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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9)] 아버지와 아들의 영 (마 28:19; 고후 13:13)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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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9)] 아버지와 아들의 영 (마 28:19; 고후 13:13)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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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고후 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녹취록>



1. 사도신경의 구조: 삼위일체적-기독론적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부분을 지난 주 이어서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다음주에 연결해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와 한 덩이로 설교하고 오늘은 성령 부분에 대해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은 정확한 출처나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경, 칼케톤 신경 등은 공의회나 종교회의에서 만들거나 신학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문체가 유려하고 신앙의 핵심 조항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크게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의 터로 시작되서 그것을 충실히 믿는 성도가 자신의 믿음의 핵심과 요체로 진술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신경이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기독교 강요>>가 이것을 본받아 쓰여졌다고 할 때 성부, 성자, 성령, 교회으로 구분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부분으로 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끝나지만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마태복음 본문과 고린도후서 본문은 이와 같은 성부, 성자, 성령의 고백을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구조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부는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아버지이십니다. 성자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구속주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데 있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세상은 택함받은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임하셔서 아들이 다 이루신 그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믿사오며"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믿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들이 이루신 의를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교회, 성도의 교통, 죄 사함을 받은 것, 몸의 부활, 그리고 영생을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고백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이 있고, 이제 우리를 그와 함께 자녀 삼으시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믿는 것이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잉태되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언약의 주가 되시고자 하셔서 아들을 보내셔서 언약을 이루시고 다 이루신 언약의 의를 성령으로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의 것으로 삼아주시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의 고백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모두 있는데 후자가 더 중심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백이지만 성도의 은혜의 고백이기도 한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감사와 하나님께 영광 올림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2. 성령과 사도신경 후반 조목들


1) 보혜사 성령은 교회를 형성하신다 


이 보혜사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우리 것이 되지 않습니다. 바람 하나도 지나가지 않습니다. 빛 한 줄기조차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이 임하여서 교회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도 넓게는 교회라고 하지만 예표적인 교회이고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며 보좌 우편에 계셔서 성령을 내려 주셔서 그 영을 받은 백성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실체적 교회, 성취된 교회, 새 언약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주신 교회, 보혜사 성령의 역사로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 교회가 형성됩니다. 


2) "거룩한 공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았다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에 의지하여 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의 공동체입니다. 의의 전가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시는 모임이라는 말입니다. 내 의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인생의 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약자와 병자가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고 도를 전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잘나서 전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죽이려던 사도 바울이 예수 만나서 사흘간 눈이 멀었다가 영안을 떠 바로 도를 전하는 곳입니다. 절대 교회에는 3대, 4대 신앙을 가진 사람을 목회자로 뽑는다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사흘만에 하나님의 뜻이면 목회자 될 수 있습니다. 쉽게 목회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 다른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과 삶과 자질을 봐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아 성령의 임재로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집니다. 


3)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교회는 하나님과 수직적 교제를 전제한 성도 간의 수평적 교제를 한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교통, 교제를 강조하는 것도 좋습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적으로 성도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야 성도 간 연합이 있지 성도 각자가 기도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데, 성도 간의 교제를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오른팔, 왼팔이 머리에 붙어 있으면 자연히 왼팔을 오른팔이 잡아 줍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데 교제한다는 것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저도 많이 섬겨 보았으나 가장 교제가 잘 될 때는 잘 믿을 때입니다. 내가 기도 안 하는데 교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우리가 형제요, 자매요, 지체요, 상속자와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엡 3:6; 롬 8:17). 이것도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영을 받았으므로 한 형제요 자매인 것입니다. 


4)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성령을 받아야 죄 사함을 받는다


성령을 받아야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자녀로서 사는 것, 생명과 생활, 살아남과 살아감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하여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날마다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있습니다. 성령을 믿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내것이 되고 그래야 살아남과 살아감의 회개가 있는 것입니다. 


5) "몸이 다시 사는 것": 성령에 의해 부활을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몸이 다시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것, 즉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맛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결코 죽음을 믿음 가운데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역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요 우리도 그와 함께 부활하고 그리하여 다시 영육 간에 부활체로 우리가 살아나는 것, 그래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사는 부활의 신앙이 없이는 이 땅의 삶도 죽음도 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 몸이 다시 사는 것, 부활하는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6)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산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다음 주에 한번 더 보겠으나, 성령을 믿사오며 하는 것이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과 함께 다섯 가지,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통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다시 사는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 신앙이 없이는 성령 충만함도 없습니다. 교회에 대한 정확한 관점도 교회의 비밀도 없고 그저 내가 잘 믿는다고만 하면 그것은 성령 충만함이 아닙니다. 그런 영이 어딨습니까? 

영원히 산다는 영생은 하나님이 창세기 2장에서 언약을 맺으신 목적입니다. 창조는 6일간 지으신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날에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사람과 더불어 안식하시고 언약을 맺으셔서 자녀 삼고자 하신 것까지 가야 합니다. 아버지가 바로 영생입니다. 아들이 바로 영생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 즉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최고의 표는 하나님을 바짝 마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그리스도가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 아내, 지체가 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성찬도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정한 그것을 성령으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는 그러므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혜사 성령의 모든 조목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성령의 존재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동일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완전히 한 분이시고 완전히 전부이십니다. 쪼갤 수도 나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 위격으로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은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믿지 않는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동일본질이고 언제나 함께 일하십니다. 


2) 하나님은 영이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고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시고 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히 함께 일하시고 창세 전에 함께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요 10:30; 요 5:17; 요 17:1, 5). 

그 아버지와 아들, 그 영원히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영이십니다. 이 영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신데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영이시요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영이십니다. 영은 영혼이란 말이 아닙니다. 영은 스스로 계심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피조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금방 나누었듯이 그렇게 말씀하면 됩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이고, 또 영이시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3)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셨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3조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실로 아버지는 아무로부터도 아니시니, 분명 나시지도 아니하셨으며 나오시지도 아니하시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 그래서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칼빈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들은 오직 아버지로부터,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아들로부터 위격적으로 존재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신앙에 서 있습니까. '성령이 아버지, 아들로부터 나오시고, 아버지의 영이시자 아들의 영이시다'라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는데 그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입니다. 아들은 성령을 보내시기만 하여 아들은 성령의 전달자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은 아들의 영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롬 8:9), "양자의 영"(그리스도의 영, 롬 8:15; 갈 4:6),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빌 1:19),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요한복음 15장 6절에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영을 아들이 보내셨다는 말은 그러므로 아들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이자 주의 영임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단순히 전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네바에 동방교회가 있습니다. 오전에는 공부하다가 오후에 칼빈이 예배드렸던 피에르교회가 있는 그곳에 가서 그냥 앉아 있으면 누군가 오르간을 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곳의 동방교회에 들어가 봤는데 향을 얼마나 진하게 피워 놓았던지 꼭 예전에 온갖 잡동사니가 있던 다락 같았습니다. 그 동방교회는 성령이 아버지께로만 나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 '영광', 영광의 신학이다 하면서 책도 많이 나오고 합니다. 그러나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송영이고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아멘'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음은 그의 은혜를 믿음이요 그의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이 개혁교회의 "오직"(Sola, 솔라)이요,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되 그의 다 이루신 것을 은혜를 믿고, 그것을 고백하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것이 오직 성경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고 성령은 아들의 영이되 원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가 내 안에 온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고백하는 핵심이 이것입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 주의 영, 예수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의 동사(同事)


마태복음 본문은 세례에 대해 말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세례는 거듭남의 표입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에서 이 세 위격은 동일하고 함께 일하시고 함께 존귀와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이 세 위격의 한 분 하나님의 세례로 우리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았다는 인침을 받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세례가 성부 성자 성령의 세례이고 세 위격의 이름으로 베풀어지고,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역사이고 창세 전에 작정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도와 함께 계시고 성도 속에 계심을 믿습니다. 예수와 함께 산다고 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성자의 현현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저 그렇게 표현할 뿐입니다. 언제든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함께 믿고 함께 고백하고 모든 역사를 삼위 하나님의 역사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하고 묵상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태초의 창조도 그렇습니다. 구약에 성부 하나님만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언제든 삼위 하나님은 함께 계시고 함께 일하시고 함께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이라고 하면 삼위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날마다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음은 우리의 작정, 거듭남, 살아감, 영생이 다 삼위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5. 삼위일체 하나님의 복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두 번째 본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고린도후서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축복은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면 나는 손해보나요? 그리스도의 은혜는 다함이 없으므로 아무리 나눠도 내게 잔이 넘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은 인격적 대속이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나눠준 것이 아닙니다. 축복은 소유가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는 것이 복되는 것입니다. 인격의, 언약의 말씀 가운데 주는 것이므로 주는 것이 채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실 주는 것이 손해입니다. 주는 것으로 언젠가 갚음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 복되다고 하지, 실상은 그렇습니다. 축복기도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나누는 것인데, 아무리 나눠 주어도 이 의는 넘칩니다. 오히려 나눌수록 많아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의 은혜 가운데, 아들을 주신 가운데, 그 공로 가운데(롬 8:32)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의 뜻이 앞섭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들의 은혜를 먼저 말합니다. 이것은 아들의 이루심이 먼저 있고 그 이루심을 아버지가 받아 주시므로 그렇습니다. 


2) "성령의 교통하심"


(1) 예수님의 것을 우리의 것 삼아 주시는 성령

그런데 이 두 가지만으로는 아직은 그림의 떡입니다. 성령의 교통,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예수님의 것이 내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찬을 받을 때도 세례 받을 때도, 예배 드릴 때도, 기도할 때도, 말씀 읽을 때도 말씀과 성령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령의 역사가 없어도 사제가 기도하고 받으면 물질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축성이라고 하는데 사제가 기도하면 그 물건을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 이루심을 믿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것을 우리 것으로 삼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십자가지기교회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연말인데 많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아들의 은혜입니다. 아들이 밥을 만들고 김치를 담그면, 아버지는 이것을 나누어 주라고 하고, 성령은 그것을 날라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안됩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하신다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축복기도입니다. 

축복기도도 우리는 사실 대언하고 대신 기도하게 만드는 것이요, 그리하여 내가 은혜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도가 그것입니다. 전도하고 헌신하는 것이 다 나에게 복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밑지는 것인데, 왜냐하면 세상은 결산을 이 땅에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윤리는 아무리 고상해 보여도 사실 다 투자의 논리일 뿐입니다. 착해야 떡이라도 하나 더 받는다는 것도 계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있어서 주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베푸는 것이므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성령은 말씀의 영이요 말씀하시는 영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이것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성령의 여러 현상을 말하지만, 성령은 그저 에너지나 현상이 아니라 인격, 하나님,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물같이 조금 들어오고 많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우리의 소유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주장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영광 가운데 계시고 함께 존귀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2) 말씀하시는 성령

이 성령은 말씀의 영이요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행 28:25). 성령은 친히 말씀하는 영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우리가 증인이 됩니다. 


(3) 만물을 다스리시는 성령

이 성령이 모든 만물을 다스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입을지 걱정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은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감 하나도 하나님이 주장하신다고 믿어야 우리가 감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생성하시고 조성하시고 유지하시기 때문입니다. 끄트머리 하나까지 가닿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별, 달 하나도 흐르는 물 하나도 성령의 지키심 가운데 있습니다. 


(4) 임마누엘의 영이신 성령

그 성령이 이제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 심령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성령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곳을 말한다면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 그리고 로마서 8장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겟세마네로 나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성찬을 거행하시고 성령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임마누엘, 진리, 능력과 진리의 영으로 가르치십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신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진리가 우리 안에 임한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도 깨닫게 하시는 진리의 영,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무엇이든 예수가 친히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구하면 예수님이 친히 이루신다는 것은 다 이루신 예수께서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 말씀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여기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입니다. 또한 로마서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5) 양자의 영이신 성령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아버지의 영입니다(롬 8:15). 양자는 자녀이고 상속자를 의미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양자의 영을 받아 자녀이고 상속자가 된 자는 하나님이 다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어떻게 하여 모든 구원을 다 우리에게 은혜로 베푸십니까? 정한 자를 부르시고 부른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한 자를 영화롭게 하십니까? 아들을 내어 주신 이가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롬 8:32). 그런데 다음 절은 또한 말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아무도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 구원 과정입니다. 이것이 천로역정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그리스도의 의입니다(롬 8:32-33). 살아나게 하신 자를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요,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6) 기도할 바를 알게 하시는 성령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기도 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바랄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무너지면 길조차 보이지 않으므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애통하시면서 친히 성령이 간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성령입니다. 기도도 고백도 우리가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