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1. 능력과 지혜 = 십자가의 도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평소 다섯 절 정도로 본문을 삼는데 오늘은 길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에서 요지는 바로 18절의 십자가의 도입니다. “도”(道)라는 말은 로고스,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번역도 무리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바로 지혜이고 능력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혜가 있으면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고 능력이 있으면 지혜가 부족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 있는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데 이 표적이 바로 능력입니다. 헬라인들은 모이면 언제나 지식을 구했습니다. 향연이라고 해서 당시 모이면 항상 누워서 음식을 먹으며 지혜를 구했습니다. 필로소피(philosophy)라는 말 중 소피(-sophy)는 지혜, 필로(philo-)는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지혜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헬라인들은 그래서 모이고 향연을 벌이면 지혜를 지식을 구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현자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끝내 귀결을 짓는 자, 소피스트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이면 하늘과 땅을 보고 표적과 기적을 구했습니다. 이 표적은 바로 본문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능력과 기적과 표적, 지혜, 지식 모두가 십자가의 도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런 문제들로 여러 어려움을 겪습니다. 은사를 주장하는 교인들로 인해 분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여 당을 짓는 교인들로 인해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니 본문에서는 저희들의 능력과 지혜는 십자가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능하고 미련한 것으로 여기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23절이 말하는 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24절이 말하는 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있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0절, 그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31절, 자랑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일맥상통하여 길기에 18절에서 31절까지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리고 지혜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는 그 나무가 아니라 그것에 달리신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지혜이고 능력이고 우리에게 능력과 거룩함과 지혜가 되므로 그를 자랑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2. 지혜 없는 지식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즘 김장철입니다. 김장을 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것을 익히고 묵히는 법을 압니다. 저도 자취생활을 해봤습니다만, 그 당시 시골에서 김치를 팔지 않았습니다. 그저 담가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대구로 공부하러 오니 김치도 팔고 전도 팔아서 사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대학생활을 하러 와서 보니 김치를 아예 포장해서 팔았습니다. 김치를 담가 보면 담을 때는 다 맛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주일을 가지 않습니다. 담그는 날은 그냥 저냥 맛있는데 며칠 지나면 맛이 없습니다. 김치를 담는 것이 지식이라면 발효시키는 것은 지혜입니다. 담그는 법은 책에서 익힐 수 있습니다. 벽돌을 만드는 것이 지식이라면 쌓는 것은 지헤입니다. 우리가 가장 지식을 귀하게 여기지만 지혜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칼을 가는 것도 왠만한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자루를 만들어 날을 꽂는 것은 왠만해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지혜를 지닌 어른들만 할 수 있습니다. 손잡이가 없으면 칼은 쓸 수 가 없습니다. 드라이버도 그렇습니다. 손잡이가 없으면 돌릴 수 없습니다.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없습니다. 공은 있는데 바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일은 많이 있는데 망이 없어서 나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120년 동안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지식이라면 그것을 물에 띄우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예수님을 쫓고자 했던 부자 청년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입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었습니다.
3. 지혜는 하나님께 있다
1)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지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어떤 사람은 쌀 한 자루를 가지고 한 달을 삽니다. 똑같은 봉투에 월급을 갖다 줘도 지혜로운 아내는 한 달을 살아 냅니다. 그러나 어떤 아내는 일주일도 못삽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일차적으로 생명입니다. 살아 있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과 함께, 가까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이 다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한 자루 쌀이 있어도 못 견디는 것이 한 홉의 쌀만 있어도 견딥니다. 저는 전도사님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교회에서 사례비 10만원 받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오래 간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작은 것이라도 마름이 없고 갈함이 없습니다. 가루통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없는 듯 하는데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막 뿌리고 자르고 하는 것 같은데 어느새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2) 생명 없는 지식, 즉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지식은 헛되다
지식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 품에 있고 그를 따르는 가운데 있는 지식이 지혜입니다. 그것은 쉬히 썩지 않습니다. 갈수록 더 잘 일어서 맛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올리긴 해도 답답하고 흔들거려 어느새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3)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까이 하는 데 있다
잠언에는 지혜에 대해 잘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합니다(잠 9:10). 본문에도 지혜와 총명이 어디 있는지 물어봅니다. 잠언에도 같은 말을 합니다. 경외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으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끌려가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내 그것이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 갈 수 없으나 두려워하면서도 가는 것, 그것이 경외입니다. 죄 지으면 다 도망치는데 하나님께로 끌려 가는 것이니 은혜입니다. 또한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부부간의 지식을 의미합니다.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명철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지혜와 명철은 그러므로 여호와 샬롬, 여호와께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려워하면서도 말입니다. 아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인애는 사랑이고 아는 것은 부부관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부부관계와 같은 관계가 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하나님께 붙어 가까이 붙들려 있어 하나님의 빛되신 것을 비추고 그 따뜻함을 누리고 생명이신 하나님의 생명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옆에서 역사하니 우리에게도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 3:18);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잠 15:24). 스올은 지옥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옥을 떠나 위로 생명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4.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다
이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만 이 지혜를 주신다고 합니다. 헬라인은 유대인 아닌 모든 이방인을 말합니다. 또한 형제들아 너희 부르심을 보라고 합니다.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만 지혜를 준다는 것입니다. 문벌 좋은 자, 세상에서 유력한 자는 많이 있으나 지혜는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는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지식에만 머물러 있으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으나 결국 떠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부이고 당시 천한 자였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져도 고기를 잡지 못한 것은 세상에서 지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부가 고기 잡는 일에 대해 얼마나 지식이 많겠습니까?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의 모습은 세상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자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이 지혜로 바뀌는 현장입니다. 예수님께 달라 붙으니 말입니다. 부족한 종도 사사로운 이야기라 죄송하지만, 신학을 하니 하나님이 지식을 많이 주십니다. 살이 붙는 지식입니다. 바로 지혜입니다. 한 가지만 알아도 살이 붙는 것 같고 꿀송이 같습니다. 예전에는 알면 알수록 더 답답하고 공허했는데 말입니다. 부자 청년은 세상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벽돌만 만들지 집을 만들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습니다. 세상 지식을 다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분토만도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일체 모든 지식을 놔두고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살려고 하면 안됩니다. 열심히 익혀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십자가의 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편에 갖다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이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택함 받은 자에게만 주십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만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5.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라
그러니 많이 안다, 적게 안다 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에 정말 지혜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감당해도 정말 지혜로운 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 능력 있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바짝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한편 본문에서 말하는 세상의 지혜, 사람의 지혜(고전 2:5)는 사람에게 봉사하고 사람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만 가지고는 아무도 끝내 이길 수 없습니다. 본문 19절이 그 말씀입니다. —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고전 1:19). 세상의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 앞에서는 겨, 이슬과 같은 것 밖에 안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지혜, 그것이 온전한 것입니다.
요새 출애굽기 강해를 하면서 이번 주에는 37장, 38장을 보는데, 이곳에는 예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보면서 그대로 만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만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을 세워서 그들이 재료를 구해 성막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술이 없습니다. 그들은 겨우 해야 430년 동안 한 것이 흙을 빚어 벽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완전 무식자였습니다. 종들에게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당시 200만 명이 기술을 가지면 애굽이라도 무너뜨립니다. 그러니 절대 안 가르쳐 줬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축도 붙여 주시고 바로를 꺾으셔서 백성들이 모아서 재물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와서 홍해도 건너고 마라에서 단물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아무런 기술을 배우게 하지 않으십니다. 물 푸는 기술조차도 가르치지 않으시고 다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명령하시는 것이 성막을 짓는 것입니다. 아무 기술이 없는 자들에게 말입니다. 정확하게 수치와 재료와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지은 것은 완전히 무식한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깨달은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복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첫 번째 배운 지식은 여호와를 섬기는 지식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 받은 여호와의 백성입니다. 라멕이나 유발 등 문명을 발달시킨 자들은 죄인들의 후손입니다. 야발은 장막 짓는 것을, 유발은 음악과 관련된 것을, 두발가인은 동과 철을 다룹니다. 세상 살아가는 것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백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이 보기에 아무런 능력도 지식도 없습니다. 일자 무식이요, 한심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지혜의 영을 주십니다. 그들을 지혜롭게 하셔서 성막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일학교도 똑바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지혜, 관원의 지혜를 그것이 다 이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을 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듭난 지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지혜를 조금 덜 안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탈입니다. 세상의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그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 죽지 않을 만큼 압니다. 물론 세상 공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칼이 있어도 칼집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함께 하셔야 합니다.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 26:16-19).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를 행하고 그 소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보배로운 민족이 되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여호와의 선민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신명기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항상 여호와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밤에 기도하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뭐든지 기도해 보고 결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과 기도한 후는 다릅니다. 분명히 다릅니다. 기도해 보나 안 하나 마찬가지인 일은 없습니다. 기도하면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고 길 없는 곳에 대로가 보입니다. 내가 망할 것 같아도 잠시 눈을 감으면 평화가 옵니다. 그걸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바벨탑 쌓듯 내가 갈고 쌓고 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여호와의 영광은 완전하심, 임재, 우리와 함께하심, 영생입니다. 영광은 완전한 것이고 임재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매순간 불어넣으시는 호흡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11).
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라
경외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순간은 우리가 나아갈 수 없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은 십자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있는 그곳에서 "다 이루었다"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 무에서 완전한 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연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미련한 것을 들어 지혜로운 것을, 멸시 받는 것을 들어 있는 것을 폐하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엘라 엘라 라마 사박다니, 내가 목마르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도에서 도는 로고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일곱가지 십자가의 말씀, 가상칠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7. 결론
우리 모두는 많이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은 어느 특정한 것을 잘하는 사람을 조금 더 높여줍니다. 그러나 모든 자에게는 재주가 있습니다. 다 자기가 가진 지식과 기술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그 지식이 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능력이 되는 것, 십자가의 도를 잘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편에 모든 것을 맡기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0181202][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35)] 지혜의 주님을 믿음 (고전 1:18-31) 문병호 목사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3. 지혜는 하나님께 있다
1)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지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어떤 사람은 쌀 한 자루를 가지고 한 달을 삽니다. 똑같은 봉투에 월급을 갖다 줘도 지혜로운 아내는 한 달을 살아 냅니다. 그러나 어떤 아내는 일주일도 못삽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일차적으로 생명입니다. 살아 있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과 함께, 가까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이 다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한 자루 쌀이 있어도 못 견디는 것이 한 홉의 쌀만 있어도 견딥니다. 저는 전도사님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교회에서 사례비 10만원 받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오래 간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작은 것이라도 마름이 없고 갈함이 없습니다. 가루통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없는 듯 하는데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막 뿌리고 자르고 하는 것 같은데 어느새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2) 생명 없는 지식, 즉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지식은 헛되다
지식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 품에 있고 그를 따르는 가운데 있는 지식이 지혜입니다. 그것은 쉬히 썩지 않습니다. 갈수록 더 잘 일어서 맛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올리긴 해도 답답하고 흔들거려 어느새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3)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까이 하는 데 있다
잠언에는 지혜에 대해 잘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합니다(잠 9:10). 본문에도 지혜와 총명이 어디 있는지 물어봅니다. 잠언에도 같은 말을 합니다. 경외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으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끌려가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내 그것이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 갈 수 없으나 두려워하면서도 가는 것, 그것이 경외입니다. 죄 지으면 다 도망치는데 하나님께로 끌려 가는 것이니 은혜입니다. 또한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부부간의 지식을 의미합니다.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명철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지혜와 명철은 그러므로 여호와 샬롬, 여호와께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려워하면서도 말입니다. 아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인애는 사랑이고 아는 것은 부부관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부부관계와 같은 관계가 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하나님께 붙어 가까이 붙들려 있어 하나님의 빛되신 것을 비추고 그 따뜻함을 누리고 생명이신 하나님의 생명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옆에서 역사하니 우리에게도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 3:18);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잠 15:24). 스올은 지옥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옥을 떠나 위로 생명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4.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다
이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만 이 지혜를 주신다고 합니다. 헬라인은 유대인 아닌 모든 이방인을 말합니다. 또한 형제들아 너희 부르심을 보라고 합니다.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만 지혜를 준다는 것입니다. 문벌 좋은 자, 세상에서 유력한 자는 많이 있으나 지혜는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는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지식에만 머물러 있으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으나 결국 떠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부이고 당시 천한 자였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져도 고기를 잡지 못한 것은 세상에서 지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부가 고기 잡는 일에 대해 얼마나 지식이 많겠습니까?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의 모습은 세상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자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이 지혜로 바뀌는 현장입니다. 예수님께 달라 붙으니 말입니다. 부족한 종도 사사로운 이야기라 죄송하지만, 신학을 하니 하나님이 지식을 많이 주십니다. 살이 붙는 지식입니다. 바로 지혜입니다. 한 가지만 알아도 살이 붙는 것 같고 꿀송이 같습니다. 예전에는 알면 알수록 더 답답하고 공허했는데 말입니다. 부자 청년은 세상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벽돌만 만들지 집을 만들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습니다. 세상 지식을 다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분토만도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일체 모든 지식을 놔두고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살려고 하면 안됩니다. 열심히 익혀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십자가의 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편에 갖다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이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택함 받은 자에게만 주십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만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5.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라
그러니 많이 안다, 적게 안다 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에 정말 지혜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감당해도 정말 지혜로운 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 능력 있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바짝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한편 본문에서 말하는 세상의 지혜, 사람의 지혜(고전 2:5)는 사람에게 봉사하고 사람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혜만 가지고는 아무도 끝내 이길 수 없습니다. 본문 19절이 그 말씀입니다. —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고전 1:19). 세상의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 앞에서는 겨, 이슬과 같은 것 밖에 안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지혜, 그것이 온전한 것입니다.
요새 출애굽기 강해를 하면서 이번 주에는 37장, 38장을 보는데, 이곳에는 예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보면서 그대로 만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만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을 세워서 그들이 재료를 구해 성막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술이 없습니다. 그들은 겨우 해야 430년 동안 한 것이 흙을 빚어 벽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완전 무식자였습니다. 종들에게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당시 200만 명이 기술을 가지면 애굽이라도 무너뜨립니다. 그러니 절대 안 가르쳐 줬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축도 붙여 주시고 바로를 꺾으셔서 백성들이 모아서 재물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와서 홍해도 건너고 마라에서 단물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아무런 기술을 배우게 하지 않으십니다. 물 푸는 기술조차도 가르치지 않으시고 다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명령하시는 것이 성막을 짓는 것입니다. 아무 기술이 없는 자들에게 말입니다. 정확하게 수치와 재료와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지은 것은 완전히 무식한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깨달은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복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첫 번째 배운 지식은 여호와를 섬기는 지식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 받은 여호와의 백성입니다. 라멕이나 유발 등 문명을 발달시킨 자들은 죄인들의 후손입니다. 야발은 장막 짓는 것을, 유발은 음악과 관련된 것을, 두발가인은 동과 철을 다룹니다. 세상 살아가는 것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백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이 보기에 아무런 능력도 지식도 없습니다. 일자 무식이요, 한심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지혜의 영을 주십니다. 그들을 지혜롭게 하셔서 성막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일학교도 똑바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지혜, 관원의 지혜를 그것이 다 이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을 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듭난 지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의 지혜를 조금 덜 안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탈입니다. 세상의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그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 죽지 않을 만큼 압니다. 물론 세상 공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칼이 있어도 칼집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함께 하셔야 합니다.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 26:16-19).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를 행하고 그 소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보배로운 민족이 되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여호와의 선민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신명기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항상 여호와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밤에 기도하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뭐든지 기도해 보고 결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과 기도한 후는 다릅니다. 분명히 다릅니다. 기도해 보나 안 하나 마찬가지인 일은 없습니다. 기도하면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고 길 없는 곳에 대로가 보입니다. 내가 망할 것 같아도 잠시 눈을 감으면 평화가 옵니다. 그걸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바벨탑 쌓듯 내가 갈고 쌓고 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여호와의 영광은 완전하심, 임재, 우리와 함께하심, 영생입니다. 영광은 완전한 것이고 임재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매순간 불어넣으시는 호흡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11).
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라
경외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순간은 우리가 나아갈 수 없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은 십자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있는 그곳에서 "다 이루었다"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 무에서 완전한 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연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미련한 것을 들어 지혜로운 것을, 멸시 받는 것을 들어 있는 것을 폐하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엘라 엘라 라마 사박다니, 내가 목마르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도에서 도는 로고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일곱가지 십자가의 말씀, 가상칠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7. 결론
우리 모두는 많이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은 어느 특정한 것을 잘하는 사람을 조금 더 높여줍니다. 그러나 모든 자에게는 재주가 있습니다. 다 자기가 가진 지식과 기술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그 지식이 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능력이 되는 것, 십자가의 도를 잘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편에 모든 것을 맡기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