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녹취록>
0. 도입
지난 주 성탄 트리를 하고 앞에 현수막도 걸었습니다. 한 해가 금방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오면서 '세월을 겹쳐 산다,' '봄과 겨울을 겹쳐 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봄이 오는 것 같은데 어느새 겨울이 와 있습니다. 제가 교향곡을 좋아하는데 나이가 드니 이것도 겹쳐서 듣는 듯합니다.
1. 성육신
우리 주님이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히 4:15).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무죄한 사람으로 오셔서 모든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종교개혁의 토대가 되는 칼빈은 하나님이 하신 가장 큰 일로 성육신을 꼽았고, 우리 신앙의 훌륭한 교사인 헤르만 바빙크는 가장 위대한 것으로 성육신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이제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으로서 우리를 위한 모든 구원의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드리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아무도 이것을 보지 못했지만, 변화산에서 제자들은 이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독생자는 아버지의 보내신 분입니다.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창세 전에 감추어졌던 비밀이 밝히 드러나고 그 드러난 비밀이 우리 안에 은혜로 역사하므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는 종으로 오셔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2.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구약시대 사람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칭했습니다. 이는 여러 신 중 하나(단일신)가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유일신)으로 섬겼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왜 세상과 많이 부대낍니까? 왜 그렇게 큰 박해를 받게 됩니까? 그것은 다른 신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모든 종교는 다른 신을 인정합니다. 마호메트교를 우리가 유일신을 섬긴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도 아닙니다. 변형된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를 선지자로 여기는데, 기독교의 하나님을 "알라"라고 하기 때문에 이슬람교도 유일신이라고 하지만 기독교의 유일하신 하나님과 다릅니다. 상천하지에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신이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다른 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하고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만이 우리의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구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모세에게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이므로 완전하고 불변하고 무한하십니다. 계시지 않은 때가 없고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어느 곳이든 충만하며 만유의 만유이십니다. 사랑도 자비도 긍휼도 그가 계시므로 언제나 있습니다. 스스로 계시기 때문에 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십니다.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문을 열어야 들어가고 공간이 있어야 눕고 자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만유의 하나님이시므로 완전, 무한, 불변하시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입니다.
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자녀(상속자) 됨
1)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은 뜻하시면 이루시고, 이루시면 모든 것이 선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자녀 삼는 데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세 전 뜻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하나님이 인류를 지으신 가장 기뻐하시는 뜻(엡 1:9), 그 뜻의 비밀은 우리를 기업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말은 로마서 8장 17절의 상속자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고 상속자 삼으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이며 그것을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2) "너는 내 것이라"
여호와는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기업, 내 상속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3) 제사장의 분깃은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은 기뻐하심에 따라 창세 전에 택한 백성을 바로 자기 아들로 삼고, 기업으로 삼고, 자기 것으로 삼고, 자기 분깃으로 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자기의 분깃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인류가 아니라 택한 바 된 백성을 자기 몫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여호와를 분깃으로 삼습니다. 우리도 이제 여호와를 분깃으로 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시 119:57). 분깃은 열두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준 것입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에게는 그러나 분깃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20). 하나님이 기업이요 분깃인 것입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게는 땅을 주지 않으셨고 생산 활동을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나머지 열한 지파가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를 가지고 레위 지파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의 또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리면 제사장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께 드려진 것, 여호와의 것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요, 히브리어로 '헤레크,' 곧 소유입니다. 여호와가 내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기업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이 특권을 누렸습니다. 여호와 것이 다 내 것입니다. 여호와께 드려진 것이 다 내 것입니다. 나머지 열한 지파는 생산을 하고 그 가운데 드립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만, 그것을 구별하여 십일조도 서원도 화목도 낙헌 등 여러 제사를 드렸지만, 여호와의 것은 제사장의 것이었습니다.
4) 만인제사장: 만인이 믿음으로 여호와의 영광에 참여함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가 너의 분깃이자 기업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 시은좌, 속죄소, 법궤 앞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의 현존 가운데 있는 사람들입니다. 중세시대 때는 사제들, 종교지도자들만 여호와의 영광에 참여한다고 생각해서 일반 성도들은 만들고 그린 것들을 보고 만지며 신앙생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우리 성도들은 말씀보고 찬송드리고 예배드립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것이 바로 종교개혁인 것입니다. 만인이 말씀듣고 예배드리는데, 중요한 것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지성소는 십자가의 지성소입니다.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집니다. 그 휘장은 칼로 쳐도 안 갈라집니다. 꼰 실은 매우 단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위로부터 이 휘장을 갈라지게 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이 휘장, 주님의 몸을 가르고 그 깨진 곳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셔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그리하신 것입니다. 곧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흘림이 없이는 속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피는 죄가 없는 피입니다. 가룟 유다가 나중에 이것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무죄한 피라, 예수님께 죄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제사장을 찾아다니다가 스스로 죽고 맙니다.
5)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 된다
하나님 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는 내 것, 내 분깃, 기업이라,'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도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아들, 기업, 분깃이라 부르십니다(사 43:1). 그러면 이제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뒤돌아봄 없이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요,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십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기업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내 소유고 전부고 분깃이고 생명으로 삼아야 내가 하나님의 분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6) 하나님의 것이 되는 방법: 그리스도를 믿음
어찌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됩니까?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찌하여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까?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소유가 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이것이 갈라디아서 2장 16절로부터 3장까지 계속 본 것입니다. 그리고 3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 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를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분깃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바라고 구하고 그에게 마음을 정하면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얼굴을 드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7) 그리스도 밖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외인들,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외인이요, 나그네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 중의 괴수요, 빛은 없는 어둠의 자녀요, 죄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잠시 수명을 주어 살게 하시지만, 신령하고 기름진 것,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것은 전혀 우리에게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예배하는지도 모르는 삶입니다. 사렙다 과부처럼 하루하루 겨우 연명할 뿐입니다. 뭐하나 적어 낼 것도 없습니다.
8)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거하여 부요하게 된다
그런데 만유의 주가 우리에게 오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에게 만유의 주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니 생명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땅에 많은 것을 살고 많은 지위와 영예와 힘을 누리지만,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펄럭이는 깃발만큼이라도 됩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채운다는 것을 성경은 영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헛된 것, 속된 것, 소멸할 것을 거룩하고 신령하고 영원한 것,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기업이라, 아들이라, 분깃이라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길에 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가 나를 위해 죽기까지 고난당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빌 2:9). "죽기까지"는 전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 믿고 하나님 품에 거하는 것입니다. 상실과 허탈감, 절망감이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한 분 뿐이요, 다른 것은 분토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 땅을 살아가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영을 죽이고 살리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어 살고 믿지 않아 죽는다는 사실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으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분깃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라는 이름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4.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1)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이제 하나님의 아들 그 자신을 주시고(엡 5:2)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딤전 2:6; 고후 5:18) 하신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하고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입니다. 그가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완전히 단절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그 몸을 화목제물, 속죄제, 속건제, 전제, 요제로 드린 것입니다. 바로 지성소의 휘장을 열어젖히고 누구라도 그 휘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 나를 위해 죽으시고 찢기시고 흔들리시고 걸리신 것을 보는 것입니다.
주와 우리가 서로 분깃이 되고, 우리가 주 안에 주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 됨입니다. 이전에는 멀리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입니다. 외인이요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을 소유로 갖게 된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분깃으로 삼아야 합니다.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으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가 먼저 나의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가 내 안에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갈 2:19-20; 3:1).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십자가 외에 화목케 하시는 다른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면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하심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기는 것은 살과 피로 섬기신 것입니다. 그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주신 것으로 섬기신 것입니다. 그것이 구주 탄생의 비밀이요 찬송이요 영광입니다. 자기 살과 피로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탄생도 귀하지만 잉태 때부터 이것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완전히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예수가 날 위해 그 자리에 서셨으니,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가 모든 것을 가집니다. 만유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만유의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빽빽한 임재 가운데 우리가 함께합니다. 이곳이 지성소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가 있는데,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리합니다. 주 예수께서 그 길을 여시고 생명의 빛이요 길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빛의 자녀, 은혜의 백성,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2) 우리를 위하여, 대신하여 모든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빌립보서에서는 자기를 낮추고 비우신 것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면서 세례를 받으시고 모든 우리의 고난과 특별한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통상적 고난과 비상적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유의 주인데, 우리의 인생과 같이 때가 되면 드셔야 하고 드실 게 없으면 시장하다고 하시고 눈물도 흘리셨습니다. 평생 안 울어 본 사람, 고난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통상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 당하는 고난, 곧 죄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시장하시고 피곤하시고 걸어다니시고 하는 모든 통상적 고난을 당하셨으며, 특별한 고난, 즉 인류는 특별히 당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죄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덩그러니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으나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내가 감옥가고 고문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데, 내가 오히려 평안히 눕고 먹고 마시고 잘 때 예수님이 우리가 받을 그 고난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믿어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본질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 거라사 귀신들린 자들을 만나주셨는데, 간음한 여인, 일곱 귀신 들린 여자, 사람을 많이 죽인 백부장, 어린아이들을 만나 주셨는데 우리를 안 만나 주실까요? 아무것도 없는 그들에게 가서 뭔가 있게 하시려고, 만나 주시려고 오셨는데, 우리를 안 만나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생계에 힘써야 합니다. 직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신자라면 교인이라면 그것은 본질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적다고 영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아무리 호의호식해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 많은 것들을 가지고 왜 마약을 합니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백화점에서 다 사고 좋은 식당은 다 가서 먹어도, 아무것도 없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무명한 듯하나 유명하고 미련한 듯하나 지혜롭고 약한 듯하나 강합니다.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함을 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을 폐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에게 죄인인 자신에게서 떠나시라고 했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자입니다. 온갖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한 자입니다. 그 바울이 최고의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과거의 행실을 저울에 달아 일 시키지 않습니다.
4) 타고난 것보다 얻은 것이 더 귀하고 얻은 것보다 거듭난 것이 더 귀하다
타고난 것보다 얻은 것이 더 귀하고 얻은 것보다 거듭난 것이 더 귀합니다. 세상에서는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타고난 것보다 땀흘려 이룬 것이 더 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귀한 것은 거듭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내 마음의 기쁨과 감사와 찬양, 부족하고 시시각각 어렵고 어리석어도, 우리는 있는 자, 가진 자들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기업, 분깃입니다. '창조주, 구속주, 섭리주 여호와를 내가 가졌도다!' 내가 기도하면 들으시고, 내가 잘 때라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들으십니다. 자녀들에게 실망하지도 말고 자녀를 너무 높이지도 마십시오. 우리 자녀들이 그리스도 잘 믿으면 그것이 전부입니다. 주님을 잘 믿으면 주 안에서 복됩니다.
5)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누린다
주님은 자기를 죽기까지 굴복하셨는데 사실 죽음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는 아버지의 뜻에 굴복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정죄와 모든 저주를 가져가시고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아직 완전히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영화롭게 됩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봄이 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겨울을 견딥니다. 우리는 부활의 은혜로 다 영화롭게 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영화롭게 되고 천국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삽니다.
6) 주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이제 거룩하게 산다
이 땅에서의 연약함이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라고 불리는 것이요, 고백신앙인 것입니다. 믿으니 믿음에 힘쓰고 거룩하니 거룩함에 힘씁니다. 이것이 고백신앙입니다. 나는 믿는 백성, 신자, 성도,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거룩해져야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 벌써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7) 주님이 순종으로 다 이루신 의를 힘입어 우리가 순종한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히 5:7-10)을 보면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도 통곡하시고 울었으며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서 예배와 기도에 힘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은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7절에 경건하심, 8절에 순종하심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경건의 비밀이 이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고난으로 순종하시니 우리가 담대히 순종하는 자리로 나섭니다. 주님의 경건하심이 내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순종이 내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9절,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5. 결론
주님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우리 것으로 삼으시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다 가진 자입니다. 인생에 굴곡은 있으나 우리의 목적지는 다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 마차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바로 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 만유의 하나님이 내 것이라는 이 은혜가 우리에게 또 온누리에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20191124][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6)]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 (빌 2:8; 히 5:7-10)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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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녹취록>
0. 도입
지난 주 성탄 트리를 하고 앞에 현수막도 걸었습니다. 한 해가 금방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오면서 '세월을 겹쳐 산다,' '봄과 겨울을 겹쳐 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봄이 오는 것 같은데 어느새 겨울이 와 있습니다. 제가 교향곡을 좋아하는데 나이가 드니 이것도 겹쳐서 듣는 듯합니다.
1. 성육신
우리 주님이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히 4:15).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무죄한 사람으로 오셔서 모든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종교개혁의 토대가 되는 칼빈은 하나님이 하신 가장 큰 일로 성육신을 꼽았고, 우리 신앙의 훌륭한 교사인 헤르만 바빙크는 가장 위대한 것으로 성육신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이제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으로서 우리를 위한 모든 구원의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드리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아무도 이것을 보지 못했지만, 변화산에서 제자들은 이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독생자는 아버지의 보내신 분입니다.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창세 전에 감추어졌던 비밀이 밝히 드러나고 그 드러난 비밀이 우리 안에 은혜로 역사하므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는 종으로 오셔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2.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구약시대 사람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칭했습니다. 이는 여러 신 중 하나(단일신)가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유일신)으로 섬겼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왜 세상과 많이 부대낍니까? 왜 그렇게 큰 박해를 받게 됩니까? 그것은 다른 신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모든 종교는 다른 신을 인정합니다. 마호메트교를 우리가 유일신을 섬긴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도 아닙니다. 변형된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를 선지자로 여기는데, 기독교의 하나님을 "알라"라고 하기 때문에 이슬람교도 유일신이라고 하지만 기독교의 유일하신 하나님과 다릅니다. 상천하지에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신이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다른 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하고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이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만이 우리의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구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모세에게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이므로 완전하고 불변하고 무한하십니다. 계시지 않은 때가 없고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어느 곳이든 충만하며 만유의 만유이십니다. 사랑도 자비도 긍휼도 그가 계시므로 언제나 있습니다. 스스로 계시기 때문에 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십니다.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문을 열어야 들어가고 공간이 있어야 눕고 자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만유의 하나님이시므로 완전, 무한, 불변하시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입니다.
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자녀(상속자) 됨
1)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은 뜻하시면 이루시고, 이루시면 모든 것이 선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자녀 삼는 데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세 전 뜻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하나님이 인류를 지으신 가장 기뻐하시는 뜻(엡 1:9), 그 뜻의 비밀은 우리를 기업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말은 로마서 8장 17절의 상속자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고 상속자 삼으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이며 그것을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2) "너는 내 것이라"
여호와는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기업, 내 상속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3) 제사장의 분깃은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은 기뻐하심에 따라 창세 전에 택한 백성을 바로 자기 아들로 삼고, 기업으로 삼고, 자기 것으로 삼고, 자기 분깃으로 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자기의 분깃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인류가 아니라 택한 바 된 백성을 자기 몫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여호와를 분깃으로 삼습니다. 우리도 이제 여호와를 분깃으로 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시 119:57). 분깃은 열두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준 것입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에게는 그러나 분깃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20). 하나님이 기업이요 분깃인 것입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게는 땅을 주지 않으셨고 생산 활동을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나머지 열한 지파가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를 가지고 레위 지파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의 또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리면 제사장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께 드려진 것, 여호와의 것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요, 히브리어로 '헤레크,' 곧 소유입니다. 여호와가 내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기업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이 특권을 누렸습니다. 여호와 것이 다 내 것입니다. 여호와께 드려진 것이 다 내 것입니다. 나머지 열한 지파는 생산을 하고 그 가운데 드립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만, 그것을 구별하여 십일조도 서원도 화목도 낙헌 등 여러 제사를 드렸지만, 여호와의 것은 제사장의 것이었습니다.
4) 만인제사장: 만인이 믿음으로 여호와의 영광에 참여함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가 너의 분깃이자 기업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 시은좌, 속죄소, 법궤 앞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의 현존 가운데 있는 사람들입니다. 중세시대 때는 사제들, 종교지도자들만 여호와의 영광에 참여한다고 생각해서 일반 성도들은 만들고 그린 것들을 보고 만지며 신앙생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우리 성도들은 말씀보고 찬송드리고 예배드립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것이 바로 종교개혁인 것입니다. 만인이 말씀듣고 예배드리는데, 중요한 것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지성소는 십자가의 지성소입니다.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집니다. 그 휘장은 칼로 쳐도 안 갈라집니다. 꼰 실은 매우 단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위로부터 이 휘장을 갈라지게 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이 휘장, 주님의 몸을 가르고 그 깨진 곳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셔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그리하신 것입니다. 곧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흘림이 없이는 속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피는 죄가 없는 피입니다. 가룟 유다가 나중에 이것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무죄한 피라, 예수님께 죄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제사장을 찾아다니다가 스스로 죽고 맙니다.
5)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 된다
하나님 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는 내 것, 내 분깃, 기업이라,'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도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아들, 기업, 분깃이라 부르십니다(사 43:1). 그러면 이제 우리는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뒤돌아봄 없이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요,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십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기업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내 소유고 전부고 분깃이고 생명으로 삼아야 내가 하나님의 분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6) 하나님의 것이 되는 방법: 그리스도를 믿음
어찌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됩니까?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찌하여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까?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소유가 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이것이 갈라디아서 2장 16절로부터 3장까지 계속 본 것입니다. 그리고 3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 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를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분깃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바라고 구하고 그에게 마음을 정하면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얼굴을 드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7) 그리스도 밖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외인들,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외인이요, 나그네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 중의 괴수요, 빛은 없는 어둠의 자녀요, 죄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잠시 수명을 주어 살게 하시지만, 신령하고 기름진 것,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것은 전혀 우리에게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예배하는지도 모르는 삶입니다. 사렙다 과부처럼 하루하루 겨우 연명할 뿐입니다. 뭐하나 적어 낼 것도 없습니다.
8)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거하여 부요하게 된다
그런데 만유의 주가 우리에게 오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에게 만유의 주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니 생명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땅에 많은 것을 살고 많은 지위와 영예와 힘을 누리지만,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펄럭이는 깃발만큼이라도 됩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채운다는 것을 성경은 영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헛된 것, 속된 것, 소멸할 것을 거룩하고 신령하고 영원한 것,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기업이라, 아들이라, 분깃이라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길에 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가 나를 위해 죽기까지 고난당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빌 2:9). "죽기까지"는 전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 믿고 하나님 품에 거하는 것입니다. 상실과 허탈감, 절망감이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한 분 뿐이요, 다른 것은 분토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 땅을 살아가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영을 죽이고 살리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어 살고 믿지 않아 죽는다는 사실에 두려워해야 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으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분깃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라는 이름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4.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1)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이제 하나님의 아들 그 자신을 주시고(엡 5:2)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딤전 2:6; 고후 5:18) 하신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하고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입니다. 그가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완전히 단절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그 몸을 화목제물, 속죄제, 속건제, 전제, 요제로 드린 것입니다. 바로 지성소의 휘장을 열어젖히고 누구라도 그 휘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 나를 위해 죽으시고 찢기시고 흔들리시고 걸리신 것을 보는 것입니다.
주와 우리가 서로 분깃이 되고, 우리가 주 안에 주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 됨입니다. 이전에는 멀리 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것입니다. 외인이요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을 소유로 갖게 된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분깃으로 삼아야 합니다.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으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가 먼저 나의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가 내 안에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갈 2:19-20; 3:1).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십자가 외에 화목케 하시는 다른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면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하심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기는 것은 살과 피로 섬기신 것입니다. 그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주신 것으로 섬기신 것입니다. 그것이 구주 탄생의 비밀이요 찬송이요 영광입니다. 자기 살과 피로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탄생도 귀하지만 잉태 때부터 이것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완전히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예수가 날 위해 그 자리에 서셨으니,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가 모든 것을 가집니다. 만유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만유의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빽빽한 임재 가운데 우리가 함께합니다. 이곳이 지성소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가 있는데,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리합니다. 주 예수께서 그 길을 여시고 생명의 빛이요 길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빛의 자녀, 은혜의 백성,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2) 우리를 위하여, 대신하여 모든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빌립보서에서는 자기를 낮추고 비우신 것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면서 세례를 받으시고 모든 우리의 고난과 특별한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통상적 고난과 비상적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유의 주인데, 우리의 인생과 같이 때가 되면 드셔야 하고 드실 게 없으면 시장하다고 하시고 눈물도 흘리셨습니다. 평생 안 울어 본 사람, 고난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통상적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 당하는 고난, 곧 죄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시장하시고 피곤하시고 걸어다니시고 하는 모든 통상적 고난을 당하셨으며, 특별한 고난, 즉 인류는 특별히 당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죄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덩그러니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으나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내가 감옥가고 고문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데, 내가 오히려 평안히 눕고 먹고 마시고 잘 때 예수님이 우리가 받을 그 고난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믿어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본질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 거라사 귀신들린 자들을 만나주셨는데, 간음한 여인, 일곱 귀신 들린 여자, 사람을 많이 죽인 백부장, 어린아이들을 만나 주셨는데 우리를 안 만나 주실까요? 아무것도 없는 그들에게 가서 뭔가 있게 하시려고, 만나 주시려고 오셨는데, 우리를 안 만나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생계에 힘써야 합니다. 직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신자라면 교인이라면 그것은 본질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적다고 영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아무리 호의호식해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 많은 것들을 가지고 왜 마약을 합니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백화점에서 다 사고 좋은 식당은 다 가서 먹어도, 아무것도 없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무명한 듯하나 유명하고 미련한 듯하나 지혜롭고 약한 듯하나 강합니다.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함을 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을 폐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에게 죄인인 자신에게서 떠나시라고 했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 자입니다. 온갖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한 자입니다. 그 바울이 최고의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과거의 행실을 저울에 달아 일 시키지 않습니다.
4) 타고난 것보다 얻은 것이 더 귀하고 얻은 것보다 거듭난 것이 더 귀하다
타고난 것보다 얻은 것이 더 귀하고 얻은 것보다 거듭난 것이 더 귀합니다. 세상에서는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타고난 것보다 땀흘려 이룬 것이 더 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귀한 것은 거듭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내 마음의 기쁨과 감사와 찬양, 부족하고 시시각각 어렵고 어리석어도, 우리는 있는 자, 가진 자들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기업, 분깃입니다. '창조주, 구속주, 섭리주 여호와를 내가 가졌도다!' 내가 기도하면 들으시고, 내가 잘 때라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들으십니다. 자녀들에게 실망하지도 말고 자녀를 너무 높이지도 마십시오. 우리 자녀들이 그리스도 잘 믿으면 그것이 전부입니다. 주님을 잘 믿으면 주 안에서 복됩니다.
5)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누린다
주님은 자기를 죽기까지 굴복하셨는데 사실 죽음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는 아버지의 뜻에 굴복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정죄와 모든 저주를 가져가시고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아직 완전히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영화롭게 됩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봄이 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겨울을 견딥니다. 우리는 부활의 은혜로 다 영화롭게 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영화롭게 되고 천국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삽니다.
6) 주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이제 거룩하게 산다
이 땅에서의 연약함이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라고 불리는 것이요, 고백신앙인 것입니다. 믿으니 믿음에 힘쓰고 거룩하니 거룩함에 힘씁니다. 이것이 고백신앙입니다. 나는 믿는 백성, 신자, 성도,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거룩해져야 거룩한 백성이 아니라, 벌써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7) 주님이 순종으로 다 이루신 의를 힘입어 우리가 순종한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히 5:7-10)을 보면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도 통곡하시고 울었으며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서 예배와 기도에 힘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은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7절에 경건하심, 8절에 순종하심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경건의 비밀이 이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고난으로 순종하시니 우리가 담대히 순종하는 자리로 나섭니다. 주님의 경건하심이 내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순종이 내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9절,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5. 결론
주님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우리 것으로 삼으시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다 가진 자입니다. 인생에 굴곡은 있으나 우리의 목적지는 다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 마차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바로 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 만유의 하나님이 내 것이라는 이 은혜가 우리에게 또 온누리에 가득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