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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4)] 주 예수 그리스도 (요 1:12-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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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4)] 주 예수 그리스도 (요 1:12-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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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헬, 참이
(요 1: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 1: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녹취록>

 


1. 부활의 후속 열매인 우리 자신이 감사거리이다


우리 교회가 설립 이후 계속 절기 때, 추수감사주일, 성탄절 등 절기에 맞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12월 중순 정도까지 사도신경을 같이 나눌 필요가 있고, 하나님이 뜻이 있으면 책자도 내겠다고 총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수장절, 장막절, 초막절의 신약적, 궁극적인 뜻이 예수와 함께 알곡이 되어 거하는 것입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우리가 마지막 때 알곡이 된다는 종말론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고, 우리는 그 후속 열매입니다. 한 해를 돌아볼 때 포괄적으로 모든 것이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열매는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조금이라도 여물어지고 향이 난다면, 그것을 보아 감사를 드린다면, 추수감사절 의미가 그것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열매이되 어떤 소유도 열매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


1) 존재가 사역의 가치를 규정한다


오늘 본문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합니다. 예수는 누구이고 무엇을 했는지는 항상 함께 질문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보통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라고 합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왕을 참칭하고 혹세무민했다는 여러 죄명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는 예수 자신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한 것을 빌미로 삼을 수 있지만, 사실 예수 자신을 미워한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인가와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사실 불가분의 문제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면 그가 한 일의 의미도 잘 알 수 없습니다. 


2)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린 분이 한 인간이라면 어찌 그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겠습니까. 그러나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그분이 사람으로서 인성에 따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니 그 값이 무한하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에 충분한 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금식했는데 예수님도 금식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금식하시는 그분은 바로 만물이 그에게서,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있는 분입니다(골 1:16).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았는데 그분은 성령을 보내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성령으로 충만을 받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성령이 그로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 날과 그 시를 모른다고 하니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모르냐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사람으로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는 전지하시므로 아십니다. 그래서 그를 바로 알아야 그가 한 일의 의미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튤립(TULIP)이라 불리는, 개혁주의를 확립한 도르트신경의 5대 교리에서 예수님의 공로는 무한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공로는 택함 받은 사람에게만 이루어진다는 것, 즉 제한속죄와 이것이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무조건적 은혜, 그리고 한번 택하시면 끝까지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불가항력적 은혜와 성도의 견인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인간의 전적 타락으로 말미암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으로만 계신 적이 없습니다. 항상 한 사람이자 하나님으로 계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셨어도 사람으로서 그러한 것이고, 언제나 만유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가 길을 걸으실 때, 편재하신 분, 동시에 모든 곳에 계신 그분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돌아다니신 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이 그로부터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있는 것인데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몸은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계시나 그분의 성령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3.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1)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의를 다 이루신 예수만을 믿어 구원 받는데, 이것은 영적인 것이다


사도신경의 "외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나를 핏값으로 사셔서 주인이 되시고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으로 나를 위해 일하시는,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나옵니다. 전능하신 분이 아버지시라는 것을 지난 주에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 외아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십니다. 본문 14절과 18절 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두 번 나옵니다. 그는 영원하신 성자, 제2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외에는 다른 것을 믿지 않습니다.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우리는 예수만 믿으면 됩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바울과 실라가 감옥 밖에 나가 있으니 스스로 죽고자 할 때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니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한 것입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첫 마디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입니다.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편하고 따뜻하지 않습니까? 우리 그리스도는 언제나 따뜻하고 언제나 감추시고 오히려 우리를 더 높이십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음 때 베드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요엘서 말씀을 인용합니다(엘 2:31-32; 행 2:18-21). 구약의 마지막 때는 대부분 예수님이 오시는 때입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사도 바울의 로마서 10장 10절에도 나옵니다.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습니다. 

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나요? 예수는 누구인가요? 그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의를 이루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큰 뜻을 가지고 계시는데 세상을 사랑하사 택함 받은 백성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모든 의를 우리를 위해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으면 다 이루신 예수의 의가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영적"이라고 합니다. 허황된 것을 그리는게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육적인 것입니다. 예수의 모든 의가 내 의라고 하는 것이 "영적인" 것입니다. 신비주의적인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영적 예배"는 말씀에 따른 예배입니다. 


2) "그 외아들"


(1)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외아들이십니다. 그가 바로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계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자 하나님, 본문 14절과 18절의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외아들이신 것입니다. 


(2) "말씀"

그 태초의 말씀이 계시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가 할 때 하나님은 성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것은 삼위일체를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도 예수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잠 8:22). 잠언에 나오는 지혜는 요한복음의 그 "말씀"입니다. 구약의 지혜와 신약의 말씀은 본질에 있어 성자 하나님입니다. —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요 8:30). 


(3)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 항상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함께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읽힙니다. 돌아다니시는 그분은 모든 곳에 계시는 분, 배고프다 하시는 분은 모든 것을 만드신 분, 핍박을 받으신 분은 전능하신 분이요, 열두 군단의 천사를 부르실 수 있는 분으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얼마나 잔인한 못에 박히셨는지, 얼마나 십자가를 힘들게 지셨는지의 묵상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아들로 오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품 속에 있으므로 영원히 그와 함께 계심을 의미합니다. —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만유의 창조자인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가 지어졌습니다. 또한 그가 만물을 붙드십니다(히 1:3). 창조, 섭리, 운행, 보존, 통치를 그가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며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이제 이 땅에 육체로 오셨는데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 권능 자체이신 그분을 믿으면 뜻하신즉 이루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한 사람으로만 믿어서는 안됩니다. —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4). 우리 예수님이 나셨을 때 동방박사들, 목자들, 안나, 시므온, 네 (부류의)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동방박사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목자를 가장 천한 자로 안식일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게 해놨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안식일에 우유를 마시니 말입니다. 그만큼 목자를 천한 사람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평생 예수 한번 만나겠다고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 전에 죽지 않겠다는 지시를 받습니다. 안나는 평생 과부로 살며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 영광을 돌리는 자리에 천한 사람을 쓰는 경우가 많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자의 마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그 영광을 가로막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300 데나리온을 아낀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가질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영광을 돌립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나 갈하지 않는 생수의 근원을 보니 두려움 없이 영광을 돌립니다. 38년간 앉은뱅이된 사람도 예수를 만나자마자 돌아다니면서 성전에 들어가고 뛰어다니고 합니다. 


(4)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려면 예수가 누군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한 사람으로만 계신 적이 없고 언제든 하나님이시자 사람으로 계십니다. 그분은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사람으로서 말씀하십니다. 절대 선하신 예수님이 선한 이는 하늘의 아버지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은 정확히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이 신앙고백의 시작은 예수님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줄 때는 잠시 하나님의 뜻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데 세례를 받으러 오시니 '그리 마옵소서'라고 했으나 예수님이 이리하여 모든 의를 이룸이 합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죄가 없이 오셨으니 죄인의 자리에서 죄인의 세례를 받고 죄인의 자리에서 우리 죄를 끌어안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이 요한은 사도 요한이 아닌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5) 하나님이신 예수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할 때 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태초로부터 계신, 아버지와 하나이고 함께 일하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영광을 가지고 계신(요 17:5), 찬양 받으실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것도 예수님이 사람이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얼굴은 분명히 있으되 희기가 사람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나를 믿지 않고서는 아버지께서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요 16:15).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요 17:10). 예수를 믿는 것은 다 믿는 것이지 부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로 가야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예수 믿고 나서라는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오라, 내게로 오라'라고 하시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성자를 통해 아버지께서 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6)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 땅에 오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모든 예수님의 일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배고프시고 키와 지혜가 자라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영원히 자족하고 동일하십니다. 그 날과 그 시를 모르는 것도 사람으로서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아십니다. 굶으시지만 모든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이제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사람의 빛입니다(요일 1:1). 그 생명이 임하면 눈이 뜨이고 생명이 솟습니다. 그 예수가 이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립니다(엡 2:5; 요 6:56). 

어떻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까? 그것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행 3:15). 오늘 성찬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육적인 것이 아닌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영적으로 그분의 살과 피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러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받습니다. 그것이 우리 성찬의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성령을 받으니 우리가 그를 죽였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 때문에 죽으셨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날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살과 피가 내 것입니다. 이것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지 물었을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예수 떠나면 다 육적입니다. 신비주의가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은 예수 믿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곧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이십니다. 그 핏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그 살과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그가 우리의 주요, 우리는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는 그 백성을 구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것은 기름부음 받은 자를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때, 예수는 그분의 정체성을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자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일하시는 분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구약시대 선지자 제사장-왕으로서 기름을 부어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를 때 우리는 그분의 정체성과 그분의 일하심을 함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핏값으로 사셨습니다. 핏값으로 사셨으니 이제 우리가 이 땅에서는 교회에 머물다가 이후 하늘나라에 함께 거합니다. 그리고 외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심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