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7][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50)] 심판의 큰 위로를 믿음 (계 20:1-15)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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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계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계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계 20: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녹취록>
1.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큰 네 사건
1) 요한계시록의 저자
본문 말씀은 어느 곳에서보다 더 많이 "내가 보매," "내가 보니" 등의 표현이 반복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고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초대교회에서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 그의 제자 역시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큰 네 사건
본문 마지막에는 네 가지 사건이 크게 나옵니다. 첫째, 옛 뱀 곧 사탄이 무저갱에 갇히는 것입니다. 둘째, 그 갇힌 동안 천년왕국이 수립이 되어 주님과 함께 믿는 자들, 주께만 순종하고 고난 가운데 사탄이 이마에 인을 치지 않은 자들이 함께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셋째, 천 년이 지나고 무저갱이 열려 잠시 사탄이 활동을 하게 되는데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마귀 사탄이 완전히 패퇴하고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과, 그리고 최후의 심판, 흰 보좌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넷째, 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여 예수님의 신부로서 눈물과 곡함이 없는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한 주 정도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나눌 법도 하지만 그동안 22장에 대해 많은 말씀을 했으므로 오늘로써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모든 성경의 말씀은 마지막에 믿음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을, 지켜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이해한다는 선에 그치지 말고 믿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신령한 역사는 이성의 판단이 아닌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 시리즈 설교의 대미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20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옛 뱀 곧 사탄이 무저갱에 갇힘
1)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역사적이나 문자적이지 않으며 믿음의 도에 따라 해석해야 함
전체적으로 1-3절은 마귀 사탄이 무저갱에 결박이 된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앞으로 되어질 역사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모두 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14만 4천이라든지 곡과 마곡의 전쟁 등이 그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을 모두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특히 숫자에 대해 많은 예언이 나오는데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부질없지는 않지만 그것에만 얽매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묵시적인 성격을 지닌 이 책은 창조부터 완성까지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바라봐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풀어보겠다고 하는 것은 미혹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도에 서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것은 예배가 중심이요, 가장 큰 사건이 예수님의 재림, 구원의 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부활이요, 그것은 영혼과 육체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으니 끝내 그 모습으로, 완성체로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2) 옛 뱀, 용, 마귀 사탄
먼저 마귀 사탄이 "옛 뱀" 혹은 "용"이라고도 불립니다. 용이나 뱀이 어떻게 됐다고 형체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용이라는 개념은 어느 나라든지 있습니다. 중국이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본래 용보다는 곰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용과 옛 뱀과 마귀 사탄, 이것은 사탄의 세력들을 이야기 합니다. 악한 영 중 권세 잡은 것이 사탄의 머리, 용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3) 빛의 계보와 흑암의 계보
하나님의 믿는 백성 중에 잔치가 있습니다. 머리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24명의 장로와 천사들이 있고 우리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천국 잔치상입니다. 마귀 사탄도 그런 모임이 있는데 최고 자리에 마귀 사탄, 옛 뱀, 용이 있습니다. 마귀 사탄은 실체를, 옛 뱀과 용은 작용으로 보면 됩니다. 그 밑에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 20장을 보면 나오는 존재들입니다. 마귀 사탄의 조종을 받아 미혹하는 영입니다. 그 밑에는 우상숭배자, 그리고 21장 8절에 나오는 두려워하는 자, 살인자, 등 나중에 모두 불못에 들어갈 자들이 나옵니다.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계 21:8) 이 요한계시록에는 빛의 계보와 흑암의 계보가 있는 것입니다.
3. 천년왕국
1) 그리스도에 의해 마귀 사탄이 무저갱에 천 년간 인봉됨
요한계시록 19장에는 흰 말을 탄 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먼저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잡아서 유황 불못으로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그 괴수는 유황 불못으로 바로 안 보내고 무저갱으로 보내십니다. 무저갱이라는 것은 바닥이 없는 곳, 끝없이 내려가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영어로 '아비스'(abyss)인데, 헬라어 '아비소스'(ἄβυσσος)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깊은 곳, 심연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 궁창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바로 혼돈 상태에 있던 모습을 가리킵니다. 물론 무저갱이 특정 장소를 뜻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무저갱에 천 년간 인봉을 하여 가두는데, 천 년이 지난 후 잠시 풀려나 조금 움직이다가 유황 불못으로 던져저 최후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2) 마귀 사탄
(1) 세상의 지배자 세상의 지배자는 마귀 사탄입니다. 우리가 요즘 뉴스를 들으면 마음이 안됩니다. 아이들이 어른의 나쁜 것을 배웁니다. 어른이 아이에게서 배우고 순한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아이들은 사실 순합니다. 놀이터에 노는 것을 보면 순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나쁜 짓을 해야 즐겁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흑암의 세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법칙도 나쁜 화폐가 좋은 화폐를 몰아낸다고 합니다. 정치도 보면 정치인들이 욕을 먹더라도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어 지명도를 높이는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이런 법칙을 따르고, 일단 나쁜 말로 저지르고 높은 자리에 오르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흑암입니다. 교회도 보면 차분히 예배드리고 말씀 읽고 찬송드리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자극적인 음식보다도 말입니다. 그런데 뭔가 꼭 집어야 되고 휘황찬란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쉴만한 물가, 잔잔한 물가,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것들이 좋은데 말입니다.
(2) 타락한 천사 유다서 6절에는 이미 이 마귀 사탄의 존재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마귀 사탄은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은 천사가 타락한 마귀 사탄이 되었습니다. 이방 종교에서는 선신과 악신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초 전에 오직 하나님만 계셨음을 믿습니다. 천사가 창조되었는데 타락하여 자기 자리를 떠난 자가 사탄입니다. — “...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마귀 사탄이 가장 잘하는 것이 거짓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들도 거짓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훔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다 마귀 사탄의 작용입니다. 또한 마귀 사탄은 죽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자입니다. — “...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 ...”(히 2:1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어두운 구덩이가 이미 사도들에 의해 예언된 것입니다. 이곳에 마귀 사탄을 천 년 동안 가두어 미혹을 그치게 한 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함께 한 성도의 통치
그리고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보좌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바로 믿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순교를 당한 자일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 하고 세상에 대해 "아니"라고 한 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꼭 목이 베여 죽는 것만은 아닙니다. 목 베임을 당한 자는 세상을 향하여는 나를 죽이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사람을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보좌에서 예수와 함께 심판합니다. 또 짐승과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라고 합니다. 짐승과 우상은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미혹하는 것들입니다. 지금 돌아다니는 이단들은 다 미혹하는 자들, 짐승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마는 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그들의 무리로 인치는 것입니다. 손은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바코드니 이런 것들을 이마의 표로 보는 견해가 있었는데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 “...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계 6:9).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드러내어 사는 것, 곧 증인의 삶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자들이 보좌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왕국의 이야기입니다. 첫째 부활이 이것입니다.
4) 천년왕국의 본질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이 있기 전인지 혹은 후인지, 그리고 천 년의 존재 여부 자체에 대해 많은 이론을 듣게 됩니다. 첫째, 우리는 천 년을 숫자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는 환란이 다 지나가면 예수님이 오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에서 지상의 낙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환란이 있습니다. 셋째, 성경 말씀대로 이것을 믿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공로로 족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인침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의 의로 마지막까지 우리가 산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잘 "아멘" 하면 성경적인 종말의 믿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말씀을 신실하게 다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 보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오시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 ”(계 19:11).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계속 역사가 일어나고 대접이니 나팔이니 인이니 일곱 번씩 심판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이 구분된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런데 19장에서는 하늘이 열립니다. 그 때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또 이단들이 많은 말을 하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백마를 타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이름이 "충실과 진실"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 25절의 말씀으로 나누었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미쁘다는 것은 친히 말씀하신 것을 친히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본문에도 "충신과 진실"이라고 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충신"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고 독생자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지시하시면 그대로 이루십니다. 사도 요한이 이것을 증언한 것입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4, 17). 이제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이 열리고 백마 탄 그분이 오시는데 그분은 눈은 불꽃 같고 이에서는 날선 검이 나오고 손에는 철장을 드시고 나타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13절은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핵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또한 14절은 그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로 그를 따른다고 합니다. 16절은 그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입니다. 크게 해석하면 됩니다. 19장의 이 모습을 시간적으로 너무 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그분이 누구신지 집중하여 보면 됩니다. 입의 검은 말씀입니다. 말씀하신 이가 또한 이루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많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믿을 것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이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의 공로를 쌓아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신 이가 신실하시니 또한 이루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 1:18). 이런 말씀을 종말에 붙들어야 합니다. "예" 하고 "아니오"라고 함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신 말이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 그 말씀을 붙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요 그것을 붙들고 우리가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고 마지막에는 철기병이 쫓아오는 가운데 앞에 홍해를 두셨습니다. 이것은 환란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잠잠하라’고 하셨습니다. 공로 쌓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말세에는 잠잠한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지금 하늘이 어둡다 해도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속한 이 교회에서 말입니다.
4. 곡과 마곡의 전쟁 그리고 최후심판
본문 7절은 천 년 후 그가 잠깐 놓여 사방에서 군사를 모은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을 두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를 포위, 압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태워 버림으로 끝납니다. 이 말세에 교회를 윽박 하는 것을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태워버립니다. 에스겔에도 나오는 표현입니다. 곡과 마곡도 에스겔서에 나오는데, 이곳에서 전쟁이 날 때 하늘의 불로 그들이 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유황못으로 던져져 모든 것이 끝납니다. 타락한 천사가 완전히 불과 유황못으로 던져지고 흰보좌 심판에서 본문 마지막 말씀처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또한 불과 유황못으로 들어가 영원히 고통받게 됩니다.
5. 새 하늘과 새 땅
1) 유일한 도성 새 예루살렘
우리는 요한계시록 21장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창세 전을 이야기하며 이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 작정에 따라 이루어짐을 "아멘" 하며 역사의 마지막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고백합니다. 지금 이 땅과 하늘은 없어집니다. 그래서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이요, 이전 것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없어지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것이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바다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 도성도 없으며 하나의 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만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련됩니다. 우리가 이제 그곳에서 삽니다. 여러분도 저도 모두 서로 인식하며 삽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장소입니다. 인격적으로 삽니다. 그저 자는 것이 아닙니다. 막연하게 있지 않습니다. 부활의 영혼과 육체로 영원히 살아갑니다. 그곳에서 특별히 우리는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아멘" 하는 대로 그 예수를 위해 단정한 신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른 많은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2) 그리스도와 하나된 성도
(1) 그리스도와 "함께" 특별히 3절은 "함께"가 세 번 나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 이 "함께"는 로마서와 에베소서 등 이미 많이 본 바 있습니다.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2) 고통과 죽음이 영원히 지나감 그리고 이어 4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합니다. 죽기 전까지도 후회와 슬픔에 흘리는 것이 눈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애통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 처음 것들은 다 지나갔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짓누르지 못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이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하나됨
다 지나가는데 함께 있는 것입니다. 안 지나가는 것은 한 가지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인정하고 내가 주님을 믿고 그 이름으로 봉사하고 소자 하나에게 물 떠준 것만 남습니다. 주님에게 새겨진 것만 남습니다. 나머지는 다 없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인정하신 것만 남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이 땅에서조차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새것은 바로 단 한 가지인데, 예수님과 사귈 수 있고 그에게 나의 모습을 새길 수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기억하듯이 예수님도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이것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의 의미는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모습을 비추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내가 주님을 알아봅니다.
(4) 성도에게 주어지는 상급
심판에 두 책이 나오는데 우리를 자녀로 확정해 주는 심판과 상급의 심판 두 가지에 대한 책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의 죄는 사함 받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상급이 있으되 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질서입니다. 이 땅에서는 상급을 못받으면 벌이 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급은 있으나 벌이 없습니다. 벌은 사해 주시고 상급은 주십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나의 곤고함과 연약함이 선(善)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십시오.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하겠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이 사해 주십니다. 그것은 그대로 사해 주심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보좌의 어린 양이 다 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보좌의 심판입니다.
6. 결론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시리즈를 마치면서 마지막 때에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를 부르신 자가 끝까지 이루심을 바라보고 믿어야 함을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20190317][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50)] 심판의 큰 위로를 믿음 (계 20:1-15) 문병호 목사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녹취록>
1.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큰 네 사건
1) 요한계시록의 저자
본문 말씀은 어느 곳에서보다 더 많이 "내가 보매," "내가 보니" 등의 표현이 반복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고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초대교회에서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 그의 제자 역시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큰 네 사건
본문 마지막에는 네 가지 사건이 크게 나옵니다.
첫째, 옛 뱀 곧 사탄이 무저갱에 갇히는 것입니다.
둘째, 그 갇힌 동안 천년왕국이 수립이 되어 주님과 함께 믿는 자들, 주께만 순종하고 고난 가운데 사탄이 이마에 인을 치지 않은 자들이 함께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셋째, 천 년이 지나고 무저갱이 열려 잠시 사탄이 활동을 하게 되는데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마귀 사탄이 완전히 패퇴하고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과, 그리고 최후의 심판, 흰 보좌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넷째, 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여 예수님의 신부로서 눈물과 곡함이 없는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한 주 정도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나눌 법도 하지만 그동안 22장에 대해 많은 말씀을 했으므로 오늘로써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모든 성경의 말씀은 마지막에 믿음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을, 지켜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이해한다는 선에 그치지 말고 믿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신령한 역사는 이성의 판단이 아닌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 시리즈 설교의 대미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20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옛 뱀 곧 사탄이 무저갱에 갇힘
1)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역사적이나 문자적이지 않으며 믿음의 도에 따라 해석해야 함
전체적으로 1-3절은 마귀 사탄이 무저갱에 결박이 된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앞으로 되어질 역사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모두 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14만 4천이라든지 곡과 마곡의 전쟁 등이 그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을 모두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특히 숫자에 대해 많은 예언이 나오는데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부질없지는 않지만 그것에만 얽매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묵시적인 성격을 지닌 이 책은 창조부터 완성까지 전체 역사를 조망하며 바라봐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풀어보겠다고 하는 것은 미혹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도에 서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것은 예배가 중심이요, 가장 큰 사건이 예수님의 재림, 구원의 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부활이요, 그것은 영혼과 육체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으니 끝내 그 모습으로, 완성체로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2) 옛 뱀, 용, 마귀 사탄
먼저 마귀 사탄이 "옛 뱀" 혹은 "용"이라고도 불립니다. 용이나 뱀이 어떻게 됐다고 형체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용이라는 개념은 어느 나라든지 있습니다. 중국이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본래 용보다는 곰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용과 옛 뱀과 마귀 사탄, 이것은 사탄의 세력들을 이야기 합니다. 악한 영 중 권세 잡은 것이 사탄의 머리, 용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3) 빛의 계보와 흑암의 계보
하나님의 믿는 백성 중에 잔치가 있습니다. 머리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24명의 장로와 천사들이 있고 우리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천국 잔치상입니다. 마귀 사탄도 그런 모임이 있는데 최고 자리에 마귀 사탄, 옛 뱀, 용이 있습니다. 마귀 사탄은 실체를, 옛 뱀과 용은 작용으로 보면 됩니다. 그 밑에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 20장을 보면 나오는 존재들입니다. 마귀 사탄의 조종을 받아 미혹하는 영입니다. 그 밑에는 우상숭배자, 그리고 21장 8절에 나오는 두려워하는 자, 살인자, 등 나중에 모두 불못에 들어갈 자들이 나옵니다.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계 21:8) 이 요한계시록에는 빛의 계보와 흑암의 계보가 있는 것입니다.
3. 천년왕국
1) 그리스도에 의해 마귀 사탄이 무저갱에 천 년간 인봉됨
요한계시록 19장에는 흰 말을 탄 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먼저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잡아서 유황 불못으로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그 괴수는 유황 불못으로 바로 안 보내고 무저갱으로 보내십니다. 무저갱이라는 것은 바닥이 없는 곳, 끝없이 내려가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영어로 '아비스'(abyss)인데, 헬라어 '아비소스'(ἄβυσσος)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깊은 곳, 심연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 궁창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바로 혼돈 상태에 있던 모습을 가리킵니다. 물론 무저갱이 특정 장소를 뜻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무저갱에 천 년간 인봉을 하여 가두는데, 천 년이 지난 후 잠시 풀려나 조금 움직이다가 유황 불못으로 던져저 최후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2) 마귀 사탄
(1) 세상의 지배자
세상의 지배자는 마귀 사탄입니다. 우리가 요즘 뉴스를 들으면 마음이 안됩니다. 아이들이 어른의 나쁜 것을 배웁니다. 어른이 아이에게서 배우고 순한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아이들은 사실 순합니다. 놀이터에 노는 것을 보면 순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나쁜 짓을 해야 즐겁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흑암의 세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법칙도 나쁜 화폐가 좋은 화폐를 몰아낸다고 합니다. 정치도 보면 정치인들이 욕을 먹더라도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어 지명도를 높이는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이런 법칙을 따르고, 일단 나쁜 말로 저지르고 높은 자리에 오르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흑암입니다. 교회도 보면 차분히 예배드리고 말씀 읽고 찬송드리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자극적인 음식보다도 말입니다. 그런데 뭔가 꼭 집어야 되고 휘황찬란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쉴만한 물가, 잔잔한 물가,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것들이 좋은데 말입니다.
(2) 타락한 천사
유다서 6절에는 이미 이 마귀 사탄의 존재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마귀 사탄은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은 천사가 타락한 마귀 사탄이 되었습니다. 이방 종교에서는 선신과 악신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초 전에 오직 하나님만 계셨음을 믿습니다. 천사가 창조되었는데 타락하여 자기 자리를 떠난 자가 사탄입니다. — “...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마귀 사탄이 가장 잘하는 것이 거짓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들도 거짓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훔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다 마귀 사탄의 작용입니다. 또한 마귀 사탄은 죽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자입니다. — “...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 ...”(히 2:1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어두운 구덩이가 이미 사도들에 의해 예언된 것입니다. 이곳에 마귀 사탄을 천 년 동안 가두어 미혹을 그치게 한 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함께 한 성도의 통치
그리고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보좌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바로 믿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순교를 당한 자일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 하고 세상에 대해 "아니"라고 한 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꼭 목이 베여 죽는 것만은 아닙니다. 목 베임을 당한 자는 세상을 향하여는 나를 죽이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사람을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보좌에서 예수와 함께 심판합니다. 또 짐승과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라고 합니다. 짐승과 우상은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미혹하는 것들입니다. 지금 돌아다니는 이단들은 다 미혹하는 자들, 짐승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마는 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그들의 무리로 인치는 것입니다. 손은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바코드니 이런 것들을 이마의 표로 보는 견해가 있었는데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 “...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계 6:9).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드러내어 사는 것, 곧 증인의 삶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자들이 보좌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왕국의 이야기입니다. 첫째 부활이 이것입니다.
4) 천년왕국의 본질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이 있기 전인지 혹은 후인지, 그리고 천 년의 존재 여부 자체에 대해 많은 이론을 듣게 됩니다.
첫째, 우리는 천 년을 숫자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는 환란이 다 지나가면 예수님이 오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에서 지상의 낙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환란이 있습니다.
셋째, 성경 말씀대로 이것을 믿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공로로 족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인침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의 의로 마지막까지 우리가 산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잘 "아멘" 하면 성경적인 종말의 믿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말씀을 신실하게 다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 보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오시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 ”(계 19:11).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계속 역사가 일어나고 대접이니 나팔이니 인이니 일곱 번씩 심판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이 구분된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런데 19장에서는 하늘이 열립니다. 그 때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또 이단들이 많은 말을 하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백마를 타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이름이 "충실과 진실"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 25절의 말씀으로 나누었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미쁘다는 것은 친히 말씀하신 것을 친히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본문에도 "충신과 진실"이라고 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충신"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고 독생자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지시하시면 그대로 이루십니다. 사도 요한이 이것을 증언한 것입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4, 17). 이제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이 열리고 백마 탄 그분이 오시는데 그분은 눈은 불꽃 같고 이에서는 날선 검이 나오고 손에는 철장을 드시고 나타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13절은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핵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또한 14절은 그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로 그를 따른다고 합니다. 16절은 그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입니다.
크게 해석하면 됩니다. 19장의 이 모습을 시간적으로 너무 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그분이 누구신지 집중하여 보면 됩니다. 입의 검은 말씀입니다. 말씀하신 이가 또한 이루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많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믿을 것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이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의 공로를 쌓아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신 이가 신실하시니 또한 이루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 1:18). 이런 말씀을 종말에 붙들어야 합니다. "예" 하고 "아니오"라고 함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신 말이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 그 말씀을 붙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요 그것을 붙들고 우리가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고 마지막에는 철기병이 쫓아오는 가운데 앞에 홍해를 두셨습니다. 이것은 환란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잠잠하라’고 하셨습니다. 공로 쌓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말세에는 잠잠한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지금 하늘이 어둡다 해도 이곳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속한 이 교회에서 말입니다.
4. 곡과 마곡의 전쟁 그리고 최후심판
본문 7절은 천 년 후 그가 잠깐 놓여 사방에서 군사를 모은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을 두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를 포위, 압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태워 버림으로 끝납니다. 이 말세에 교회를 윽박 하는 것을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태워버립니다. 에스겔에도 나오는 표현입니다. 곡과 마곡도 에스겔서에 나오는데, 이곳에서 전쟁이 날 때 하늘의 불로 그들이 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유황못으로 던져져 모든 것이 끝납니다. 타락한 천사가 완전히 불과 유황못으로 던져지고 흰보좌 심판에서 본문 마지막 말씀처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또한 불과 유황못으로 들어가 영원히 고통받게 됩니다.
5. 새 하늘과 새 땅
1) 유일한 도성 새 예루살렘
우리는 요한계시록 21장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창세 전을 이야기하며 이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 작정에 따라 이루어짐을 "아멘" 하며 역사의 마지막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고백합니다. 지금 이 땅과 하늘은 없어집니다. 그래서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이요, 이전 것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없어지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것이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바다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 도성도 없으며 하나의 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만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련됩니다. 우리가 이제 그곳에서 삽니다. 여러분도 저도 모두 서로 인식하며 삽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장소입니다. 인격적으로 삽니다. 그저 자는 것이 아닙니다. 막연하게 있지 않습니다. 부활의 영혼과 육체로 영원히 살아갑니다. 그곳에서 특별히 우리는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아멘" 하는 대로 그 예수를 위해 단정한 신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른 많은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2) 그리스도와 하나된 성도
(1) 그리스도와 "함께"
특별히 3절은 "함께"가 세 번 나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 이 "함께"는 로마서와 에베소서 등 이미 많이 본 바 있습니다.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2) 고통과 죽음이 영원히 지나감
그리고 이어 4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합니다. 죽기 전까지도 후회와 슬픔에 흘리는 것이 눈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애통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 처음 것들은 다 지나갔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짓누르지 못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이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하나됨
다 지나가는데 함께 있는 것입니다. 안 지나가는 것은 한 가지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인정하고 내가 주님을 믿고 그 이름으로 봉사하고 소자 하나에게 물 떠준 것만 남습니다. 주님에게 새겨진 것만 남습니다. 나머지는 다 없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인정하신 것만 남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이 땅에서조차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새것은 바로 단 한 가지인데, 예수님과 사귈 수 있고 그에게 나의 모습을 새길 수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기억하듯이 예수님도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이것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의 의미는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모습을 비추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내가 주님을 알아봅니다.
(4) 성도에게 주어지는 상급
심판에 두 책이 나오는데 우리를 자녀로 확정해 주는 심판과 상급의 심판 두 가지에 대한 책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의 죄는 사함 받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상급이 있으되 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질서입니다. 이 땅에서는 상급을 못받으면 벌이 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급은 있으나 벌이 없습니다. 벌은 사해 주시고 상급은 주십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나의 곤고함과 연약함이 선(善)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십시오.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하겠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이 사해 주십니다. 그것은 그대로 사해 주심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보좌의 어린 양이 다 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보좌의 심판입니다.
6. 결론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시리즈를 마치면서 마지막 때에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를 부르신 자가 끝까지 이루심을 바라보고 믿어야 함을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