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갈라디아서 강해(23): 그리스도의 복음] 율법, 언약의 법 (갈 3:17-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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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 3: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
<녹취록>
1. 약속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소망의 실상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사실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에는 필히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약속이 없으면 우리는 못 믿습니다. 그 약속은 가장 본질적으로, 신분적으로 주어집니다. 불변하는 약속인데 그것은 자녀 됨입니다. 자녀는 못남과 잘남에 상관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자녀를 낳은 것도 품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변하는 약속입니다. 자녀가 여행간다고 하면 어떻게 다녀오라고 약속합니다. 이것들은 순간순간 때마다 있는 약속입니다. 우리 하루 종일의 삶은 어찌보면 약속입니다. 해도 달도 약속대로 뜨고 지고, 우리도 약속대로 직장에 가고 퇴근합니다. 세상도 얼마나 약속에 충실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신뢰합니다. 허언하고 식언하는 자는 믿지 않습니다. 정히 못 지키면 사과하고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세상도 신뢰합니다. 우리가 일련의 삶을 살 때 제자들에게 예컨대 제가 한달에 한번만 약속을 어겨도 신뢰할 수 없는 교수로 여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많은 약속을 하고 대부분의 약속을 지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때가 되면 밥을 주고 자녀들은 그것을 신뢰합니다.
2. 언약: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이것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언약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고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명령이라기보다 권위, 신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영장권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을 낼거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지정의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지닌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 가운데 창조 명령을 주신 것은 권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약속을 맺으시는 것이 창세기 2장의 첫 번째 약속, 즉 언약입니다. 이것을 지키면 영생을 주고 안 지키면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에덴 언약, 첫 언약, 행위 언약, 자연 언약, 생명 언약입니다. 이 언약에서는 행위를 명령하셨고 지키면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영생은 그저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자녀가 되는 것인데, 첫 번째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 지킨 자녀에게 주신 것입니다. 첫 인류에게 주신 것은 영장권뿐입니다. 이것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대단한 가운데 약속을 맺고 영생을 주시려고 인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이 유일하게 인간하고만 조건과 조건에 따르는 약속을 언약 가운데 체결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중요한 단어를 15절 ‘언약’으로 보았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이렇게 중요한 단어가 하나씩 체계적으로 나옵니다. 지난 주 등장한 것이 언약인데, 오늘은 이 언약 가운데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의 언약은 행위 언약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할례가 그 백성 됨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할례는 창세기 17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유대교는 창세기 15장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믿어서 의롭게 되는 그 원리가 나오는 15장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15장,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그 언약입니다. 그 가운데 복이 따르는데 이 복을 먼저 알려주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15장의 언약을 믿기만 하면 12장의 복을 주시는데 그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믿어서 복을 받는 표가 무어냐 하니 바로 17장의 할례입니다. 표는 본질이 아닌데 이것을 착각하는 것이 유대주의입니다. 현재 유대인들은 이 유대주의, 유대교를 믿는 것입니다. 본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갈라디아의 사람들이 십자가와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속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섬기는데 그것은 다시금 율법이 시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본문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이 시작이 아니라 12장, 믿어서 복 받는 것이 아브라함 언약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12장부터 22장까지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질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언약이 할례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다시 한번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은혜 언약이라는 것을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 행위 언약
1) 타락하여 무능해져 행위 언약을 지킬 수 없는 인간
하나님은 행위 언약을 단 한번, 행위할 수 있는 상태에서 맺으셨습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맺은 그 언약입니다. 이 당시 인간은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지켰으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셨을 것이나 아담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언약은 대표의 원리가 있으므로 아담의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모든 인류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끼리 모여서 살 때 윤리적이고 착하다 할 만한 것은 남겨 두셨는데, 이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한 선한 행동도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후로 행위를 조건으로 하시는 언약은 어차피 지킬 수 없으니 주시지 않습니다.
2) 무능한 죄인 대신에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키시는 그리스도
그렇다면 언약을 폐지하시느냐, 하나님은 한번 언약하신 것은 끝까지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인간에게 명령하셔서 못 지키면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 그래서 언약을 폐하지 않으시고, 순종할 자가 한 명도 남지 않은 인류에게 다시 행위를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 사람이로되 죄가 없는 그분을 보내서 이루십니다. 철저히 하나님은 공의와 진리를 찾으시므로 분명히 이 조건을 이루고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이룰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되, 죄가 없는 분이 오셔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모든 것을 이루시고 우리의 죄값을 가져가시고 우리가 본래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죄값만 치르면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순종도 하심으로 첫 번째 아담이 가질 수 없었던 영생을 이루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5. 아브라함의 언약의 조건: 그리스도를 믿음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공로, 이삭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이 조상 대대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서 11장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언약의 계대입니다. 그 언약은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요셉도 모세도 믿어서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이렇게 중요하냐 하니 그것은 첫 번째 에덴 동산에서는 행위를 요구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언약 전에 노아 언약도 있으나, 아브라함의 언약이 중요한 것은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아브라함의 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의 언약을 믿어 창세기 12장의 복을 누리는 것인데 그 복이 이방인인 우리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6. 창세 전에 작정된,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 은혜
이 언약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정하신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기뻐하시는 뜻이 무조건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기뻐하심 원하심 뜻하심을 보면 무조건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으셨으니 거저 주시는 바 은혜를 찬송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창세 전에 이 언약을 미리 바라보신 것입니다. 성경에 자녀 됨이라고 하면 영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처럼 거저 주셔서 찬송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덜 깨달아서 덜 찬송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여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에베소서에도 세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는 끝내 영원히 찬송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흐르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은혜로 자녀 삼아서 찬송하게 하는 이 언약 가운데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언제요, 430년 후에요. 아브라함의 언약, 믿어서 구원함에 이르는 언약 가운데 모세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믿음을 조건으로 영생을 주시는데, 그 믿음의 대상은 오실 그리스도였고 이제는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믿음조차 선물입니다(엡 2:8). 그래서 하나님은 조건을 찾으시는데 조건조차 선물입니다. 그러니 전적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7. 언약의 복: 임마누엘
아브라함의 이 이신칭의 교리, 그리고 의로 여기시고 의로 정하신, 믿어서 의롭게 보시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무엇을 이루냐 하니 아브라함에게 후손의 복을 약속하시고 자녀되고 알곡되고 신부되고 지체되고 자자손손 언약의 대가 이어지는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도 흥왕케 하시되 무엇보다 영원한 하늘나라도 주십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입니다. 우리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는 복 자체가 되게 하십니다. 복은 물질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이방의 입을 들어 그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가 함께 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기생 라합이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벌벌 떠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주의 백성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즉 여호와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엘리야도 모세도 다니엘도 요셉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자들입니다. 임마누엘입니다. 구약에는 이런 특정 인물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모두에게 여호와가 함께 하십니다.
8. 율법이 약속을 폐하지 못하고 조건보다 약속이 앞선다
이 가운데 바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430년 후에 율법이 약속을 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인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 11:8). 또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 그리고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실 줄을 믿었습니다(히 11:19). 이 세 가지가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죽였다가 살리시는 분이니 말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믿음, 신앙이 없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생각에 그럴 뿐이지 하나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믿음에 영생을, 복을 주시는데 이 큰 언약을 율법이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앞부분에 나오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이 원리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았으니 기르시는 것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항상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시고 사람이 누구신지 말씀하십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는데, 언약을 지키면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아브라함의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신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신 6:3). 항상 여호와의 명령에는 약속이 있고, 약속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그것이 본문 18절입니다. 그 유업, 우리 자녀 됨, 상속자 됨(롬 8:17)이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약속에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는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조건을 따지고 약속으로 갑니다. 그러면 그 약속은 결국 내 약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약속 앞서야 합니다. 약속을 먼저 헤아리고 조건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조건을 약속 가운데 이루십니다.
9. 약속이 있기에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약속이 없다면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은 저 소알 땅, 좋은 땅을 택하고 자신은 헤브론 쪽 척박한 땅을 취하여 양보할 때 그런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때 아브라함을 기뻐하시고 또 복을 약속하십니다.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방인들이 와서 다투고 뺏어 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다툼이 없는데도 이삭이 우물을 두고 떠납니다. 우물을 파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약속합니까?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없으면 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추수할 곡식에 이삭을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속이 있으므로 흉년이 져도 이삭을 남겨 나그네와 하늘의 새가 먹게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백성은 눈 앞의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리 가자면 십리 가고 겉옷 달라면 속옷까지 줍니다. 약속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기업을 얻는다고 합니다. 온유한 자는 맨날 당하는 사람입니다. 온유는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참는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온유합니까?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약속을 바라보면 온유해지고 법을 지킵니다. 약속이 있는 사람은 눈앞의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람 상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과정으로 생각하십시오. 좋은 땅을 택한 롯도, 물을 달라고 덤벼드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계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약속이 없으면 율법을 못 지킵니다.
10. 약속으로 인하여 율법이 달콤하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7-10).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이 눈을 뜨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말고 14절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하나님이 나에게 들려주셔서 그것을 읊조릴 때 여호와께서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율법이 송이꿀보다 달고 기쁜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과 조건으로 부딪칠 때 여호와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음해하고 없는 것으로 고발하고 힘들게 할 때 그 사람으로 다투지 마십시오. 사람과 싸우다 다 지쳐서 죽습니다. 뭉뚝하고 거친 사람만 살아남습니다. 예민한 사람은 다 죽습니다. 착한 사람도 안타깝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길 없습니다. 여호와를 보지 않으면 정신병자가 되는 이 사회입니다. 제풀에 쓰러지고 홧병 걸립니다. 사실 어느 때나 인류사회는 그렇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도 여호와를 안 봤으면 모두 그랬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유업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유업을 주시는 약속을 온전하게 지키십니다.
11. 결론: 이 땅의 모든 것을 여호와의 약속을 바라보는 계기로 삼으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약속, 언약이 앞섭니다. 자식이니 시키십니다. 자녀이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하십니다. 상속자는 유업, 약속, 언약과 같은 말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하나님과 함께 받는 고난은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복입니다. 성경에 고난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하십니다. 약속 있는 고난입니다. 옛날 옥한흠 목사님은 <<고난에도 뜻이 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아까 신분의 약속을 말씀했습니다. 어떤 것도 이 신분은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이 있습니다. 태생적, 신분적, 거듭남의 은혜로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여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비행기 타고 만 미터만 올라가도 땅 보면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아옹다옹하고 살 것입니까. 이 땅의 모든 것은 여호와의 약속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이 흥왕하고 우리가 온유해집니다.
[20190915][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갈라디아서 강해(23): 그리스도의 복음] 율법, 언약의 법 (갈 3:17-18) 문병호 목사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약속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소망의 실상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사실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에는 필히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약속이 없으면 우리는 못 믿습니다. 그 약속은 가장 본질적으로, 신분적으로 주어집니다. 불변하는 약속인데 그것은 자녀 됨입니다. 자녀는 못남과 잘남에 상관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자녀를 낳은 것도 품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변하는 약속입니다. 자녀가 여행간다고 하면 어떻게 다녀오라고 약속합니다. 이것들은 순간순간 때마다 있는 약속입니다. 우리 하루 종일의 삶은 어찌보면 약속입니다. 해도 달도 약속대로 뜨고 지고, 우리도 약속대로 직장에 가고 퇴근합니다. 세상도 얼마나 약속에 충실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신뢰합니다. 허언하고 식언하는 자는 믿지 않습니다. 정히 못 지키면 사과하고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세상도 신뢰합니다. 우리가 일련의 삶을 살 때 제자들에게 예컨대 제가 한달에 한번만 약속을 어겨도 신뢰할 수 없는 교수로 여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많은 약속을 하고 대부분의 약속을 지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때가 되면 밥을 주고 자녀들은 그것을 신뢰합니다.
2. 언약: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이것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언약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고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명령이라기보다 권위, 신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영장권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을 낼거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지정의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지닌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 가운데 창조 명령을 주신 것은 권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약속을 맺으시는 것이 창세기 2장의 첫 번째 약속, 즉 언약입니다. 이것을 지키면 영생을 주고 안 지키면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에덴 언약, 첫 언약, 행위 언약, 자연 언약, 생명 언약입니다. 이 언약에서는 행위를 명령하셨고 지키면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영생은 그저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자녀가 되는 것인데, 첫 번째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 지킨 자녀에게 주신 것입니다.
첫 인류에게 주신 것은 영장권뿐입니다. 이것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대단한 가운데 약속을 맺고 영생을 주시려고 인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이 유일하게 인간하고만 조건과 조건에 따르는 약속을 언약 가운데 체결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중요한 단어를 15절 ‘언약’으로 보았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이렇게 중요한 단어가 하나씩 체계적으로 나옵니다. 지난 주 등장한 것이 언약인데, 오늘은 이 언약 가운데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의 언약은 행위 언약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할례가 그 백성 됨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할례는 창세기 17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유대교는 창세기 15장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믿어서 의롭게 되는 그 원리가 나오는 15장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15장,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그 언약입니다. 그 가운데 복이 따르는데 이 복을 먼저 알려주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15장의 언약을 믿기만 하면 12장의 복을 주시는데 그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믿어서 복을 받는 표가 무어냐 하니 바로 17장의 할례입니다. 표는 본질이 아닌데 이것을 착각하는 것이 유대주의입니다. 현재 유대인들은 이 유대주의, 유대교를 믿는 것입니다. 본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갈라디아의 사람들이 십자가와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속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섬기는데 그것은 다시금 율법이 시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본문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이 시작이 아니라 12장, 믿어서 복 받는 것이 아브라함 언약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12장부터 22장까지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질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언약이 할례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다시 한번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은혜 언약이라는 것을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 행위 언약
1) 타락하여 무능해져 행위 언약을 지킬 수 없는 인간
하나님은 행위 언약을 단 한번, 행위할 수 있는 상태에서 맺으셨습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맺은 그 언약입니다. 이 당시 인간은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지켰으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셨을 것이나 아담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언약은 대표의 원리가 있으므로 아담의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모든 인류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끼리 모여서 살 때 윤리적이고 착하다 할 만한 것은 남겨 두셨는데, 이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한 선한 행동도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후로 행위를 조건으로 하시는 언약은 어차피 지킬 수 없으니 주시지 않습니다.
2) 무능한 죄인 대신에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키시는 그리스도
그렇다면 언약을 폐지하시느냐, 하나님은 한번 언약하신 것은 끝까지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인간에게 명령하셔서 못 지키면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 그래서 언약을 폐하지 않으시고, 순종할 자가 한 명도 남지 않은 인류에게 다시 행위를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 사람이로되 죄가 없는 그분을 보내서 이루십니다. 철저히 하나님은 공의와 진리를 찾으시므로 분명히 이 조건을 이루고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이룰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되, 죄가 없는 분이 오셔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모든 것을 이루시고 우리의 죄값을 가져가시고 우리가 본래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죄값만 치르면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순종도 하심으로 첫 번째 아담이 가질 수 없었던 영생을 이루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5. 아브라함의 언약의 조건: 그리스도를 믿음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공로, 이삭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이 조상 대대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서 11장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언약의 계대입니다. 그 언약은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요셉도 모세도 믿어서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이렇게 중요하냐 하니 그것은 첫 번째 에덴 동산에서는 행위를 요구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언약 전에 노아 언약도 있으나, 아브라함의 언약이 중요한 것은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아브라함의 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의 언약을 믿어 창세기 12장의 복을 누리는 것인데 그 복이 이방인인 우리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6. 창세 전에 작정된,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 은혜
이 언약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정하신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기뻐하시는 뜻이 무조건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기뻐하심 원하심 뜻하심을 보면 무조건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으셨으니 거저 주시는 바 은혜를 찬송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창세 전에 이 언약을 미리 바라보신 것입니다. 성경에 자녀 됨이라고 하면 영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처럼 거저 주셔서 찬송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덜 깨달아서 덜 찬송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여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에베소서에도 세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는 끝내 영원히 찬송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흐르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은혜로 자녀 삼아서 찬송하게 하는 이 언약 가운데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언제요, 430년 후에요. 아브라함의 언약, 믿어서 구원함에 이르는 언약 가운데 모세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믿음을 조건으로 영생을 주시는데, 그 믿음의 대상은 오실 그리스도였고 이제는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믿음조차 선물입니다(엡 2:8). 그래서 하나님은 조건을 찾으시는데 조건조차 선물입니다. 그러니 전적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7. 언약의 복: 임마누엘
아브라함의 이 이신칭의 교리, 그리고 의로 여기시고 의로 정하신, 믿어서 의롭게 보시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무엇을 이루냐 하니 아브라함에게 후손의 복을 약속하시고 자녀되고 알곡되고 신부되고 지체되고 자자손손 언약의 대가 이어지는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도 흥왕케 하시되 무엇보다 영원한 하늘나라도 주십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입니다. 우리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는 복 자체가 되게 하십니다. 복은 물질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이방의 입을 들어 그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가 함께 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기생 라합이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벌벌 떠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주의 백성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즉 여호와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엘리야도 모세도 다니엘도 요셉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자들입니다. 임마누엘입니다. 구약에는 이런 특정 인물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모두에게 여호와가 함께 하십니다.
8. 율법이 약속을 폐하지 못하고 조건보다 약속이 앞선다
이 가운데 바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430년 후에 율법이 약속을 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인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히 11:8). 또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 그리고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실 줄을 믿었습니다(히 11:19). 이 세 가지가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죽였다가 살리시는 분이니 말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믿음, 신앙이 없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생각에 그럴 뿐이지 하나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믿음에 영생을, 복을 주시는데 이 큰 언약을 율법이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앞부분에 나오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이 원리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았으니 기르시는 것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항상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시고 사람이 누구신지 말씀하십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는데, 언약을 지키면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아브라함의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신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신 6:3). 항상 여호와의 명령에는 약속이 있고, 약속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그것이 본문 18절입니다. 그 유업, 우리 자녀 됨, 상속자 됨(롬 8:17)이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약속에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는데 이 약속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조건을 따지고 약속으로 갑니다. 그러면 그 약속은 결국 내 약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약속 앞서야 합니다. 약속을 먼저 헤아리고 조건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조건을 약속 가운데 이루십니다.
9. 약속이 있기에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약속이 없다면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은 저 소알 땅, 좋은 땅을 택하고 자신은 헤브론 쪽 척박한 땅을 취하여 양보할 때 그런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때 아브라함을 기뻐하시고 또 복을 약속하십니다.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방인들이 와서 다투고 뺏어 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다툼이 없는데도 이삭이 우물을 두고 떠납니다. 우물을 파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약속합니까?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없으면 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추수할 곡식에 이삭을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속이 있으므로 흉년이 져도 이삭을 남겨 나그네와 하늘의 새가 먹게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백성은 눈 앞의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리 가자면 십리 가고 겉옷 달라면 속옷까지 줍니다. 약속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기업을 얻는다고 합니다. 온유한 자는 맨날 당하는 사람입니다. 온유는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참는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온유합니까?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약속을 바라보면 온유해지고 법을 지킵니다. 약속이 있는 사람은 눈앞의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람 상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과정으로 생각하십시오. 좋은 땅을 택한 롯도, 물을 달라고 덤벼드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계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약속이 없으면 율법을 못 지킵니다.
10. 약속으로 인하여 율법이 달콤하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7-10).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이 눈을 뜨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말고 14절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하나님이 나에게 들려주셔서 그것을 읊조릴 때 여호와께서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율법이 송이꿀보다 달고 기쁜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과 조건으로 부딪칠 때 여호와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음해하고 없는 것으로 고발하고 힘들게 할 때 그 사람으로 다투지 마십시오. 사람과 싸우다 다 지쳐서 죽습니다. 뭉뚝하고 거친 사람만 살아남습니다. 예민한 사람은 다 죽습니다. 착한 사람도 안타깝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길 없습니다. 여호와를 보지 않으면 정신병자가 되는 이 사회입니다. 제풀에 쓰러지고 홧병 걸립니다. 사실 어느 때나 인류사회는 그렇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도 여호와를 안 봤으면 모두 그랬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유업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유업을 주시는 약속을 온전하게 지키십니다.
11. 결론: 이 땅의 모든 것을 여호와의 약속을 바라보는 계기로 삼으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약속, 언약이 앞섭니다. 자식이니 시키십니다. 자녀이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하십니다. 상속자는 유업, 약속, 언약과 같은 말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하나님과 함께 받는 고난은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복입니다. 성경에 고난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하십니다. 약속 있는 고난입니다. 옛날 옥한흠 목사님은 <<고난에도 뜻이 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아까 신분의 약속을 말씀했습니다. 어떤 것도 이 신분은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이 있습니다. 태생적, 신분적, 거듭남의 은혜로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여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비행기 타고 만 미터만 올라가도 땅 보면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아옹다옹하고 살 것입니까. 이 땅의 모든 것은 여호와의 약속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이 흥왕하고 우리가 온유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