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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16)] 파수꾼의 믿음 (겔3:16-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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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16)] 파수꾼의 믿음 (겔3:16-21)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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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16)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겔 3:17)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8)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겔 3:19)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겔 3:20)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겔 3:21)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녹취록>



1. 파수꾼의 사명: 말씀을 먼저 들은자의 영적 외침



저는 목회자로서 말씀을 온전히 대언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가장 투명하고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말씀을 전하여서 성도들이 그 말씀을 하나님께 직접 듣듯이 하는 것이 제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과 더불어 그말씀을 들고 땅 끝까지 나가는 것,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터로 옮겨와 이제 반 년이 지났는데 이 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은혜가 있을 줄을 믿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예루살렘에서 전도하신 것이 아니라 흑암의 스불론과 납달리, 그리고 갈릴리 등의 험악한 곳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가장 험악하고 전갈이 있고 가시가 있는 그 곳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요사이 이 곳을 다니면서 마음 속에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개미들이 줄 지어 이곳에 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집에서 이 곳을 올 때, 작은 오솔길 시골의 동산과 같은데, 그런 동산과 같은 오솔길을 오다 보면 개미들이 줄지어 가는데 그러마다 속으로 '하나님 성도들이 영적으로 줄을 서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고자 하는 성도들이 이곳에 모여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는 은혜를 베푸소서' 하는 마음을 가져보고는 합니다.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듣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데, 무엇을 들어야 하느냐,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말씀이 로마서 10장 8절의 말씀처럼 믿음의 말씀입니다. 믿음 없이는 절대 말씀은 역사하지 않고 오직 말씀의 역사는 믿음의 능력과 함께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말씀은 사람을 통하여서만 전해집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어서 구원받았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말씀을 들을 수가 없고 듣지 않고는 믿을 수 없고 믿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라는 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먼저 듣고 그리고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파수꾼의 사명인 것입니다. 

파수꾼이라는 것은 특별히 에스겔에 많이 나오는데, 파수꾼은 우리 말로 하면 보초서는 것, 더 편하게 이야기하면 망보는 것, 이런 것이 파수꾼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가장 변방에 서서, 물론 가축을 관리하기도 하고 적들이 쳐들어오면 가축을 지키는 것과 적들로부터 방어하는 것 두 가지를 같이 합니다. 밤새 자지 않고 지킵니다. 밤에 이리가 습격하고 밤에 도적이 와서 가축을 훔쳐가기 때문에, 시편에 보면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림같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밤에 춥습니까? 그 때 파수꾼은 자지 않고 졸지 않고, 그러면서 첫 번째 소식을 전하면서, 가장 위험한 자리에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파수꾼은 거의 죽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보면 보초를 2명이 섭니다. 유사시에 위험한 일이 일어나면 한 사람은 총알받이를 하고 한 사람은 소식을 전합니다. 한 사람이 총알받이 하고 죽어가는 동안 한 사람은 재빨리 적들이 쳐들어왔다고 알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파수꾼이 하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파수꾼이 누구인지 정의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17절,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  것이 바로 파수꾼이 하는 사명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대신에 그 말로 사람들을 깨우치라. 난리났다, 큰일났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예수 믿어야 한다, 깨우치라 고 하는 것이 파수꾼이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파수꾼은 영적인 파수꾼입니다. 세상의 제물을 지키는 파수꾼이 아니라 영생의 삶을 우리에게 주는, 바로 영혼의 마귀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영적인 파수꾼으로 하나님은 에스겔을 들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본문 16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17절은 '내 입의 말을 듣고 대신하여 깨우쳐라’고 합니다. 말을 어떻게 듣습니까? 우리가 말을 듣는다 하면 연구해야 하고 찾아다녀야 하고 파고 들어야 하고 쪼개야 한다는 등의 이상한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16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라고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요새 금요기도사경회 때 계속 출애굽기 말씀을 보고 있는데, 출애굽기 4장 부터 계속 1절에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입니다. 이렇게 출애굽기에서 각 장이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파수꾼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을 전하여서 사람을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파수꾼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

에스겔 1장과 2장을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을 부르는 장면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이 바벨론 그발 강가에 있을 때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서 에스겔을 부르셔서 그에게 소명을 주십니다. 에스겔 1장 5절에 보면 환상 가운데 어떤 형상을 보는데 네 생물의 형상을 봅니다. 앞의 형상은 사람의 얼굴, 오른쪽으로는 사자의 얼굴, 왼쪽으로는 소의 얼굴, 뒤쪽으로는 독수리의 얼굴을 한 그런 형상을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이 봅니다. 오른쪽으로 사자의 형상은 왕을 뜻합니다. 왼쪽으로 소의 형상은, 소는 각을 떠서 드리는 것이므로 제사장을 뜻합니다. 뒤쪽으로 독수리는 위로부터 가장 신성한 것을 아래로 전달해주는 선지자입니다. 네 가지의 형상이 있는데 앞의 형상은 인자, 사람이고, 오른쪽으로 사자는 왕이요, 왼쪽으로 소는 제사장이요, 뒤쪽으로 독수리는 바로 선지자,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왕이자 제사장이자 선지자이신 이 세 가지 직분을 감당하시지 않습니까? 왕으로서 성령을 주시므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시고 선지자로서 진리가 되시고 말씀이 되신 분,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닙니까? 그 환상을 바로 이 에스겔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생물들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입니다. 에스겔 1장 19-20절에 보면 그 생물들이 갈 때 바퀴가 움직이고, 바퀴가 움직이면 그 생물들이 들립니다. 이런 환상을 봅니다. 큰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바퀴는 무엇일까요? 그 바퀴는 영이라고 나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 즉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시지 않고 움직이는데 그 때 바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환상을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너는 나의 파수꾼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그 분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자 생명이 아니십니까? 그 분이 진리가 아니십니까?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에스겔이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임할 때 필히 성령의 역사가 함께 있습니다. 말씀은 그저 기둥같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퀴같이 도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말씀에는 운동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어서 우리의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고, 우리의 영혼을 훈계하고 가르치며 온전케 하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에스겔 1장 3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너희에게 있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달리 이제는 선지자가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선지자가 있다하면 이단입니다.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다 선지자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의 말씀을 받으면 성령의 역사로 그 말씀이 또한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날개를 단 듯이 다니면서 권능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임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아주 강력하게 임한 것, 아니면 아주 똑바로 새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니다. 못으로 박듯이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새겨져서 그 때 '여호와의 권능이 내 입에 있으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의 단 것을 누림: 듣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데까지 이름(파수꾼의 자리)

에스겔은 선지자 중에서도 제사장 가문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제사장 가문의 선지자가 예레미야, 스가랴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제사장 가문이기 때문에 제사, 오늘날 예배를 수종드는 성전에 머무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이 선지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교회 안에서 섬기는 제사장적 직분도 있지만나가서 전해야 하는 선지자적 직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과 스가랴, 예레미야 이런 선지자들입니다. 이 분들은 특별히 보면 하나님이 아주 이스라엘의 예배에 대해서 똑바로 알게 하시고 그리고 전파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유가 있어서 사용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안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나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바로 말씀에 나오는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은 일한다고 예배드리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변방에 있다고 해서 성전을 멀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고 교회에서 예배 잘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밖에 나가는 성도입니다. 예배도 드리지 않으면서 말씀을 받았느니, 말씀의 은혜가 있니, 권능이 있다고 하는 것은 삯군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이 에스겔을 들어 파수꾼으로 사용하십니다. 에스겔 3장 3절에 보면 두루마리 말씀을 먹여주십니다. 특별히 임했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환상 중에 두루마리를 먹여주시는데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두루마리의 말씀의 달기가 꿀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 단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이 있고, 능력이 있고, 약속이 있고, 성취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밀의 역사가 있습니다. 다른 것은 전부 가는만큼 갑니다. 자로 줄 대듯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으면 그 역사가 달아집니다. 하나님의 두루마리 말씀을 달기가 꿀 같은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두루마리 말씀을 받은 사람은 신약시대에서는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그가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나옵니다. —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 10:9-10) 이것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으로는 쓰지만 입은 곧 영, 고백의 말씀으로는 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할 때는 말씀이 단데 육신으로 그것을 판단할 때는 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단 것은 다 유혹입니다. 세상의 단 것은 전부 다 수명을 단축시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단 것은 일시적으로 쓴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달고 유익합니다. 중세신학자 버나드는 회개가 꿀을 쑥에 버무려 먹는 것은 쓰지만 결국은 꿀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쓰지만 영생을 줍니다. 하지만 세상의 것은 다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이 단맛을 누려야 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파수꾼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말씀을 받는 자리에 머물지 말고 전하는 데에까지 나가야 단 것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선의 맛은 파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 남에게 먹이는 사람이 압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파수꾼입니다. 말씀을 받을 뿐 아니라 요리해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먹여보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다 요리사고 어머니의 입맛이 있는 것입니다. 먹어보는 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이 진짜 입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의 파수꾼의 소명입니다. —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라.”(겔 2:5-7) 안 듣는다고 억지로 내 말로 지어내지 말고 그냥 여호와의 말씀으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듣든지 말든지 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소명이지 사람의 수요로 맞추지 않습니다. 이 동네를 따져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잘하다가 아덴에 가서는 잘 못했습니다. 당대의 철학이 강하던 곳인데 사도 바울도 자신의 철학적 배경을 갖고 접근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듣든지 아니듣든지 내 말이 아닌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는 것입니다. 

4. 전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함 

우리 주변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저도 참 덜떨어지고 믿음 없는 목사가 되어 지리만 보고 몇가정이 사는지 헤아렸습니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역세권이니 하면서 집을 찾듯 교회도 그런 모습으로 보는 저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10만명이 살아도 택한 백성이 백명일 수 있고 1만명이 살아도 택한 백성이 천명일 수 있습니다. 저는 요새 이 지역을 산책 하면서 목회자로서 진실한 말로 제 마음에 담깁니다. 우리 교회를 만히 와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명을 전도해 봤습니까?’ 하는 질문은 몇명을 데려왔는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몇 명에게 전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시지 데려온 것에서 의미를 찾지 않습니다. 데려오는 것은 우리의 전한 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지 우리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10년, 20년 해도 간다고 간다고 하면서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우연히 스친 듯 해도 전도지 들고 다니는 모습이 은혜가 되어서 올 수 있습니다. 막 가서 설득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 사람의 모습 말입니다. —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겔 2:5)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동네에 교회가, 목사가, 성도가 있음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도, 말씀도 진리도 없는, 한국 교회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가, 목사가, 성도가 있음을 알게 하라고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절하게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 땅에 오셔서 편안하게 전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 즉 병자만 낫게 하고 오병이어의 기적만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할 때는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돌을 들고 치려 나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핍박합니다. 그저 병을 낫게 하고 오병이어를 베풀면 좋아서 쫓아다니지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면 돌을 들고 치러 나옵니다. 주님이, 세례 요한이 한 말입니다. 우리 주님의 일성이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씀을 전한 곳이 죄가 없는 곳도 아닙니다. 가장 죄가 많고 거친 사람이 사는 납달리 스불론 사람들이 사는 지역, 일찍이 앗수르의 침범이 있었고 애굽이 올라와서 만신창이가 된 그 지역에 우리 주님이 그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갈릴리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각색의 병자를 낫게 하셨습니다.(마 4:23) 이 세가지를 우리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전파하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겔 2:6) 가시와 찔레와 전갈 같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가 회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태원에서도 전도해봤습니다마는, 여기 와서는 이번 여름에는 정말 전도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막 치고 나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오늘 말씀이 생각납니다. —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 4:3) 전도는 자질과 능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증거하도록 하나님이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갈수록 가시와 찔레가 많습니다. 제가 신학교 입학하고 할 때는 우리 교단의 신문인 기독신문에 어느 개척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일이 기사에 났습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기해 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개척교회는 모두 흡수되고 모판이 되는 지역의 작은 교회들에게 얼마나 어려움이 큽니까? 전도를 해봐도 20년 전과 지금은 다릅니다. 예전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고루해서 전도지를 안받으려 하는데 요즘에는 젊은이들이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끝까지 버티고 손을 내지 않습니다. 사탕을 주고 부활절 전단지를 줘도 손조차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막 쳐다봅니다. 정말 우리가 오늘날 기도를 해야 합니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에스겔의 말씀과 같습니다. 신약시대는 모든 성도들이 선지자이므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5.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움직일 때 우리가 복음의 복을 누림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 같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누룩이 아니라 말입니다. 누룩은 한번 번지면 그 때는 커지지만 이후에는 퍼져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한번 싹을 내면 큰 나무가 되고 또 씨를 내서 싹을 내며 계속 퍼집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고 주의 영이 임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사자와 소와 독수리 같은 영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사자 같은 왕의 권능을 갖습니다. 우리 자신을 드려 이 땅에서 세상의 칼이 아니라 말씀의 검으로 다스리는 왕의 직분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소와 같이 우리 자신을 각을 떠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자 직분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독수리와 같이 가장 높이 날아올라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물어서 땅의 끝까지 물어다 주는 땅의 선지자 역할을 감당합니다. 머물러 있지 않고 말씀이 우리 안에서 계속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약시대 우리에게 영을 주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진리의 영을 받아 이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겔 3:14) 에스겔서를 보면 이 부분이 사도행전의 성령 강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린다고 합니다. 말씀이 임하고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자신이 아이와 같아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네 입에 내 말을 두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말씀의 은혜를 받고 달콤함을 누리고 싶나요? 말씀은 정말 달콤합니다. 그렇다면 꺼내서 요리를 하고 먹이십시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가 받은 말씀, 곳간에 놓은 쌀이 밥이 되도록 만들어서 주고 나도 먹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나도 그 맛을 알고 다른 사람도 먹이는 것이 바로 파수꾼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 진리 가운데 두시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고후 11:10)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계속 했습니다. 3년간 주님을 따라다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후세에 이 말을 가장 중요하게 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진리가 우리 안에 있습니까? 우리는 다 성령을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우리 안에 주신 줄 믿기 바랍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 보혜사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누구라도 우리가 입을 열면 그 때 성령이 우리를 동동 뜨게 만듭니다. 아까 바퀴가 돌듯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파수꾼입니다. 그저 말씀을 가지고 있지 말고 한번 나가서 전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장 요새 기도하면서 생각하던 것이 있습니다. 이제 홈페이지도 완성되어가니 나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홈페이지를 그저 홈페이지가 아니라 분명히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태원에 있을 때 그 동네에 전도해서 동네 분들이 교회에 오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네에서 열심히 전도하면 먼 곳에서라도 옵니다. 바로 그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 있습니다. —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고후 13:3)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말씀하시는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참된 것은 단 하나 이것 때문입니다. 이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고 움직이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갈 때 여호수아와 같이 담대하게 우리를 해 주십니다. 에스겔도 강한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그저 눈물만 흘렸을 뿐입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모두 본래 그리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겔 3:8-9) 하나님이 에스겔의 얼굴을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만들어주신다고 합니다. 뻔뻔스러움이 아닌 여호수아와 같은 담대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질로 전도하지 못합니다. 여호와가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로 말씀하시면 그 때 영적인 담대함을 주셔서 주여 내 얼굴을 이마를 금강석 같이 화석같이 단단하게 하소서, 나를 말씀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말씀이 살아 운동력과 역사가 있음을 체험하게 하시옵소서, 주여 종을 파수꾼으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을 들고 땅끝까지 가라고 한 그 소명 감당하여 상급받게 하소서라고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아까 골로새서의 말씀을 나누었지만, 전도할 문을 열어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게 하여 달라고 해야 합니다. 찔레, 가시, 전갈과 같은 것이 내 앞에 막고 있어도 나의 얼굴을 굳게 하사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후반부는 우리는 말씀을 전할 뿐 그 이상의 것은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8-19절은 악인에게 말씀을 전해서 악인이 교회에 오게 되면 그도 살고 너도 사는데, 만약 악인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아 그가 교회에 오지 않아서 멸망하면 그 피값을 너에게 묻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을 깨우치지 않아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둘 다 멸망할 것이요, 말씀을 전했는데 만약 악인이 안나오면 너는 살 것이나 그는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너무 두렵게 듣지 마십시오. 그러나 사실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것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고 안오고는 그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 그들이 혹 멸망했다며 그 값을 우리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말씀입니다. 그리고 의인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 실족하게 되는데 아무 지적을 하지 않아 실족하여 멸망하게 되면 그 죄값도 묻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믿지 않은 사람이 말씀을 듣지 못해 망해도, 교회 안의 사람이 실족했는데 가르치지 않아 망해도 둘다 우리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전도와 가르침, 두가지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저 파수꾼은 말씀을 전하면 됩니다. 제자들은 말씀을 전하고 평안하기를 빌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 아멘 하면 그들이 복을 받는 것이요, 그들이 배척하면 전한 복과 의가 제자들에게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 10:12-13) 예수님도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말을 해야 늡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들러 붙습니다.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겔 3:26) 말씀을 들고 그냥 전하지 않고만 있으면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어 말못하는 자가 되게 하리라고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전하다 보니 너무 힘들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쉬운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해야 내가 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파수꾼이 되라는 것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초는 상자에 들어있을 때가 아닌 꺼내어 불을 붙여 비출 때 초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때 우리가 빛이 되고 빛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빛의 자녀답게 어두움을 버리라고 합니다. 복음의 은혜를 전하시기 원하십니까? 그럼 바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3) 이것이 바로 전도의 비밀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은, 내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 복음의 은혜를 누리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고 말씀 전하면, 우리 교회는 이 동네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전할 책도 주보도 있고, 전도지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은 정말 정기적으로 전도지를 받아보게 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굶주리더라도 그것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저 작은 것이라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 오는 것은 우리의 부담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얘기하지 데려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교회에 데려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전하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만약 전하지 않아서 구원을 얻지 못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인근의 청년들에게 전하기를 원합니다. 요새 점심이 되면 산에까지 걸어다니는 것이 보입니다. 특히 본문 말씀을 받을 때 그런 은혜로 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