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0][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49)] 마지막 날의 믿음 (마 24:1-14)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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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마 24: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 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 2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마 24: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녹취록>
1. 승천을 앞 두신 주님께서 주신 말씀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큰 구원사역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귀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로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요, 누구든지 그 말을 듣고 믿는 자는 구원에 이릅니다. 주님께서 많은 말씀을 남겨 주신 가운데, 특히 주님이 이 땅을 떠나시면서 귀하게 두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 하나가 마가 다락방에서의 요한복음 14-16장 말씀입니다.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성찬을 제정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주신 말씀인데 그 주제는 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 좌정하셔서 보혜사 성령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얼마 전에 감람산에서 또 말씀을 주십니다. 본문의 말씀은 감람산에서 공생애 거의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감람산 강화라고도 하는데 이 말씀이 마태복음 24, 25장 부근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 될 일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아직 이 땅에서 십자가에 달리시지도 않으셨는데, 죽음,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것과 마지막에 주님이 내려오실 일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큰 환란이 있으나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것을 능히 이길 것과 미혹과 불법의 영이 많아 처처에 무정함과 거짓이 가득할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주 귀한 것을 교훈으로 남기셔서 우리가 그것을 계속 새기게 하셨습니다. 산상복음도 그렇습니다. 이는 보혜사 성령을 받은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잡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서 보혜사 성령을 내려주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본문 감람산 강화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는 것은 마가 다락방, 그리고 이 성령을 받아 살 것은 산상복음,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감람산 강화에서 말씀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말씀을 잘 알면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과 소망을 따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감람산 강화: 종말의 삶
특히 감람산 강화에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복된 것이 종말의 삶으로 제시합니다.
1) 구속사
구속의 역사는 창조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는 한 주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늘과 땅, 별과 달, 수목, 짐승 모든 것과 사람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창조 이후에 우리 인류가 타락했습니다. 타락을 하니 아무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없어 죽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심판의 삶에 놓인 가운데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한 주를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종려주일로 지키는 그 날입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이 딱 한 주간입니다. 이 부활의 한 주간은 예수님의 부활로 끝이 납니다. 창조의 한 주간이 안식일로 끝나고 지킨다면 새 생명, 부활의 한 주간은 죽음을 이시기고 부활하신 그 날을 영원한 안식의 날, 주일로 삼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다 이루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다 이루신 부활의 열매를 예수님은 끝내 곳간에 들이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우리를 부활체로, 신령한 몸으로 받으시는데 그것이 성도를 하늘의 곳간에 들이시는 것이요,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와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2) 성전
이제 본문에서도 1절을 보면 성전에 대해 질문합니다. 성전에서 나와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을 세 번 지었습니다. 첫 번째는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훼파되었습니다. 또한 성전의 기물들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제2차 성전은 스룹바벨 총독 때 지어진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짓는데 이 스룹바벨 성전은 볼품이 없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이두메, 에돔 족속으로 왕이 되어서는 안될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후 컴플렉스를 이기기 위해 성전을 짓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을 개축한다고 하여 새로 짓습니다. 사실상 옛날 것을 다 없애고 새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AD 63년에 완성됩니다. 46년만에 완성되었다고 성경에 나오는데 계속 개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크게 한 것이 인구조사인데 예수님이 그 때 나신 것입니다. 헤롯은 머리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인구 조사를 하고 성전을 짓고 하여 군사권을 가져가려고 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이 헤롯 성전에 대해 묻자 예수님께서는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1차 솔로몬 성전에 대해 예언한 것입니다. 다 성취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 성전에 대해서도 이 말씀을 우리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헤롯 성전에 쓰인 돌은 매우 컸습니다. 가로 7미터, 세로 4미터 이상 되는 것이었습니다. 높이는 5미터 되는 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돌로 지은 헤롯 성전에 훼파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성전이 완전히 완성된 것은 주후 63년인데, 불과 7년 후에 디도가 이 성을 함락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다 무너뜨리고 완전히 예루살렘이 불타버리는데 그것을 예수님이 예연하신 것입니다. 이 성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지막 한 주간의 삶을 보내실 때 예수님이 가장 처음하신 일은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환전하고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도 성전이 무너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첫째, 진정한 성전, 영원한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의 상한 살이 살 길이요, 그 살이 휘장이요, 친히 휘장을 찢어 우리가 지성소 안에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는 것이 그 의미입니다. 옛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오며,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 된 우리 둘째,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성소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우리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말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성전이고 우리가 성전이요, 우리는 스스로 성전 된 자가 아니라 성전 되신 예수님과 함께 거할 때 그러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말세입니다.
(3) 종말적 예배 지금은 지역 교회에서 각자 예배드리지만, 새 예루살렘에서는 한 장막, 한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말세
(1) 말세의 징조: 미혹과 불법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3절 후반부에 언제 이런 일이 있겠냐고 징조, 즉 표적을 물으니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징조, 즉 표적은 단수로 기록됩니다. 말세의 징조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성전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 멀어지고 양과 염소로 구분되는 시점이 말세로 가는 시점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구분되니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처처에 그리스도라 하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이단들이 횡행하여 서로 옳다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참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언제라도 흔들리지 않게끔 말입니다. 말세에는 다른 의도 진리도 피난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에서 예배드리면 됩니다. 특별한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세에 더 성도의 열심을 내는 것은 좋지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 기도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일 하는 것이 미혹이고 불법입니다.
(2) 말세의 삶 우리가 다락방 강화 중에 보면 본문이 속한 마가복음 24:44까지의 말씀이 예수님이 오실 때 모습입니다. 그리고 24:45부터 24장까지는 말세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25장을 보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열 처녀 비유입니다.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같이 숨겨놓고 눕자, 졸자 하지 말고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하나님이 다 하시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나도 한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말세에는 양과 염소가 점점 구분이 되어 싸웁니다. 그리고 말세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가 25장 후반부에 나옵니다. 소자 하나라도 영접하고 길을 같이 가주며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에게 문안하는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말세에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미혹과 불법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종말에 서울만 해도 자칭 예수라 하는 자가 몇십 명이 됩니다. 여자 그리스도도 있습니다. 본문 4절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말세에는 크게 미혹과 불법이 있습니다. 본문 11절과 12절은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미혹할 것과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합니다. 미혹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예수 대신에 다른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불법은 예수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혹이 더 음흉합니다. 은근히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좋다, 좋다 하면서 동행하는데 어느날 늪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도 말씀이 나옵니다. - “...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살후 2:11). 미혹의 역사를 보내신다고 합니다. 미혹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불법에 대해 말합니다.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살후 2:7-8). 불법이 성하다고 합니다. 예수를 아예 거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입에 담는데 오히려 그리스도를 더 부인합니다. 이단과 불법의 역사가 더 성하다는 것입니다.
(4) 단수적 신앙으로 깨어 분별하라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서 바라봐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세는 거추장스럽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단수입니다. 우리 신앙은 단수적인 신앙입니다. 영도 그리스도도 주도 진리도 역사도 구원도 비밀도 영생도 언약도 천국도 하나입니다. 말세에는 단수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복수 신앙은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점치고 복권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어느새 들어옵니다. 말세에는 단수입니다. 우리 십자가지기 성도님들은 다른 것 없습니다. 예수 하나로 족하면 됩니다. 예수의 의로 만족합니다. 이 의로 천국가고 만세, 영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삽니다. 그런데 이것을 미혹합니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합니다. 그 교회 다니면서 자기 교회도 오라고 합니다. 흙탕물과 맑은 물이 섞입니다. 점점 가져가는 것입니다. -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12). 말세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말세는 예언, 비밀, 열심의 은사도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올곧은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5) 말세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라 말세에 미혹과 불법의 영이 많은 것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자를 분별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세에 이단의 횡행함을 한탄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본문 이후 24절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개라도 쫓아오면 우리는 직선으로 달려갑니다. 그것이 말세의 영적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의 십자가만 보이면 됩니다.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십자가가 밝히 보이므로 우리를 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어린아이는 이기나 어른은 못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말세에 미혹과 불법의 영은 처처에서 스스로 그리스도라 하지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많이 고백합니다. 말세에는 고백이 뚜렷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순수한 겨자씨에 있습니다. 순수하게 똑바로 바라보는 자에게는 봄의 꽃망울처럼 확 터뜨려 주십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나무 그림과 같이 그저 거기에 머뭅니다. 겨울의 나무처럼 자리에 딱 박혀 있으면 봄에 움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십자가의 죽으신 분을 하나님이 살리셔서 나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자신이 주라 하거든, 그리스도라 하거든, 그가 나를 위해 죽은 적이 있는지 물으면 됩니다. 인생은 인생의 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시고 그 의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 주셨으므로 그것이 영원한 나의 의가 되어 말세든 언제든 이기게 하십니다. 깨어서 기도하는데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 보면서 신앙생활 하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것 없이 아무 이상 없는 사람이 이깁니다. 헛된 것, 거짓 것이 못 들어옵니다.
(6) 말세의 환란을 이기는 은혜 그리고 말세에는 재난이 있다고 합니다. 본문 6-9절의 말씀입니다. 이 가운데 성도들의 환란이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입니다. 육체는 죽이나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서머나 교회가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환란이 있다 해도 환란이 없습니다. 환란은 유혹의 경계선상에 있는 자들에게 환란입니다. 순교자들은 환란을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종이 되어 신학교에서 가르치지만 하나님이 피하게 하시고 올곧게 세워 주십니다. 환란이라는 것이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막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오히려 더 온전케 하십니다. 본문 13절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서머나 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말세의 인내로 영혼을 얻습니다.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인내라고 하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그 응답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말씀, 기도, 오래참음(인내)입니다.
(7) 말세에 예배 중심으로 살라 말세에 이것 외에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예배에 힘쓰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리고 더 많이 예배 드리면 됩니다. 조금 더 쉽고 편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심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그 중심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옛날에 주일학교 섬기고 할 때도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다는 것이 99점이고 잘 드리고 못 드리는 것은 1점이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 드리는 것이 중심입니다. 여건을 따져 드리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으로 드립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말세의 이 환란, 어려움, 미혹, 불법을 이기는 힘은 혼자 구석에 들어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이기와 기도하기와 전도하기에 힘쓰는 초대교회처럼 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사랑하라 그리고 떡을 떼고 모든 것을 나누는 사랑이 풍성한 것입니다. 본문에도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적그리스도들은 결국 사랑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단과 적그리스도는 그러므로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끊어 놓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정통 교회 가니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이지, 성도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부차적이고 후속적인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사람에게 사랑받으러 오지 않습니다. 목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보면 그 행태가 보입니다. 말세는 무정하고 사랑이 식어집니다. 아무리 요란하게 해도 이단들은 사랑이 없습니다.
(9) 증인의 삶을 살라 마지막으로 본문 14절은 이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됩니다.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끝까지 구원을 이루는데 상급 있는 자리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상급 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것인데,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끝까지 참게 하시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교회도 말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그 가운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면, 그것이 바로 말세를 이기는 힘입니다.
3. 결론
말세는 열매 맺고 풍성하고 곳간에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마지막 때 우리의 열매입니다.
[20190310][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49)] 마지막 날의 믿음 (마 24:1-14) 문병호 목사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승천을 앞 두신 주님께서 주신 말씀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큰 구원사역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귀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로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요, 누구든지 그 말을 듣고 믿는 자는 구원에 이릅니다. 주님께서 많은 말씀을 남겨 주신 가운데, 특히 주님이 이 땅을 떠나시면서 귀하게 두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 하나가 마가 다락방에서의 요한복음 14-16장 말씀입니다.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성찬을 제정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주신 말씀인데 그 주제는 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 좌정하셔서 보혜사 성령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얼마 전에 감람산에서 또 말씀을 주십니다. 본문의 말씀은 감람산에서 공생애 거의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감람산 강화라고도 하는데 이 말씀이 마태복음 24, 25장 부근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 될 일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아직 이 땅에서 십자가에 달리시지도 않으셨는데, 죽음,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것과 마지막에 주님이 내려오실 일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큰 환란이 있으나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것을 능히 이길 것과 미혹과 불법의 영이 많아 처처에 무정함과 거짓이 가득할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주 귀한 것을 교훈으로 남기셔서 우리가 그것을 계속 새기게 하셨습니다.
산상복음도 그렇습니다. 이는 보혜사 성령을 받은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잡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서 보혜사 성령을 내려주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본문 감람산 강화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받는 것은 마가 다락방, 그리고 이 성령을 받아 살 것은 산상복음,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감람산 강화에서 말씀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말씀을 잘 알면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과 소망을 따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감람산 강화: 종말의 삶
특히 감람산 강화에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복된 것이 종말의 삶으로 제시합니다.
1) 구속사
구속의 역사는 창조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는 한 주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늘과 땅, 별과 달, 수목, 짐승 모든 것과 사람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창조 이후에 우리 인류가 타락했습니다. 타락을 하니 아무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없어 죽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심판의 삶에 놓인 가운데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한 주를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종려주일로 지키는 그 날입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이 딱 한 주간입니다. 이 부활의 한 주간은 예수님의 부활로 끝이 납니다. 창조의 한 주간이 안식일로 끝나고 지킨다면 새 생명, 부활의 한 주간은 죽음을 이시기고 부활하신 그 날을 영원한 안식의 날, 주일로 삼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다 이루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다 이루신 부활의 열매를 예수님은 끝내 곳간에 들이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내려오셔서 우리를 부활체로, 신령한 몸으로 받으시는데 그것이 성도를 하늘의 곳간에 들이시는 것이요,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와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2) 성전
이제 본문에서도 1절을 보면 성전에 대해 질문합니다. 성전에서 나와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을 세 번 지었습니다. 첫 번째는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훼파되었습니다. 또한 성전의 기물들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제2차 성전은 스룹바벨 총독 때 지어진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짓는데 이 스룹바벨 성전은 볼품이 없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이두메, 에돔 족속으로 왕이 되어서는 안될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후 컴플렉스를 이기기 위해 성전을 짓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을 개축한다고 하여 새로 짓습니다. 사실상 옛날 것을 다 없애고 새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AD 63년에 완성됩니다. 46년만에 완성되었다고 성경에 나오는데 계속 개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크게 한 것이 인구조사인데 예수님이 그 때 나신 것입니다. 헤롯은 머리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인구 조사를 하고 성전을 짓고 하여 군사권을 가져가려고 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이 헤롯 성전에 대해 묻자 예수님께서는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1차 솔로몬 성전에 대해 예언한 것입니다. 다 성취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 성전에 대해서도 이 말씀을 우리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헤롯 성전에 쓰인 돌은 매우 컸습니다. 가로 7미터, 세로 4미터 이상 되는 것이었습니다. 높이는 5미터 되는 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돌로 지은 헤롯 성전에 훼파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성전이 완전히 완성된 것은 주후 63년인데, 불과 7년 후에 디도가 이 성을 함락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다 무너뜨리고 완전히 예루살렘이 불타버리는데 그것을 예수님이 예연하신 것입니다.
이 성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지막 한 주간의 삶을 보내실 때 예수님이 가장 처음하신 일은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환전하고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도 성전이 무너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첫째, 진정한 성전, 영원한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의 상한 살이 살 길이요, 그 살이 휘장이요, 친히 휘장을 찢어 우리가 지성소 안에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는 것이 그 의미입니다. 옛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오며,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 된 우리
둘째,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성소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우리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말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성전이고 우리가 성전이요, 우리는 스스로 성전 된 자가 아니라 성전 되신 예수님과 함께 거할 때 그러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말세입니다.
(3) 종말적 예배
지금은 지역 교회에서 각자 예배드리지만, 새 예루살렘에서는 한 장막, 한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말세
(1) 말세의 징조: 미혹과 불법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3절 후반부에 언제 이런 일이 있겠냐고 징조, 즉 표적을 물으니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징조, 즉 표적은 단수로 기록됩니다. 말세의 징조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성전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 멀어지고 양과 염소로 구분되는 시점이 말세로 가는 시점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구분되니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처처에 그리스도라 하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이단들이 횡행하여 서로 옳다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참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언제라도 흔들리지 않게끔 말입니다. 말세에는 다른 의도 진리도 피난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에서 예배드리면 됩니다. 특별한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세에 더 성도의 열심을 내는 것은 좋지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 기도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일 하는 것이 미혹이고 불법입니다.
(2) 말세의 삶
우리가 다락방 강화 중에 보면 본문이 속한 마가복음 24:44까지의 말씀이 예수님이 오실 때 모습입니다. 그리고 24:45부터 24장까지는 말세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25장을 보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열 처녀 비유입니다.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같이 숨겨놓고 눕자, 졸자 하지 말고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하나님이 다 하시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나도 한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말세에는 양과 염소가 점점 구분이 되어 싸웁니다.
그리고 말세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가 25장 후반부에 나옵니다. 소자 하나라도 영접하고 길을 같이 가주며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에게 문안하는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말세에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미혹과 불법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종말에 서울만 해도 자칭 예수라 하는 자가 몇십 명이 됩니다. 여자 그리스도도 있습니다. 본문 4절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말세에는 크게 미혹과 불법이 있습니다. 본문 11절과 12절은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미혹할 것과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합니다. 미혹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예수 대신에 다른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불법은 예수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혹이 더 음흉합니다. 은근히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좋다, 좋다 하면서 동행하는데 어느날 늪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도 말씀이 나옵니다. - “...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살후 2:11). 미혹의 역사를 보내신다고 합니다. 미혹하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불법에 대해 말합니다.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살후 2:7-8). 불법이 성하다고 합니다. 예수를 아예 거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입에 담는데 오히려 그리스도를 더 부인합니다. 이단과 불법의 역사가 더 성하다는 것입니다.
(4) 단수적 신앙으로 깨어 분별하라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서 바라봐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세는 거추장스럽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단수입니다. 우리 신앙은 단수적인 신앙입니다. 영도 그리스도도 주도 진리도 역사도 구원도 비밀도 영생도 언약도 천국도 하나입니다. 말세에는 단수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복수 신앙은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점치고 복권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어느새 들어옵니다. 말세에는 단수입니다. 우리 십자가지기 성도님들은 다른 것 없습니다. 예수 하나로 족하면 됩니다. 예수의 의로 만족합니다. 이 의로 천국가고 만세, 영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삽니다. 그런데 이것을 미혹합니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합니다. 그 교회 다니면서 자기 교회도 오라고 합니다. 흙탕물과 맑은 물이 섞입니다. 점점 가져가는 것입니다. -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12). 말세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말세는 예언, 비밀, 열심의 은사도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올곧은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5) 말세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라
말세에 미혹과 불법의 영이 많은 것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자를 분별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세에 이단의 횡행함을 한탄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본문 이후 24절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개라도 쫓아오면 우리는 직선으로 달려갑니다. 그것이 말세의 영적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의 십자가만 보이면 됩니다.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십자가가 밝히 보이므로 우리를 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어린아이는 이기나 어른은 못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말세에 미혹과 불법의 영은 처처에서 스스로 그리스도라 하지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많이 고백합니다. 말세에는 고백이 뚜렷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순수한 겨자씨에 있습니다. 순수하게 똑바로 바라보는 자에게는 봄의 꽃망울처럼 확 터뜨려 주십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나무 그림과 같이 그저 거기에 머뭅니다. 겨울의 나무처럼 자리에 딱 박혀 있으면 봄에 움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십자가의 죽으신 분을 하나님이 살리셔서 나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자신이 주라 하거든, 그리스도라 하거든, 그가 나를 위해 죽은 적이 있는지 물으면 됩니다. 인생은 인생의 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시고 그 의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 주셨으므로 그것이 영원한 나의 의가 되어 말세든 언제든 이기게 하십니다. 깨어서 기도하는데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 보면서 신앙생활 하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것 없이 아무 이상 없는 사람이 이깁니다. 헛된 것, 거짓 것이 못 들어옵니다.
(6) 말세의 환란을 이기는 은혜
그리고 말세에는 재난이 있다고 합니다. 본문 6-9절의 말씀입니다. 이 가운데 성도들의 환란이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입니다. 육체는 죽이나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서머나 교회가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환란이 있다 해도 환란이 없습니다. 환란은 유혹의 경계선상에 있는 자들에게 환란입니다. 순교자들은 환란을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종이 되어 신학교에서 가르치지만 하나님이 피하게 하시고 올곧게 세워 주십니다. 환란이라는 것이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막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오히려 더 온전케 하십니다. 본문 13절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서머나 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말세의 인내로 영혼을 얻습니다.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인내라고 하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그 응답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말씀, 기도, 오래참음(인내)입니다.
(7) 말세에 예배 중심으로 살라
말세에 이것 외에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예배에 힘쓰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리고 더 많이 예배 드리면 됩니다. 조금 더 쉽고 편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심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그 중심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옛날에 주일학교 섬기고 할 때도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다는 것이 99점이고 잘 드리고 못 드리는 것은 1점이라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 드리는 것이 중심입니다. 여건을 따져 드리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으로 드립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말세의 이 환란, 어려움, 미혹, 불법을 이기는 힘은 혼자 구석에 들어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이기와 기도하기와 전도하기에 힘쓰는 초대교회처럼 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사랑하라
그리고 떡을 떼고 모든 것을 나누는 사랑이 풍성한 것입니다. 본문에도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적그리스도들은 결국 사랑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단과 적그리스도는 그러므로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끊어 놓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정통 교회 가니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이지, 성도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부차적이고 후속적인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사람에게 사랑받으러 오지 않습니다. 목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보면 그 행태가 보입니다. 말세는 무정하고 사랑이 식어집니다. 아무리 요란하게 해도 이단들은 사랑이 없습니다.
(9) 증인의 삶을 살라
마지막으로 본문 14절은 이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됩니다.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끝까지 구원을 이루는데 상급 있는 자리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상급 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것인데,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끝까지 참게 하시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교회도 말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그 가운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면, 그것이 바로 말세를 이기는 힘입니다.
3. 결론
말세는 열매 맺고 풍성하고 곳간에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마지막 때 우리의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