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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1)] 내가 믿사오며 (롬 10:6-10)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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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1)] 내가 믿사오며 (롬 10:6-10)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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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0: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녹취록>


1. 근본 신앙고백: 사도신경


우리는 사도신경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시작하지만, 사실 영어로는 "I believe", 라틴어로는 "Credo"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Creed"가 나왔습니다. 이 영어는 "신조"라는 의미입니다. "Apostle's Creed"는 "사도신경"이라고 합니다. 사도들의 신앙을 잘 정리해서 성도들이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발적인 형성된 것이 사도신경, 즉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구원 받은 각자 각자가 하는 것이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사도신경을 전하기 위해, 특히 "내가 믿나이다"를 전하기 위해 어떤 어떤 본문을 정할까 하다가 로마서 10:5-10을 정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


1)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


신앙고백은 말 그대로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향하여 표현하냐면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반응입니다. 물론 교회에는 뚜렷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므로 성도 앞에 고백하는 의미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수평적으로는 성도들에게 내가 믿는 바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진술이 신앙의 고백입니다. 


2) 신자: 신앙고백자


우리는 신자이기 때문에 교인이 되고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백성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서로 한 지체가 되서 한 몸을 이루는 교인이 되고, 믿음의 자녀 또는 믿는 자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되어 성도라 불립니다.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믿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평상 시에는 몰라도, 성도의 환난이 닥칠 때는 꼭 진리의 문제가 생기고, 진리의 문제가 생기면 신앙고백이 죽고 사는 생명의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믿고 확신한 바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냐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값 주고 사셨기 때문에 안디옥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고, 로마서 8:9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불리고, 갈라디아서 3:29에서는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고백의 출발입니다.



3. 보혜사 성령


1) 성령의 선물: 구원의 믿음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보혜사 성령이 임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구원의 믿음', '구원적인 믿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세상의 믿음은 신뢰입니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했다가 나에게서 끝납니다. 그래서 세상의 믿음은 짝 믿음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고 상대편은 아무 신경도 안쓰고, 내가 믿다가 내가 지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믿음은 누구를 믿는가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천지를 지으시고 만물을 주장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2) 말씀을 믿음


구원의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셔서,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으면 말씀이 가까이 오고, 믿음이 말씀과 함께 옵니다. 그래서 오늘 8절의 말씀에서 "믿음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믿어야 역사하기에 믿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을 때, 즉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데, 그 믿음의 선물은 말씀의 믿음의 선물입니다. 다른 믿음이 아니라 말씀을 믿는, 믿음의 말씀, 말씀의 믿음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3)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믿음


신명기 30:14을 오늘 본문은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가깝고, 내 입에 있고, 내 마음에 있다. 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가까이 있다.' 신명기의 그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자세히 보고, 듣고, 만진 바 된 것인데, 이것이 신명기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 말씀을 믿는 것의 성취요, 그가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다는 것, 내 입, 내 마음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내 입에 있고 내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주님으로 시인함


그래서 6절을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누구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데,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도 아니요, 저 땅 속의 무저갱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모셔 올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있어야 하는데,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모셔 내려올 것인가, 저 무저갱에 가서 그리스도를 모셔 올릴 것이냐, 이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8절의 말씀처럼,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것은 9절을 보면,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 바로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이 전개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고, 그 말씀이 내 입에 있고, 내 마음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4. 사도신경의 개요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나는 믿습니다"라고 하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구원의 믿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의를 우리 것으로 삼아 주시는 것,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 안에 주시는 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은 공로를 이루시고, 아버지는 그 사랑으로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주시고자 하시고, 성령은 그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성부, 성자, 성령을 고백하고 이제 구원받은 백성의 삶은 어디서 사는지를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신자가 하나님의 집에서 산다고 합니다. 즉 교회입니다. "교회를 믿사오며." 그래서 교회를 믿고 이 땅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고백하고, 교회를 고백하고, 영원한 삶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고백입니다.

믿음의 선포는 고백의 선포입니다. 신경이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에 관한 "경", "말씀"이 신앙고백입니다. 신경이 신앙고백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믿는 것입니다. 



5. 신앙과 고백


오늘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는 영적 믿음, 구원의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육체적, 세속적 믿음이 아니라 성령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내적으로 '아멘' 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여"는 고백을 뜻합니다. 이 고백은 꼭 입으로 한다기보다, 우리 심령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하나님께 비추는, 하나님께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의 말씀은 신앙과 고백을 보여줍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


그렇다면 무엇을 믿습니까? 9절,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이것이 마음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이것이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설교입니다. 우리가 그를 죽였는데,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고,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데, 마음으로 무엇을 믿는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 예수가 나의 주시라고 고백함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시인하는 것입니까?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최초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는 주이시다. 예수는 피 값으로 나를 사셨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이것을 호칭으로 하면 "주 예수"입니다. 입으로는 예수가 주라는 것을 시인합니다. 

그래서 9-10절을 함께 묶어서 생각해 보면, 죽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 부분은 신앙, 뒤 부분의 시인은 고백입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이고, 사도신경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6.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앙고백


1) 주가 내 안에 사심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어찌 이런 신앙고백이 있습니까? 신앙고백을 하려면, 주님이 내 안에 사셔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갈라디어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가 내 안에 사시면 이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가 최초의 선교를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그때 안디옥교회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렸습니다. 


2) 증인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사는 자들이 바로 증인들입니다. 사도행전 1:8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니,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향이 들어오니 향기가 나고, 빛이 들어오니 빛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가 쓴 듯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니다. 


(1) 외적 증인

이 증인은 외적 증인이 있고, 내적 증인이 있습니다. 외적 증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은, 1차적으로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입니다. 사도들은 십자가를 봤습니다. 특별히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예수님과 항상 동행했습니다. 이렇게 보고 들은 것은 외적 증인입니다. 사도들의 설교도 외적 증인입니다. 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이것은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입니다. 


(2) 내적 증인

내적 증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속 증인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 내 안에 사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해서 십자가가 밝히 보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적 증인입니다. 우리는 외적으로 보고 듣지 않았습니다.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을 그 성령이 보증하고 인쳐 줍니다. 그래서 그것이 내적 증인이 됩니다. 직접 보고 듣지 않았어도 십자가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내적 증인입니다. 고린도전서 2: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조금씩 봄날 햇살처럼 조금씩 조금씩 '아멘'이 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더 크게 깨닫게 하시는 것 같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 예전에는 내 마음이 수월한데, 그리스도의 마음이 더 수월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좀 더 힘들어도 내적 평화가 있는 그런 것입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4:1에서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내적 증인들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우리의 육체가 성전이 되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고, 그 비밀을 갖고 땅끝까지 갑니다. 굳이 육적으로 보지 않아도 그렇게 나서는 것입니다.


3)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시며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고백하는 자는 주님이 내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주신 약속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많은 경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나를 더욱 고독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더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과 더 동행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요 14:16-17).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것, 그 의가 다 우리의 것이 됩니다. 주님이 향기로운 희생 제물, 대속물로 자기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주님의 몸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주님의 피가 우리의 음료가 됩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6).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데, 그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의 살을 알고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자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습니까?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의 살이 날 위해 찢겨지고, 그의 피가 날 위해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살과 피가 나의 것입니다.


4) 영생인의 고백: 신앙고백


신앙고백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함께 사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서, 깨진 향유옥합이 향을 내지 않을 수 없듯이 우리는 향기를 냅니다. 길, 진리, 생명이신 분이 내 안에 사십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분이 내 안에 사십니다. 어제,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내 안에 사십니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사 9:6)이신 분이 내 안에 사십니다. 기묘가 내 안에, 모사가 내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 내 안에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아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제는 주님이 나를 핏값으로 사시고 내 삶의 주관자, 신랑이 되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머리, 영원한 남편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그 권세를 있는 사람이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그래서 우리가 자녀인 자가 하는 것입니다. 자녀로서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의 고백이 신앙고백입니다.

택함 받은 사람은 무조건적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믿음이 본질입니다. 믿으면 자녀의 신분을 얻게 되고, 이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를 믿어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점 하나만도 못하고 흐르는 물만도 더 머물지 못하고, 날아가는 화살보다 다 빠르게 지나갑니다. 다 쓰러집니다. 산도 내려 앉습니다. 별도 언젠간 떨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은 영원토록 불변합니다. 영생은 영원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영원히 사는 것이기에 영생은 불변합니다. 신앙고백은 영생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사나, 이미 천상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미 부활을 맛보고 사는 사람들이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지상에 터를 두고 종점을 둔 사람은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그리스도의 빛을 누리는 자들이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7. 사도신경의 그리스도 중심성


1) 주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데, 그 믿고 시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예수가 나의 주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시대, 신약시대는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빌립보의 간수가 옥문이 열려 자신이 그 책임으로 죽을 줄 알았을 때,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우리 집안에 많은 것 있지만, 우리 자녀에게 바랄 것 많지만, 최고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이 정확하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아빠와 엄마는 무엇을 믿고 있다는 것을 자녀에게 똑바로 알려줘야 합니다. 어김없는 믿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가 설교할 때, 제일 먼저 인용한 말씀이 요엘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것은 로마서와 사도행전 2:21에도 나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십니다(히 12:2). 우리 믿음의 주는 예수이십니다. 


2) 주 예수를 믿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


예수를 믿어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가 길, 진리, 생명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다 전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제가 요새 신학교에서 좀 개탄하는 것이 많습니다. 강단에서 예수가 선포되지 않고 듣기가 힘듭니다. 간혹 예수가 인용되어도 예수이 한 모범 정도로 소개됩니다. 저는 신약 시대의 설교에는 예수가 빠지면 잘못된 설교라고 여겨집니다. 성경 공부 때는 좀 다를지라도, 설교 때는 무엇이든지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베드로가 요엘서의 말씀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말세에 성령이 임하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이십니다. 믿어야 예수가 보이고, 믿어야 예수가 복되고, 믿어야 예수가 내 친구가 되고, 믿어야 예수가 내 구주가 됩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믿으면 온전케 됩니다. 예수가 없으면 전부 불완전하고 헛것입니다. 예수가 계셔야 끝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지라(엡 2:5-6). 예수 붙들지 않으면 다 떨어집니다. 


3)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지만, 그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 그리스도의 집인 교회


믿음으로 우리는 자녀가 됩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집에 거합니다. 이 땅에서는 교회에 거하고, 죽음 후에는 천당에 가고, 부활 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합니다. 교회가 바로 아버지의 집, 벧엘입니다. 벧엘은 오르락 내리락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날개를 펼친 그룹과 스랍의 영광의 찬송이 있습니다. 그 영광의 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가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고백입니다. 



8. 말씀을 믿음으로 듣어 고백한다


1)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영적인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들은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합니다. 고백을 하게 하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이 들려주십니다. 엘리 제사장은 듣지 못했으나, 사무엘은 들었던 그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목자는 양에게 양에게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나사로는 죽었지만, "나사로야 나오라"는 음성을 들을 때 살아났습니다. 엘리야는 강한 바람에도, 지진에도, 불에도 여호와를 보지 못했으나, "엘리야아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나?"라는 여호와의 세미한 소리를 듣습니다. 제가 유학할 때, 이 말씀을 들을 때, "문목사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로 들렸습니다. 이 말씀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 물음은 따지는 물음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여기서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닌 것같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 너와 동행하여 네가 여기까지 이르렀느냐? 네가 어찌하여 여기까지 이른 이 역정, 행로에 함께 했느냐?" 엘리야가 이 음성을 듣고 다시금 힘을 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혜에 대한 반응: 고백/기도


"항상 기뻐하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언제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과 자비와 호의가 머물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니 서원하는 마음으로 미리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백이며, 고백신앙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기뻐하는 것은 항상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는 항상 기도할 수 없습니다. 다윗도 전쟁할 때는 기도 많이 했지만, 전쟁이 끝나니 교만해져서 밧세바가 눈에 띄고 인구조사하여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는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몸이 힘들어도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문 밖에서 두드리시에 내가 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백신앙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은혜 받은 자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호의를 베푸시고 돌보시고 자비로우시고 그 사랑이 무한하십니다.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내 모든 세세한 것을 간섭하시며,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할 때,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그러할 수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히 하나님께 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고,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면 구하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신앙고백은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올해 연초부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기도한즉 기다리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기도 사이에 바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고백은 말씀을 심어서 영적인 싹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가 그 말씀을 고백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 싹이 기도요, 거룩이요, 열매입니다. 여기에는 필히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9. 결론: 기독교 신앙의 요체: 사도신경


1) 교회 교사들이 격찬한 사도신경


어거스틴은 "사도신경이 간결하고 장엄한 신앙의 규범인데, 단어의 수에 있어서는 간결한데, 그 문장의 무게에 있어서는 장엄하다"라고 말합니다. 칼빈은 사도신경에 대해서 가장 격찬한 사람입니다. "사도신경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흐름이 최상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그곳에는 구원의 완전한 요체(핵심)가 있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모든 조목조목을 담고 있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신앙의 요체(요점)이다. 우리가 존재하며 그것 안에서 가장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만 구할 수 있는 무엇이 그것에 들어 있다." 또 한 곳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땅히 주목해야 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명료하게 통찰할 수 있는 도록 마치 일람표같이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다." 


2) 순교자들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신앙고백이 없이는 순교가 없습니다. 초대교회 순교자 저스틴이 초대교회 교리 정립의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고백하며 죽었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식하신 분으로서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에게서 잉태되시고,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셔서, 우리의 선생이 되시고, 본디오 빌라도 아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시고, 모든 사람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분은 꼭 100년에 태어나서 165년에 죽으셨습니다. 이 분이 순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똑바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순교자 폴리캅이 있습니다. 그는 화형을 당하기 전에, "주님은 한번도 나를 배반치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순교자 폴리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체가 되신 분이다" 이 한 말을 붙들고 순교했습니다. 


3) 하나님이 신자로부터 받기 원하시는 신앙고백


신앙고백은 주님이 우리에게서 듣기를 원하시는 그 신령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 세례 요한, 예레미야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그렇게 여겼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마에게 예수님이 왜 찾아가셨을까요? 도마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하신 몸, 상하고 찢긴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서 신앙고백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이것은 내적 증인입니다. 육안으로 보고 육적 귀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장, 마음을 가졌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지고 맡게 되었습니다. 


4) 교회의 반석인 신앙고백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자, 우리 주님은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섭니다. 게바, 반석이라 하리라. 반석은 신앙고백입니다. 교회의 반석은 말씀, 신앙고백입니다. 


5) 은혜이기에 감사요 송영인 신앙고백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신앙고백도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신앙고백도 은혜이지 내 의가 아닙니다. 신앙고백은 송영이요 감사요 찬미입니다. 


매번 사도신경을 고백을 할 때마다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