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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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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2


           

[20180318]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3)] 의로 여기시는 믿음 (창12:1-4; 15:1-7) 문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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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8]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3)] 의로 여기시는 믿음 (창12:1-4; 15:1-7) 문병호 목사 


<녹취록>



1. 단번에 은혜로 절대적으로 임한 은혜

오늘 창세기 12장 그리고 15장의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이 되게 하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반부는 아브람을 불러내시는 것이요 후반부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보지는 않았지만 17장에서도 다시 한 번 언약을 체결하시는데 할례의 언약을 맺고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확증하십니다. 본문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15장 6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게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그를 의롭게 여기신 것, 구원의 대원칙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의 삶 중 의의를 두시는 것은 믿음으로 된 것 뿐입니다. 믿음 없이는 행함과 말이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이성의 꾀에 불괴하고 헛된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조금 부족해도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 부족하고 미련한 것을 오히려 지혜롭게 하시고 약해도 믿음이 있으면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오직 믿음 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모든 일은 한 때 형통해보여도 사상누각(沙上樓閣)입니다. 높이 쌓을수록 바벨탑과 같이 더 크게 무너집니다.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혈통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다서 1장 3절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의 대지도자입니다. 그가 유다서에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이라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며, 그것은 단번에 은혜로 주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말도 더하여 달라는 기도도 하지만 믿음은 단번에 은혜로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믿음은 있고 없고의 문제이지 더함과 덜함은 부수적인 열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신 백성을 자녀로 삼으시고 연약해 보여도 그들에게는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몸부림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막연하게라도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2. 믿음의 주: 믿음의 목표와 대상과 수단이 되시며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믿음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 영원하신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히 12:2) '믿음의 주'라는 말은 예수님이 믿음의 목표요 지향점이라는 것이며 십자가 사역이 우리가 믿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주시는 이와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음의 목표와 대상과 수단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예수님이 우리 믿음을 주장해주셔야 하며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면류관을 던져 엎드리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동행하듯 우리에게도 오늘날 동행하십니다. 뚜렷이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고 가는데 그가 이미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우리는 예수를 목적지로 삼는데 그가 이미 우리 삶을 주장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엄마 어디 어디 좋은 것으로 가자고 하나, 나이가 들어 여의고 보니 어머니 품이 최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 품이 목적지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수단, 과정, 방법 같지만 부모님의 품보다 안온한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3. 말씀이 귀에 들리는 것과 믿음이 마음에 다가오게 하는 것이 함께 주어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들음은 말씀을 들음이요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동장 8절은 말씀이 내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 10:8) 이는 신명기 31장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구약, 신약 모두에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에게 말씀이 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믿어서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말씀이 믿음과 함께 옵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있으면 이미 그 가운데 믿음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 이르신 말씀이 출발점입니다. 아브라함이 찾아간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찾아가서 이르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본문 12장 4절은 아브라함이 순종했다고 합니다. 말씀이 뭔데 임하니 따라갑니까? 당대 가장 기름진 땅을 두고 가나안 박토로 간 것입니다. 가나안은 메소포타미아 지방, 오늘날 이라크 지방보다 못한 곳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이 무슨 힘으로 그를 움직인 것인가요? 그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그가 믿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과 같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신 예수를 바라본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이 이르렀다는 것은 믿음도 주신 것입니다. 간혹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믿음보다 먼저 지시함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가 이끌려 가면, 그 사이에 지시가 믿음으로 역사합니다. 하나님에 관련된 것은 전부 믿음과 함께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8절, '믿음의 말씀이 가까워 우리 입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이르셨다는 것은 그 순간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귀에만 들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심령에 다가오게 하셔서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직 역사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힘과 의지를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말씀이 임한 것의 의미입니다. 

이 말씀이 이르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본토도 친척도 아비도 떠났다고 합니다. 떠나는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아주 강하게 반복되는 말입니다. 고향도, 친척도, 아비의 집도 떠나라고 합니다. 떠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던 일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에게 이 떠남이 사무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미 보여준 것이 아니라 미래형으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이런 말이 안들립니다. 믿음 없이는 보여줘야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갈 수 있습니다. 지금 씨를 뿌리고 싹이 나지만, 씨를 뿌린 땅도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홍해를 갈라 놓았으니 딛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단강 물을 정지시키고 걸어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홍해에 들어가야, 요단강에 법궤 발을 딛어야 건넙니다. 이 믿음은 아무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이방에 살던 아브라함이 잘나서, 정신적인 혁명을 일으켜 떠난 것이 아닙니다.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임할 때 믿음까지 선물로 주셔서 그것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가장 부질없는 것이 여호와의 지시함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재능과 능력의 부족함을 가지고 말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지시가 있으면 감당할 믿음도 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감당할 믿음 주시지 않고 일을 주시지 않습니다. 저는 작년에 우리 집사님들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교회 알아본다고 할 때 이제는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도 수가 많지 않지만, 하나님이 지시할 때 감당할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피아노 소리 가운데 찬양드리는 것이 꿈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면서 지시하십니다. 지시하시거든 곧 믿음 주신 것을 믿으십시오. 믿음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선물입니다. —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행 7:2)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본문 15장 7절도 그렇습니다. 이끌어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불가항력적으로 말입니다. 거절할 수 없는 은혜로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자신을 보이셔서 말입니다. 그래서 지시하는 곳으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마음이 우리에게 불일듯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불가항력적으로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되지 않습니다. 기도와 말씀 없이 일과 사건에 순종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순종은 여호와의 역사, 우리의 믿음입니다.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4. 믿음과 함께 드러내시는 것: 회개와 복

이 믿음을 주실 때 하나님은 두 가지를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첫째는 과거와 단절로서 회개입니다. 회개 없는 구원과 믿음이 없습니다. 과거를 붙들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바알과 여호와를 결정해야 합니다. 둘 다 섬길 수 없습니다. 한 가지만을 해야 합니다. 단절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접을 붙인다고 합니다. 접을 붙이기 위해서는 이전의 가지에서 잘려나가야 합니다. 두 나무에 연결되어 사는 가지는 없습니다. 과거와의 단절이 없는 접붙임은 없습니다. 

두번째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2장 2절은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합니다. 땅도 주고 후손도 주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복입니다. 같은 땅에 살아도 이방 신을 섬기면 가증스럽게 됩니다. 복은 무엇인가요? 쉽게 정의하면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이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드러내는 것, 그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누리지만 하나님의 것을 드러냅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은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주하기 때문입니다.우리의 가정이, 이 터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모여 예배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본문 12장 6절은 가나안 사람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이방 우상의 터인 그곳이 하나님의 백성이 거주하니 신령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같은 땅이라도 이방이 머물면 만가지 신이 있습니다. 만신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임하면 바로 복된 것입니다. 

5. 복: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드러내는 것

여러분 여행을 좋아하십니까? 여행은 다 알고 가는 것이 아니니 재밌습니다. 먼저 다 준비해서 가장 맛있는데 찾아간다고 해도 실제 가보면 다릅니다. 여행의 묘미는 모르고 떠나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면 즐거운 이유를 생각해보니 여행을 가면 나를 비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쪽 사람들에게는 상식인데 우리는 모르니 물어보니 즐거운 것 같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생각을 해봤습니다. 모르고 떠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말입니다. 밤새 이성으로 짜내어 보아도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 이생의 삶, 광야의 삶은 어떻게 보면 모르고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날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끄는대로 갔습니다. 내가 계획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드러내서 어디든지 가면 그 땅이 복을 받고 그 자녀와 함께 복을 받고, 그 자녀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복된 백성이라고 할 때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과 의와 어떠하심을 비추는 것이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인 것입니다. 본문 12장 3절은 땅의 모든 백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이런 복을 누려야 합니다. 복이라고 하면 형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전제되는 것은 진리 가운데입니다. 성경에서 선의 개념은 복의 개념인데 반드시 진리 가운데 형통함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형통한 것은 복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무시하고 복만 달라고 하면 기복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즉, 말씀을 듣기에 힘쓰면 그 안에 믿음과 복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씀 들으면 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마 17:5) 들으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 가운데 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본문 15장 6절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믿은 것은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믿음도 은혜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뒷산에 보니 생강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꽃이라도 우리가 복되니 복된 것입니다. 어릴 때 우리 고향에 꽃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이가 들어서는 꽃이 조금만 피어 있어도 너무나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꽃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복된 백성이므로 모든 주변의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아멘하고 복을 누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 고백이 없으면 우리 인생은 헛되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봄날 작은 들꽃 하나도 고백하고 감사하고 그것이 화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감사제 화목제를 올렸지만 지금은 십자가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화목되는 것입니다.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