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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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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11)] 은혜를 기억하는 믿음 (느8:13-18)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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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11)] 은혜를 기억하는 믿음 (느8:13-18) 문병호 목사


(음향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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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8:13)○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느 8:14)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느 8:15)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느 8:16)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느 8:17)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느 8:18)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느 9:19)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느 9:20)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느 9:21)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녹취록>




1. 말씀을 읽음으로 삶을 기억함

우리는 성전 재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성벽 재건에 대해서는 생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전은 오늘날의 교회이고 성벽은 한양성 등으로 말하듯 거룩한 성, 거룩한 도시, 다윗성인 예루살렘의 성벽인데, 이를 재건하는 그 과업을 느혜미야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느헤미야를 잘 기억하는데 그와 함께 학사 에스라라고도 나오는 자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다스리는 자, 관리로서 학사 에스라와 함께 나옵니다. 여호와의 일은 관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함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벽은 성전과 같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큰 자존심이자 정체성을 부여한 대상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다시 돌아와서, 당시 바사 시대, 정월부터 성벽을 짓습니다. 그런데 방해가 많습니다. 관리들의 방해도 있고 이방 족속들의 방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성벽을 52일만에 주전 444년 경 수축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느헤미야의 기억입니다. 그는 예수살렘의 좋은 집과 놀이터가 아닌 예배를 기억한 것입니다. 예배의 추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과 성전을 드나들때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에 들어가고 나온다고 하는 인식,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스라엘 멸망의 본질은 나라가 망한 것보다 하나님의 도성이 무너진 것에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 성벽을 수축하고 난 후, 약 6월 25일 쯤 되는 날 나팔절을 지키게 됩니다. 나팔절은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하면 7월 1일, 이스라엘 민간력으로 하면 1월 1일 입니다. 우리나라 달로 하면 9월 혹은 10월이 됩니다. 나팔절은 민족의 출발,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봉헌하기 전에 절기를 먼저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건이 완료 후 나팔절을 먼저 지키는 것입니다. —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느 8:5-6) 학사가 말씀을 읽을 때 그들이 모두 아멘 아멘 하면서 고개를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이 때 8절과 9절에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하고 해석하고 백성들에게 깨닫게 했습니다. 그들은 잘 몰랐으나 학사 에스라가 말씀을 다 전해주니 그들이 울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느 8:9) 본래 나팔절은 매해의 시작입니다. 이 때 성회로 모이는데 안식일에 모입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은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라고 합니다. 나팔절은 무교병을 먹는 날이 아닙니다.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좋아해서 함께 자주 나누었는데요, '너희의 힘'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근심을 이길 장사가 없지만, 기쁨을 이길 그 무엇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기쁨이 있으면 틈타지 못합니다. 

이 날은 성일이고 기뻐하는 날이고 기름진 고기와 단것을 먹는 날인데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의 말씀을 읽고 눈물을 흘렸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역사가 들어있습니다. 이방 경전에는 비경이니 뭐니 하면서 뜬구름잡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율법이자 역사이자 그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 백성에게 모세오경이라는 말은 율법서라고 말하는 그 책은 그들의 역사가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삶 가운데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삶 가운데 그들을 말씀이 인도하고 기뻐하게도 징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율법을 읽을 때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말씀과 삶의 족적이 분리되면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모세오경입니다. 모세오경에 역사서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 왜 율법서라고 하는지, 역사서가 아닌, 궁금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은 오묘한 뜻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삶과 역사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읽으니 그들의 삶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가운데 우리에게 작용함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기억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학사 에스라가 율법을 읽었을 때 우리의 삶이요 역사이니 울어서는 안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운 것입니다. 이러한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가신다는 고백의 기쁨과 현실의 곤고함,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한, 그 애통하는 자의 눈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달콤함과 우리 삶의 곤고함의 괴리를 보면서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눈물인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바로 우리가 천국을 누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 애통 가운데 감사함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가운데 우리에게 작용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그들은 다 울고 얼굴을 땅에 대는데, 그 가운데 느헤미야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가운데 알알이 박혀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허황된 형이상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의 끄트머리까지 들어와 고백에 이르게 합니다. 고백이 우리를 자라가게 하고 소망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성회로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때 가슴을 치는 회개가 있고 감사가 나오고 그와 함께 회개가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억인 것입니다. 

3. 건져내신 것과 끝내 거두어들이실 것을 기억함

그리고 그들은 초막절을 지킵니다. 초막절은 나팔절 이후로 지키는 것인데, 그들은 아마 이에 대한 것을 다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사 에스라에게 찾아와서 절기를 물어보니 초막절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초막절을 수장절, 장막절이기도 한데 7월 15일부터 한주간 지킵니다. 초막절은 기억의 절기인데 두가지를 기억합니다. 

첫째로 과거의 기억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건져내시고 그들을 광야 가운데서 붙들어 주신 것, 곳곳마다 가는 곳마다 복을 주셔서 가지를 주시고 잎사귀를 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벽돌이 없어서 나무로 집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는 나무가 귀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 가운데 나무를 주셔서 잎사귀와 가지로 집을 지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5절은 각종 나무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러한 나무를 하나님이 무성하게 주셨기 때문에 매 때 광야 생활마다 열사와 한기에 쓰러지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과거로는 출애굽 후 광야에서 살아간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초막절은 마지막에 끝내 그들을 거두어들이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스 14:16) 마지막 날에 이방 나라라도 모아서 하나님의 장막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억하라는 것은 과거의 것만이 아닙니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미래를 전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억은 기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한 주님의 성찬의 제정 시 기념과 기억이라는 단어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죽은 과거를 주셨다면 그것은 역사책에 불과하지만 성경의 구약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을 기억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말씀의 성취를 통해 우리가 끝내 하늘 성소와 장막에서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거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땅의 시온 성전이 아닌 하늘 성소에 거하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바로 초막절인 것입니다. 

사람의 부류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기억하는 자와 망각하는 자입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주었으나 다 망각했습니다. 기억하는 자는 감사하는 자요 망각하는 자는 배은망덕한 자입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고쳤는데 아홉 사람은 다 잊어버립니다. 안그럴 것 같지만 우리 인간은 그런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아쉬울 때는 하나님만 바랍니다. 신학생도 그렇습니다. 목사 되는 것만이 소망이고 감사할 제목입니다. 그러나 신학교 가서 안수하고 공부하면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기억하는 자, 망각하는 자, 크게 이 두가지입니다. 

4. 기억하면서 은혜를 감사할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 

절기와 제사는 기억을 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생명 주신 것, 아끼신 것에 대한 감사요, 맥추절, 오순절, 칠칠절은 하나님이 생명을 살린 자들에게 먹여주심을 기억하는 현대적 절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장절, 장막절,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 이 수장절은 영원히 하나님이 우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에 대한 감사와 전망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 알곡으로 하나님의 곳간에 들여지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은 백성이 나뭇가지를 가져다가라고 합니다. 이것은 목재를 해서 레바논에서 가져온 백향목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장막절에는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지붕위와 뜰 안에, 하나님의 성문, 광장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 중요할까요? 하나님은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 그것을 통해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기억하기보다계속 앞을 바라보며 새로운 것을 성취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면서 감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때에 어떻게 장막절을 지켰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생각해 보십시오.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옵니다. 가나안 땅은 광야에 비해 너무나 좋고 비옥하고 풍족합니다. 그러니 그곳에 가서 여호수아가 율법을 쫓아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막 광야에서 들어오니 모든 백성이 다 잘 지켰을 것입니다. 지붕 위에도, 마당에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말씀이 역사입니다. 그것이 절기요 제사입니다. 그 여호수아 이후에는 그런데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포로로 잡혔다가 예배도 드리지 못하는 백성으로 전락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에 들어와 예배를 드릴 때 다시금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이 터의 소중함을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 같이 행한 일이 없으므로 크게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억할만한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벌써 과거에 대해 느슨해진 것입니다. 힘들어지고 어려워져봐야 아는 것입니다. 다시 장막절을 통해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5. 과거를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미래를 전망함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느 9:7) 선택입니다. 또한 소명입니다. 그리고 8절은 언약의 체결이 나옵니다. 또한, 8절 후반부는 하나님이 모든 말씀을 이루심을 말합니다. 9절은 홍해에서 그들을 건지신 것, 즉 생명을 살린 거듭남, 의롭다고 칭하신 칭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의 불기둥, 13절은 율법, 15절은 양식과 물을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 땅의 삶을 살 때 베푸시는 성화의 삶, 성화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9절에서 22절은 하나님이 베푸신 것을 모여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느 9:19-22) 우리 예배의 본질은 감사, 기억입니다. 기도의 본질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23절에는 정확히 세가지가 나옵니다. 자손, 땅, 주의 큰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땅와 후손과 복의 근원이 되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세 가지 복입니다. 이 세 가지 복을 다 이루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한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감사도 무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이 명령의 기저에는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주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책을 한권 출간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 삶에 대한 행적이 아니지만 그 분의 행적을 생각하면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끄셨는지, 그냥 그때 매번마다 지나가는 것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하나 하나가 기적 아닌 것이 업습니다. 우리 삶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매 순간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감사가 없습니다. 광야에 도착하면 홍해 건넌것 잊어버리고 여리고에 도착하니 요단강 건넌 것을 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도우시는 분인지 모른다고 하고 신앙의 삶도 재미가 없고 기억이 온전하지 않으니 믿음의 성장이 없습니다. 

기억이 온전해야 믿음의 성장이 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를 화롯가에서 고기 먹던 것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이 없이는 감사가 없고 감사가 없이는 겸비함과 자족함이 없으므로 판단이 들어오고 판단이 들어오면 불평과 교만이 들어옵니다. 우리의 삶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쉽게 말해 사람들 간에 받은 은혜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 사울의 집안인 므비보셋을 기억하고 대접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사람의 격이 있습니다. 받은 것은 기억하지 않고 상대편의 부족함만 폄하하면 가장 저급의 인격입니다. 특별히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받은 복을 헤아려 보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