조급하면 교만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과 함께 날개짓을 하면 끝없이 지경이 넓어집니다. 내가 잘되고 싶다면 내 걸음만큼 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되면 내가 스스로 감당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면, 야곱과 다윗처럼 그렇게 한다면 지경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다윗도 매번 도망만 다녔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신학생들도 그렇습니다. 현실은 잔인합니다. 기름은 일찌감치 부어 놓고 말입니다. 맨날 쫓겨 다니고 맨날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도망다닌 땅을 다 영토로 주십니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 이 말은 놀랍게도 느부갓네살 왕의 말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이방 왕조차도 하나님이 붙드셔서 이렇게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사 40:13-14).
4) 인간의 존재 목적: 인격적 순종, 영광의 찬송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심히 좋은 것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좋은 것이지 그것으로 스스로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피조성입니다. 우리 인간도 최고의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형상의 뛰어남은 피조된 존재라는 것,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함에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누리려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인격적인 순종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어제 기도하는데 우리 교회는 그래도 감당하는데 사랑의 교회나 충현교회나 큰 이상 없게 해 달라고 기도가 나왔습니다. 우리 인생을 지은 목적이 에베소서 1장의 말씀처럼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6; 12, 14).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뜻은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4절까지 각각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 각 부분 끝마다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5) 우리를 택하여 긍휼히 여기셔서 믿음을 주신 하나님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믿음보다 먼저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믿음조차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도 내 공로가 아닙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이 말씀을 로마서 1장 이전에 먼저 읽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라고 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엡 2:8). 왜요, 불쌍히 여기셔서 그러셨습니다. 내가 열심히 뛰어서도 아니요,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은 택함받은 백성입니다. 그래서 믿음 전에 택함이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말세의 종말의 교리로는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이단들이 말하는 다른 것들은 듣지 마십시오. 다른 것들에 앞서 '택하사'가 먼저 나옵니다. 택하사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종말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야말로 전적 은혜,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더 잘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4. 결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최고의 규범, 우리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시각각 다윗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여호와께 여쭈어 가로되'의 신앙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