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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5][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10)] 교회와 성도의 교제 (엡 5:32; 고전 12:1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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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5][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사도신경(10)] 교회와 성도의 교제 (엡 5:32; 고전 12:12)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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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고전 12: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녹취록>



1. 성도의 연합체로서의 교회


오늘 나눌 말씀은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자세히 보려면 몇 년에 걸쳐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거룩한 공회”에서 “거룩한”은 교회의 특성으로 거룩성을 말하고, “공회”는 보편성을 말합니다. 거룩한 공회는 곧 교회입니다. 공회를 믿고,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인 성도들의 연합체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인 성도들의 연합체입니다. 연합체는 한 몸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시고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교회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23).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교회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한 사람에게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도 바로 그러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성도의 어떠함에 대해 성경에서 반복해서 말하기를, ‘교회는 몸이고 성도는 지체요 그리스도는 머리’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공동체


성경은 이것보다 더 깊은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즉 우리가 한 몸인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됩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마시고, 주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이룹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6).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내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인데,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주님의 살과 피가 나를 위한 것이니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그 살과 피가 내 살과 피니, 내가 그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나를 위한 것이니 내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살과 피가 나의 것이니 내가 그 살과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7). “한 몸”이란 한 교회라는 의미이고, “한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신령한 양식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3) 언약의 연합체


교회는 언약의 연합체, 즉 몸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구성원을 창세 전에 정하셨습니다. 언약 백성으로 교회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의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 주셔서, 이제 의롭게 삼은 하나님의 그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 의를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내 것이 됨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녀된 자의 모임이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고 합니다. 바깥으로 불러낸다는 의미입니다. 부르시려면 먼저 택하셔야 합니다(롬 8:30). 하나님이 창세 전에 작정하신 자를 불러 내셔서 모으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1)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는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머리요 중보자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보증이십니다. 곧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알파요, 오메가요, 모든 것을 행하시니 그 보증이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대속의 의를 다 이루셨습니다. 교회는 대속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 속하여 주셔야 우리가 성도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이 되셨으나 성령 잉태로 말미암아 죄가 없으십니다(히 4:15). 그분의 무죄한 피,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몸을 제물로 드려서 모든 의를 다 이루시고 그 의를 우리 것으로 삼아 주셔서 교회가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것을 머리로 삼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장로교가 이에 대한 가장 큰, 역사의 증인입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가 태동한 것은 당시 영국의 여왕이 교회의 수장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죽임을 당한 데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영국의 왕이 교회의 수장이라는 수장령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무수히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임을 고백하고 순교한 것입니다. 영국의 성공회에는 계급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머리이시고 나머지는 다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표가 되신 것입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작정하실 때도(엡 1:4)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자녀로서 우리가 택함을 받았고, 이생의 삶에서 우리가 교회의 지체로 신자요 성도요 교인이 되는 것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택함 받은 백성들의 총수가 다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고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무형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을 비가시적교회라고도 하는데 하늘의 교회요, 택함 받은 백성들의 총수입니다. 그것을 무형교회라고 하는데 이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유형교회는 이 땅의 십자가지기교회처럼 함께 고백하고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말씀 듣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헌신 봉사하는 이것이 바로 유형교회입니다. 가시적 교회라고도 합니다. 유형교회의 머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을 유, 무형교회의 머리라고 뛰어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형교회와 무형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2)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간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만 자라갑니다. 교회는 다른 곳을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내 공로, 내 자질로 넘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의를 잘 누려서 그 가운데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라가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요, 은혜 받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 것 외에는 자라갈 수 없습니다. 나를 연마해서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연마는 기도의 연마밖에 없습니다. 

지상의 성도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상의 교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완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성도, 신자, 교인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으나 우리를 인친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완전합니다. 이것을 종말론적 삶이라고 합니다.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의의 인침은 받았으나, 그것을 받은 우리는 이 땅에서 아직 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완전할 때 우리는 다 이루었다는 예수의 의의 완전성과 불변성과 충족성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다시금 머리이신 예수께로 자라가게 됩니다. 그것이 교회의 자라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본질에 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지체들에게 퍼져서 열매를 맺는 터로 하나님이 교회를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 안에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벗어나서는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성도 구원의 전 과정에 미치고 지상과 천상의 교회를 연결시킵니다. 항상 완전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완전하시고, 그리스도의 의가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인침과 자라감과 하늘에서의 완전해짐이 모두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습니다. 감리교는 이 땅에서 의가 완전해진다고 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교회가 완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도 성도도 완전하지 않고 자라간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불안에 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인쳐서 끝까지 끌고가는 그런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3) 교회는 하나님이 성도를 지상과 천상에 두는 유일한 방식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성도를 지상과 천상에 두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지상에 두고 천상에 두시는 것은 생명을 자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어린이에게는 유모와 같고 더 자란 아이에게는 학교와 같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도 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을 수 있고, 교회 밖에 알곡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땅에서 교회에 속하지 않은 자로서 구원받는 자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교회 바깥에 머물다가 구원받는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교회 밖에 택함 받은 백성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가 끝내 바깥에 머문 자로 구원받은 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나 영생을 얻은 자는 반드시 교회를 터로 삼습니다. 그래서 무교회주의가 무서운 것입니다. 김교신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경건하고 여러 영향을 미쳤으나 교회를 부정하므로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 성도의 구원과 교회의 구원은 분리되지 않는다

교회와 성도는 구원에서 그 궤를 같이합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사는 것이 세례입니다. 구원의 인침인데, 이 세례의 의미는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세례의 의미는 입교와 거듭남,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선포되는 것입니다. 입교, 즉 교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의 구원과 교회의 의미가 세례에 항상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교회의 일원으로서 거듭남의 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체로서 거듭남을 인치는 것입니다. 성도가 완전하지 않듯 교회도 완전하지 않고 성도가 천상에서 완전해지듯 교회도 그렇습니다. 

성찬도 날마다 교회가 자라가고 개혁되고, 성도도 그렇듯 그것을 표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자라가는 것이 성찬입니다. 세례는 생명과 살아남의 표요, 성찬은 생활과 살아감의 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거룩하다기보다 개혁이라는 말을 합니다. 성도는 날마다 거룩하여져야 하고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개혁된다는 것은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교회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말씀 선포의 기관이다


우리가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해서 교회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어에서 “believe in”이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쓰고 교회에 대해서는 그냥 “believe”만 써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거룩한 공회, 즉 교회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 자체를 믿음의 대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를 주로 고백하거나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는 없고 우리 교회만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릴 수도 없고 어떤 창조적 권능도 없습니다. 교회는 무엇 하나 만들 수 없고 구원을 위한 어떤 공로도 없습니다. 공로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리에 두어서도 교회에 영광을 돌려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히 3:6). 그리스도를 자랑해서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이 있고 하나님이 죄를 사하는 것이지 교회가 부르고 교회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중보가 있지 교회의 중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은 이 모든 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중보자가 아닙니다. 목사에게 아무리 기도 제목을 낸다고 해서 목사가 중보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신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목사를 쓰실 수는 있으나 목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3. 참 교회의 표지


1) 말씀의 순수한 선포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생들이 메시지를 전한다는 말을 하는데 저는 그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주일날 말씀 전한다고 생각하니 설교가 소망과 기쁨이 됩니다. 메시지를 전한다고 하면 어떻게 설득하고 어떤 말들을 인용하고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적거나 모자라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충분하며 다른 것을 메시지로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이미 있는 절대적인 진리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만들어내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하고 그것을 위해 가르치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두 가지 모토입니다. 가르치는 교회와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선포는 말씀에 생명력이 있어 전해지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지혜입니다. 그러니 성취와 함께 선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과 골수를 쪼개고 떨어지면 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도할 때 인간이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이자 지혜이신 말씀이 떨어지면 그 자체로 또한 운동력이 있으니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교회의 첫 번째 표지는 말씀의 순수한 선포인 것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2) 성례의 합법적 거행


그 말씀 가운데 성례가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이 합법적으로 거행되어야 하는 것이 교회의 두 번째 표지입니다. 성례를 신령한 계기, 상징으로 삼지 않습니다. 말씀에 따라 성령의 역사로 인치는 것, 보이지 않는 은혜를 보이는 표로 삼는 것입니다. 성례는 그리스도의 의로 살아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명과 생활입니다. 다른 성례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일곱 가지 성례를 말합니다. 결혼도 성례이고 견진이라고 일종의 성인의식도 있습니다. 자기 혼자 걷는다는 것입니다. 종부성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죽을 때 성례를 하는 것입니다. 신품성사도 있습니다. 직분 줄 때 성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시대 성례를 단 두 가지로 여깁니다. 말씀이 정한 대로, 첫째는 살아남의 표인 세례이고, 둘째는 살아감의 표인 성찬입니다. 살아가며 매일 거룩해져야 하니 반복적으로 성찬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례를 합법적으로 거행한다는 것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권징의 합당한 시행


세 번째 참된 교회의 표는 권징입니다. 교회도 성도도 완전하지 않으므로 어린아이에게 훈육이 필요하듯 교회에게도 훈육을 행하는 것입니다. 양이 잘못 가면 쳐서 돌아오게 하듯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징은 힘줄과도 같다고 합니다. 아무리 살이 많아도 힘줄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권징을 힘줄에 비유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권징은 제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팔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힘줄이 잡듯 권징이라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징을 교회의 힘줄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징이 없으면 움직일 수도 힘을 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권징을 즐겨서도 안 되지만 거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혹 넘어질 때 교회의 공회로부터의 권징을 달콤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를 모는 막대기와 지팡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목사도 동일합니다. 권징의 대상입니다. 다만 목사의 권징은 노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목사는 교회 관할이 아니라 노회 관할입니다. 그것이 우리 장로교입니다. 그러므로 모난 것을 징치고 덜익은 것을 익히고 덜 빚은 것을 빚어가는 것이 권징의 의미입니다. 권징은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우기 위한 것이요, 그래서 건덕이라고 합니다.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쫓기 위함이 아니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좋은 말만 들으려면 직분이 필요 없습니다. 

이 세 가지에 직분이 모여 있습니다. 말씀을 잘 가르치고 선포하고 성례를 잘 거행하고 권징을 잘 하라고 교회의 직분이 있는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고 땅에서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열쇠의 권한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이것은 말씀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매고 푸는 권세가 사람에게 있지 않고 말씀에게 있습니다. 이 열쇠의 권한을 로마 가톨릭은 교회와 교황(사람)에게 둡니다. 이 열쇠의 권한은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종을 통해 권징의 말씀을 들으면 주의 종이 아닌 말씀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권징을 임의로 함부로 행하면 그 자체가 무효일 것입니다. 

칼빈 때 최초로, 오늘날로 말하면, 당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때 매번 예배 때 술에 취해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 칼빈이 그를 권징하려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권징은 이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권징은 합당하게, 정당히,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있던 왕십리교회는 100년 된 교회였는데, 한 성도가 술집이 많은 곳을 지나갔다고 해서 권징했습니다. 고신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주일에 자전거 탄다고 권징했다고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말씀으로 좀더 살펴봐야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권징은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잘 살려야 합니다. 



4.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구원은 개인 단위입니다. 교회 단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음은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위해 애쓰고, 교회에서 이 시대의 종도 나오고, 순교적 자세로 진리의 교사도 의인도 나오고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향한 특별한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비밀을 지닌 자가 믿음이 깊은 자입니다. 믿음의 비밀, 경건의 비밀이 깊어질수록, 한 사람이 성숙할수록 모가 지지 않고 편안해진다고 여겨집니다. 이것이 인품입니다. 사람은 원래 나이가 들수록 까다로워집니다. 교회의 비밀을 알아야 경건의 비밀이 더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이나 디모데서, 골로새서에서 본 것처럼 믿음의 비밀, 경건의 비밀은 교회의 비밀에 함께 있습니다. 개인 경건은 교회 경건과 함께 있습니다. 경건한 성도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전도합니다. 우리 교회도 새해에 더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 십자가지기교회의 한 지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게 하신 것이요 교회의 비밀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서로 기도하고 서로 낫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용서한다 사랑한다고 할 때 막연히 대상을 정하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비밀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5. 교회의 네 가지 속성


1) 교회의 유일성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라는 것이 교회의 유일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신부요 아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갈비뼈로 교회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밀이 큰 것입니다(엡 5장).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를 바라보고 그와 한 몸이 되고 그를 향해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의 방법은 부부입니다. 예수님만이 남편 되시는 것입니다. 


2) 교회의 보편성


이런 교회는 어느 곳에나 있어야 되고 언제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교회의 지체는 증인의 의무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가 오순절 성령을 받았을 때 모이기에 힘쓰고 떡을 떼고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하기에 힘썼다고 한 것입니다. 바로 증인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언제든 어디든 있어야 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때를 얻든 못 얻든 생명이 있는 자에게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을 교회적으로 생각하면 땅 끝까지 어디에나 교회를 개척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보편성입니다. 거룩한 공회라고 할 때 공회에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교회의 사도성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서야 합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의 말씀의 가르침의 터 위에 서야 합니다. 이것을 교회의 사도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교회의 네 가지 특성이라고 합니다. 콘스탄티노플 1381년 회의에서 정해진 것인데, 거룩성, 보편성, 통일성, 사도성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 네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제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 강요>> 번역을 하고 마지막 각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총회에서 <<사도신경 해설>>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어제 <기독신문>에서 연락이 왔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을 연재하자고 합니다. 

칼빈이 제네바에 처음 들어갔을 때 세 가지를 했습니다. <<기독교 강요>>를 썼고 <<제네바 신앙고백서>>를 만들고 <<신앙교육서>>를 만듭니다. 저도 <<기독교 강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신경, 즉 신앙고백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교육서, 즉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칼빈이 그거 하고 죽을 뻔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지금 제가 이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성도 여러분에게 기도를 부탁하고자 합니다. 그런 일이 별로 없는데 지난 주 교수세미나에 가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십자가지기교회가 어떻게 보면 작지만 266주 동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토대 위에 지금 저를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이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라틴어에서 번역도 해 놓고 신앙고백서 자료도 준비해 두었고, <<기독교 강요>>도 한국 오자마자 초판을 번역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사도성,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서 있다고 할 때, 우리 성도님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기독교 강요>> 번역을 잘 마치게 해 달라고, <<사도신경 해설>>을 잘 쓰게 해 달라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 잘 연재 되어서 그것들이 우리 교단을 넘어서 한국 장로교, 모든 교단에서 읽을 수 있게끔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힘으로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6. 결론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이것이 교회입니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는 하나님께서 지상 교회를 인도하심입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면 다 녹습니다. 교회는 갈등을 만들려 오는 곳이 아니라 벽을 허물고 용서하는 곳입니다. 예배 전과 후는 다르고, 기도 전과 후는 다릅니다. 저는 이것을 꼭 믿습니다. 월요일에는 주일의 힘을 주세요. 저는 십자가지기교회에서 설교하는 이상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1년 52주간 바위를 뚫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