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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갈라디아서 강해(28): 그리스도의 복음] 유업을 이을 자 (갈 3:28-29)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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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갈라디아서 강해(28): 그리스도의 복음] 유업을 이을 자 (갈 3:28-29)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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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녹취록>


1.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인지, 즉 그리스도의 자손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저 받은 것이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이고 서로 다름이 없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그리스도의 것"(25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것은 완성이고 본질이고 영원이고 불변입니다. 그 안으로 모든 것이 흘러가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면 됩니다. 절망할 것도 자만할 것도 없으며 예수님만 믿으면 다 동일하고 그 손만 잡으면 다 한 길로 가고 예수님의 찢긴 몸으로 지성소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새로운 것, 새로운 대속 사건이 없습니다.
구약에는 많은 인물이 있어 그들을 보고 교훈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뚜렷이 바라본 것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입니다. 그들은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행실이 뛰어나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으면, 아브라함이 예수 때를 미리 바라보고 기뻐한 것처럼, 그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히 11:1)인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 쓸모도 필요도 없습니다.



2.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차별되지 않는 형제자매이다


교회는 문화 광장이 아닙니다. 동호회가 아니요 내 교양을 키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지체로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영생이요 본질이요 우리 존재 자체입니다. 메시아도 하나요 그리스도도 하나요, 그러므로 우리가 한 믿음 가운데 한 주를 섬기는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첫 번째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악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능이 없어서 짐승만도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적인 한계와 판단이 모두 사라지고, 함, 셋, 야벳 족속이 없고 흑인도 황인도 백인도 없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무의미합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구분이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에게나 자신이 빚진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혈통과 인종을 모두 폐했습니다.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3). 이제는 민족과 인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 장애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된 형제자매로 지냅니다.
이제는 유대인의 표로 할례가 없습니다. 할례는 민족과 혈통의 표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에게 세례의 표, 예수 그리스도의 불세례와 성령세례를 인치는 물세례, 마음의 할례만 있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의 경계도 없습니다. 구약에는 이방인의 뜰이 있어서 안으로 갈수록 유대인들만 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소도 지성소도 이방인의 뜰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스가랴 14장 마지막 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치러 온 이방인들 중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가서 그 왕 만군의 왕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킨다고 합니다. 아주 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방 나라들이 치러 왔다가 그들 중 남은 자가 예루살렘, 초막절을 지키러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신약은 십자가입니다. 구약은 눈을 들어 산을 본다고 할 때 그 터는 예루살렘이고, 그 나라의 민족은 열두 지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든지 십자가를 봅니다.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인종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누구라도 형제요 자매로서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합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예수님은 온갖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여러 종족에게 핍박을 받으신 것은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당한 만큼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당한 만큼 구원해 주십니다. 헬라인과 유대인은 서로 원수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인데 헬라인, 즉 그리스인을 언급하는 이유는 여전히 그 시대에 헬라 문화가 가장 고급스러운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언어도 고급 언어는 헬라어였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 로마가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아닌 헬라와 유대를 비교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 사역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보면 그런 육신의 경계를 넘어섬을 알게 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종교가 가장 흥왕한 곳 중 한 곳에 사는 자입니다. 그 여인은 그러나 칭찬을 받았습니다. 로마 백부장도 가장 잔인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믿음이 크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은, 흑인이라고 보는 주석가도 있듯이, 철저히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끝내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 나서는 것이 구원의 원리라면 바로 주님을 많이 괴롭힌 자들을 주님이 구원하신 것입니다. 다윗을 보면 어려움을 당하며 거하던 땅을 결국 다스리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기독교는 정말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는 곳까지 터가 됩니다. 가장 내 수치도 보이고 핍박 받은 그곳이 내 지경이 됩니다. 본문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그곳이 내 지경입니다. 그곳을 몰라라 하고 나쁘다 하고 시험받은 곳으로 빼내 버리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무미건조합니다. 용서하고 끌어안을 때 우리 지경이 넓어지고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이방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종이나 자유인이나"


두 번째로, 종이나 자유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합니다. 주님의 품에 안기면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종도 없고 주인도 없습니다. 누구의 품에 안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이 한 분이시므로 누구든지 주님을 믿으면 주님께서 아이들을 안고 축복하고 안수하시듯 하십니다. 주님이 한 분이니 종이나 자유자의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그리고 로마서 17장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는 상속자입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나고 일으키고 다스리고 함께 보좌 우편에 앉으십니다(엡 2:5-6). 우리의 신분은 하나입니다. 신부이자 아내입니다. 보아스의 아내 룻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종이나 자유자의 구별 없이 하나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질서이지 계급이 아닙니다. 은사도 높낮이가 없습니다. 고린도서나 로마서에 분명히 나옵니다. 우리 몸에 귀천이 없습니다. 발가락은 천하고 눈은 귀하지 않습니다. 손이 없으면 먹을 수 없고 발이 없으면 걸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모든 은사는 똑같습니다. 지식 없는 예언, 사랑 없는 방언, 소망 없는 권면은 소용없습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상대를 낫게 여겨야 합니다. 깊이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도 아니고 종도 아니고, 상대의 자리에 서서 깊이 헤아리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과 믿음과 긍휼의 법으로 교회는 다 하나입니다. 질서가 있을 뿐입니다. 교회는 또한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6장을 보면 우리가 다 의의 종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우리는 의의 종입니다. 의의 종은 죄의 자유함을 받고 의를 이루려고 애쓰는 천국의 상급을 이 땅에서 쌓아 가는 종입니다. 사실 종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멍에를 메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도 자유자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남자나 여자나"

세 번째로, 남자나 여자나 구별이 없다고 합니다. 남녀의 구별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참정권도 우리나라는 서양 국가들보다 빨리 주어졌습니다. 여권과 모권이 약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부요 아내요 지체요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간에 높낮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질서가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공생애에 필요할 것을 공급한 자들은 여자였습니다. 재물을 팔고 열두 제자보다 갈릴리부터 더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교회의 큰 특징일 수도 있습니다. 빌립보에 자주 장사 루디아가 나타납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헌신을, 사마리아 여인은 회개를, 수로보니게 여인은 신앙의 담대함을, 막달라 마리아는 변치 않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대표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여자들이 많은 일을 한 것을 보입니다.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자,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3. 그리스도 연합한 교회


1) 각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성도 간에 하나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입니다. 하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된 것 같이 저들도 하나되게 하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 17:22). 주님은 우리가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하나된 몸으로 자라가기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각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서로가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그 열매로 우리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성도 서로간의 하나됨보다 서로 각자의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성도 각자가 기도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맛을 즐기면서 살지 않는데 우리가 모였다고 맛이 나지 않습니다. 성도 각자의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성도 간의 하나됨보다 앞섭니다.
우리 교회는 무리로 따지면 수가 적지만, 한 가족으로 따진다면 수가 적지 않습니다. 이만한 가족이 요새 많지 않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한 몸, 한 가족, 한 지체라고 합니다. 무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무리는 하늘에 떠다니는 그런 새들을 표현하는 것이고, 주님을 핍박할 때 모인 사람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고, 신부이자 몸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형제자매 한 명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는 다 하나입니다.


2)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전된 교회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 2:21). 이제 구약적 성전 개념이 아닙니다. 신약은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유일하신 성전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46년만에 지은 헤롯 성전을 무너뜨리고 3일만에 세우시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3)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이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바라봅니다. 우리 십자가지기교회는 예수만 바라보면 됩니다. 예수만 바라봐야 합니다. 저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예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신앙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예수 믿어 천국가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이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바알에 속하였느냐, 하나님께 속하였느냐, 네가 누구의 것이냐, 그리스도의 것이라. 본질은 이것입니다.
이 단순한 고백으로 수많은 믿음의 선조가 순교했습니다. 지붕이 없는 감옥에서 이 한 가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아 얼어 죽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화형당하는 자가 너무 많으니 북해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의 것이 되는 것이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은혜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옛날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묻는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에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지만 유대인임을 밝히고 이방인과 정결례 등으로 구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도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육신의 눈으로 봤지만, 이런 면에서는 바울이 더 나아 보입니다. 바울은 십자가 앞에 간 적이 없으나 십자가를 밝히 봅니다. 이것도 늦게 된 자가 먼저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습니다. 새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것입니다. 다른 것이 있으면 다 거추장스럽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그리스도만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양분으로 내가 자랍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갑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인 것입니다.


4)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교회 안에서 다른 것보다 같은 것이 더 많습니다. 몸도 성령도 부르심도 주도 믿음도 세례도 같습니다. 그 가운데 조금 다른 것뿐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다 같은 것으로 우리가 하나인 것입니다.
교회는 네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이라는 곳에서 정한 것입니다.
첫째는 유일성입니다.
둘째는 거룩성입니다. 두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셋째는 보편성입니다. 하나인 거룩한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세계에 퍼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개척하고 땅끝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교회의 사도성입니다. 선지자와 사도의 말씀의 터 위에 서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5)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서로를 구별하지 않는다


첫째로 들었던 유일성처럼 우리는 하나이고, 형제자매입니다. 서로 낫게 여기고 연약할수록 허물을 덮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먼저 믿었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주 안에서 주인도 종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짜 은혜를 입었다면, 예수와 십자가만 자랑할 것이요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령한 것으로 났을 때 말입니다. 세속적인 것은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양이 목자의 음성을 그러하듯 구별합니다. 목자가 먼저 구별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리를 내면 목자가 들으십니다. 목자는 양을 버리지 않습니다. 한 마리의 양을 99마리 양보다 귀하게 여기고 찾아 갑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성도를 구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자녀, 우리 성도입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문을 들어와 예배드리는 자들은 값주고 우리를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 하나입니다. 은사이니 확신이니 하는 것들은 저 밑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신 바 되어 형제자매 삼아 주시고 포도원에 불러서 함께 상을 차려 음식을 들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동참하게 하고 그것이 천상의 상급이 되게 하셨습니다. 포도원이 없으면 상급이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6)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가요? 절망과 좌절이 있고 자괴감이 드나요? 이 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적신이나 높음이나 낮음이나 정사나 권세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이 고백으로 우리는 하나입니다. 교회는 고백의 공동체입니다. 그가 우리를 그의 사랑에서 끊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지명하신 것, 그 부르심이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4. 결론: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를 위해 서로 기도하자


—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이 인치심이 너는 내 것이라고 인쳐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의 씨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 그를 믿어야 아브라함의 씨인 것입니다. 인종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선민, 거룩한 백성, 택함받은 백성입니다. 제가 미국, 영국, 제네바로 유학다닐 때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대구에 갈 때도, 고등학교에서 서울로 대학 진학할 때도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 갈 때는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 형제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하러 가는데 만나는 모든 자가 다 형제라는 것입니다. 만나서 관심 가져 보고 어떻게 믿는지 알아보고, 서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많이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말씀,디모데전서 2장 5절처럼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도 주시고 생활도 주십니다. 제 유학생활에 기억나는 것은 기도한 것입니다. 많이는 못했습니다마는 새벽에, 수업 전에 기도하면서 북해에 해가 떠서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한 피 나눈, 주님이 값주고 사신 형제입니다.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그러니 서로 기도합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17절의 ‘상속자’와 같은 말입니다. 약속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자매입니다. 우리 교회는 무리의 수로는 적으나 형제자매로는 많습니다. 우리가 많아야 3형제, 4형제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못나도 잘나도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잘나도 못나도 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멍에를 맸습니다. 우리가 서로 보듬고 기도하고 서로 허물을 덮고 위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이름으로 이 하나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정학적으로 긴요한 위치에 있는 한국이, 한국 교회의 이런 하나됨이 북한도 중국도, 다른 여러 국가에도 섬기는 일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