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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갈라디아서 강해(47): 그리스도의 복음] 심음과 거둠 (갈 6:6-10)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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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갈라디아서 강해(47): 그리스도의 복음] 심음과 거둠 (갈 6:6-10) 문병호 목사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진리와 나타나는 삶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6장에서 결론적인 말씀을 전하면서 먼저 '진리에 대해 실족하지 말라', '먼저 올바로 알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서로 짐을 지라'고 합니다. 진리에 대해, 복음에 대해 먼저 경각심을 일깨우고 행위의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본문도 먼저 가르침에 대해 얘기하고 이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항상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드러난 것, 외면적인 것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결과를 놓고 기뻐하거나 절망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말해 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다분히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평에 달린 것이 결과입니다. 그렇게 보면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해서 그것을 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주의 일은 영에 속한 것이므로 영으로 분별이 됩니다. 그러니 더더욱 그런 것입니다. 



2. 교회의 사역으로서의 가르침


오늘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6절에 말씀합니다. 여러 가지 함께 할 것이 있는데 성경에 보면 '함께하라'는 표현은 여기에서만 나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선한 열매를 맺어야 될 것이고 그 선한 열매를 가르치는 자와 함께 누리라, 혹은 가르치는 자에게 감사하라,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선한 것을 나누라, 뭐 어떻게 하라는 측면이라기보다 내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먼저 알고 돌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1) 교회의 본질적 사역: 말씀 사역


그런데 이 말씀에 '함께하라'는 말은 성도의 교제를 뜻합니다. 섬김을 뜻합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무엇보다 본질입니다. 교회의 행정과 자라감과 성장은 말씀입니다. 모든 교회의 은사와 직분은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를 집어 서로 나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같다고 할 때 그 어머니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본질인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자에게 듣고 배우는 자는 함께하고 서로 섬기고 교제하라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직접 가르치심


사람이 어떻게 말씀을 가르칩니까.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기도 힘듭니다. 가르치는 도는 오묘합니다. 가장 쉬운 것이라도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물건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 자신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 본질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사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뜻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역사로 가르칩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적 교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기독교 강요>>에서도 이런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 속의, 영혼의 교사가 성령님이고 진리의 영이 임하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은 인정하고 습득해서 발의하고 그 정도인데 하나님의 계시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수납,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성령이 비추어 주시고 감동시키시고 감화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납합니다. 한국교회의 거목이신 박윤선 목사님은 계시를 수납한다는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그 받아들이는 일을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데 어떻게 하냐 하니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제 손을 사용하는 것은 직접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입으로도 손으로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게도 하시고 전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방식입니다. 


3) 교사의 직분: 목사


교회에는 교사의 직분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직분이 필히 가진 직분이 바로 목사입니다. 그래서 교사에게는 교사권이 있고 목사에게는 말씀을 선포하는 강도권, 가르치는 교사권, 성례를 거행하는 성례 거행권, 권징과 치리를 행하는 치리권이 모두 주어져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직분에 따른 권세는 자기를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섬기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함께 하라는 것이 바로 이 의무입니다. 목사가 말씀을 안 전하면 안 됩니다. 욕을 얻어 먹더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사와 목사, 가르치는 분들은 자기가 자기 것을 가지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밤새 연구해서 자기 것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전부 하나님 것을 가르치는 것이요 자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가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아멘이 나에게 없는데, 감동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가르칩니까. 온전한 수납이 있을 때 그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교사가 되면 안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사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교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가르치려고 하고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 먼저 나서서 자기 것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의 전통을 가지고 가르치려고 하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3. 가르치러 오신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갈릴리와(마 4:23) 가버나움 벳세다 등을 방방 곡곡 다니십니다. 그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십니다(마 9:35). 그러면서 하신 일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르침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진리를 가르치시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주셨다 등으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귀가 없어서 못 들었을 뿐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심으로 아버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많이 생각합니다. 주님이 무슨 일을 행하러 오셨다고만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주님은 가르치러 오셨습니다. 진리를 선포하고 은혜를 베풀러 오신 것입니다(요 1:14). 이 진리는 오묘한 진리입니다. 마음이 즐거워지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못 알아들으면 주님은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여러 비유가 있습니다. 일상의 것들을 소재로 삼아서 비유로도 가르치기에 힘쓰셨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행함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은밀히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은밀히 기도하셨습니다. 밤에 제자들을 보내고 무리를 보내고 아주 피곤하신 가운데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렇게 기도에 대해 강조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전에 겟세마네에서도 제자들이 자는 가운데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선행도 그러셨습니다.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사랑임을 가르치시고 우리를 자녀 삼고 형제 삼기 위하여 친히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결코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교사의 모범이시며, 땅끝까지 말씀을 전하라는 말씀하신 주님은 실제로 땅 끝까지 가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남쪽으로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고 동쪽으로는 거라사 광인을 만났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사마리아 땅, 시돈, 두로 땅까지 가셔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제가 주보를 쓰는데 하나님 앞에 참 죄송했습니다. 우리 교회 주보가 11권이 발간되는 11년 째인데 열한 가정도 안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열한 명은 넘지 않냐라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왜 사람 많은 곳만 가려고 하느냐, 나는 거라사 지방에 광인 한 명을 보고, 사마리아 땅에 수가 성 여인 한 명을 보고, 두로에 한 사람을 만나려 갔는데 어찌 사람 많은 데만 찾아다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서 겸손히 남을 가르치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보혜사 성령이 오면 가르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자신이 먼저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책보지 않으면서 성경은 읽지 않으면서 남보러 성경 읽으라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계속 기도만 부탁하면 안 됩니다. 먼저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신학생들이 3년 공부했다고 하면서 책을 팔고 하는 것을 보면서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평생 가르쳐야 할 텐데 말입니다. 어디 신학교가 면허증 따는 곳이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배우고 교회에 대해 배운 것을 어떻게 남에게 아무리 아쉬워도 굶으면 굶었지 파느냐고 말했습니다. 목사의 서재에 신학교 때 배운 책이 꽂혀야 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6-7);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야고보서의 말씀은 더욱 무섭습니다. 더 큰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저주의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직분이지요, 귀한 직분이지요. 두렵고 떨림이 있지만 하나님이 먼저 가르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칼빈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강단에 담대히 서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말씀을 주심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하면 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서서 내 것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전하는지 말하는 것도 모르고 스스로 확증하지도 않고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확증하는 것을 가르치라는 말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이 부분이 와닿습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한다고 합니다. 거짓 선생의 공통점은 주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이 다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하지 않고 세상 귀만 즐겁게 하고 세상 마음만 밝히는 말을 합니다. 다 선생이라 하지만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값 주고 사셨다는 것을 평생 전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은 주를 부인합니다. 그래서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독촉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사가 얼마나 깨어 있어야 하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너희가 나를 주라, 선생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나 너희도 서로 발을 씻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이제 세월이 조금 흘렀는데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예전처럼 소리를 높이고는 못하지만 한 가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 집의 자식들이 자라 가니 나중에 신학생들이 자식처럼 보입니다. 말씀을 전하지만 많이 조심스럽게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와 선생이 되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도 주와 선생이 되고 싶냐, 그러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라고 하신 것입니다. 섬기라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말입니다. 



5. 영적 나눔과 육적 나눔


오늘은 서두가 길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가르침이 뭔지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가르침이 뭔지, 교회의 교사가 뭘 해야 하는지, 윤리를 가르치는 것인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마음으로 가르치는지 생각하는데,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듣고 가르칠 때 가르침을 받는 자는 역시 같은 성령에서 그 동일한 한 성령을 마시므로 서로 좋은 것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은사의 장인 13장, 14장의 대원칙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교제가 일어나는데 그것의 핵심은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본문도 후반부에 이런 말씀이 연결됩니다. 배웠으면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배우고 드립니다. 이것의 의미는 영적이고 신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첫째 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나누었으면 육적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모든 생업이나 가계와 기업이 영적인 것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말씀은 교회에서 듣고 어떤 기업은 이윤은 세상이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보면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합니다. 영적 부요함, 말씀의 은혜입니다. 가르침의 열매, 교훈의 열매, 진리의 열매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영적인것으로부터 나온 육적인 것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말씀의 결실이 있을 때 그것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는 씨를 뿌린 사람이고 물을 준 사람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함께 나누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6. 말씀은 성령의 역사로써 영적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 7절이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무엇이든 배운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습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기억하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목회 헌장 제1조입니다. 심고 거둔다는 것은 제자들은 금방 압니다. 말씀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 설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뿌려서 무엇으로 거둔다. 이것은 특별히 말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말씀을 심어서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살아 운동력이 있습니다. 심령과 골수와 관절과 영과 혼을 쪼개기까지 합니다.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 스스로 살아 있습니다. 그 말씀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습니다. 살아 있고 항상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풀도 꽃도 시들고 마르고 떨어지나 사시사철을 넘어 세세토록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평화롭게 하고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게 합니다.



7. 말씀을 기도로 심어 마음판에 새기자


올 한해 동안 우리 성도님들께 무슨 말씀을 드릴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전에는 하루도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지난 해에는 며칠 정도 빠졌습니다. 회개합니다. 몸이 피곤하고 하니 꾀를 내었습니다. 이전에는 하루도 기도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게 하자라고 말씀을 제안드렸습니다. 올해에는 다음과 같이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을 기도로 심어 마음판에 새기자." 그리하면 무엇이든 심은 대로 거두리라. 말씀을 읽어도 자꾸 잊어버리는데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저 같은 경우는 선포까지 하면 절대 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올해는 하루도 말씀을 읽고 기도로 심지 않는 날이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말씀 읽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금식에 대해 외식과 관련하여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말씀이 새로운 베를 옛 것에 붙이지 않고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넣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저 읽으면 잊어버립니다. 옛날의 의식을 복음으로 붙이지 말라는 말씀인 것인데, 이처럼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아멘을 하게 되고 아멘이 되면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기도로 심자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젊습니다만 말씀을 읽어도 잊어버리게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영으로 기억한 것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날마다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정확해집니다. 세상의 지식은 세월이 지나가면 자꾸 까먹습니다.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해서 전 재산을 바쳐 밭을 삽니다. 이 보화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살 우리의 재산은 기도입니다. 다른 재산이 없습니다. 말씀을 기도로 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싹 지나갑니다. 그러면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것은 육적인 것을 거두고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을 거둡니다. 



8. 썩어질 것을 심기보다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 9:11). 영적인 것을 거두고 육적인 것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 주의 종은 복음 전하는 것이 일이고 성도들은 주의 종을 먹여 살리는 것이 주의 질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썩어 없어질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마십시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맛에 취하면 맛에 넘어집니다. 향에 취하면 향으로 넘어집니다. 세상 것은 썩어지는데 그냥 그런 것이 아니라 다 위험합니다. 취미조차도 그렇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고 자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느 정도에서 해야지 넘어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을 위해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자는 영생을 거둡니다. 좀도 먹지 않고 도둑도 들지 않습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것은 날마다 신령하고 기름진 것으로 옵니다. 성령을 위하여 성령으로 쫓아 심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타고 역사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심고 거두는 것이 성령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9. 낙심하지 말고 말씀을 심으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이것은 특별히 추수의 때입니다. 이때 "때"는 카이로스,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보시고 은밀히 갚으십니다. 하나도 기도한 것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구제한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좋은 나무,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었습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 십자가지기 성도님들 포기하지 마십시오. 교만할 권리도 낙담할 권리도 없습니다. 맨날 못하고 힘든다고 하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을 심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어 거둡니다. 눈물로 울며 씨를 뿌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은 하나님이 건강 주시는 대로 착한 일을 하라는 말씀으로 보시면 됩니다.



10. 결론: 성도들의 교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그러하라고 합니다. 성도들의 교제에 대한 것인데, 최고의 교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심고 서로 말씀을 나누십시오. 기도로 말씀을 심읍시다. 하루도 그러지 않는 날이 없도록 하자. 이것을 올 한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삼아 성령의 은혜로 영생을 누리는 기쁨이 있기를 축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